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일제고사(!)다. 한번 풀어보자. 물론 거부해도 좋다. 파면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주관식, 아니다. 사지선다, 아니다. 둘 중 하나다. 그래도 쉽진 않을 것이다.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아니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 아니다.
3. 일상에서 경험하고 목격하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 정당한 권력이다 / 아니다.
세 개 모두, 어떤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을 낼 수 있다면, 당신에게 데이트 신청하겠다.(물론, 농담) 아마도 건강한 시민의식을 지닌 당신이라면, 한참 뜸을 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 문제에 별다른 망설임 없이 답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어째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른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입에 올렸다. 그러고선, 새삼 어떤 문구를 되새김질했다. 아예 노래를 만들어 불러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아니, 이건, 시민의식을 막 함양하기 시작할 무렵, 배웠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조항들 아닌가. 너무 당연한 것이라 여겨, 입 밖으로 거의 내지도 않던 조항. 아무리 복고가 대세라지만, 이건 뭐지?
여기저기 ‘복고’를 미끼로 한 마케팅이 작렬하는 시대라지만, 이건 이상하다. 7080콘서트는 그렇다 쳐도, 7080을 연상하게 만드는 공포정치까지 부활하는 기미라니. 더구나 경찰과 사법권력까지 공포정치와 맞물려, ‘공안정국’이라는 케케묵은 단어까지 끄집어낸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지만, 그 즈음을 돌아보면 바뀐 거라곤, 대통령 하나다. 즉, “5년 계약직 최고위 공무원에 불과”한 대통령 한 명 바뀌었을 뿐이다. 대통령. 지금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된 비정규직보다, 계약 기간이 약간 더 길고,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은 없는. 시간 지나면, ‘얄짤’ 없이 물러나야 하는. 물론 권력의 정점이라는 간극이 있긴 하지만.
허허.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정규직 한 명이 우리네 사람살이를 뒤흔들고 있는 이상한 상황. 물론 어떤 흔들림 없이 ‘지화자~ 니나노’를 외치는 무리도 분명, 있다. 헌법 따라 최고위 비정규직 한 명이 교체되면서 삭제했다고 여긴 공포정치가 스멀거리는 이 상황은 뭔가 비정상적이다. “헌법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정치권력이 헌법의 가치와 규범을 짓밟는 역사의 퇴행을 목격하고 있”(p.93)는 지금-여기의 현실. 그러니까, <넘버 3>의 조필(송강호)이 했던 그 말. “배배배배 배신이야,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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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돌베개) | |
이런 말 어떤가. ‘막장헌법시대.’(필자 주 - ‘막장’을 폄하하고자 하는 뜻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헌법’은 아무 죄, 없습니다. 유린당하고 있을 뿐.) 비정규직 통치자가 자신을 규정해 준 헌법을 마구잡이로 능멸하고 짓밟는 시대. 그런 시절, 유시민 전 장관, 전 국회의원이
『후불제 민주주의』(유시민 지음/돌베개 펴냄)를 들고 예의 ‘지식소매상’으로 귀환(!)했다. 지난 18대 총선의 ‘예정된’ 낙선을 만끽(?)하고서. 말하자면, 돌아온 탕아. 그리고 지난 24일 서울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예스24와 도서출판 돌베개 주최로 ‘돌아온 지식소매상 유시민, 대한민국 헌법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출간기념 강연회를 가졌다. 한때 이 지식소매상의 휴업으로 아쉬웠던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 여의도 정치보다 더 어울리는 자리라고 맞장구치는 이들도 있더라.
참, 위의 첫 번째 질문에 유시민 상장(소매상 사장!)의 답변은 이렇다.
“대한민국이 ‘아직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할부금을 다 치르지 않은 채 타고 다니는 승용차와 비슷하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p.59)아울러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늘 주권을 행사한다고 착각하거나, 그와 같은 착각을 하도록 강요당하면서 산다. 대한민국에는 국민에게서 나오지도 않았고 국민의 위임을 받지 않았으면서, 국민의 행복을 해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부당한 권력이 너무나 많고, 그 힘 또한 매우 강하다.”(p.60)동의 여부는 당신에게 달려있지만, 차치하고 길었던 넋두리를 접고, 이제는 그날 나눴던 이야기를 풀어보자.
돌아온 탕아, 아니 지식소매상 유시민유 상장의 첫 인사.
“책 내고 이런 행사는 처음이다. 몇 차례 대학에서 강연을 했지만, 이렇게 오붓한 공간에서 독자들과 시간을 갖는 것은 처음”이란다. 지난 2002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경제학 카페』 이후 처음으로 독자와 만나는 자리. 그래서 약간의 설렘도 품은 것 같고, 어색하기도 한 듯한 미묘한 표정도 읽힌다.
“쓸쓸하지만 행복하기도 한 정치적 유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p.243)던 그. 즉, 이웃이나 국가가 아닌 자신의 삶에 천착하는 ‘내적 망명’을 하고 있다는 그의 지금 인상은, 과거 독기가 어린 표정보다 한결 온화해 보였다. 그저 내 느낌이지만. 이번 강연에서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을 나누겠다.”고 한 그는, 이 책을 10여 년 전, 정치를 시작하기 전,
『경제학 카페』와 함께 기획을 했다. 그러나
『경제학 카페』 출간 직후, 현실 정치에 뛰어들면서 기획은 늦춰졌다. 출판사에 다른 저자를 구하라고 했으나,
“저자를 구하지 못한 탓”인지 지금에서야 숨통을 틔운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 책의 기획이 유효할 수 있었던 어떤 이유.
“책의 어떤 내용은 20~30년 전부터 고민하던 내용이다. 대학 입학을 1978년에 했는데, 당시 고민은 ‘시민혁명을 하지 못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까’였다. 1971년 전태일 열사가 가셨는데, 당시는 근로기준법이 있었음에도 사업주는 안 지키고, 정부는 그런 사업주를 잡지도 않았다. 외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를 잡아 가두는 정부였다. 법과 제도가 있음에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법을 지키려 하지 않는 시기가 1987년까지 지속됐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도 그렇다.”그는 알다시피,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절체절명으로 인식했던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민주주의가 많은 사람들의 피와 살로 상당 부분 실현됐다, 고 우리는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온전히 빚.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자유는 전적으로 그런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얻은 것이다.”(p.36)
그러나 지금-여기의 우리는 흔들리고 있다. 유 상장이 보는 지금은 이렇다.
“2~3년 전, 특히 작년 이후 신명이 줄고 열정이 사라지고 가릴 생각도 않는 욕망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다. 냉소가 짙은 사회가 되고 있다. 스포츠를 빼면 열정을 보일 만한 것이 없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나의 일례를 들자면 이런 것. 물론 나는 그도 전임 행정부와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에서 평범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利)를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부자 아빠’가 ‘좋은 아빠’이고, ‘재테크’가 성공하는 인생의 비결이며, 제일 좋은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인 시대가 되었다. ‘부자 되세요’와 ‘대박 나세요’가 최고 덕담으로 통한다.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춘추전국시대 왕이나 누릴 수 있었던 수준의 소비생활을 누리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인’이나 ‘의’가 아니라 ‘이’를 좇으며 살아간다.”(p.226) 『후불제 민주주의』 출생의 비밀(?)다시 기획된 책은, ‘1부 헌법의 당위’에 이어 2부에서 헌재의 판례를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행정 권력을 체험하면서 현재의 2부인 ‘권력의 실재’로 변경했다. 그는 책을 쓰면서 낙관적 전망을 얻었단다.
“우리의 내면에서는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열망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도 얻었다.” 애초 그가 염두에 둔 제목은 ‘헌법 애국주의’였다.
『양철북』을 쓴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썼다는 이말.
“그라스는 히틀러의 국가주의 범죄에 대한 악몽 때문에 애국주의라는 가치를 우파의 전유물로 방치한 것을 독일 좌파의 중대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자신은 독일연방공화국 헌법 정신 실현에 기여하는지 여부를 애국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하면서 우파의 국가주의적 애국주의 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헌법애국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pp.103~104)
그러다 쓴 글을 놓고 주변 사람들과 말을 나누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후불제’로 보고 쓰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카피라이터를 하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좋은 제목이고, 잘될 수 있다고 조언하기에, 써 놓고 보니 좋은 것 같더라.” 그래, 그까이 꺼, ‘후불제’ 낙찰. 그런데, 그 제목 변경에 결정적 계기를 준 사람에겐 ‘후불제’로 대가를 지불했을까, 라는 전혀 쓸데없는 의문이 잠깐.
그리하여, 책의 제목에 ‘후불제’라는 표현이 붙은 이유는 이렇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선언한 대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後拂制)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p.22) 지식인과 정치인은 따로국밥?유 상장의 정체성을 거칠게 분류하자면, ‘지식인’과 ‘정치인’으로 나눌 수 있다. 그는 이 두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개의 사람들은 정치인과 지식인이 한데 묶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식인은 거짓말을 못하고, 정치인은 거짓말로 먹고사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둘은 때론 한 사람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정체성이다. 시간적으로 겹쳐서 존재할 수 있다. 정치인에겐 성찰이 필요하다. 대상을 객관화시키는 지식인적 태도를 가져야 하고, 지식인도 성찰이 없으면 그 사람의 정치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는 이 대목에서 반성과 성찰을 끄집어냈다.
“나도 내 주장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무책임하지 않았나 반성해본다. 지금 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칼럼니스트들도 그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올 수밖에 없는 문제들도 있고, 지식인은 자기 작업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대통령?장관?국회의원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말하자면, 책은 그의 입법부와 행정부 경험 덕분에 살을 붙여나갈 수 있었던 셈이다. 좀더 입체적이고 실사구시를 따져서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책을 쓸 때도 이것을 살려나가야겠단다. 그는 책에서 이런 반성문을 내놓고 있었다.
“정당개혁운동가로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정말 비참한 실패를 겪었다. 이 실패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낀 분들에게 용서를 청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 더 능력 있는 분들이 나타나서 내가 실패했던 그 일을 보란 듯이 성공시키는 것을 보고 싶다. 그 성공에 나의 아주 작은 힘을 표나지 않게 보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p.319)한동안은 지식소매상으로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직장인보다 어려운 시기다. 그럼에도 그는 한동안 소매상 노릇을 할 거란다. 다음 학기까지 대학 강연이 있고, 출판 작업도 계속된다. 일이 끊이질 않아서 당장 자영업이 망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경제학 카페』의 업데이트가 있고 올해 안에 새로운 책도 낳을 계획이다.
『후불제 민주주의』가 권력?정치?민주주의?역사를 다뤘다면, 지식인과 지식인이 만든 지식을 담은 책, 책 그 자체 등을 다룬 책이 올해 또 탄생을 예고한 2명의 자식들. 오랫동안 생각해 놓은 아이템이란다. 그것은 곧, 자신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그의 답변.
“정치를 다시 한다면 정계 복귀가 아니고 새로운 정치 참여 형식이 될 것 같다. 6, 7년 전 갑자기 어느 시점에서 뛰어들어 정치 참여를 시작한 것처럼 어느 시점에서는 새롭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정치를 떠난다고 한 적도 없고,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어떤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내가 할 수 있는 공간에서 하고 있다. 말하자면 여의도에서 파주 출판단지로 공간을 옮겨 활동을 하고 있고, 국회 상임위원회장이나 본회의장이 아니라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2002년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국민들 속에서 일정한 요구가 있고 그 일이 매우 뜻이 있고 그런데 꼭 내가 해야만 하겠다는 사명감, 의무감을 느낀다면 어느 시점에선가 새로운 정치참여를 할 수 있다. 그때 가서 백지상태 위에서 필요한 판단을 하면 된다.”
그는 현실 정치에 한번 발을 디뎠다고 끝을 볼 때까지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스스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선택지가 2개 이상이니까.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것이다. 의미도 있고 사회적 생존을 위한 방편. 그런 한편으로 과거 동료 정치인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생각하면,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미안한 감정도 지닌다.
“정치가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분들 보시기엔 ‘싫으면 말고’의 태도로 비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만약 그가 다시 현실 정치에 뛰어들더라도, 우리는 이 다짐을 받아 놨다.
“시비지심 가득한 자아를 내면에 담은 채, 측은지심에 이끌려 겁도 없이 공직에 뛰어드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다시는 그런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지!”(p.226)주문에 대한 소매상의 처리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과 답. 모든 것을 담지 못하고 일부 Q&A만 담았음을 양해 바란다.
‘지향하는 가치와, 예전 이라크 파병 찬성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한 독자의 질문에 대해, 유 상장은
“보내기 싫었다. 명분 없는 전쟁이고, 인권을 유린하고 부도덕했으며 세계에 재앙을 안겨준 전쟁이었다. 세상에 좋은 전쟁은 없지만, 이라크전은 최악의 전쟁 중 하나였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전쟁광 부시와 관련한 비화를 소개하면서 답변을 이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넣는 것은 쉽지만, 좋은 쪽으로 평화를 오게 할 수는 없다. 긍정과 부정 사이의 비대칭이 있다. 부시 대통령의 심기를 잘 다루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건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2003년 첫 정상회담을 통해) 만나기 전, 아버지 부시를 부시 가문과 친한 기업인들이 나서서 모셔왔다. 강연도 하고 청와대에서 식사도 대접했다. 정부 당국자에게 듣기로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전용기 2대가 있었는데, 아버지 부시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그 가운데 좋은 전용기로 내줬다. 이 회장은 안 좋은 것을 타고. 그리고 기업인들이 돈을 모아 아버지 부시 재단에 10만 달러 가량을 기부하고. 이건 아들에게 얘기 좀 잘 해달라는 뜻이다. 아버지 부시는 돌아가서 ‘너하고 비슷한 놈이니 만나봐라’고 아들에게 얘기했다고 전해 들었다. 심기 관리를 위해 그만큼 노력했다는 것이다.”다시 돌아와, 이라크 파병에 대해, 그는 현실적?전략적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원칙을 훼손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 애호국이라는 헌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투병은 못 보내고 최소 규모의 비전투요원을 보내 부시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줬다. 원칙을 통해 ‘한반도 평화’라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외교국방이요, 이는 원칙에 부응하는 현실적?전략적 선택이었다. 사실 답이 없다. 각자의 양심과 판단에 달린 문제다.”
‘책에서 불임정당으로 표현한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불임’이라는 표현이 실례되는 표현이고 여성들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데, 민주당 얘기는 조심스럽다.”고 말을 꺼냈다.
“이 대통령의 난폭한 역주행 속도를 늦추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는 민주당을
“혼은 불확실하고 기는 없는” 집단으로 규정했다.
“10년 여당을 하면서 옛날의 야성이 다 없어져버렸다고 하는데 한나라당은 50년 여당 하고도 정권을 뺏기니까 야당 성향이 금방 나왔다. 그래서 그것은 근본 이유가 못 된다. 민주당을 대변하는 시대정신이 없다. 민주당 사람들에게 ‘당신의 정당이 대변하는 시대정신이 뭐냐’고 물어본다. 없다. 거대 여당에 대한 견제? 견제는 시대정신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여야가 공존하는 민주적 절차나 선거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있는 것이고 야당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이것이 확실하지 않아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지난 대선에서의 표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지더라도 어떤 시대정신을 붙들고 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해법이 안 보인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해결하지 못하면 사멸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멸하지 않을 조건도 있다고 유 상장은 덧붙였다.
“지방선거나 3년 후 총선에서는 지금보다 의석수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번보다 다음 선거에서 망할 것 같으면 혁신한다. 그러나 다? 선거에서 훨씬 조건이 좋아질 것이 100% 확실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혁신할 가능성이 없다.” ‘과연 지금 이 사회에 희망이 있는 것인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지’ 혼란스럽고 흔들린다는 한 독자의 절박한(!) 질문에, 그는
“당장 뭔가 잘될 것이라고 믿어서 그런 게 아니고, 해가 뜰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위로했다.
그리고 지난 시절의 암울함과 앞으로 닥칠 거대한 파고를 예고했다. 그리고 헤쳐나가는 방법까지.
“나는 지난 87년 선거가 제일 암울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6월 항쟁까지 했는데, 쿠데타 2인자에게 (정권을) 갖다 주는 국민이 어딨나. 그 밤의 절망에 비하면 지금은 별 게 아니다. 나도 낚이고 한나라당도 낚였다. (한나라당은) 누구든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다. 747(공약), 대운하, 택도 아닌 공약이지만 그것은 흐름이고 광풍이었다. 국민 대중의 소망과 판단이 그리로 간 거다. 또한 그걸 깰 수 있는 건 국민밖에 없다. 오바마가 탄생하기 위해 부시의 8년이 필요했다. 9?11, 이라크 전, 금융위기 등 이 모든 일들이 부시 8년 동안 일어났고, 그 바탕 위에 오바마가 나왔다. 그닥 대단한 일, 아니다. 8년 동안 그렇게 당하고. 그렇지만 역시 위대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1년은 조족지혈이다. 현재 지지율이 30% 미만이라고 우리 국민들이 판단을 바꾼 것은 아니다. 이 판단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아침이 오는 게 반갑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계몽한다. 깨우쳐 나간다. 암담해 보여도 객관적으로 보면 별거 아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에 비하면 장난감 총을 다루는 것이다. 앞으로 훨씬 많은 일이 일어나고 암담해 보이는 사회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뛰어다니지 말고. 질긴 놈이 이긴다. 가을께 즐거운 책을 낼 테니까.(웃음)”유 상장은 책에서도 그랬다. 일단 웅크린 뒤 도약하자고. 헌법이 능멸당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것이 다음 단계의 비약을 준비하는 일시적 웅크림이라고 본다. 웅크리는 시간이 길면, 그다음에 오는 도약은 그만큼 더 강해진다.”(p.93)
뭐니 해도 헌법. 오랫동안 묵혀놓고 있었다. 콜록. 먼지 가득에 곰팡이가 필 지경. 우리가 알고 있던 민주주의의 정체를 유 상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권력자의 선의에 크게 의존하는 취약한 민주주의다.”(p.60) 이유는 이렇다. 우리가 착각한 것이란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한국 민주주의는 최소한 절차적인 면에서는 다시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주제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쓸쓸한 산장의 여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헌법을 존중하고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지키려는 자세가 결여된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등장하자마자,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한눈에 드러났다.”(p.60)그러면 우리는 민주주의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비정규직 한 명 잘못 뽑았다고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정치제도라면. 차라리 부족사회로 사는 건 어떨까, 하는 물음도. 에이, 그게 아니라면 집 나간 ‘헌법이’와 ‘민주’를 되찾을 수 있는 캠페인이라도. 그러니까, 카드 너무 긁지 말자. 카드는 늘 후불이니까. 나중에 뒷감당 못한다. 아침을 기다리면서, 헌법이와 민주가 다시 돌아오는 그날이 오면, 이번엔 무조건, 선불. 내가 쏜다.
※ 편집자 주
본 기사는 당사의 편집 의도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