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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마음 얻는 법’ 배우던 여고생, 결국 사랑에 빠져…

올해 영화로 만들어지는 일본 만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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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에 예습할까요? 올해 영화로 만들어지는 일본 만화들 - 일단 반성문부터 써야겠습니다. 언젠가 이대 앞 한 철학관에서 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생년월일을 읊자마자 무심하게 툭 던지는 아주머니의 이 한 마디에 전 그녀의 신통력을 인정하고야 말았죠.

일단 반성문부터 써야겠습니다.
언젠가 이대 앞 한 철학관에서 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생년월일을 읊자마자 무심하게 툭 던지는 아주머니의 이 한 마디에 전 그녀의 신통력을 인정하고야 말았죠. “사주가 게을러.”

그러니까, 그 놈의 사주 때문입니다. 도쿄에서 살게 되었다고, 이곳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작품과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겠노라고 호기롭게 다짐한 지 얼마 안돼, 조악한 글 몇 개 달랑 올려두고 반년가까이 칼럼을 방치한 이유 말입니다. 물론 그 사이 저급 일본어로 수업에서 진땀 빼느라, 소설책, 만화책 한 권 맘놓고 읽을 여유가 없었다는 것도 변명이 될 수 있겠지요. 고향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막상 일본에 오니 한국 드라마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일본TV는 제켜두고 <성균관 스캔들>과 <시크릿 가든>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그 동안 제 글이 업데이트되기를 기다렸던 누군가가 계시다면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은 극장에서 영화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 한국 제목 ‘도전자 허리케인’)>를 보며 눈물을 펑펑 쏟다 다짐했습니다.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구나. 칼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어정쩡하게 불완전 연소된 인생을 살아가고 싶진 않아. 아주 짧은 순간일지언정 눈부실 정도로 붉게 타오르는 거야. 그리고 그 후엔 새하얀 재만 남는 거지. 타다가 마는 일은 없어. 오로지 재만 남는 거야.” (만화 ‘도전자 허리케인’ 19권 중)

그리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글은 2011년 한해 영화로 만들어지는 원작 만화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 제일의 만화강국 일본이니 만화원작의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 자체는 전혀 특별한 뉴스가 아니죠. 하지만 올해는 그 라인업이 더없이 화려합니다. 일단 1960~70년대의 전설적인 만화 『내일의 죠』입니다. 스토리 작가 다카모리 아사오와 만화가 치바 데츠야의 원작만화를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 1970년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해 큰 인기를 끌었죠.

 

다들 아시겠지만 내용은 어둡기 그지 없습니다. 소년원 출신의 복서 야부키 죠가 사회의 편견과 싸우며 막강한 상대들을 이기고 복싱 챔피언을 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전후 일본인들의 피폐했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가난, 차별과 싸우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당시 일본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만화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앞에 적어놓은 ‘완전연소’ 대사처럼 등장인물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극적이고 처절합니다. 애니메이션 역시 거친 스케치에, 중요한 순간에는 몇 초씩 화면을 정지시키는 과감한 연출로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물론 “누가 죠의 역할을 할 것인가” 였습니다. 허름한 코트에 빛 바랜 모자를 쓴 슬픈 눈빛을 가진, 하지만 링 위에 올라서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투지로 똘똘 뭉치는 죠의 매력을 현실의 어떤 배우가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였죠.

쟈니즈 소속 아이돌 그룹 ‘NewS’의 멤버 야마시타 토모히사(속칭 ‘야마삐’로 통하죠)가 죠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발표에 당연히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특히 남자분들의 반대가 거셌다죠) 죠의 극적인 삶을 표현하기엔 너무 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것이 문제랄까요. 결국 그는 이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10kg 가까이 살을 빼고 외모를 망가뜨려 비장한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습니다.

영화 <내일의 죠>,
(사진 출처: 영화<내일의 죠> 일본 홈페이지)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말하자면, 맞아서 눈이 퉁퉁 부어도, 허름하기 그지없는 옷을 걸쳐도 그는 여지없이 ‘화보간지’ 더군요. 한때 장동건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잘생겨서 슬픈 배우’가 여기 또 있었습니다.

야마삐의 지나치게 빛나는 외모가 이야기 속에 잘 섞여 들지 못하는 느낌이 있지만, 그걸 제외하면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만화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한 수작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많은 내용들이 과감히 생략되기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원작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미리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도전자 허리케인>은 1993년 MBC에서 방영되다가 돌연 조기종영 된 적이 있었는데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주인공의 상대로 한국인 복서가 등장하면서 번안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게 이유로 꼽힙니다). 당시 가수 김종서씨가 부른 주제곡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는데요. 애니메이션 주제가로는 이례적으로 비장한 가사와 곡조였지요.

이름도 묻지 마라 고향도 묻지 마라
싸움과 눈물로 얼룩진 내 인생
흘러간 세월이 메말라 버린 인정에
두 주먹 불끈 쥐며 내일이 샘솟고
험한 세상 가시발길
고독한 정열에 빛나는 벨트 속에
서광을 비추고
나는 바람 타고 달린다
영광 찾아 달린다
- <도전자 허리케인> 한국방영 당시 주제곡


다음으로 <간츠(GANTZ)>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오쿠 히로야의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앗, 이건 뭐지?” 했던 충격이 잊혀지지를 않네요. 그 기이한 상상력과 파격적인 비주얼 때문에 그 동안 여러 번 영화화가 시도됐다가 좌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부터 인기그룹 ‘아라시’의 멤버 니노미야 카즈나리, 연기파 배우 마츠야마 켄이치 주연으로 제작이 진행됐고, 1월 29일 일본에서 개봉해 현재 박스 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원작의 터무니없는 폭력성과 선정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이어야 하지만, 감독이 전체관람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해 말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결국 영화윤리위원회로부터 'PG12 등급(12세 이하는 부모와 동반관람가)'을 받았습니다.) 2부작으로 나눠 만들어졌는데, 2부는 4월에 개봉할 예정입니다.

영화 ,
(사진 출처: 영화 <GANTZ> 일본 홈페이지)

<간츠>의 줄거리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노숙자를 구하려다 죽은 주인공 쿠루노 케이와 동창생 카토 마사루는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전송’ 됩니다. 살아 돌아가기 위해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이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됐는지, 이 세계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미리 짜여진 하나의 게임처럼 주인공들은 상황에 맞춰 롤 플레잉을 하는 것 뿐입니다.

독자 한명 한명이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이에 대처하는 과정을 상상해나간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게임의 형식을 만화에 그대로 옮겨온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 영화에 대한 평은 엇갈립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원작만화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재미있다” “기발하다”고 열광하는 반면,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원작에 비해 여러모로 약하다”는 평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만화를 실사영화로 옮겼을 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표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간츠>라는 만화에 담긴 성장 스토리적 요소를 영화에서는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화에서는 소심한 소년인 주인공 케이가 미스터리한 상황 속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상처입기도 하고 아물기도 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시간적, 장르적 제약상 영화에서는 빠른 상황 전개와 스펙터클한 장면에 역점을 들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파라다이스 키스>

마지막으로 5월에 개봉하는 영화 <파라다이스 키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천사가 아니야』 『나나』 등을 그린 인기만화가 야자와 아이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연재했던 인기만화죠. 천재들이 모이는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과 모델로 스카우트된 여고생의 사랑과 고민을 진지하면서도 깔끔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주인공들의 개성이 너무 강한 탓에 이 작품들 역시 주인공의 캐스팅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여주인공 하야사카 유카리 역할은 최근 여고생들의 ‘워너비’로 떠오르고 있는 키타가와 케이코가, 남자주인공 고이즈미 조지 역할은 요즘 일본에서 가장 ‘핫’한 배우인 무카이 오사무가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카이 오사무를 격하게 아낀다 해도, 오버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자태를 끊임없이 선보여야 하는 조지 역할에 그가 얼마나 어울릴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 역시 주인공의 성장담입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주눅 들어있던 모범생 유카리는 모델 제의를 받고 아름다운 무대 의상을 입으며, 모델이 되고 싶은 자신의 꿈에 눈을 뜨게 됩니다. 동시에 괴팍한 천재 디자이너 조지와의 사랑도 시작합니다.

하지만 꿈을 찾았다고 해서 그녀에게 ‘파라다이스’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은 거세게 반대하고, 학교에서는 제적될 위기에 처하며, 남자친구는 무심해 속을 태웁니다. 심지어 조지는 프랑스 유학을 결정하고 유카리에게 따라올 것인지 말 것인지의 선택을 강요하죠.

결국 죠지를 따라가지 않기로 결심한 유카리, “조지는 모노크롬의 풍경을 극채색으로 물들여 주는 존재였어”라고 깨닫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무채색의 길을 걸어갑니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이런 담담한 결말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습니다만 역시 청춘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결말이었는지, 영화에서는 내용이 바뀔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올해 영화화되는 만화들은 많습니다. 한국에서 개봉하기는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만, 카와하라 카즈네의 순정만화 <고교 데뷔>가 봄에 개봉할 예정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한참 떠오르는 신예스타 미조바타 쥰페이가 주인공을 맡았구요. 중학교까지 스포츠밖에 모르던 여주인공 하루나가 “고등학교 생활은 사랑에 걸자”라고 결심한 후 학교에서 제일 인기 있는 남자선배에게 ‘남자마음 얻는 법’을 지도 받다 사랑에 빠진다는 ‘순정만화다운’ 줄거리입니다. 또 하나, 만화를 보면서도 ‘이건 영화감이잖아’ 생각했던 우니타 유미의 '토끼 드롭스'도 영화화됩니다. 30세의 독신남 다이키치가 자신의 이모뻘 되는 6살 소녀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훈훈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완소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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