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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보다 맛있는 책, 통으로 보자

시리즈 통째로 사서 1권부터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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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망설이는 당신, 고전에 대한 해설서 시리즈를 통째로 사서 1권부터 읽어 나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법하다.

올해는 술보다 책을 가까이 하리

매년 1월이 되면 많은 사람이 신년 계획을 세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2011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직장인 평균 독서량은 한 달 평균 1.2권, 음주량은 소주를 기준으로 했을 때 3.3병이었다. 신년계획을 세울 때 아마 대부분은 3.3권의 책을 읽고 1.2병의 소주를 마셔야겠다고 다짐했을 테다. 따라서 이 설문 결과는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독서는 재테크, 운동, 다이어트, 외국어 공부 등과 함께 올해 꼭 해야 할 일 목록에 자루 오르는 단골 소재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100권, 50권 등 목표한 독서량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일은 신정이나 구정에 항상 했던 신년의례였다. 좀 더 계획적인 사람은 1년 단위뿐만 아니라 월 단위로 목표량을 정하더라. 하지만 처음 몇 달 동안 목표량을 잘 채우던 사람도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읽은 책의 권수만 늘리는 데 집중하다 정신 차리면 ‘이제 어떤 책을 읽지? 내가 지금까지 어떤 책을 읽었던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독서가 평소 습관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러한 허무감에서 쉽게 헤어나오기란 어렵다. 허무감은 패배주의와 결합하여, ‘책보다 TV’ 혹은 ‘책보다 술’ 더 심하게는 ‘책보다 경마장’이라는 원래의 생활로 이어진다. 요즘처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하고, 정보량이 많을 때는 독서량보다는 독서 질이 중요한데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책을 선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간단한 답은 ‘고전’이다. ‘고전은 고리타분한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편견을 버리자. 물론 모든 편견은 그 편견이 형성되는 데 이바지하는 요인이 있기 마련이다. 일부 고전은 학업과 밥벌이에 바쁜 일반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무협 만화책 읽듯 술술 넘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말이다.

고전이나 사상가를 해설한 해설서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망설이는 당신, 고전에 대한 해설서 시리즈를 통째로 사서 1권부터 읽어 나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법하다. 시리즈 하나를 통으로 사는 돈이 절대 적지 않기에, 돈 아까워서라도 읽게 된다. (과연 그럴까?)

한 세트의 해설서, 수백 권의 고전 안 부럽다

Routledge Critical Thinkers 시리즈



⇒LP 루틀리지 시리즈 전체 보기

영어권에서 인문서 출판으로 유명한 루틀리지 출판사의 'Routledge Critical Thinkers' 시리즈를 번역했다. 주로 19세기 이후의 사상가를 조명한다. 연대기 순으로 봤을 때, 멀리는 프리드리히 니체에서부터 현재 생존해 있는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슬라보예 지젝 등을 다뤘다.

일반 독자를 겨낭했음에도 분량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 방대하여 대학 도서관에서만 환영 받는 책이 있는데, 다행히도 이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대개 300쪽이 안 되는 분량이며, 간결한 문체로 자칫 난해할 수 있는 사상을 풀어냈다. 한국에도 익숙한 미셸 푸코,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등 유명 저자의 평생 연구 업적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리즈가 가진 최대 장점이다. 문학 이론이 강하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살림 e시대의 절대 사상



⇒ 살림 e시대의 절대 사상 시리즈 전체 보기

루틀리지 시리즈가 최근의 사상 조류를 조명한 외국 학자의 글로 이뤄졌다면, 살림 e시대의 절대 사상 시리즈는 국내 학자가 필진으로 참여하여 동서고금의 고전을 폭넓게 조명했다. 서구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성서』는 물론, 동아시아 문명을 2,500년 동안 이끌어 온 『논어』, 『맹자』도 포함됐다. 심지어 구한말 조선 민중을 사로잡았던 예언서인 『정감록』도 소개한다. 루틀리지 시리즈보다 다소 옛날 고전을 다룬 듯하지만, 폴 리쾨르나 조르즈 바타이유 등 20세기 학자의 사상도 읽을 수 있다.

국내 학자가 쓴 해설서이기에 현재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고전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해설서는 보통 해당 사상가나 고전에 대한 참고 도서를 소개하기 마련인데, 이 부분에서도 국내 사정에 맞게 관련 자료를 친절하게 알려 준다. 이 시리즈 역시 루틀리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게 분량 면에서 짧고 내용 면에서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해설자 없이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저자와 독자 간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독자에게 해설서는 다소 불충분해 보인다. 번역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아무리 대학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이라도, 고전을 해설하는 학자가 독자에게 항상 올바른 해석만 제공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 때때로 해설서는, 해당 고전이나 사상가에게 접근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때문에 가능하면 저자가 쓴 책을 해설서 없이 직접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생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번역의 문제가 존재한다.)

⇒ 한길사 ‘한길 그레이트 북스 시리즈’ 전체 보기
⇒ 민음사 ‘현대 사상의 모험 시리즈’ 전체 보기
⇒ 까치 ‘까치 글방 시리즈’ 전체 보기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등장한 모든 시리즈를 사고 싶다. 그것도 현금 박치기로. 사는 것도 사는 것이지만, 이 책을 언제 다 읽느냐고? 물론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이 시리즈 중, 하나의 시리즈만 통으로 사 볼 요량이다. 매년 하나의 시리즈를 사면 언젠가는 다 살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책은 언제나 계속 나오기 마련이니, 시리즈를 다 산 뒤에도 사 모으고 싶은 책은 언제나 넘치리라. 계획대로 실행하면, 샀던 책은 읽지 않더라도 서재 장식용으로 딱이고 - 문제는 서재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 - 다 읽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무식하다 소리는 안 듣게 해 줄 보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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