김연수 “소설쓰기는 이별한 뒤에 한번 더 사랑하는 일” - 『원더보이』
“더더욱 내가 된다는 건, 뭔가 되기보다는 뭔가 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죠.”
열망 속에서 성장하고, 사랑 가까이에서 외로워하는 소년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 모두의 소년 시절 이야기.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받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원더보이』였다고, 소설은 말한다.
지나간 흔적에 관한 이야기들
김연수 작가의 글은, 첫사랑의 기억처럼 아련한 데가 있다. 그가 지나간 흔적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하기 때문이다. 여기 있었는데 사라진 것, 간절하게 원하지만 이룰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움을 쫓는 사람들이 그의 소설 속에 있다.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부터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까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소설 속 인물들은 온전히 내면의 갈망으로 움직이던 사람들이었다. 갈망은 무엇인가 탐하는 욕망보다 간절하고 로맨틱한 열정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연애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지금 여기 없는 걸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라면,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열망이나 소원, 꿈 같은 것은 누군가 공유하거나 나눈다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까. 온전히 자기가 이뤄내야만,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면, 어떤 열망을 품고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 열망을 달성하든 그렇지 못하든 조금씩 성장한다.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 『원더보이』에도 그런 소년이 등장한다. 열망 속에서 성장하고, 사랑 가까이에서 외로워하는 소년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 모두의 소년 시절 이야기.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받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원더보이』였다고, 소설은 말한다.
간절하게 원한다면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때, 원더보이
이 소설의 배경은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화려하게 열어젖힌 1984년.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비행사가 처음으로 우주 유영에 성공한 해이기도 하고, 숟가락을 초능력으로 구부리는 남자 유리겔라가 한국을 방문한 해였다. 과천에는 서울대공원이 개원했고, 88올림픽만 지나면,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가 될 것 같은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던 시절.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원한다면,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때, 김연수 작가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열다섯 살 소년이었다.
“팝송, 프로야구, 중국 영화…… 그때가 개방 직전이었거든요. 새롭게 체험한 것들이 많았어요. 굉장히 매력적인 한 해였어요. 그때에 대한 자전적인 소설을 쓰게 되더라도, 아마 시작은 『원더보이』와 똑같을 거예요. 1월 1일 날 방송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정말 충격적이었거든요.
<굿모닝 미스터 오웰> 할 때 톰슨 트윈스가 나왔어요. 그 비디오아트는 뉴욕, 파리, 서울을 생중계로 연결하는 게 목표였어요.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 톰슨 트윈스가 뉴욕에서 실황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걸 내가 보고 있다는 것,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가수를 보고 있다는 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거죠. 그렇게 시작된 해였어요. 듀란듀란, 마돈나, 마이클 잭슨, 한 해 동안 그 음악들을 들었어요. 저한테는 획기적인 한 해였죠.”
『원더보이』의 소년은 사고 후 깨어났을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소년이 겪는 이런 기이한 일이 84년도와 어우러진다. “제가 소년일 때, 소년 중앙 같은 책을 보면, 항상 초능력자들 이야기가 나왔어요. 유리 갤러의 스푼 벤딩, 축지법, 염력 같은 것. 이런 초자연적 현상을 1984년도로 가져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간절히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간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원했으나 그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외로움은 어떻게 해소가 되는가? 혼자라는 건 어떤 것이고, 혼자가 아닌 것은 어떤 것인가?
이런 작가의 질문은, 80년대 후반, 데모와 항쟁, 분신이 벌어지던 치열한 시대의 이야기로 맥락이 이어졌다. 함께였지만, 모두가 혼자라고 생각했던 시절,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던 시절에 대한 회상에서 『원더보이』가 빚어졌다. 지난 2월, 홍대 한 카페에서 만난 김연수 작가를 만났다.
소설 쓰기, 인물의 고통을 납득하는 과정
“천재의 책 읽기. 천재적으로 책을 읽으려면 작가가 쓰지 않은 글을 읽어야만 해. 썼다가 지웠다거나, 쓰려고 했지만 역부족으로 쓰지 못했다거나, 처음부터 아예 쓰지 않으려고 제외시켰던 것들 말이지.(p.234)” |
이 작품은, 밤에 소년이 운동장을 뛰어가는 이미지, 혼자 있는 이미지에서 시작하셨다고요. 작품마다 어떤 이미지가 있어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입체누드사진,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나오는 메타세쿼이아 나무 이미지,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의 불타는 야경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았거든요. 이미지가 중요한 시작점이 되나 봅니다.
“시작, 아니면 끝이죠. 시간을 통조림에 넣은 것처럼 이야기가 들어있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런 이미지를 찾으면 상상을 많이 하니까요.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갈 데가 없으면 8번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 한 바퀴를 돌았어요. 그때 집집마다 걸려있는 빨래가 보였는데, 저 옷의 주인은 누구고, 저 옷을 마지막으로 입었을 때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이런 상상을 해봤어요. 너무 궁금한 거예요. 세상에 사람은 매우 많고, 이 많은 사람이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게요. 그렇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흔적들이 있어요.”
글을 쓸 때, 쓰는 작가가 먼저 재미있어야 독자도 재미를 느낀다는 말도 있잖아요. 『원더보이』는 외로움에 관한 소설이기도 한데, 이 글을 쓰시면서, 작가님은 덜 외로워졌나요
“저의 외로움은 좀 다른 것인데요. 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보다 훨씬 안 좋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에 관해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사람에 관해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돼요. 『원더보이』는 그나마 덜했지만, 임진왜란 때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결국 화형으로 죽는 인물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내가 그 사람에 관해 써야 하는데, 그 고통을 알 수가 없어요. 누가 이해를 하겠어요. 그런데 어쨌든 저는 써야 하는 거죠. 그런 외로움이에요.
여전히 정확히 모르겠지만, 주인공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외로움이 크면,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요. 개종하지 않아서 고문을 당하면, 종교를 버리면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종하지 않고, 고통은 존재한다는 거죠. 자기도 스스로 물어볼 것 같아요. 이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저는 당사자가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걸 납득하는 과정이 대부분 소설로 서술되는 것들이에요. 임진왜란 같은 경우는 이해하려면 굉장히 긴 이야기가 필요한 거죠. 그러니 긴 장편이 되는 거고요. 저 같은 경우, 그렇게 쓰고 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때 외롭지 않은 거죠.”
그렇다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쓸 수는 있다는 거군요.
“알고 쓰는 게 아니에요. 수많은 가능성들이 계속 나와요. 끔찍한 것에서부터 아주 좋은 것까지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생각해보는 거죠. 이 소설에서 가장 끔찍한 결말은, 그냥 분신하는 거예요. 그런데 쓰고 나서 그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완전 실패한 거예요. 내가 이해하지 못할 고통으로 죽는 거니까요. 쓰고 나서야 이해하는 거죠.”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아무리 엄청난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경우는 없어요. 그게 우리의 한계에요. 그 한계 때문에 우리는 이런 국가를 가지게 된 거예요.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면, 어떤 국가나 권력도 개인을 억압할 수 없었을 거예요.(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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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간 코메디언』의 서두에 “소설가라면, 남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연상되었어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서도 그렇고, 고통과 소통 사이에서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쓴 얘기인데, 사랑은 누구에게나 다 하나씩 있어요. 살인마도 자기 사랑은 하나 있잖아요. 모두 다른 사랑인데도 다 이해가 가요. 반면 고통은 하나뿐인데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서 고통이에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에 대해 쓰려고 하면, 너무나 막막한 벽이 존재해요. 그 막막함을 걷어내는 게 소설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에요. 그 인물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내 일처럼 겪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소통의 문제가 나와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난 어땠는지 모르지만, 대충 이럴 거야, 이렇게 쓴다고 해봐요. 엄마가 죽었을 때의 슬픔? 되게 슬프겠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일 거야. 이렇게 소설을 완성하면, 진부한 표현이 대부분이에요. 독자가 원하는 건, 정말 겪음 직한 슬픔, 인물이 실제 겪은 슬픔을 원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대충 사회적으로 이해한 것만으로는 안돼요. 그 인물을 알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좋은 문장과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그래도 모르겠으면 취재를 해야 하고요.”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빛들을 나눠서 쪼일 수 있었다면 아빠는 평생 매초당 7조 5499억 5047만 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1초였을 거예요.(p.41)’ 이런 식의 표현을 보면서, 숫자는 불분명하고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데, 숫자는 명확하고 확인이 가능할 수 있어서 납득이 되는구나. 문자보다 숫자가 더 위로가 되는구나 느꼈어요.
“위로가 된다니까요.(웃음) 이과 생이었을 때, 글을 쓴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도구가 너무 안 좋아요.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지난번에는 ‘2.5였는데 이번엔 3 정도의 슬픔이니까 조금 더 슬프다.’라고 할 수 있지만 ‘팔을 잘라내는 듯한 아픔’이라고 하면, 팔을 잘려본 적이 없어서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잖아요. 큰 수들이 위안을 줘요. 평소에도 계산을 많이 해보고, 숫자를 만지는 걸 좋아해요.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 일 년에 몇 잔을 마시게 될까? 하루에 10킬로씩 달리면, 평생 얼마나 달리게 될까. 평생을 달려도 만 킬로를 못 뛰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삶이 짧게 느껴지죠.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 숫자의 좋은 점이겠죠.”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으세요?
“제가 다섯 명 정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명은 글 쓰게 하고 다른 애들은 놀러다니고.(웃음)”
세대 속에 반복되는 경험이 존재한다
“두 개의 슬픔이 합쳐졌으니, 고통받아야 마땅했지만 그 순간 나는 위로받았다.(p.159)” |
지난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우리가 보낸 순간』이라는 책으로 뵈었을 때, 삶에 사이클이 있는데, 지금은 친밀감이 중요하게 느껴진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원더보이』를 쓰고 난 지금은 어떤가요?
“’열세 살 열무에게’라고 소설 맨 앞에 썼는데,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겪었던 열네 살이라는 시기를 내년이면 열무도 지나가요. 누구나 그때를 겪는 거잖아요. 열네 살이 되는 시기는 대부분 닮아있는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알기 시작하는 거죠. 외로움 같은 것. 남한테 말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것. 그러다 절망도 할 거예요. 나는 이렇게 지나왔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더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런 얘기가 큰 도움은 안 될 거라는 걸 알아요. 아버지나 선배나 형이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해줬을 때 전 믿지 않았거든요. 나의 경험은 고유한 것으로 생각했지 그들과 동일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 얘기도 ‘앞으로 이럴 거다’ 참고 사항의 하나 정도로 얘기한 거지만, 이렇게 계속 연결해보고 싶어요. 나보다 어린 열무와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연결해주고 나란히 놓고 봤을 때, 우리의 공통된 부분, 다른 부분을 알 수 있게 되잖아요.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고 싶은 것이로군요?(웃음)
“네. 교량 역할을 하고 싶은.(웃음) 아이 덕분인 것 같아요. 아이가 없었으면, 앞으로 우리가 겪을 세상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아버지가 열네 살일 때는 내가 본 것이 없어서 나와 같은 시기를 보냈다는 걸 믿지 못했지만, 내가 겪은 시기를 딸이 지나가는 걸 보니까, 이제는 알 수 있는 거죠. 예전에는 같은 사건을 겪어도 모두가 다르게 경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같은 걸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엄청난 변화죠. 세대 속에서 반복되는 경험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세상을 좀 좋게 바꾼다, 그런 믿음이 약간 생겼어요.
그럼 인생 전체를 돌아봤을 때, 그래프로 상상해본다면, 삶이 점점 나아지셨나요?
“아뇨. 나아진 것도 아니고, 나아지지 않은 것도 아닌데, 내 삶에 대해 이해를 조금 더 하게 되었어요. 20대 때는 납득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실제로 벽을 칠 정도였어요. 답답해서. 지금도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많이 이해가 되고,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예전보다 불편함이 덜한 상태가 된 거죠.”
10대에는 근거 없는 낙관이 세계를 납득하게 한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20대, 30대, 40대에 그 근거 없는 낙관을 대신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20대 때는 되는 일이 없는 때잖아요. 몸소 다 느끼잖아요.(웃음) 그땐 긍정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모든 게 맘에 안 들었고, 모든 걸 다 비판했어요. 그래서 가끔 저더러 20대 학생들에게 해줄 말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진짜 해줄 말이 없어요.(웃음)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 뭐라고 얘기해줘요. 지금 열심히 준비하면 30대엔 잘될 거에요,한다고 믿어지세요?(웃음) 그럴 땐 이렇게 얘기해요. 20대의 특권은 실패하고 실수하는 거니까, 그런 일을 맘껏 해 보시라고요. 물론 실패한다고 그게 교훈이 되어 남들보다 깊어지고 이런 것도 아니지만요.
그러다 스물아홉쯤 되면, 연애마저 깨지고, 꿈도 포기하게 되고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일상에 약간씩 만족하면서 회사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하고요. 30대쯤 되면, 비판 정신은 여전하지만, 치열했던 비판의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겨요. 몸과 정신이 균형 있게 건강해져서 자기한테 관대해지고 편해지고요. 이를테면, 여자들은 20대가 미모의 절정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 20대를 지나면 자기 안에서 포기하는 게 생기고, 자기가 망가져도 큰 주목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내가 생각보다 그렇게 남들에게 주목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는 거죠.”
서른 살이 되니까 정말 편해졌나요?(웃음)
“아주 단순한 세계에 살게 되었어요.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일하면, 그만큼 많이 할 수 있다, 이런 세계 속에 살기 시작한 거죠. 20대에는 어떻게 하면 대충 써도, 이게 세계 명작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요.(웃음) 초능력 같은 걸 일으키는 방법을요. 그런 관점에서 남의 작품을 보면, 저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인정을 받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거죠. 그러다 몇 년 지나고 나면, 두 시간 더 하면, 한 시간 할 때보다 더 좋아진다는 걸 아는 세계 속에서 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약간 긍정적이 돼요. 초능력 같은 건 잘 믿지 않게 되고.”
이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더욱 내가 되는 일
“그 고통이 절정에 이를 때, 그들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고통도 자신을 완전히 죽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차례로 발견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저마다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p.98)” |
내가 더욱 내가 되는 것, 어떻게 가능할까요? 자기계발적인 질문이지만, 작가적인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웃음)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지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그게 저에게 소설을 쓰게 하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되고 싶은 그 다른 사람은, 바로 나인 거에요. 대부분 사람은 내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로 살아가잖아요.”
어떻게 구분하나요? 내가 진짜 나인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인지. 작가님은 언제 진짜 ‘나’가 되셨나요?
“뭔가 욕망이 있을 때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내가 교수가 돼야겠다는 목표로 살아갈 때는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순서로 교수가 돼야지 생각하는 건, 어쩌면 남이 생각하는 내가 되는 것 같다는 거죠. 교수가 되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목표가 없는 상태가 아닐까. 저도 헷갈리는데, 나는 노벨상을 타고 싶다. 이건 좀 목표가 이상하잖아요.
훌륭한,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 이런 목표는 내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글을 계속 쓰는 사람이 되는 것, 이건 어려운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더더욱 내가 된다는 건, 뭔가 되기보다는 뭔가 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죠. 노벨상 받는 건 결과물이죠. 해야 할 일에 결과물을 적을 순 없어요. 내가 해야 할 일에 ‘글을 계속 쓰는 것’ ‘점점 나은 글을 쓰는 것’은 적을 수 있어도 ‘노벨상을 받는 것’이라고 쓸 수는 없다는 거예요. 자기계발서적으로 얘기했어요.(웃음)”
혹시 작가님도 소년 시절 때, 되고 싶은 사람이 있었나요?
“아인슈타인 전기 읽고 아인슈타인이 되고 싶었어요.(웃음) 천재성도 천재성이지만,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거든요. 젊은 나이에 세계의 비밀을 풀고. 그런 게 멋있더라고요.”
<희재>라는 연애소설을 연재하셨잖아요. 곧 책으로 나온다고 들었어요. 감수성으로 버티기 어려운 이 시기에 연애소설을 쓰시다니.(웃음)
“저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힘든 시기였어요. 예전에 이런 글을 썼는데, 한참 촛불을 들던 시기에 열심히 나갔는데, 갑자기 피로감이 들더라고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광화문에 전경도 없고, 서점에서 CD사서 들고 버스 타고 돌아가던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땐 되게 평범한 일이었는데, 중요한 일이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 연애하다가 실연한 것도 아닌데 자꾸 그런 감정이 생긴다고 쓰기도 했어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도 마찬가지였고. 한 시대가 끝났다는 건, 우리가 사랑했던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잖아요.
강연 가면 자주 얘기하는데, 소설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경험을 해준다고 말해요. 내가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일까? 그 시절에 대해 글을 쓰게 되면,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어요. 그 시절의 꽃잎은 다시 볼 수 없고, 그때 음성도 다시는 들을 수 없고 다 지나갔어요. 그래서 소설적인 시간 속에 아름다움이 생겨요. 생각해보니 이게 연애소설 쓰는 기본 공식이더라고요. 이별한 뒤에 한 번 더 사랑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이 연애소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죠. 어떤 경우든 연애소설의 느낌이 나는 거예요. 그때 그 시절에 관해 얘기해볼 테니까, 들어볼래. 라고 시작하는 소설들이기 때문에. 그걸 이번 정권 아래에서 알게 됐어요. 너무나 사소한 일들이 중요해지니까.”
마지막으로 올해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노는 게 계획인데 과연 놀 수 있을까 싶어요. 곧 <희재>가 나오고, 단편집을 내야 하고, 그다음에는 일본에 간 소년들 이야기를 내년까지 써낼 계획이에요. 그래서 다른 일을 하면 안 돼요. 다른 일 하지 않고 지내는 게 계획이에요.(웃음)”
이젠 중견작가 ‘김연수’가 펴내는 청춘성장소설. 제목도 성장소설 답게 소년 '보이'가 들어간다. 2008년 봄에 청소년문예지 『풋,』에 연재하기 시작해 끝을 비워놓은 상태로 연재를 끝냈던 『원더보이』가 연재를 중단한 지, 꼭 이 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원더보이』는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기로 한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어른들도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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