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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먹는 사람들 - 『엄마를 부탁해』

문어는 그저 삶아서 초장에 찍어서 먹는 게 최고 중의 최고지만, 지중해 요리에서 문어를 샐러드로 맛있게 먹는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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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찐 문어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썰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칼이 엇나갔다. (…) 뜨거운 문어 한 점을 썰어 그중 한점을 집어 초고추장을 찍어 엄마에게 내밀었다. (…) 그러면 맛이 덜해 엄마, 그냥 아, 해봐! 벌어진 엄마의 입속으로 찐 문어 한점을 밀어 넣었다. 너도 한점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찐 문어는 따뜻하고 물컹하고 부드러웠다. 아침부터 웬 문어를? 싶었으나 엄마와 너는 부엌에 선 채로 도마 위의 문어를 손으로 집어먹었다.

간혹 어머니의 고향인 경북 내륙의 Y시를 찾으면, 어머니는 두 가지 별미를 찾으셨다.

“고등어자반하고 문어 무 봤나? 무 봤다고? 맛있제?”

‘먹어’를 ‘무’라고 발음하는 게 어머니의 고향 사투리였다. 그렇지만 그냥 ‘무’는 아니었다. ‘먹다’의 범 경상도 사투리인 ‘묵다’에서 기역이 아슬아슬하게 탈락되어 강세가 아직은 남아 있는 ‘무~’였다.

시장에서 가장 반들반들하고, 돈이 도는 가게는 문어 가게였다. 이 고장 사람들은 잔치나 제사 때면 문어를 올려야 제대로 차렸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기막힌 맛을 이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거의 포목점처럼 큰 문어 가게는 오직 문어만 팔았다. 꽁치며 오징어 따위를 파는 작은 난전을 비웃듯, 문어 가게는 떡 벌어진 진열대가 호기롭기까지 했다. 이미 삶아진 문어가 갈색의 몸을 가지런히 누이고 있었는데, 옥타브 높은 이 지방 사투리로 흥정하는 소리가 장바닥 위로 웅웅거리며 날아다녔다.

어머니는 서울에서도 고향의 문어 가게와 거래를 트고 있었다. 잔치를 하거나 제사가 있으면 문어가 택배로 배달됐다. 서울에서도 문어를 살 수 있지 않느냐고 하자, 어머니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문어는 삶는 게 기술이제. 아무나 삶을 줄 아나? 턱도 없데이.”

정말 배달된 문어는 Y시에서 먹는 것처럼 기막힌 맛이었다. 껍질은 쫀득했고, 살은 이빨이 콱 박힐 때는 쫄깃하면서도 씹으면 보들보들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문어도 좋아야 하지만 삶는 기술이 뛰어나지 않으면 그런 맛을 낼 수 없다고 했다. 실제, 내가 간혹 들르는 서울의 문어 파는 술집들은 하나같이 이미 삶은 문어를 강원도든, 경상도든 산지로부터 받아 썼다. 직접 조리하지 않고, 이미 삶아진 것을 받는다고 자랑하는 희한한 식당도 다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이유가 있었던 거다.

“간고등어는 간잽이가 젤로 중요하고, 문어는 삶는 사람이 젤이다.”

어머니와 꽤 친한, 그 문어 가게 주인에게 물어봐야 이것도 ‘며느리도 안 가르쳐주는’ 비법이라고 할까. 문어마다 다리 굵기가 다 다른데도 어떤 문어든 씹으면 살살 녹았다. 나는 문어를 씹으면서 그 비법을 음미했다. 다리 안쪽의 신경섬유질을 둘러싼 부분은 살짝 덜 삶아서 쫀득하게 씹히고, 그 주변의 살은 어느 정도 푹 익힌 것처럼 이빨 사이도 쑥쑥 씹혔다. 말하자면, 스테이크의 미디엄 웰(medium-well)이나 스파게티의 알 덴테(al dente)에 해당하는 삶기라고나 할까. 스테이크도 웰던으로 익히면 고기가 질기듯이, 문어도 푹 익히면 질겨진다. 슬쩍 덜 삶아서 근조직은 부드러워지고, 탱탱한 문어의 맛은 살려주는 게 문어 삶기 선수의 특징인 셈이다.

색깔과 냄새로 익힘을 알 수 있다구?

스테이크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M처럼 스테이크를 기가 막히게 굽는 녀석도 없었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 내려앉았고, 일하면서도 포도주병을 셰프 몰래 홀짝여서인지 젊은 나이에 벌써 딸기코가 된 녀석의 몰골은 참 볼품없었다. 게다가 키는 얼마나 작은지 기성복인 주방복 바지가 두 번을 접어도 질질 끌렸다. 그렇지만 바쁠 때 그는 그릴 위에 땀을 뚝뚝 흘려서 숯을 꺼트려서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신공까지 발휘하면서 스테이크를 기막히게 구웠다. 그의 머리칼은 고기가 피워 올리는 기름 연기에 절어 마치 초강력 무스를 바른 것처럼 찐득했다.

스테이크는 공산품이 아니어서 크기가 다 제각각이고 두께도 다르다. 고기의 숙성이나 특징에 따라 수분과 지방 함유량이 달라 똑같이 구워도 굽기가 다 달라진다. 그걸 조절하는 건 결국 그릴 요리사의 감이다. 녀석에게는 기막힌 감이 있었다. 두어 해 전, 크리스마스이브의 모든 테이블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겹치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100석이 넘는 녀석의 식당에서 그가 하루 저녁에만 구워낸 스테이크가 3백 개가 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치의 오차도 틀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예 웰던으로 바싹 구워 달라던 어린 처녀 손님의 부탁 외에는 아무런 항의가 없을 만큼 녀석은 거의 완벽하게 고기를 구워냈다. 녀석에게 비법을 물러보면 그는 의뭉스럽고 졸린 눈을 껌뻑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고기야, 지가 알아서 궈지는 거쥬. 전 대충 궈유. 손가락으로 한 번 눌러보면 알잖유? 세프 님도 그렇지 않나유?”

그렇지. 그래. 그래도 너처럼 인간 온도계만 하겠느냐. 그는 ‘셰’ 발음이 안 되어, 늘 ‘세프’라고 부르는, 스테이크 굽기의 달인 인간 온도계였다. 굳이 고기 속에 온도계를 찔러 넣지 않아도 그는 손가락으로 고기 표면을 푸욱, 쑤셔 보고는 익힌 정도를 알아냈다.

스파게티 역시 스테이크처럼 감으로 익힘을 알게 된다. 흔히 타일 벽에 던져보라거나 잘라서 하얀 심을 확인하라고 하는데, 그건 집에서 심심풀이로 스파게티를 삶는 사람들의 여흥일 뿐이다.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그러고 있다가는 어디서 성질 고약한 군기반장의 이단옆차기가 날아오거나 아니면 아예 당신을 번쩍 들어서 오븐에 넣고 구워버릴지도 모르니까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스파게티를 척, 보고 색깔과 냄새로 알아내야 한다. 잘 익은 스파게티는 특유의 노란색이 살짝 엷어지면서 반들반들 윤이 난다. 그리고 구수한 좋은 밀가루 익는 냄새가 난다. 당신도 국수를 삶을 때나 라면을 삶을 때 색깔이나 모양, 냄새로 어느 정도 익힘을 알 수 있지 않던가.

지중해식 문어 삶기

문어는 스테이크보다 익히는 기술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해물은 조직이 연해서 타이밍을 놓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익어버리고 만다. 나는 지중해식 삶은 문어나 문어구이를 청담동에서 불티나게 팔았다. 그런데 워낙 삶거나 굽는 게 쉽지 않으니 내 주방의 조수인 한 친구는 꾀를 냈다. 문어가 얼추 익을 즈음,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다란 쇠꼬챙이로 문어 다리를 찔렀다.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으로 판단을 했다.

“쇠꼬챙이가 들어가다가 끝에서 신경섬유에 턱, 걸려요. 그러면 그게 딱 맞춤하게 익은 겁니다.”

조수는 호랑이 교관의 물음에 대답하는 신병처럼 말했다. 그래, 맞다. 하지만 지중해식 문어 삶기는 다르단다. 아, 물론 이탈리아 식당이라면 지중해식으로 삶아야지.

시칠리아의 요리 대부 쥬세페 바로네는 당연하게도 지중해 요리의 절대 달인이었다. 그는 문어를 사는 법부터 달랐다. 시장에 가면, 서로 안면이 있고 꽤 친한데도 문어 상인은 셰프들을 속이려 든다. 이미 죽은 문어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그렇다고 문어에게 산소호흡기로 연명치료를 하거나, 문어의 심장에 전기 충격을 할 수는 없는 일. 그저 손님이 보는 앞에서 문어의 다리를 세게 누른다. 그러면 아직 죽지 않은 문어 다리의 신경이 꿈틀, 하며 반응한다. 흠, 한국의 낙지 상인과 비슷한 수법이다. 그들은 죽은 낙지를 종종 ‘기절낙지’라고 판다. 세상에 낙지가 기절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낙지 세계에는 주가 폭락도, 반토막 펀드도 없을 테니까. 그저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아 신경이 살아 있으니, 상인이 쿡쿡 건드리면 꿈틀거리며 반응할 뿐인 걸 말이다.

상인이 속이려 들면 쥬세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투로 한방 엿을 먹이고는 장난스럽게 상인의 목을 문어다리처럼 헤드록을 걸어 조여 버린다. 그 장난스러운 협박은 꽤 효과적이어서 다음 방문에는 상인은 알아서 좌판 밑에 숨겨 놓은, 살아서 다리를 마구 휘젓는 문어를 내놓는다.

쥬세페는 문어를 사들이면, 죽기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일단 작업대에 대고 두어 번 내리친다. 문어 근육의 올이 풀리면서 꽤 부드러워진다. 그리고는 잘 씻어서 냉동실에 넣는다. 겨우 구한 싱싱한 문어를 굳이 냉동실에 왜 넣을까. 신선한 상태에서 냉동고에 넣으면 문어의 조직이 급격하게 파괴되면서 더욱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란다. 냉동실에서 하루 재운 후 꺼내서 해동하지 않은 채로 찬물에 넣어 아주 천천히 삶는다. 더욱 문어가 부드러워진다. 한국처럼 문어의 쫄깃한 맛 대신 지중해는 부드러운 것을 최고로 치기 때문에 그렇다. 이때 찬물에는 화이트와인 코르크를 두어 개 넣는다. 문어 부드럽게 삶기의 화룡점정인 것이다. 문어는 씻을 때부터 마지막 삶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최고로 부드러워진다. 씻을 때도 소금을 쓰지 않고 밀가루를 쓴다. 소금을 쓰면 질겨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이 과학적인지 검증해볼 능력은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요리사들은 문어가 더 부드러워지라고 굿을 하는 것일 게다. 문어를 내리치고, 코르크를 넣는 행위야말로 주술처럼 보이기 딱 좋지 않은가 말이다.

문어는 그저 삶아서 초장에 찍어서 먹는 게 최고 중의 최고지만, 지중해 요리에서 문어를 샐러드로 맛있게 먹는 법이 있다.

문어와 낙지의 차이

동양의 요리사라고 문어에게 마술을 걸지 않는 건 아니다. 일본인의 문어 사랑은 어지간해서, 굽거나 데친 문어를 즐긴다. 그런데 문어를 맛있고 부드럽게 삶기 위해서 무가 동원된다. 무가 단백질을 분해하고 소화를 돕는 기능이 있지만, 통째로 무를 문지른다고 문어가 부드워진다는 건 어느 정도 플라시보 효과가 있는 건 아닐까, 게다가 삶는 물에 식초를 넣는 건 또 뭔가. 식초는 단백질을 응고시키는데, 그렇다면 문어가 더 질겨지지는 않을까. 병 주고 약 주고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요리법은 이렇게 종종 마술처럼 신비로워서 나처럼 얼치기로 서양 요리를 배운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콩나물을 삶을 때 뚜껑을 열면 비려진다는 그 신비한 화학 실험이나 가마솥 밥이 더 맛있는 물리 실험에 이르면 나는 어머니가 꽤 존경스러워질 뿐이다.

문어는 꽤 영리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문어 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일화 한 토막을 가지고 있다. 에밀리오 마렌고라는 토스카나의 양조가가 있다. 유서 깊은 알렉산드리아대학의 화학 교수를 겸하는 그는 매우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의 와인은 한국에도 수입되고 있어, 그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 그는 저녁 식사를 했는데, 메뉴판을 보더니 문어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언젠가 스킨스쿠버로 바다 속에 들어갔던 그는 문어와 한판 결투를 벌였고, 그때 죽은 문어가 떠올라 문어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미 디스피아체’(안됐군요).”라고 그를 위로하고는 그렇다면 다른 요리를 준비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메뉴판을 보더니 뜻밖의 주문을 했다.

“아, 여기 낙지가 있군요. 낙지 요리를 한 접시 주세요.”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곧 문어와 낙지의 생태학적 차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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