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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현태준이 나누는 좋은 여행에 대한 긴 수다 - 『좋은 여행』

“좋든 싫든 여행 후에는 삶의 길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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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가든 가까운 곳을 가든 이우일은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그 즐거움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여행 작가는 아니지만 만화가 이우일은 꾸준하게 여행 책을 내왔다. 아내 선현경과 함께 쓴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를 시작으로,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그리고 이번에 지난 몇 년 동안의 여행 기록들을 모아 『좋은 여행』을 냈다.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 삶에서 여행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 연필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안하고 다정한 그림들. 화려하지도 별나지도 않은 평범한 여행의 기록이 오히려 더 따스하고 재미있게 읽힌다. 또, 그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가족들과 다시 만나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먼 곳을 가든 가까운 곳을 가든 이우일은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그 즐거움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프리랜서라서 팔자 편하게 여행을 다니고 책도 써서 돈도 버니 참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만화가라는 직업이 결코 여행하기 좋은 직업이 아니다. 회사원이 직장에 매여 있다면 만화가는 마감에 매여 있다. 결국 여행은 ‘선택의 문제’인 셈이다. 여행을 삶의 일부로 선택한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없고 돈이 없어도 여행을 떠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 이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쓴 책을 읽는다.


이우일과 현태준, 여행에 대해 수다를 떨다

『좋은 여행』을 쓴 만화가 이우일과 『좋은 여행』의 추천사를 쓴 만화가 현태준이 만나 여행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상수역 근처의 카페. 이우일이 먼저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현태준은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났다.

이우일(이하 ‘이’): 형, 추천사 책 읽고 쓴 거예요?

현태준(이하 ‘현’): 야, 무슨 소리야. 3일 동안 썼어. 힘들게 썼더니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이: 근데 문장이 왜 이렇게 길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 나잖아요.

현: 처음엔 더 길었어. 그런데 문장을 손 보고 내용을 좀 줄였더라고.


이 두 사람은 몇 년 전에 도쿄 여행을 같이 하면서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를 썼다. 그 책 표지에 얽힌 뒷이야기가 이우일의 『좋은 여행』에 나온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리무진 버스를 타는 곳에서 엇갈린 두 사람. 현태준이 먼저 리무진을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를 놓칠 수 없었던 이우일이 택시를 타고 뒤따랐다. 공항에서 이 일로 대판 언쟁을 한 두 사람은 3년 동안 서로 만나지 않았단다. 남자들은 여자들 보고 속이 좁네, 소심하네 그러지만 남자들도 속을 털어보면 크게 다를 것 없다.

현: 그건 네 입장에서만 쓴 거잖아. 나도 다음 내 책에서 그 이야기 쓸 거야. (웃음)

이: 『라쇼몽』인 거죠. 내가 본 게 다르고, 형이 본 게 다르고. 그 꼭지는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에 넣으려고 쓴 건데, 그때 편집자가 넣지 말자고 해서 뺐어요.

현: 근데 왜 이번 책에 들어갔냐?

이: 어, 이번 편집자는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해서요. 그런데 다들 그 이야기만 하네요.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방법’을 소개한 여행가이드 북에는 대략 어느 정도 시간과 금액이 걸린다는 글 밑에 ‘하지만 실제로 해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그런 희귀한 경험을 이우일은 현태준 덕분(?)에 하게 되었다. 여행의 좋은 점은 역시 그때는 이가 갈리도록 화가 나고 머리꼭지가 뱅뱅 돌 것 같았지만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공항에서 대판 싸운 두 사람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처럼 깔깔 웃었다.


지나고 나면 웃을 수 있어서 여행이 좋다


이: 택시를 타고 가는데 형이 탄 리무진이 보이는데, 어휴…… 배신감이 장난 아니었죠.

현: 아니 나도 일이 꼬여서 그렇게 됐다니까. 호텔 리무진 타는 곳으로 가는데, 갑자기 애들이 달려들면서 대뜸 내 짐을 리무진에 실어버리는 거야. 나보고 스즈끼 상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얼이 빠지는 거야. 둘러보니까 네가 없잖아. 그래서 안 되는 영어로 더듬더듬 짐을 빼달라고 부탁했는데 안 된다고 그러잖아. 타야 된다는 거야. 너무 당황해서 어어어 하다가 버스에 타버렸어. 그래도 네가 걱정돼서 나 먼저 갔다고 전해 달라고 부탁한 거야.

이: 나는 얼마나 황당했게. 나보고 미스터 리냐고 그래.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미스터 현은 벌써 떠났다는 거야. (웃음)

현: 내가 공항에 도착해 버스에 내리니까 네가 택시에서 내리더라고. 그거 보고 미안하기도 하고 좀 황당하기도 하고. (웃음)

이: 지금은 그럴 수도 있는 일 같지만 솔직히 그때 형, 사람 같이 안 보였어요.

현: 그래서 책도 반반으로 나눠서 냈잖아. 이우일 편, 현태준 편. 원래는 섞어서 쓰려고 했는데.

이: 차라리 그렇게 돼서 잘 됐죠. 아마 섞어서 했으면 서로 네가 해라, 형이 해, 그러면서 미루느라 일이 안 됐을 걸요. 중간에서 편집자가 고생했죠. 한 번 만날 걸 두 번 만나야 했으니까.

현: 야, 우리 다음엔 태국 같이 가자.

이: 안 가요. 또 싸우려고.

현: 아냐, 아냐. 태국에 가면 안 싸워. 도쿄는 너무 선택의 여지가 많아서 서로 같이 다니기 힘들지만 태국은 안 그래. 거긴 휴양지라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이: 그런데 단기 여행으로는 쓸 게 없지 않을까요?

현: 아무튼, 태국 같이 가자.

이: 몰라요.



여행기를 써야 하는 여행은 출장?

현: 우리에겐 여행 책 쓰는 건 본업이 아니잖아.

이: 그렇죠. 우린 마감이 기다리고 있는 만화가니까요. 여행기 쓰는 거 힘들어요. 갔다 와서도 힘들고, 여행하면서도 자료를 모아야 하니까. 다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일로 여행기를 쓰면 여행의 가장 좋은 점, 순수한 목적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여행이 아니라 출장 같아요. 앞으로는 안 할래요.

현: 내년에 스칸다나비아 여행기 쓰기로 한 건 어쩌고.

이: 아니, 그건 짧게 갔다 오고 힘도 별로 안 든다고 해서. (웃음)

현: 근데 넌 너무 여행을 학구적이고 문화적으로 하는 것 같아.

이: 저는 어딜 가면 꼭 거기서 요즘 무슨 전시를 하고 있나 알아보고 가는데, 형은 이상한 데만 찾아가.

현: 나는 동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요전에 도쿄 가서 주오센 근처에서만 놀았어. 거긴 정말 서민 동네더라. 물가도 싸고.

이: 형 덕분에 재미있는 동네도 많이 알았어요. 시모키타자와도 형이랑 처음 갔었죠?

현: 어. 그렇지. 근데 거긴 그냥 동넨데 왜 그렇게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니? 지금은 완전히 관광지야, 관광지.

이: 근데 사람들은 우리가 되게 비슷한 줄 알아요.

현: 전혀 아니지. 우린 일단 식성부터 다르잖아.

이: 맞아. 난 단 거 좋아하는데 형은 매운 거 좋아하고. 도쿄 여행할 때도 서로 다른 식당에 가서 밥 먹었잖아요. 형은 도박 좋아하고, 나는 도박이라면 질색하고.

현: 여자 취향도 서로 다르지.

이: 서로 재미있게 사는 건 비슷한데. 정말 이렇게 취향이 다른데 용케 여행을 같이 했구나 싶어요.



결혼하기 전에 꼭 긴 여행을 함께 떠나라

이우일

현: 꼭 결혼하기 전에 남자 친구, 여자 친구와 여행을 떠나보라고 하고 싶어.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처신을 잽싸게 하는 사람도 있고, 배신 때리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니까.

이: 맞아요. 애인이니까 다 해줄 것 같잖아요. 하늘의 별도 달도 따줄 것 같지만 자기 몸이 힘들면 안 그래요. 자기 몸 챙기기 바쁘니까. 의외로 돈 때문에 많이 싸워요.

현: 그때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는 거지. 한때 일본에서 신혼여행 간 부부가 공항 내리자 마자 이혼하는 ‘나리타 이혼’이라는 것도 있었잖아.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이혼하는 것보다 사귀다가 여행 갔다 와서 깨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뜬금없는 질문인데, 형은 혼인신고 얼마 있다 했어요?

현: 어, 언제 했더라.

이: 아직 안 한 거 아니야?

현: 아, 맞다. 신혼여행 갔다 와서 했어.

이: 빨리 했네. 요즘은 다들 늦게 한다고 하더라고. 나는 결혼식 당일 했어요. 구청 직원이 왜 이렇게 빨리 하냐고 놀라더라고. (웃음) 혼인신고 하고 좀 있다가 비행기 타고 신혼여행 갔어요.

현: 신혼 여행을 한 1년 갔다 왔나?

이: 1년은 안 됐어요. 저는 5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안 사고 신혼여행을 떠났어요. 그런데 여행은 역시 젊을 때 아무것도 모를 때 가야 해요. 지금 가라고 하면 못 갈 것 같아요.

현: 갔다 와서 힘들진 않았어?

이: 갔다 와서 겨우 방 한 칸 얻어서 살았어요. 일감도 다 떨어지고. 가기 전에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었는데, 돌아와서는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저랑 친한 친구는 제가 여행 떠났을 때 광고 회사를 차려서 지금 70억짜리 빌딩 주인이에요.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즈음. 그 시절이 정말 중요해요. 어려운 말로 하면 그때가 티핑 포인트죠. 그때 시간을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니까. 일에 투자하는 사람은 일로 보답을 받아서 70억 빌딩 주인이고, 저 같이 여행을 떠난 사람은 아직 갚지 못한 빚이 있고요. (웃음) 그런데 사람마다 인생에 두는 가치가 다르고, 그러면 당연히 20대를 어떻게 보내는 것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누구나 똑같이 지금 이 시기는 공부만 해, 돈 벌어, 아이를 키워, 그러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인 것 같아요. 요즘 느끼는 건데, 인생 계획을 너무 꼼꼼하게 세우면 여행을 못 가요. 그 계획을 다 이루어야 하니까 계획의 노예로 사는 거죠. 뭐, 그런 삶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자기 삶을 어떻게 살 건지는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넘어가기 전에 결정해 두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여행 전과 여행 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현태준

현: 넌 서른 살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나?

이: 아니요. 스물여덟. 전 사실 어렸을 땐 여행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늦바람이 든 거죠. 남들 정착할 나이에 난 여행을 떠났으니까.

현: 여행 다녀와서 뭐 크게 변한 게 있어?

이: 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요. 책이 확 안 나간다고 풀이 죽지 않고, 그냥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정도만 되면 만족해요. 전 지금 행복해요. 형은 행복해요?

현: 나야 뭐.

이: 형 책 잘 팔린다면서요.

현: 잘 팔리긴.

이: 여행을 많이 다니면 확실히 경제적으로 힘들어요.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뭐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도 경제적 문제가 그렇게 삶의 우선순위가 되진 않는 것 같아요. 어차피 큰 돈은 못 모을 테니까 조금 모이면 여행 다니면서 재미있게 살자. 그러고 살아요. 만화가가 그리 활동적인 직업은 못 되거든요. 거의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의외로 단순작업을 반복하는 일이니까. 구슬 꿰는 거나 인형 눈알 붙이는 것과 비슷해요. (웃음) 마감도 빡빡하고. 그러니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근데 형은 별로 안 그럴 것 같아. 장난감 수집도 하고,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 많이 하잖아요.

현: 오늘 아침에도 공항동에 있는 문방구 폐업한다고 해서 장난감 몇 가지 사 왔다. 근데 너는 너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야. 모든 만화가가 다 너 같이 하진 않아. 너 요새 몇 시간 정도 일하니?

이: 보통 하루에 12시간 정도.

현: 나는 딴 일이 많아서 그 정도까진 책상에 붙어 있진 않아. 요즘은 잡화, 빈티지 잡화 쫂 일을 하려고 준비 중이야.

이: 나한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건데, 형한테 여행은 뭐예요?

현: 나도 비슷해. 나한테 여행은 일탈이지. 여기서 안 해보는 걸 여행 가서 많이 하니까. 여행을 가면 말도 안 통하니까 오히려 내 생각을 많이 향하는 것 같아. 또 새로운 맛을 알게 되는 것도 즐겁고, 새로운 길을 걸어 다니는 것도 재미있고.

이: 저는 여행을 할수록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작년에 캄보니아를 다녀왔는데, 거기 사람들 정말 힘들게 살거든요. 그래서 출연료 받은 거 몽땅 기부했어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구호 활동이나 기부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어요. 한비야 선생님이 왜 그렇게 긴급구호 일에 열심인지, 부끄럽지만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돕고 싶어져요. 그리고 예전에는 못 느낀 것도 느껴지고요. 신혼여행 때 유럽 갔을 땐 인종차별 이런 거 못 느꼈거든요. 요즘에 가면 그 사람들 시선에서 차별이나 무시 같은 게 느껴져요. 돌아와 보면 우리도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이나 중국 동포들을 그런 눈으로 보는 게 느껴지고요. 해외에서 한국 사람들 하고 다니는 것 보면 부끄러울 때도 많아요. 저는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오히려 지금 여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도 역시 느끼지만요. 여행을 하기 전과 한 후는 결코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봐요. 좋든 싫든 여행 후에는 삶의 길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죠.

현: 야, 우리 다음엔 아프리카 가자.

이: 아깐 태국 같이 가자면서요.

현: 아니, 우리 둘이 아프리카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 거기 가면 둘이 안 싸우면서 재미있게 여행할 거 같아.

이: 아뇨. 형은 왠지 제가 맹수에게 쫓기면 혼자 도망갈 것 같아요.

현: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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