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사귀고 싶은 아름다운 여자 같아요” - 오영욱 작가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국회의사당 돔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무한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다시보기
다양한 사진과 독특한 캐릭터의 그림, 그리고 감성 가득한 문장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에 함축 된 세 가지다. 게다가 주제는 건축이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주인공은 바로 일명 ‘그림 그리는 건축가 오기사’로 유명한 오영욱 씨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소년 같은 이미지의 소유자. 덕분에 그와의 첫 만남은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임으로서 형성되어 왔다. 사람들에 의해 그 안에서 문화가 태동하고 역사가 만들어졌으며 문명이 발전했다. 따라서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레 투영되며 시간의 흐름에 발맞춰 외양과 분위기를 달리했다. 세계 각국의 도시가 그 속에 삶을 영유하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닮은 이유다. 글과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자, 독특한 철학을 형상화하는 건축가 오기사의 눈에 지금의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남다른 애정이 깃드는 것은 당연하다. 타고난 역마살(?) 덕분에 세계 각국을 유랑하듯 돌아다니는 건축가 오영욱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단순히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나서도 그에게 서울은 라스베이거스나 뉴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또 다른 매력을 간직한 곳이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 기억 한편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개발 이전 강남의 모습은 물론 다양한 욕망으로 변화해 온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교차시켰다. 건축가로서의 애정과 몽상가의 엉뚱함을『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한 권에 뭉뚱그려 놓은 것이다. 단순히 건축 하는 사람만이 아닌 글과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재주를 쏟아 부은 그의 ‘가슴에 품었던 서울’ 이야기.
작가 & 건축가, 오기사라는 사람
그림을 그리면서 책까지 5권 째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건축가의 삶을 살고 있는데요.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웃음)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것도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어 했던 일이었어요. 하지만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건축’이라는 것을 정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가 큰 고민이었죠. 단순히 건축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재미있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건축과를 전공하면서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마치 철학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치밀한 논리로 말씀을 잘 하시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그게 저한테는 은근히 스트레스가 됐어요. 고교시절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고 건축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건축과를 간 거였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한동안 방황도 하고 고민하다 낸 결론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자’였어요.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에서 1998년 서울 곳곳을 찍은 사진과 최근 같은 곳을 찍은 사진을 비교한 것을 보면, 꽤 오래 묵혀놨던 작업처럼 느껴집니다.
4년 동안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한국에 들어 왔던 2007년부터 다양한 작업을 시작했어요.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세계 각국을 여행했던 경험을 책으로 쓰는 한편 건축 일을 했죠. 그런 와중에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는 언론사의 요청을 받게 됐어요. 저는 책을 파고들며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경험적으로 느낀 것을 정리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요청과 맞아떨어졌던 거죠. 그때 제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해 왔던 것들, 그리고 새롭게 좋아 할 것들을 찾으며 글을 썼어요. 물론 지금 책으로 엮은 글은 조금씩 다듬는 작업을 했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파편적인 관심으로 모아졌다고 봐요. 그것을 8가지 주제로 나눠 모아보니, 제가 여행한 수많은 도시에서 느낀 매력이 이미 서울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작가에게 느껴지는 서울은 어떤 것인지 궁금한데요.
시를 볼 때면 다양한 생각을 하지만 가끔은 ‘이 여자는 나한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하는 생각을 종종해요. 사람 개개인이 모두 다르듯 도시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형상이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도 함께 하지고 있죠. 예전 누군가 라스베이거스는 어떤 느낌이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어떤 분위기 좋은 바에 가서 술 한 잔을 하며 매우 아름다운 바텐더에게 반해 설레는 느낌으로 힐끔힐끔 보는 기분이 든다고 했죠. 그저 바라보며 만족하는 그런 도시라는 거죠. 서울의 경우는…… 오랜 기간 산 사람에게는 너무 일상의 장소잖아요. 그래서 엄마같은 도시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관점으로는 오랜 친구로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사귀고 싶어지는 매력을 발견하는 여자라고 할까요(웃음).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텍스트를 쓴 것은 아니에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며 키워드를 발견하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감정이 생기는 과정이었어요.
울에 깃든 영혼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장소를 꼽는다면 어디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하나를 정하기 어려운데, 서울의 가장 큰 속성은 뒤섞임, 혼재인 것 같아요. 어떤 한 장소를 찍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서울을 가장 잘 규정하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보통 사람들은 광화문이나 인사동, 북촌 같은 곳을 말하는데, 사실 문화지역과 공단, 소비지역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뒤섞인 채로 끊임없이 사람이 유입되는 것이 서울의 특징이잖아요.
저의 집은 지금은 엄청나게 비싸진 강남이 아무것도 없는 논밭이었을 시절 초기정착민이었어요. 그래서 서울을 다룬 책 중 제 책은 강남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책일 수도 있어요. 책 앞쪽에 서울 지도를 그려놨는데 남북을 거꾸로 그린 것도 그런 이유죠. 사람들이 평소 방향을 인지 할 때 보통 산은 등 뒤에 있고 강은 앞에 있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강남에 살며 한강을 남쪽으로 느꼈어요. 실제로는 북쪽이잖아요. 인지가 바뀌는 거예요.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 거꾸로 된 서울 지도를 그린 거예요. 강남과 강북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장소들이 실제 어떻게 돼 있는지 와는 상관없이 개개인의 인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거죠.
안타까운 것은 서울이 그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차 폄하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건데요. 세계 다른 도시에 비해 내세울 것이 없다는 이유가 열등감으로 작용한 듯 한데요.
예전에는 새것만을 추구하고 옛것은 없애버리는 사람들의 성향이 정말 싫었어요. 더구나 서울은 개발지상주의 시절 급조된 건축물로 형성된 도시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요즘은 그것 또한 서울이란 생각을 해요. 급조 된 형상들이 많은 것도 서울을 다른 도시와 다르게 만들고 특징있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싶어요. 건물은 건물 주인을 닮고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무리 옛것을 지켜야한다고 해도 서울이 그것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은 ‘새것이 좋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에요. 전 이제 물리적 형상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사람들의 공공의식이 아직은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아쉽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 인해 도시도 각박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장점도 있죠. 열정적으로 북적대며 재미있는 요소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거예요.
건축가로서 건물을 볼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까 도시가 ‘여자같다’고 했잖아요. 건물도 마찬가지에요. 물론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겠죠. 하지만 거리를 다니면서 괜찮다고 느껴지는 여자들이 보일 때가 있잖아요(웃음).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거나, 눈매가 좋다거나, 몸매가 예쁘다거나 하는 특징이 눈에 들어 올 때죠. 같은 의미로 사실 제일 좋아하는 건물을 찾으라는 것은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냐는 질문처럼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한 가지 매력이라도 강한 느낌을 주는 것, 저는 그런 느낌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건축적으로 봤을 때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조금 슬픈 희극에서 비롯되었다. 원래는 열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건물이었는데 더욱 강한 권위를 표현하고 싶었던 정치가들의 압력에 의해 돔이 생뚱맞게 얹힌 것이다. 그들은 미국 국회의사당의 돔 같은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
국회의사당의 돔이 생긴 비하인드 스토리는 쓴 웃음이 나게 하는데요. 실제로 많은 건축물들이 수많은 비전문가 사공들의 개입으로 본래 모습대로 지어지지 못할 것 같네요.
본래의 모습대로 지어지는 건물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사공이 많은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인 규제 때문인 경우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은 사유재산인 경우가 많잖아요. 사유재산에 대해 건축가의 미학적 의미가 그대로 구현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구성원들의 의식에 맡겨야하는 부분인데, 반면 공공건축물 같은 경우는 그런 건축가의 의도를 구현할 부분이 있죠. 하지만 사실 공공건축물이 더 많은 사공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항상 발전한다고 믿고 싶어요. 물론 가끔 역사적으로 퇴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국회의사당을 보며 쓴 웃음이 나고 혹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전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20년 전에는 아무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돔이나 콘크리트로 지은 한옥이 우리의 전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잖아요. 그런 생각의 발전에 의해 건축물은 바뀐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의 흔적들 또한 분명 남아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교훈처럼…….
여행작가이기도 한 것은 맞지만 건축가에게 ‘건축을 조금 안다’는 표현은 좀 심한 것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건축계에 젊은 건축가 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상을 받는 나이가 보통 40대 초반이에요. 건축은 큰 규모의 일이다보니 훈련을 해야 하는 것도 많고 수많은 훈련은 쌓은 후 보통 40대 즈음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죠. 물론 요즘은 조금씩 젊어지고 있는 추세긴 하지만, 저는 제가 큰 경험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제 위치를 스스로 많이 낮추는 편이에요. 아직은 도전중이고 갈 길은 멀다는 생각이죠. 저한테는 이렇게라도 한발씩 건축의 영역에 다가간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좋아요.
책에 이야기 중에는 한강 물 위를 달리는 기차도 있습니다. 건축의 영역인지 모르지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로서 상상력은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스스로 가장 엉뚱하다고 생각했던 상상이 있다면?
상상력은 정말 중요해요. 어디에선가 ‘상상력이 널 구원할 거야’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어요. 제게 딱 어울리는 말이죠. 천 가지 상상을 해서 그중 한 가지라도 실현할 수 있다면 재미있는 일 아니겠어요. 그런데 요즘은 왠지 상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현실적인 생활에 너무 매몰된 것 같기도 하고, 여행을 할 때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요즘 제게 가장 신나는 상상은 로또 당첨이에요(웃음).
전부터 했던 즐거운 상상이라면, 음…… 절대 제국주의적인 발상은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세요(웃음). 여행을 다닐 당시에 보면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이 넘게 떨어져 있는 곳에 갔는데 같은 프랑스 말 쓰는 경우가 있잖아요. 미국도 괌 같은 곳이 있고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비행기 타고 한 10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한국말을 쓰고 우리 돈을 사용할 수 있는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혹은 대한민국이 한반도가 아닌 다른 장소에 존재한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요.
이 책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섬세한 지문을 오기사 특유의 감성과 시선을 담아 8가지 키워드로 읽어 낸다. 자신의 건축 설계 사무실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 길과 시끌벅적한 종로 거리에서부터 청와대, 국회의사당, 서울 광장, 한강의 다리들, 고궁과 미술관, 일상적인 공간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사는 이들의 터전을 '건축'과 '도시'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롭게 그려냈다. 서울에 관한 다소 불편한 진실에서부터 무분별한 도시 개발에 관한 건축가로서의 애정 어린 걱정, 그리고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로서의 삶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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