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0년대 중반이니까, 10년도 훨씬 지난 일. 잠시 미국에 들른 청년이 받은 첫 번째 문화적 충격(Culture Shock)은 버스에서 왔어요. 버스 정류장,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버스가 왔는데, 폭삭 가라앉는 것 아니겠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뭔 일인가 싶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어요. 휠체어가 버스에 오를 수 있도록 버스가 내려앉은 것이었고, 운전기사가 휠체어의 안전한 탑승을 돕고 있었습니다. 아하, 저런 이유가 있었구나.
저상 버스를 그렇게 처음 외국에서 봤습니다. 또 인상적이었던 하나는, 승객들. 어떤 불만, 불평이 없었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시간 없으니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사람도, 휠체어를 탄 승객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다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어요. 한국에서 한번도 이런 장면을 보지 못한 청년만 호기심 천국이었던 거죠. 그들은 그렇게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풍경, 또 심심찮게 볼 수 있었어요. 이 도시엔, 장애인이 유난히 많은 건가. 처음에는 그렇게도 오해할 정도로.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어디에서도 장애인을 쉬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세상에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국이라고 장애인 비율이 낮거나 절대 수가 적은 것, 아니었어요.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만들어져 있고, 장애인을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일부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던 거죠. 비장애인인 청년은 뒤늦게 알았고, 생각했습니다. 사회 자체가 장애를 품고 있던 거구나.
#2.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 한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는 그렇게 말합니다. 꽤나 인상적인 광고입니다. 잘 만들었다는 생각, 듭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을 극복한 스포츠 선수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죠. 그 가운데 장애인도 광고에 등장합니다. 장애가 있다고 좌절하지 말라는 메시지, 충분히 전달해 줍니다. 이 광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일갈한 나폴레옹이 되어 보라고 부추깁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우리 모두에겐 있다고, ‘긍정의 힘’을 설파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나폴레옹 사전에도 불가능은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특히 이 광고, 장애를 극복하는 것, 개인이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파하는 듯합니다. 장애인이 이룬 성취,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행동 덕분이라는 듯한. 광고의 주인공은 당연 충분히 멋있고, 훌륭합니다. 그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 광고, 장애를 지극히 개인의 문제로만 다룬 것 아닐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극복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공연히 삐딱하게 본 것이겠으나, 저는 장애가 단순히 개인의 불행으로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 1, 2급 장애인은 보험에 들지 못합니다. 세상 누구든 보험에 가입해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주야장천 읊어 대는 보험 광고. 하지만 1, 2급 장애인에겐 보험 가입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 아무것도 아니라면서요. 보험 회사에게 로비하면 혹시 가능한가요. 그렇다면 장애인의 불확실한 미래는 어떡하죠. 장애인에게 닥칠 수 있는 미래의 위험을 대비해 줄 수 있는 사회적?공적 보험이라도 있나요. 전체 인구의 4.4퍼센트나 되는 214만 명이 장애인이라는 한국. 환청이지만, ‘무심함,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사람, 김원영
뜨거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 쿨함이 대세라지만, 기실 사람 마음이 쿨함으로 진정될 수 없듯, 뜨거움 그 자체로 살아갔으면 하는 사람. 김원영 씨입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며,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단 한번도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희망의 증거가 될 생각이 없으며,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 그 사람, 최근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김원영 지음 | 푸른숲 펴냄)를 낸 김원영 씨입니다.
그는 열다섯 살까지 작은 방이 세계의 전부였던 소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백 명 안팎의 사람들이 가진 희귀병이자 중증 장애인 골형성부전증을 지녔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는 동정과 미물 사이에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좁은 세계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었던 우연과 운명을 관통하며, 뜨거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여자 친구와 밤을 보내며, 밴드 공연을 하며 열광적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며 친구와 소리도 질러 봤습니다. 동정과 시혜의 대상, 무성적 존재로 괄시받아 온 미물은 한갓 미물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때론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인간 승리’라는 명분으로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선, 그의 마음이나 내면, 가치엔 무심한 경우죠. 우리가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헬렌 켈러. 그를 ‘장애 극복’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은, 극히 일부만 보는 겁니다. 그의 진짜 가치와 신념은,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에 있었습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쳤으며, 아동 노동과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사형 폐지를 부르짖었던 그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글을 발표하고 자신보다 더욱 심각한 장애와 결함을 가진 ‘무쓸모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김원영이라는 사람,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야한’ 장애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뿐. 자신이 특별하고 소중하며 자부심을 갖고 사는,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그것 정도는 저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좋은 몸과 학벌, 직장, 특히 집(의 평수)으로 남들에게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난 자존감 없는 그런 사람들보다 그는 훨씬 견고하고 뜨거운 사람입니다.
장애인은 장애를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나는 모순된 존재가 될 것이다. 장애를 극복했다면서 왜 나는 여전히 장애인인가.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장애인인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내가 세상의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는 왜 안 되는가.(p.7)
책에 대해선, 블로거 ‘사탕장미’ 님의 서평(
「오늘부터 저도 김원영 님의 지지자가 되었답니다」)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외면해버리거나 단절을 선언해 버리는 고자세가 아니어서 좋다. 사실 특별한 고통을 감당해야 할 만한 요인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삶의 고단함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무지함으로 인해서 행했던 행위들로 생존에 더 큰 불편을 겪어야 하는 동족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아예 감지하지 못한다. (…) ‘너희는 그래서 안돼!’ 하면서 무시하지 않아서 좋다. ‘너희들이 장애인의 비애를 알기는 알아?’ 하며 분노의 칼날을 겨누지 않고 그들의 무지함에 한숨을 쉬면서도 인내와 배려심으로 기초적인 개념 정리부터 도와주려고 다정한 손을 내민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내내 나도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절한 사람이구나 김원영은, 하면서 글 읽기가 즐거웠다.”
더불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장애 극복을 통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오토다케 히로타다 등이 거둔 성취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들의 성취에는 열정적이고 개방적인 부모, 스승, 친구 등이 함께했음을 분명히 합니다. 결국 장애가 있든 그렇지 않든, 어떤 성취엔 천재성이나 노력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작동한 결과임을 저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가 사는 사회입니다.
봄이라지만 여전히 바람이 매서웠던 어느 봄날, 서울대 교정에서 나눴던 뜨거운 이야기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역시나, 뜨거운 것이 좋아.
책의 온도, 36.5˚
뭐랄까, 책이 맛있습니다. 책이 욕망 그 자체 같기도 하고.(웃음) 욕망을 세상에 내놓은 소회가 어떤가요.
“처음엔 어디에 소속돼 있고 다니고 있다는 것을 표지에 넣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뤄 놓은 것도 없고, 고민의 성숙이나 정도도 낮다고 생각해서. 그전에 책을 낼까 말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죠.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정체성, 꼭 장애가 아니더라도 소수자 입장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고,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과정을 드러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답이 있거나 성취가 아닐지라도 그런 고민들을 하는 과정을 얘기하고 싶었던 거죠. 또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데, 삼십 대에 직면할 도전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부끄럽고 민망한 면도 있지만, 하나의 국면이 됐다는 면에서 뜻 깊고, 설레요.”
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됐나요.
“출판사에서 내가 그동안 써 왔던 고민에 관심을 보일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출판사 한 곳을 찍어서 원고를 보낸 곳이 푸른숲이었어요. 그런데 처음 보낸 곳에서 관심을 보인 거죠. 푸른숲을 택하게 된 동기는, 처음 글을 구상할 때 에세이라는 측면이 있는 동시에 사회 과학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고, 그 중간 지점을 정체성으로 삼았죠. 그래서 거기에 맞는 출판사가 어딜까 고민하고 찾았어요. 푸른숲이 대중적인 에세이도 많이 내고 버트런드 러셀이나 한나 아렌트 등의 서적을 낸 중간적 정체성 가진 책을 낸 출판사여서 원고를 마침 보냈던 거죠.”
좀 까다로울 수도 있는 질문인데요, 저자로서 책이 품고 있는 욕망의 온도를 잰다면…….
“음, 어렵네요.(웃음) 리뷰를 보니, 어떤 분은 자신의 느슨한 일상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열정으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던데, 제가 말한 욕망은 열정, 극기의 의미가 아니고요. 인간 본연이 가진, 기본적인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두가 가진 욕망입니다. 그런 것조차 없는 것처럼 치부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욕망이 거세된 사람들로 인식된 사람들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뜨거울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니까, 책이 품은 욕망의 온도는, 모든 인간이 가진 36.5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장애인 그리고 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는 수많은 ‘미물’들은 모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존재다.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성공을 욕망하고, 상대의 멸시와 모욕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인간의 욕망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 (…) 나는 이제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내 피는 지금 이 순간도 찬란한 태양 아래서 세상과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세상과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라고 부추긴다.(pp.8~9)
책이 때론 오감을 자극하면서 내 욕망도 함께 열어젖히고픈 생각도 들게 만듭니다. 세상은 욕망이 흘러넘치는 것 같아도, 진짜 내 안의 욕망보다는, 타자의 것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그런 면에서 이건 진짜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왜 ‘욕망’을 테마로 잡았나요.
“장애인이라고 하면, 배려의 대상처럼 여겨지잖아요. 아니면, 봉사의 대상. 주체였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주체가 되려면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 보면, 주체는 자기가 만들고 결정하는 존재잖아요. 그것을 만들어가는 힘은 욕망입니다. 자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 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없는 존재처럼 인식돼 왔고, 스스로는 원하는 게 아니고 남들처럼 못 하더라도 행복하다고 얘기해요. 많은 부분에서 억압된 것을 자유롭게 선택한 것처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최근에 몇몇 중증 장애인들, 즉 장애인 운동을 한 사람들이 사회의 벽을 깨면서 세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줬고, 그게 제 삶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일반적으로 욕망에 따르는 것이 부도덕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지만, 저는 욕망을 따라서 할 때 긍정적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걸 실감했어요. 존재를 실현하기 위한 욕망의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억압된 사회가 아니었나 싶어요. 욕망은 그러니까, 더 근원적인 힘입니다.”
사실 저는 제목‘빨’이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정했나요.
“제목은, 극과 극의 평가가 있어요. 좋다는 사람도 있고, 한편에서는 ‘널 아는데, 이건 아니잖아’ 하면서.(웃음) 사실 처음 제안한 제목은 ‘나는 야한 장애인이이고 싶다’였습니다. 야하다는 의미는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다른 사람의 보호가 아닌 스스로 빛나면서 다른 사람과 사랑하고 분노하는 존재로, 그 제목을 얘기했는데, 출판사에서 너무 적나라하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그런 의미를 제목으로 표현하고자 고민하던 차에, 편집자가 지금의 제목을 던졌어요. 제목 고민을 오래 했는데, 마침 그 제목에 동의했고.”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경에게 죽을 때까지 야한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고복수의 고백을 인용했습니다. 확 와 닿던데, 혹시 이 드라마에 얽힌 추억이나 의미가 있었나요?
“특별히 그런 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보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드라마는 많이 보는 편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대학원생이라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는데, 학부 때는 시간이 있어서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최근에는 어쨌든 점점 단순해지고 있어요. 한 가지 분야(법률)만 공부하다 보니.(웃음)”
그러나 이 드라마의 작가는 고복수가 “경이 씨,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을 사랑해줘요”라고 말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복수는 자신의 몸이 ‘야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고통과 손상으로 얼룩진 몸이 ‘야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복수는 솔직하다. 그는 쿨한 척하지 않으며 고상한 척 영혼의 아름다움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촌스러울 만큼 ‘핫한’ 존재다.(p.208)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다
‘인간 승리’에 집중하곤 하는, 대개의 장애인을 다룬 책과 다릅니다. 개인의 삶을 서술하면서도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과 의지가 담겼다고나 할까요. 최초 글을 구상한 기획 의도대로 간 건가요.
“저는 정말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해요. 적절한 시점에, 자신의 생각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만난 거죠. 복지사, 운동하는 사람, 장학 재단도 있고, 방식은 다르지만, 공동체 역할이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분들과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개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람들이 개입해 온 덕에, 이 책은 김원영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소외된 영역에 있던 사람을 사회적으로 끌어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소외된 곳에 머물러 있는, 잠재력 있거나 그런 기회를 놓치고 있는 일반적인 장애인이나 열등하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상했고, 편하고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내 얘기를 소재로 한 거죠.”
어떤 면에선 ‘인간 승리’로 규정지을 수도 있지만, 그 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간 승리 드라마가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면서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외면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삶이라는 뷰파인더를 통해 사회 구조를 조망합니다. 삶의 궤적을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도 혹시 의식했나요.
“삶의 과정이 공동체의 노력을 포함하고 있는 거죠. 저도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고, 이렇게 된 과정이 공동체의 노력과 제도 등을 통해 가능하다는 증거로서 인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쓸 때는 인간 승리라고 얘기되는, 장애를 극복한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물론 그런 분을 존경하고, 배우고 싶지만, 그런 분이 장애인이나 소수자 담론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문제를 가린다고 생각해서 일정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인간 승리 드라마가 때로는 불편한 이유는, 어떤 어려움과 괴로움이건 개인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폭력 같아서인데요, 어떠세요.
“그런 식의 메시지가 많아요. 열심히 해라, 사회 탓하지 마라. 주의해야 할 것은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해도, 개인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아직 그런 수준은 아니죠. 어떤 열악한 사정도 네가 노력하면 넘어설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성공한 경우를 보여 주는 게 그 밑의 90퍼센트 이상 사람들을 가리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해도, 90퍼센트의 대부분은 열심히 삽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구상하느냐, 어떻게 기회를 배분하느냐가 아닐까 싶어요. 장애인 미담 기사나 장애인이 무슨 대학에 들어가고 직업을 얻었다는 것이 개인의 성취를 축하해 주는 수준을 넘어 ‘넌 왜 그렇게 못 하냐’라는 메시지를 담게 되면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원영 씨도 함께 비를 맞아 주는 용기 있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유와 연대의 힘이겠죠. 그런 면에서 그것도 살살 아궁이를 달구는 희망이 아닐까도 싶은데요.
“‘차가운’이라고 해서 희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제가 위치한 상황이 저의 노력만으로 뚫고 나가기 힘든데, 뚫고 나간 소수를 얘기하면서 희망을 갖고 너희도 하라고 하는 건 냉혹하고 냉정한 거죠.”
우리는 비관적인 현실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사람들은 비관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헛된 희망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을 마지막 자유를 찾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국 해방될 수 있었다.(p.216)
글쓰기를 통해 사회에 발언하다
글쓰기가 유려한 덕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책에서 언급했는데, 글을 쓸 때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제 경험이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일반적인 경험도 많이 하지만, 장애인으로서 하는 그런 경험. 많은 장애인들이 글을 쓸 기회도 없고, 교육받을 기회도 없는데다, 사회적으로 발언할 기회도 없어서 언어로 드러낸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을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고, 그런 고민을 한 책을 읽었고, 친구들과 나눴습니다. 그런 고민이 저의 특별한 경험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장애인 치고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혹은 ‘장애인 치고는’ 멋진 말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멋질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 있는 어떤 메시지를 위해 이 글을 쓴다.(p.259)
실천의 주체라기보다 증인으로서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우리 몸이 가진 자유를 변론하면서 사회적인 연대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고요. 혹시 이것이 원영 씨 글쓰기의 힘인가요.
“고등학교까지는 열심히 쓰진 않았고, 대학에 와서 많이 고민하고 글을 쓸 기회가 많았어요. 학부가 사회학과이다 보니, 글을 쓰는 훈련을 많이 받았어요. 생각이나 고민을 언어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었어요. 어떤 경험이 의미를 가진 것 같은데,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거든요. 그런 것들을 언어화한 소수의 사람을 봤고, 힘을 느꼈습니다. 언어가 있어야 의미가 가능하니까요. 그런 힘을 느꼈고,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들이 말하는 언어는 몸과 관련한 문제이고, 몸은 보편적 문제이기 때문에, 언어 하나하나가 힘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책을 관통하는 핵심 중의 하나가 ‘자유’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인데, 언젠가 ‘자유’에 대한 글을 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혹시 그럴 생각도 있나요.
“자유. 철학적인 주제인데, 개인적으로는 인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철학도 그렇고. 제가 일반적인 기준보다 제한된 신체를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있고, 그런 것에서 어떻게 자유의 개념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있습니다.”
분노하고 바꾸자
책에도 나와 있지만, 자립 생활 운동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자립 생활 운동은 1960~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어요. 버클리 대학에 호흡을 제대로 못 하는 중증 장애인이 입학했습니다. 그 사람이 대학에 들어가 사회 복지 서비스를 받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대학 안에서 권리를 찾으며, 시설이나 병원이 아닌 지역 사회 내에서 주체적으로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결심하고 시작된 운동입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갔고 한국에 90년대 말에 들어왔어요. 그 운동은 한 측면에선 이념입니다. 복지 서비스의 클라이언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이념이고, 서비스 측면에서 본다면 정부나 지역 사회가 활동 보조인을 파견해서 장애인이 생활하는 것을 돕는 맥락인데, 지금 자립 생활 운동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활동 보조인은 자원 봉사자가 아니고 장애인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완성된 것이 아니에요. 주체성을 살려 나가자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운동이자 정치 패러다임입니다.”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외로운 싸움이 꽉 막힌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장애가 극복 대상이 아닌 사회에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정체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변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무엇이 있을까요.
“보통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맞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식을 바꿀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장애인을 보면 어떻게 해야지, 한다고 되는 것 아니잖아요. 캠페인으로 해결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에 등장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장애인 시설이 아니라 사회로 나오고.
장애인을 둘러싼 많은 담론이 있고, 자선이든 정책이 있는데, 그런 것을 주도하고 실행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자신의 언어를 얘기하기 위해, 고등학교나 대학을 많이 들어가게 하는 건 기본이고, 인문학적인 내용을 담은 독서의 경험을 많이 하도록 하고. 또 자기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기가 되고 성찰할 수 있도록.”
장애를 극복해 본 적은 없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가 장애에 적응해 나가는 변화를 경험했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한다. (…) 세상은 또 얼마나,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p.227)
분노를 촉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고. 약자들의 힘은 그런 분노가 모여 발휘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가장 분노하고 있는 것은 뭔가요.
“오랫동안 장애인 운동을 통해 이룬 성과나 성취가, 지금 정책적인 측면에서 퇴행하는 것이 있습니다. 힘들게 이룬 하나하나가 쉽게 예전으로 돌아간 거죠.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화가 나고 분노가 일고, 갑갑합니다. 또 장애인은 여전히 정치적인 퍼포먼스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어요. 눈물 흘리고 목욕시켜주고…….”
나는 우리 세대 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분노’라고 생각한다. 끝없는 긍정과 낙천적인 생각, 타인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분노해야 한다. (…) 분노는 부정의에 대한 합당한 저항이고, 그 저항 속에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분노하는 삶은 사랑하는 삶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확장시킨다.(p.266)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가요?
“민망하지만 무대 체질이에요.(웃음)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고,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다면 주도적으로 시선을 받는 게 훨씬 좋아요. 그런 면에서, 그것이 연극이 될 수도 있고, 작은 밴드도 될 수 있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강연회가 될 수도 있고. 제가 어떤 사람의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주도적인 위치에서 대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할 때, 평등한 주체로서 세상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보람도 있고 행복합니다. 그 외에 자잘한 행복도 있지만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저부터도 그렇지만, 위선적인 게 싫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불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웃음) 친구들에게 말을 막 던진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는 행동의 많은 부분은, 그것에 동원되거나 억압을 수반하는 것 같아요. 착한 척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나 분노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회는 힘들거든요. 장애인은 세상에 도움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착해야 한다는 거죠. 착해야 한다는 것은 약자에겐 억압일 수 있습니다. 그건 나쁠 수도 있는 사회 같아요.”
나는 오히려 우리의 조건들을 세상의 중심에 오게 하는 도전과 연대, 상상력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7)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떤 사랑을 하고 싶습니까?
“책에 H의 얘기를 썼잖아요. 사람들은 그게 제 인생에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진 않아요.(웃음) 그 사람, 저의 몸까지 사랑해 줘서 참 좋았어요. <네 멋대로 해라> 얘기를 하면서도 썼지만, 나의 영혼을 좋아해 주는 사람도 물론 좋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원영이 넌 장애가 있지만, 다른 가능성이나 좋은 성격이 좋아’ 그런 것은 원하지 않아요. 넌 정말 성격이 나쁘고 별거 없지만 섹시하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 자체를 받아 줄 수 있는, 그것을 매력적으로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랑이, 제가 바라는 바에요.(웃음)”
책을 보고, 김원영 씨를 만나고, 떠오른 노래가 원더 걸스의
「So Hot」. 오랜만에 그 노래, 듣고 또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쿨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감추거나 숨기는 일이 미덕(?)처럼 된 시대.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에 충실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욕망에 포획당한 채 끌려 다니는 시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김원영 씨는 그러고 보면, ‘능력자’! 자신의 욕망을 알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장애가 될 수 있겠네요. 그는 뜨겁고, 뜨거운 것이 좋다고 과감하게 말합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뜨거워서 좋습니다. 그는 어쩌면 불쏘시개입니다. 스스로를, 그리고 나를, 당신을 더 뜨겁게 달굴 수 있는 불쏘시개. 부디, 우리 그렇게 야해집시다.
I'm so hot
난 너무 예뻐요
I'm so fine
난 너무 매력 있어
I'm so cool
난 너무 멋져
I'm so so so hot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