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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공통점 - 신자유주의

경제적 약자를 국민국가가 도와주는 게 전후 자본주의를 이끈 복지국가였는데,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서 복지국가는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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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40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최소 40년이 필요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개인을 강조했다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은 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GPE 총서는 다 함께, 잠재적 유토피아를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다.

참여 정부 말기,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리고 2012년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보고 있다.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람이 더 흔한 상황이다. ‘나는 꼼수다’는 이명박 현 대통령을 적으로 설정하고, 독설과 풍자로 대통령의 위신을 깎아 내린다. 정당도, 추구하는 가치도 다른 두 대통령이지만 정권 말기에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점은 일치한다. 이를 단순히 ‘레임덕’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2002년 대선, 당시 민노당 대선 후보였던 권영길은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질문을 국민에게 던졌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결국은 이에 대한 답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 만족하지 않는 점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대부분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로 나온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기에 국민은 2002년에 노무현을, 2007년에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양당체제인 한국정치 지형에서 다른 정당을 한 번씩 뽑았는데, 여전히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왜일까.

 

대체 내 살림살이는 왜 나아지지 않을까?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은, ‘빈곤’의 문제다.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섰고, GDP로 10위 권인 한국에서 ‘빈곤’은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을 말한다. ‘상대적 빈곤’을 다른 말로 하면 부의 양극화다. 그렇다면 부의 양극화는 왜 심해졌을까? 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신자유주의를 원인으로 꼽는다.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경제적 약자를 국민국가가 도와주는 게 전후 자본주의를 이끈 복지국가였는데,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서 복지국가는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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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홍기빈, 김민웅, 지주형, 장석준

 

한국의 양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민주 통합당은 당원도, 정책도, 지지층도 다소 다르지만 결국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살림살이 문제도 풀 수 없었다. 2월23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침몰하는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항로를 묻다’가 좌담 주제다.

 

이날 좌담회는 성공회대 교수이자 『처음 만나는 진보』의 저자 김민웅이 사회를 맡고 장석준, 주지형, 홍기빈 등 3명의 학자가 참여했다. 이날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한 3명의 학자는 책세상에서 발간한 GPE(Global Political Economy) 총서 시리즈 1,2,3권을 각각 저술했다. GPE 총서는 책세상과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가 함께 참여하여, 지구 정치 경제를 분석한다. 앞으로 막스 베버, E.P. 톰슨 등 세계적인 석학의 저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신자유주의, 칠레에서 탄생하다

 

좌담회에 가장 먼저 등장한 학자는 장석준이다. GPE 총서의 2권인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이하 신자유주의의 탄생)』를 쓴 저자다. 이 책은 전후 자본주의에서 케인즈가 쥐고 있던 주도권을 비주류였던 신자유주의가 빼앗아 가는 과정을 분석했다. 칠레에서 영국으로, 프랑스로, 스웨덴으로 신자유주의의 진행 과정을 기술한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두고 사회자인 김민웅은 “치밀한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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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장석준은 신자유주의 전개 과정을 3단계로 나눴다. 1945년에서 1970년까지는 자본주의 황금기로, 금융 자본이 아닌 산업 자본과 국민국가가 주도한 시기였다. 첫째 시기인 이 단계에서 신자유주의는 밀턴 프리드만이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일부 경제학자가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다.

 

둘째 시기는, 칠레 아옌데 정부가 쿠데타로 무너진 뒤다. 이곳에서 통화주의적 조취가 취해진다.  통화주의가 곧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신자유주의는 통화주의를 중요한 무기로 사용했다. 화폐 가치 안정화에 주력하는 통화주의는 금융이 활개를 칠 수 있는 토대를 다진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금융 주도의 신자유주의가 작동 가능하다.

 

셋째 시기는 1976년 영국 외환 위기 이후다. 이후 1980년대 프랑스를 비롯하여 서구 유럽, 미국에서 화폐가치는 다른 가치로 대체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우뚝 선다. 1980년대 초, 미국의 연준회장이었던 볼커는 경기 위축, 고실업을 각오하고 초고금리 정책을 단행한다.

 

이러한 장석준의 설명에 사회자인 김민웅은 4번째 시기가 있다고 말하며, “요즘은 신자유주의가 맛이 갔다”라고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 실제로 2007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보수층 내부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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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의 탄생』 저자 장석준

 

김대중 정권도, 노무현 정권도, 이명박 정권도 모두 신자유주의 정권

 

신자유주의 발생에 대한 장석준의 설명에 이어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을 저술한 지주형이 등장했다. 책 제목에서 보듯, 세계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전개를 다룬 장석준과 달리 지주형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분석했다. 다른 지역과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영국, 미국보다 한국은 국가가 주도했다. 작고 강한 국가를 지향한 것이다. 한국은 국내 자본은 물론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진했다.”

 

지주형은 한국에서 1997년 위기가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판단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투자자를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에 대해서 사람들은 위기 전까지는 좋게 평가했다. 박정희는 매출이 얼마인지, 수출이 얼마인지를 중요한 지표로 생각했고 1997년까지 이러한 사고방식은 유효했다.

 

위기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이때부터 매출이 아니라 수익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 대우와 같은 기업이 있다면, 결코 긍정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면, 1997년 이전까지는 산업  지향이었지만 이후는 금융 지향으로 변했다. 이는 장기적인 발전보다 단기적인 수익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1997년 위기 이후 차례로 들어선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은 모두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정서를 대변했다.

 

지주형은 세 정권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김대중 정권은 개발-발전 관치국가의 흔적을 지우고 외국자본을 받아들여, 신자유주의적인 제도 개혁을 단행한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이 닦아 놓은 기반 위에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축적 전략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미 FTA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이 구사한 신자유주의적 축적 전략을 한층 강하게 밀어붙이려 했는데,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때문에 실행에 차질이 생겼다. 그럼에도 그는 “세 정권 모두 신자유주의 정권이 맞다. 본질은 같고, 상황에 따라 약간 달랐다”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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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저자 지주형

 

비그포르스가 이룬 업적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자

 

마지막으로 좌담 현장에 선 사람은 홍기빈이다. 그는 GPE 총서 시리즈 1권인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이하 비그포르스)』를 썼다. 책 제목에 들어간 ‘비그포르스’라는 인물은 20세기에서 가장 성공한 정치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이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공동체로 알려진 스웨덴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홍기빈은 『비그포르스』를 쓴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신자유주의가 벽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 이것에 비해 대안적 질서를 세우는 일에는 다른 종류의 생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경제질서를 옮기는 것은 단선적 사고로 가능하지 않다. 상상력이 필요하며 글로 전달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20세기 성공적인 모델을 소개하는 게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 스웨덴빠가 되자는 의미가 아니다. 『밀레니엄』을 보라, 거기도 문제가 있다. 비그포르스와 같이 성공한 사람의 성공담을 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이 책을 썼다.”

 

비그포르스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고, 다른 정치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비그포르스가 성공하도록 만든 원동력으로 홍기빈은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갈등을 조율하는 책임성이다. 그는 이상과 실천 간 괴리가 있을 때 이 갈등을 피하지 않았다. 둘째, 과학성이다. 그 당시 훌륭한 진보운동가는 공부가 필요하면 전공을 상관하지 않고 폭넓게 연구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안토니오 그람시가 그 예다. 비그포르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언어학 전공자임에도 경제학 등 사회개혁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스스로 탐구했다.

 

책임성과 폭넓은 지식을 무기로 비그포르스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었다. 잠정적 유토피아란,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열망을 모아 사회 전체로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체다. 현재 논의되는 복지국가 역시 충분히 잠정적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 잠정적 유토피아가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이 물음에 홍기빈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스웨덴은 노동운동과 사회민주당간 긴밀한 관계가 있었는데 한국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그리고 전국민을 끌어 들일 만한 리더십을 기르는 게 단시간 내 어려울 듯하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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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 저자 홍기빈

 

삼성을 해체하자고? 랩퍼들이나 하는 이야기

 

세 명의 학자가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한 뒤, 청중 질문이 이어졌다. 여러 가지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중에서 모든 독자가 궁금할 만한 사안으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홍기빈은 정당이 총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통합 진보당) 이정희 씨가 말한 ‘삼성을 해체하자’는 말은 랩퍼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라며, 정당이라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응할 수 있는 정치경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주형은 “주택부터 해결하면 좋겠지만, 어렵다. 교육부터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장석준은 사회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육, 주거 등을 둘러싼 경쟁은 신자유주의 이전에도 있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로 더 심해졌다”“문제는 이 경쟁이 적을 제대로 지목하지 못하고 우리끼리 싸운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홍기빈은 청중에게 “국가의 역할을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말기”를 주문했다. 국가를 움직이는 관료집단 역시 50대의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하며, 국가도 결국 사회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정권이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정권을 바꾸어야만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정권교체와 시민사회 그리고 노동운동 등이 함께 변화해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 스케일로 하려면 5년으로는 안 되고, 20년은 꾸준히 해야 가능하다는 게 홍기빈의 주장이다. 이에 덧붙여 사회자인 김민웅 역시 “자본-권력 관계를 바꾸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의 권력 기능은 악화되지 않는다”며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석준도 “정치를 중요하게, 좀 더 넓게 보자. 사회에서 세력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국가 주도층만 바뀐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신자유주의는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40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최소 40년이 필요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개인을 강조했다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은 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GPE 총서는 다 함께, 잠재적 유토피아를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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