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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 뮤지컬연출, 가수데뷔… 박칼린은 어떤 사람일까? - 박칼린 『그냥』

“삶에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해요. 뭘 하든 밸런스를 기억하세요. 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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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에서 박칼린은 투정을 일삼는 멤버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저들이 과연 ‘넬라 판타지아’라는 거대한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싶은 순간에도, ‘믿고 따라오라’는 박칼린의 머릿속에는 어떤 선명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듯 했다.

“일단 저를 믿고 따라와 보세요. 한번 만요.”

<남자의 자격>에서 박칼린은 투정을 일삼는 멤버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저들이 과연 ‘넬라 판타지아’라는 거대한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싶은 순간에도, ‘믿고 따라오라’는 박칼린의 머릿속에는 어떤 선명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듯 했다. 그녀의 확신과 자신감, 특유의 에너지가 시청자들에게까지 오롯이 전달되었다. 합창대회라는 미션을 건 <남자의 자격-하모니편>은 박칼린이라는 음악 감독을, 그녀가 가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켰다.

박칼린, 이 낯설고도 특이한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처음이겠으나, 뮤지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마주쳤을 이름이다.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음악을 공부했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수학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 감독으로 데뷔한 나이가 스물여덟.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 <페임> <시카고> <렌트> <노틀담의 꼽추> <미녀와 야수> 등 한국에 올려지고 있는 상당수 뮤지컬의 음악을 담당했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할 만큼,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녀는 요즘 또 다른 도전에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막을 앞두고 있는 대형 뮤지컬 <아이다>에서 이번에는 음악감독이 아닌 연출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가수 임정희와 디지털싱글을 발표하고, 가수로도 데뷔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CF에서도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질 무렵 이 책, 박칼린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그냥』. 무려 3년 전부터 작업해온 책이다. 편집자에 말에 따르면, 뮤지컬 감독이라는 남다른 직업가의 캐스팅 이야기를 듣고자 제안한 기획이었단다. “지난여름에 작품이 없어서, 이 책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던 참에, <남자의 자격> 제안이 들어왔다.” 이 절묘한 타이밍이라니!

『그냥』 출간 기념으로 ‘박칼린과 함께 하는 멘토링 테이블’ 이벤트가 마련됐다. 수많은 연예인들에게 같이 작업하고 싶은 파트너, 소중한 멘토로 꼽히는 박칼린에게 단연 어울리는 자리. 그녀는 “그냥 살고 있는 박칼린”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털털하게 웃으면서도, 이야기하는 독자들과 진지하게 눈을 마주치는 그녀는 TV 속 모습 그대로였다.


“<남격> 덕분에 더 큰 채찍질이 생겼죠”


<남자의 자격>을 마치고 박칼린은 ‘나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평소처럼 연습하러 가요. 그때마다 우르르 따라오는 사람은 있는데, 남자는 없어요.(웃음) 더 큰 채찍질이 생겼다는 게 달라졌죠. 더 잘해야 하고, 더 좋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좋은 거예요. 재미있는 거죠.”

<남자의 자격>에서 진정한 프로의 눈빛을 발견한 것은, 연습을 할 때보다, 오디션을 치를 때였다. “선생님은 참 생각이 많으시네요.”라던 김국진의 말처럼, 그녀는 사람을 볼 때, 그 속에 숨겨진 악기를 감지할 때마다 눈이 번쩍였다.

“아직 덜 다듬어져서 다른 사람이 그의 재능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유난히 내 눈엔 미래에 완성될 보석이 뚜렷하게 보이는 일. 그래서 나만이 그걸 알아채고 혼자 그 원석을 깎아낼 때 그 순간순간의 폭발적인 희열(p.13)” 그녀에게 캐스팅은 이런 일이다. 실제로 캐스팅은 “음악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오랜 시간 그 일을 해온 박칼린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그 사람이 보인다고 했다.

“연주 하면서 배워온 과정은 비슷하거든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서 노래를 어떻게 소화하는지, 노래를 부르면 그 속에 다 있어요. 하기는 싫은데 재능만 있어서 오게 된 건지, 어떤 아픔을 겪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어요. 김태원씨는 정확해요. 목 악기는 좋지 않지만, 연주를 잘하니까, 노래도 철저하고 깔끔하고 정확하죠. 반면 김성민씨 노래를 들으면 딱 철부지 느낌이 들잖아요.(웃음)”

“희노애락 중에 ‘노’와 ‘애’가 없어요”


책에 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박칼린의 가족과 삶의 이야기에 대한 책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집안이 원래 털털해요. 무엇에 얽매여 있지 않아요. 예전에는 집에 침대도 TV도 없었어요.”

“물건을 사서 두는 걸, 우리 가족 모두가 싫어했어요. 그 돈이 있으면 여행을 가거나 공연을 봤죠. 언제나 경험으로 부자였죠. 그래서 다 떠날 준비하고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떠난다는 걸, 여행준비라고 볼 수도 있고, 지구를 떠나는 죽음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런 일에 두려움 없이 자랐어요.”

그녀는 살면서 좌절했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나가면 꼭 그런 질문을 받아요. 방송에서도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을 찍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는 못 만들어내겠더라고요. 내가 실수한 순간은 많아요. 하지만 그걸로 좌절하거나 후회한 적은 없어요.” 그녀의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심금을 울릴만한 숨겨진 사연 같은 건 없다. 그저 일과 삶의 터전에서 떠오르는 그녀의 에너지, 열정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 책을 쓰던 중에 어느 날 다시 읽어보니까, 못 읽겠더라고요. 제가 봐도, 뭐 이렇게 저 잘난 맛에 사는 거야 싶어서요. 미안하다는 것도 없고, 겸손한 것도 없고. 해서 책 작업을 접을 뻔 했어요. 어느 정도 책을 완성하고 나서, 처음 물어봤던 게 이런 거였어요. 너무 거만하거나 잘난 척 하는 것 같지 않냐고. (편집자를 보며) 조금 뜸을 들이셨잖아요.”

그저 ‘희노애락(喜怒哀樂)에서 ‘노(怒)’와 ‘애(哀)’가 담기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단다. “그런데 정말 없었어요. 언니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내가 언니를 때리거나 싸운 경험들? 부모님이 잘 인도해줘서 그런지 특별히 얘기할만한 ‘노’와 ‘애’가 없어요. 그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거짓말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냥 진짜 그대로 썼어요.”

“한번은 믿어 달라”


감독이라는 직책은 리더쉽이 필요하다. 방송을 통해 보여준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시청자와 여기 모인 독자들까지 사로잡았다 ‘나를 따라오라’는 그 자신감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 사람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거죠. 경규 쌤은 악보를 보지 못하지만, 오디션을 보니 음감이 있더라고요. 그럼 악보를 주지 말고, 외우게 해야겠다고 한거죠.”

“아이들은 처음 보는 음식은 먹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집에서 그런 게 용납되지 않았어요. ‘네가 한번은 맛을 봐라. 어떤 이유로 네가 정당성 있게 거절하면, 다시는 권하지 않겠다. 한번은 먹어봐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그게 저의 ‘한번은 믿어 달라’가 된 거에요.

<남자의 자격>은 실력, 성격이 각자 다른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서로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야 해결할 수 있는 미션이었어요. 해야 하는 과제와 역량을 잘 알면 끼워 맞추기는 쉽죠. ‘엄한 것은 안 시킨다. 다음 단계로 갈 정도의 숙제만 시키겠다’고 했어요.

하나씩 배워갈 수 있는 미끼를 던지는 거예요. 능력치에 맞는 것만 하면 재미없고, 능력 밖에 있는 걸 시키면 포기할 수 있으니까 역량을 잘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그 다음부터는 갈 길이 잡혀요. 그러니까, 눈 감고 조용히 따라와라. 하는 거죠.”


“제 사람 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요”

박칼린식 리더쉽은 이런 거다. “제 군단에 들어온 사람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요. 제 친구들에게도 그걸 원하고요.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바로 지적하고요.” 친구들이란, 그녀와 사제의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칼린 군단.

그녀는 사제지간이라고 해서 결코 위아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는 동등해요. 옆으로 가는 사람들이지 아래 위는 아니에요.” “제자란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공유하는 사람들(p.23)”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박칼린은 스승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준다’. “무조건 들어온다고, ‘쟤를 내 제자 삼아야겠어’ 하는 건 아니에요. 배울 때 똑같이 다 퍼줘도, 마음에 닿는 친구가 있어요. 서로 신뢰를 퍼붓게 되는 관계가 있어요. 어느 날 보면, 내보내도 안가는 사람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저는 절대 샘내는 사람과 일하지 않아요. 질투내고 샘 내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아요. 그런 친구들의 성격을 고치려고도 하지 않아요. 같이 있지를 않아요. 다른 배우들을 볼 때 좋아하면서도 샘내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거짓말, 인위적인 것, 겉치레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것도 싫어요. 지나친 건 다 싫어요.”

가급적 그런 사람들을 피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 그녀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상황을 인식한다. “이 사람이 내 일에 간섭하지 못하게, 철저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하죠. 내가 일을 더 잘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야!(웃음)”

“이왕에 할 거라면, 가장 뜨겁게 하고 싶다”


독자들이 그녀에게 꿈에 대해 물었다. “원래 LA에 사는 사람은 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언니가 영화 쪽에서 일을 하는데, 내가 가려는 학교를 언니가 가는 바람에 가지 않았어요. 주변에 영화나 음악 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좀 더 생각해보려고요. 만약 공부를 하게 되면 철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구체적이진 않지만, 학교를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각자의 꿈을 풀어놓으며, 독자들은 박칼린에게 조언을 구했다. 진로 문제에 대해, 앞날의 두려움에 대해. 그녀는 언제고 명확했다. “생각이 많은 건 좀 정리하셔야 돼요. 우린 평생 진로를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그건 아주 재미있는 고민이에요.” 인생을 퍼즐로 비유하는 그녀에게 가야할 길은 하나의 미션이고 도전이다.

“저도 노력은 되게 많이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놀러갈 때, 저는 항상 공연하거나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즐겼기 때문에 그게 고생이라고 느끼지 못한 거죠.” 그녀의 삶의 ‘노’와 ‘애’가 없었다는 말은 결국 이런 의미일 터. 그녀가 어떤 일도 부정적으로 감지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중요하다. 할 거라면, 살 거라면 가장 뜨거운 곳 그 한가운데에서 가장 뜨겁게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밋밋하게 죽으러 살 바에야 활활 타오르고 싶다.(p.260)”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힘들고, 재능을 펼치는 일도 힘들어요. 할 수 있는 운이나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해요. 그럼에도 정상에 도달하면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아, 내가 만약 다른 일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 끝까지 다다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은, 후회나 고민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삶에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해요. CJ의 박 대표님이 저더러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칼린이 야는 똑똑해요. 어떻게 시간을 내는지 몰라도 작품은 꼭 올려놓고 도망간다”고. 그런 것 같아요. 진짜 일 열심히 하고, 놀 때도 열심히 쉬고. 그렇게 다 비우고 다시 시작하고. 뭘 하든 밸런스를 기억하세요. 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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