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주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등단하자 모두 놀라더라”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서사문학의 틀을 뒤집다 “22살에 등단했을 때 소설을 계속 쓰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한유주. 그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녀가 쓴 소설을 읽어본 이는 더욱 드물다. 하지만 올해 31살의 그녀가 등단 9년 차에 대학 강연과 번역을 동시에 소화하는 실력파 문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누구라도 놀라게 된다. 그리고 정작 놀라운 것은 그녀가 써내는 작품들이다. 현 문단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을 써내는 작가로 손꼽히는 한 작가는 확고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냈다. 22살의 신예작가가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기까지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한유주. 그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녀가 쓴 소설을 읽어본 이는 더욱 드물다. 하지만 올해 31살의 그녀가 등단 9년 차에 대학 강연과 번역을 동시에 소화하는 실력파 문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누구라도 놀라게 된다. 그리고 정작 놀라운 것은 그녀가 써내는 작품들이다. 현 문단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을 써내는 작가로 손꼽히는 한 작가는 확고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냈다. 22살의 신예작가가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기까지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팔방미인, 젊은 작가
홍대의 카페에서 만난 한 작가는 소설가라기보다는 모델에 가까워 보였다. 173cm의 키에 늘씬한 몸과 세련된 인상을 지녔다. 그런 한 작가는 소설 쓰기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다재다능하다. 신세대라는 말이 아직 어울리는 그녀는 시인 성기완, 황병승과 함께 ‘더촙’이라는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고 어학실력 역시 상당하다. 영어는 물론 독일어와 프랑스어까지 한다.
“밴드공연은 딱 두 번 했는데, 말이 좀 와전돼서 무척 오래 한 것처럼 됐어요. 제가 키가 크다 보니까 베이스 메면 잘 어울릴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음악적 재능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독일어는 독문과를 나와서 조금은 알았었는데, 지금은 안 쓰다 보니 거의 다 까먹었어요. 프랑스어는 원문으로 책을 읽고 싶어서 공부했어요. 그래서 프랑스어는 책을 읽을 정도는 하는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수준은 아니에요.”
한 작가는 200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한 작가는 등단 9년 차에 이미 세 권의 소설집을 펴낸 작가다. 그리고 2009년에는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신경숙 작가와 김애란 작가 역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데, 한유주 작가를 포함하여 이 세 명의 작가들이 모두 22살에 등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 주변에는 문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등단에 관해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투고를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래서 원고를 보내봤는데 덜컥 당선이 됐어요.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길에 등단 소식을 전해 받았지요. 문집 관계자분들도 놀라셨대요. 당선된 작가가 아르바이트 다니는 어린 학생이라.”
편견을 깬 문학의 힘
한유주 작가가 등단을 일찍 한만큼 주변의 우려도 컸다. 더욱이 그녀의 소설은 전통적인 서사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손쉽게 읽히는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한 작가의 글에 난색을 표할 것이다. 22살의 작가가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편견과의 싸움이 컸다.
“등단하고 나서 첫 책이 나오기까지는 무척 힘들었어요. 소설이 좀 특이하다 보니까 주변의 찬사에 못지않게 ‘이게 뭔가?’ 하는 비판과 조롱의 목소리도 많았어요. 처음 소설을 쓸 때부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입장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입장을 설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어요.”
한 작가가 등단했을 때, 많은 이들이 한 작가의 단편 하나를 읽고는 이게 창작의 끝일 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 첫 책이 출간되자, 후속작을 내기는 어려울 거라고 평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작가는 그러한 편견 가운데서 3권의 단편집을 출간했다.
“못할 거라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들이 저를 낙담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한번 해보지 뭐!’라고 결심하게 하는 계기도 되었어요. 중요한 건 등단의 시기가 아닌 거 같아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을 때 주변의 부정적인 말들이 더 크게 들리기 마련이죠.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란 걸 배웠어요. 그리고 9년이란 세월이 결코 긴 거 같지 않아요. 저는 이제 막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치열한 삶을 통해 배운다
한유주 작가의 일상은 무척 바쁘다. 소설 창작뿐만 아니라, 써야 할 번역과 잡문거리가 한가득 이다. 게다가 꾸준히 대학강단에도 서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서울예대와 고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세계문학에 관한 수업을 진행한다. 게다가 한때는 심야에 바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한 작가가 쉬는 시간은 집에서 키우는 다람쥐에게 밥 주는 시간 정도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크겠지만, 바쁘게 살고 싶어서 일부러 일들을 많이 벌이는 것도 있어요. 누구나 자신을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걸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나 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이제는 너무 많이 소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엊그제 단편을 하나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머릿속이 백지가 된 상태로 과녁처럼 깜빡이는 커서만 한참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려온 9년의 시간 동안 한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문단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서사를 좇아가기에도 바쁜 시대. 이야기도 패스트푸드처럼 금세 만들어내고 소비시켜버리는 시대. 진정성을 상실한 센 소설에 하드보일드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해버리는 시대에, 한 작가의 소설은 일종의 시대적 반성과 같다. 한 작가는 서사를 따라가기 전에 문체부터 해체한다.
대부분의 작가가 화장법을 먼저 배우고 소재의 쇼윈도를 무감각하게 쇼핑할 때, 한 작가는 자신만의 해부실에서 메스를 집어 들었다. 영민한 재능으로 소재의 살을 도려내고 언어의 뼈를 드러낸다. 한 작가는 그렇게 드러난 언어로 의식의 흐름을 파고들며, 종국에는 주체의 욕망까지 해체한다.
“내용이 센 소설들에 대해서 물으신다면, 써서 안 되는 내용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센 소설을 써내는 것도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하나는 내가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조건에 영향을 받는 거죠. 욕망이 그냥 자생하는 게 아니잖아요. 일종의 유행을 따라간다고 할까요. 그래서 80년대 소설과 90년대 소설에는 다른 면이 있죠.”
왕이 될 것인가? 왕의 필경사가 될 것인가?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과 시대적인 영향의 조정을 받는 것. 창작의 순간에는 자신이 창조자고 왕이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모방자고 왕의 필경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런 고민이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에 절묘하게 담겨있다.
“저는 기본적으로 문학이 어떤 것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제가 느끼고 고민한 것을 충실히 옮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느끼고 고민한 것 역시 제 고유의 느낌이나 고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쓰는 고민들이 어떻게 보면 내가 읽어온 모든 책의 종합이고, 결국은 뭘 써도 베끼는 것의 범주를 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에는 그런 한 작가의 생각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나, ‘셰익스피어 이후로 서사문학은 모방의 연속’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사용되던 말이다. ‘창조’와 ‘모방’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작가는 소설의 진보나 고유한 창조의 영역을 믿지 않는 것일까.
“밀란 쿤데라는 예술은 진보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과학사는 진보할 수 있죠.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변화한 것은 진보를 이룬 것이잖아요. 하지만 문학은 셰익스피어가 있고 밀란 쿤데라가 있다고 했을 때, 400년이 지났다고 밀란 쿤데라가 더 진보를 이룬 것은 아니지요. 그냥 독립된 한 개체들이 있는 거예요. 과학처럼 하나의 단일 선상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죠.”
한 작가는 문학에는 ‘진보’라는 말보다 ‘다양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 계속 다른 것들이 생겨나다 보면 좋은 것이 나타날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작가는 “나쁜 소설은 알려지지 않은 인간 의식의 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는 소설이다”라는 헤르만 브로흐의 말을 인용한다. 그 말을 반대로 이해하면 ‘좋은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인간의 의식을 드러내 주는 소설’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소설이 할 게 많다고 생각해요. 획기적인 서사구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그런 문제는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아요. 어차피 현재는 모든 예술 장르가 붙임을 겪게 되어 있어요. 요즘은 지구의 종말론처럼 예술에서도 종말론이 유행처럼 번져있어요. ‘팝은 죽었다’, ‘문학의 시대는 끝났다’ 뭐 이런 식이죠. 그런데 그건 일종의 나르시시즘에서 나오는 말 같아요. 섣불리 종말을 고할 게 아니라 열심히 해야죠. 열심히 하다 보면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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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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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3년 제3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실집으로 『달로』와 『얼음의 책』이 있으며, 문학동인 ‘루’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제 42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 형식을 파괴하는 작품 세계로 등단과 동시에 평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아온 소설가 한유주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첫 소설집 『달로』와 두번째 『얼음의 책』에서 보여준 읊조리는 듯한 시적 문장과 기존 서사를 해체하는 시도를 이어가면서도 이번 소설집에서는 언어 자체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확장하며 문학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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