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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싸움 일삼던 재일교포 문제아, 일본 최고의 작가로 우뚝

『레볼루션 No.0』 다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달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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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카즈키의 세계인식은 거저 나온 게 아니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기지만, 때로는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을 쓴다.

『레볼루션 No.0』가 범죄소설은 아니지만, 하드보일드이기는 하다. 데뷔작인 『레볼루션 No.3』부터 『연애소설』 『GO』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 『레볼루션 No.0』까지 ‘좀비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이런저런 범죄가 등장하고, 지독한 세상을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몸짓들이 그려진다. 한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는 딸을 폭행한 고교 복싱선수에게 복수하려는 아버지가 있고, 『연애소설』에 있는 단편 <영원의 환>에는 한 여인의 죽음에 연루된 교수를 죽이려는 남자가 나온다. 따지고 보면 『레볼루션 No.0』에서 학생들을 괴롭히고 폭행하는 학교도 일종의 범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범죄가 나오든 말든 상관없다. 범죄에 맞닥뜨리지 않아도 이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가네시로 카즈키가 끈질기게 주장하는 삶의 방법은 흥미롭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말하는 것은 한결같다. 우선은 싸워서 이겨야한다는 것. 중년의 샐러리맨 스즈키나 16세의 여고생 카나코는 모두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나름대로 그들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 그들이 그동안 배운 것, 익혀온 것으로는 자신의 원 안에서 웅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격투기를 배우고, 운전을 배우는 등 ‘기술’을 익힌다. 육체의 단련과 대결로 승부를 내는 일은 지극히 원초적인 흥분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가 아니다. 순신은 말한다. ‘아저씨는 이시하라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하고 있어. 폭력에는 정의도 없고 악도 없는 거야. 폭력은 그냥 폭력일 뿐이야. 그리고 사람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폭력은 이기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수단이다. 말콤 엑스의 말처럼 자위를 위한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지성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을 선택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함도 이미 알고 있다. 가네시로 카즈키는 단순하다. 주먹과 지식이 없으면 지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까 우리에게 굴복한 놈들은 머지않아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다른 형태로 우리들을 굴복시키고 승리를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 번이나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리라. 하지만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레볼루션 No.0』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좀비들의 출발선을 그린, 어쩌면 가네시로 카즈키의 원점인 소설이다. 삼류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 측의 음모로 자퇴의 위기에 몰린 학생들. 한국으로 치면 ‘유격훈련장’에 끌려가 엄청난 폭력과 모멸을 견뎌내던 학생들 일부가 저항하기로 한다. ‘깨달은 게 있어. 무슨 잘못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기면,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러려면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잘못을 인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필요해.’ 그래서 그들은 도망쳐서 ‘좀비스’가 된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

사회의 낙오자라고 비웃지만,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쾌활하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적들의 시스템에 구멍을 낼 수도 없고, 정신없이 달려서 벗어날 수도 없다. ‘만약 차별이란 개념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면, 그 순간에 죽어도 후회 없다’고 순신은 말하지만, 그런 날이 결코 올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가네시로는 말한다. ‘너는 고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아 좌절하는 일도 있겠지.....무슨 일이 있어도 춤추는 거야.’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은, 바로 그 춤을 보여주고 있다. 원시 부족이 춤을 추며 전투의 승리를 기원했듯이, 가네시로 카즈키의 인물들 역시 거대한 축제, 카니발에서 그들의 춤을 통해 궁극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세계인식은 거저 나온 게 아니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기지만, 때로는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을 쓴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에는 그가 겪어온 모든 것과 그가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탁월하게 엮여 있다. 재일교포인 가네시로 카즈키는 어린 시절부터 어두운 하드보일드 소설에 매료되었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를 보고는, 주인공 같은 아웃사이더가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공부보다는 영화와 소설에 미쳤던 가네시로는 불량학생으로서 최전선을 달렸다. 중학교 때에는 마작, 파친코, 담배, 술 등을 배웠고, 지각 120일에 결석 60일을 기록했고, 흉기를 들고 패싸움을 벌이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자칫하면 야쿠자로서의 길로 달려갈 수도 있었지만,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인생이 바뀐다.

매국노란 말까지 들으며 한국 국적으로 바꾸고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가네시로 카즈키는 집단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이지메도 충분히 경험했다. 철학과 사상서를 읽고, 순수문학에도 빠져들었지만 그건 책일 뿐이다. 순신의 캐릭터처럼, 재일교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문과 무를 겸비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GO』의 정일처럼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거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아버지처럼 비굴해진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지만, 한국 역시 그의 나라는 아니었다. 정일의 외침처럼,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간 백수생활을 하며 책을 읽다가 뒤늦게 게이오 대학 법대에 진학한다.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죽은 후 방황하기도 하고 책과 영화, 마작 등 온갖 유희에 빠져 지내던 가네시로는 93년 대학 졸업과 함께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98년 『레볼루션 No.3』가 소설현대 신인상을 수상하고, 2000년 『GO』가 나오키상을 수상한다.


가네시로 카즈키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GO』가 시작이었다. 처음 쓴 장편소설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력에서 보이듯 가네시로의 필력은 대단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하와이에 가겠다면서 국적을 북조선에서 한국으로 바꾼 아버지와 조선학교에서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싸움을 거는 녀석들마다 단번에 때려눕힌 스기하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고민하기 이전에 달리고 보는 소년의 발랄한 투쟁과 치명적인 연애이야기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스기하라는 아버지에게서 권투를 배웠다. 아버지는 말한다.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스기하라는 답한다. 나가겠다고. 이 좁은 세계를 부숴버리고 더 넓은 세계를 보겠다고. 부드럽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조선국적을 포기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걸리적거리는 것을 없애주고 아들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스기하라는 싸우고, 달리면서, 춤추면서 알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커다란 것에 귀속되어 있다는 감각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아.’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물 안의 행복일 뿐이다. 아래에서 불이 지펴지고 있는, 거대한 솥 안의 개구리다. 조금씩 뜨거워져도 개구리는 뛰쳐나가지 않고 그대로 삶아진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아버지가 딱 그런 꼴이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서야 1미터 바깥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로, 원 밖으로 주먹을 주고받는 싸움을 하기로 결정한다. 『GO』의 스기하라 역시 주먹으로, 달리기로 그 좁은 세계를 거부했다. 일본인이란 게, 한국인이란 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냥 인간이면 되는 거지. ‘노 소이 코레아노, 니 소이 하포네스 조 소이 데사라이가도’(나는 한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어딘가 한쪽에 붙어버리면 인생이 편해지기는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집단에 귀의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붙건 혼란과 갈등이 사라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게 싫을 때다. ‘등산과 오래 달리기로 육체에 고통을 주고, 친구와 무모한 쌈질을 시켜 마음을 교란시키고, 이제는 궁지에 몰아넣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포기하고 링에서 내려가는 게 좋을 텐데.’ 마치 그런 기분이다. 백기를 들고 시키는 대로 해, 라고 누군가 귀에 속삭이는 것. 그럴 때 가네시로 카즈키는 툭 던진다.

너희들, 세상을 바꿔 보고 싶지 않나?

가네시로 카즈키는 섣부른 승리를 제안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을 달래세요, 라고 치유를 권하지도 않는다. 그냥 달리고, 춤추라고 말한다. ‘이 세계는 우리를 다시금 위대한 탈주로 인도할 요소와 징조로 넘쳐흐른다’면서 힘껏 달리라고 말한다. 남들이 던져주거나 규정한 것을 뛰어넘어서, 안정된 미래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모든 것을 언제든 리셋 하겠다는 마음으로 내달리라고 말한다. 따분한 이 세상은, 나태한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면서.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리기 시합처럼 계속 달리면 된다.’ 이방인이 되고, 낙오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민족과 국가 같은 것, 엘리트니 지배층이니 같은 것에 맘껏 돌을 던져라. 우리는 아무 데에도 속해 있지 않고, 어떤 미래도 원치 않으니까. 다만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달릴 뿐이다. 혹은 춤을 추거나.




< 국내에 번역 출간된 ‘가네시로 가즈키’ 저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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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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