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이의 자존감 정지은,김민태 공저/이영애 감수 | 지식채널 |
창의성, 집중력, 다중지능, 정서지능, 지능지수, 자기주도학습 등 아이의 미래를 위해 부모들이 준비해야 할 자녀교육의 여러 요소들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지만 자아존중감은 어떤 것보다 우선되어 내 아이에게 형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책에서는 부모들의 잘못된 자녀교육 방식으로 인해 아이들이 느끼는 결핍과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으로 올바른 자존감 형성을 제안한다. | | |
|
아이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자존감을 키워주려면 아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단순히 아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부모 중에는 존댓말하는 것을 아이를 존중하는 것으로 오해하며, 실제로는 아이의 행동을 체크하고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친절한 어투와 목소리는 오히려 아이에게 반항심을 불러일으킨다.
“엄마는 존댓말만 쓰면 뭐해요. 결론은 뭐든지 ‘안 돼’잖아요.”아이는 어떤 경우에 진심으로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여길까? 아이에게 의사결정권을 줄 때이다. 가령
“밥 먹었으니, 공부해야죠? 오늘은 수학과 과학 문제집을 풀어야 할 차례네요. 다 풀고 난 다음에 엄마가 검사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엄마와
“밥도 다 먹었는데 무엇을 하고 싶니? 네 계획을 듣고 싶어” 라고 말하는 엄마 중 누가 더 아이를 존중하는 것일까?
아이의 계획을 먼저 듣기 위해 마음을 열어놓은 엄마가 진정 아이를 더 존중하는 쪽이다. 이렇게 아이의 결정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부모는 아이의 자존감을 더욱 키워준다. 반대로 아이의 할 일을 강요하는 부모는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는 결과를 만든다. 아이들은 부모의 지휘보다는 자신이 도움을 요청할 때 귀를 기울여주는 무관심 속의 관심을 원한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을 부모가 대신해줘도 안 되지만,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겨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즉 아이의 독립성과 자존감을 키워준다고 해서 처음부터 무조건 혼자서 해내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우리도 무엇인가 처음 배울 때는 부단한 연습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연습 때의 실패를 두고 비난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는다. 스스로 해내기 전 한두 번은 부모가 친절히 시범을 보여주어야 하며, 아이가 연습할 때는 ‘잘한다’는 말로 격려해주어야 한다. 만약 아이가 끝까지 해내기 힘들어한다면, 아이를 자극하기보다는 어떤 부분에서 어려워하는지 살펴보고 그 부분만 다시 도움을 준다. 그러면서 점차 부모의 도움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아이들 중에는 내성적이고 소심해 실패를 두려워하며 부모의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때 안타깝다고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해줘서는 안 된다. 혼자서 성공한 경험이 없는 아이는 모든 일에서 부모의 능력에 의존하기 쉽다.
“할 수 있어” “지금 잘하고 있단다. 조금만 하면 될 거야”라고 칭찬을 해주자. 어릴 때 아이에게 걷는 연습을 시킬 때를 생각해보자. 달 듯 말 듯 손을 앞에 대고 아이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엄마 또한 조금씩 뒷걸음질쳤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부모의 손을 놓고 혼자서 걷기 시작할 때부터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독립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들은 아이가 넘어질까 봐 걱정하지만, 혼자 걷도록 하기 위해 한 발 물러선다. 아이의 자존감과 독립성을 키워주는 모든 일이 이와 같다. 부모의 도움은 필요하지만 아이가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개입’만 필요할 뿐이다.
아이들은 칭찬받을 때도 자존감이 올라가지만, 자신이 해낼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하고 극복했을 때도 자존감이 높아진다. 따라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많이 가질수록 아이의 자존감은 올라가며, 또한 새로운 장애물에 겁을 먹지 않고 도전하려는 의욕을 갖는다.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신의 기준을 잘 세워야 한다. 도와줄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명확하게 기준을 세우고 있어야 아이의 독립심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폭을 점점 늘려주는 것이 좋다. 부모는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대신 결정지으려고 한다. 많은 세상 경험을 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 더 좋은 방법인지 한눈에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방법을 아이에게 강요하면 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짓지 못하는 아이로 자랄지 모른다.
특히 요즘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다. 대학교 원서를 낼 때도 학교에 문의 전화를 거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라고 한다. 자신이 받은 성적에 항의를 하는 사람도 학생이 아닌 학부모라고 한다. 자녀에 대한 비뚤어진 애정으로 모든 것을 부모가 대신 해주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너는 바쁘니까, 이건 엄마가 대신 할게. 너는 공부나 해.”아이가 올바른 인격체로 자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길에 노력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부단한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공부’와 ‘취업’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를 아무것도 혼자서할 수 없는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모든 결정을 부모가 대신 해주었던 아이가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 리 없다.
그저 말초적인 즐거움만을 찾고, 자신의 미래 또한 친구, 직장 동료, 혹은 배우자 등 남에게 맡기는 어른으로 자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