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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만인보’ 넘어 ‘만물보’까지, 인간과 자연, 우주의 상응에 기여하기를”

『만인보』 완간 기념 고은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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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여름, 내란 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구상을 시작해, 만 30년 만에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총 작품 수 4,001편, 조연급 정도만 포함해도 등장인물이 5,600여 명에 이른다.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 『만인보』가 25년 만에 완간되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아래와 같은 추천사를 달았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 연재를 시작하면서 3천 편쯤 쓸 작정이라고 했을 때 ‘말이 그렇지’라는 게 나의 속마음이었다. 1~3권 300여 편이 한꺼번에 간행되면서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사반세기, 이제 4,001편을 담은 『만인보』 30권이 완간된다. 완간이라지만 앞으로 5천 편인들 못 써낼 것 없을 듯한 기운이 이번의 마지막 네 권에 넘쳐난다.”

1980년 여름, 내란 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구상을 시작해, 만 30년 만에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총 작품 수 4,001편, 조연급 정도만 포함해도 등장인물이 5,600여 명에 이른다. 완간을 기념하여 기존에 출간된 1~26권을 출간 시기별로 합본하고, 27~30권을 더하여 열한 권의 양장본과 부록 한 권으로 묶어 냈다.

시인은 원고 탈고 후에도 전집 출판에 맞추어 약 8개월간 역사적 사실 관계와 인명 착오 등의 오류를 바로잡고, 4천 편의 시를 일일이 손봤다. 세계 시단에서도 ‘오늘날의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이라고 평가받는 『만인보』 완간을 기념하여 지난 4월 9일 프레스센터에서 완간 기념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사회자는 완간을 기념해 2008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로버트 하스, 리영희 선생이 보내온 축전을 소개했다. 로버트 하스는 “전 세계에 주는 선물이자 한국 국민의 생명력에 바치는 찬사”라고 전해 왔고, 병상 중에 있는 리영희 선생은 “시의 형식을 빌려 민족사의 애환이 농축된 이 작품으로 많은 즐거움에 도취된다. 고은 시인의 안경을 통해 나는 경의감을 느끼며 역사를 본다”고 축하를 보내왔다.

고은 시인은 이어 『만인보』 완간 소회를 밝혔다.

“지난 25년의 세월은, 『만인보』 속에서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자연이었습니다. 『만인보』 안에는 각각 다른 시기의 얼굴들, 다른 방향의 얼굴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선재해 있지만, 하나의 명제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세상과의 약속을 이걸로 지켰습니다.

앞으로 어느 날 31권을 쓰고 있는 나의 혼백을 누군가가 만날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만인보』 이후의 『만인보』 작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귀납과 연역이라는 것. 서사와 서정이라는 것. 서술과 묘사라는 것. 기억과 상상이라는 것. 그리고 문학과 역사라는 것, 현실과 허구라는 것, 시와 시가 아니라는 것…… 이런 것의 합신(合身)이 만인보의 의미일지 모릅니다. 시는 우주 만상의 화합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만인보’는 인간을 넘어서 ‘만물보’까지 나아가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의 상응에 기여하기를 꿈꿉니다.”


이어 간담회 자리를 위해 준비한 새 낱말을 소개하며, 모국어 존속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어젯밤 ‘아련가련하다’는 말을 지었습니다. 아련하다는 말보다 덜 아련하다는 뜻입니다. ‘아련하다’는 말은 내가 처음 들은 시어였습니다. 그때가 나는 운명의 기억처럼 가슴이 뜨겁거든요. 고향의 무명 시인이 한 말이었습니다. 이 말보다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말로, 선배의 뒤에 서 있는 태도로써, 아련보다는 못한 말로 ‘아련가련’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또 ‘오련가련’이라는 말도 지었습니다. 온 듯함과 간 듯함을 합한 말입니다. 오는 것도 아닌, 가는 것도 아닌 애매한 의미입니다. 서구의 말과 달리 우리는 애매한 언어를 피 속에 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는 내 앞에 오는 바람을 ‘가슴 바람’, 등 뒤에서 오는 바람을 ‘등 바람’이라고 부릅니다. 앞과 뒤라는 거시적인 방향을 육화(肉化)시켜서 내 몸의 언어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앞으로 나는 모국어의 혁신적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라도 시어 하나하나를 지어 작품 안에 넣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수많은 모국어의 사어(死語)에 대한 진언이기도 합니다. 또한 모국어의 100년이 보장될 수 없는 날 속에서 언어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과 오열이 담겨 있습니다. 말의 계승 못지않게 말의 처음을 여는 일이 시인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만인보』는 막말로 말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다. 나의 만남은 전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공적인 것이다. 이 공공성이야말로 개인적인 망각과 방임으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삶 자체로서의 진실의 기념으로 그 일회성을 막아야 한다. 하잘것없는 만남 하나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만인보」 1권 ‘시인의 말’)


모국어 존속의 우려를 드러냈는데, 모국어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내 우려일 뿐 아니라 지구상의 우려입니다. 뛰어난 시어를 구사하는 시인들이 갖는 예감이라는 것은 거의 과학적일 정도로 정확하죠. 지금 지구상에 수많은 언어가 남았지만, 수많은 언어의 무덤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21세기가 다하면 백 년이죠. 절반 내지 90퍼센트가 소멸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이 어떻게 될까?’ ‘백 년 뒤의 시인이 모국어를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30권을 완간하면서, 5?18 이야기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만인보』를 마무리 지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내 렌즈, 안경을 배제하고, 이 자연의 현상을 보는 것처럼 무심히 작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자연이라는 것은 해방, 분단의 시작이었고, 6?25라는 전쟁에서 생사를 분에 넘치게 경험했습니다. 역사가 하나의 인간의 자연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의도적으로 마지막에 광주를 쓰려는 게 아니라 계절의 이동에 의해 써진 것이 광주입니다. 진혼은 의미가 없습니다. 죽은 자에게 진혼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내 상상 속에서 죽음을 삶으로 연장시키자. 그들의 죽음을 시인까지 그렇게 치부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삶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중단된 것이니 그 이후를 재생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세상에 단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주인공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글을 쓰셨습니다. 돌아가신 두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책 속에 담겨 있는데요.

『만인보』에서는 사람에 대해 차이를 두지 않는 게 내 윤리입니다. 나는 고독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치를 부여하는 곳에 대해서 고요하게 가치를 부정할 때도 있습니다. 동참하고 싶지 않은, 중얼거리고 싶은 시각도 있죠.”

이제 완간을 했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만인보』의 본질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끝이라는 말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노름꾼들이 5,000원 벌었다고 거기서 끝내지 않죠.(웃음) 그게 천박한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확장하고 싶죠. 모든 인간의 항성입니다. 시인도 거기에 예외일 수가 없죠. 지금 쓴 것도 끝이다 하면 끝이지만,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인지도 모르죠.”

특별이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습니까?

“증거 인멸을 해서,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좌중 웃음) 내가 쓴 것 같지도 않아요. 다시 읽을 때야 생각나더군요. 쓴 기억도 없어요.”

요즘 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 세계의 우울함이 만연한 것 같아요. 우리 내부가 규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한마디나 티끌 하나가 우주다,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문학에서는 내면보다 외부를 숭상하는 커다란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아라는 내면, 탐험하는 것, 요즘의 그런 것에 비해 난 다른 시를 쓰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십니까?

“잠자지는 않을 거예요.(웃음) 쓰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아직 못 쓴 사람이 있어서, 앞으로 계속 쓰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이승에서 본능이 작동하여 내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줘야 합니다. 백낙청 교수가 ‘5,000편 더 쓸 수도 있겠다’며 격려를 해 줬는데, 약속은 안 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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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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