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작가를 만난 것은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2007년 가을 무렵,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단편들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던 그의 강연을 처음 들었고, 지난 5월 <2008 서울, 젊은 작가전>에서 그가 속한 그룹의 낭독회에 갔던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북살롱에서 정이현 작가를 다시 만나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우선 고백하자면, 정이현 작가의 책이라고는 『달콤한 나의 도시』, 달랑 한 권밖에 읽지 않았다. 드라마로 제작한 <달콤한 나의 도시>조차도 제대로 안 봤으니 사실 난 진정한 팬이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지난 강연회 때 정이현 작가를 처음 본 후 그의 미소와 작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에 폭 빠져 그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리라 다짐(!)은 했었고 아직도 내 책꽂이에 꽂힌 채, 어서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오늘의 거짓말』을 보며 ‘북살롱 가기 전에 꼭 읽어야지.’ 굳게 마음먹었지만, 아니 마땅히 읽었어야 했음에도 내 마음은 어째서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는 안도의 마음뿐이었는지…….
전날 밤새 많은 비가 내렸다. ‘혹시 작가의 강연회가 취소되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으로 잠까지 설쳤다. 당일에도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이러다가 독자들이 많이 안 오면 어떡하지?’ 하는 주최 측의 걱정까지 해주기에 이르렀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나의 쓸데없는 상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꽉 찬,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굴하지 않고 찾아온 열혈 팬들이 정이현 작가에게 있었던 거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만난 독자와 작가와의 소중한 인연!
상상마당 카페에 도착하니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한 회를 보여주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약속이 생겨 잘 챙겨보지도 못했는데 우연히도 내가 보았던 장면들이 나온다. ‘태오와 은수가 저녁을 먹는 중에 들이닥친 재인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들….’ 다시 봐도 태오와 은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미있고 부러웠다!
북살롱은 비 때문에 늦게 오는 독자들이 있어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다. 진행 과정은 정이현 작가의 강연과 작가와 독자가 작품의 일부분을 낭독하는 시간, 그리고 독자들의 질문을 받는 걸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회를 본 ‘문학과지성사’ 편집자의 소개로 정이현 작가가 등장했다. 언제나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나온 그는 “소중한 인연인 것 같아요. 독자를 뵙는 기회가 간간이 있는데 큰 장소에서 뵙는 것보다 이렇게 다들 눈을 맞출 수 있는 작은 장소에서 오순도순 오붓하게 뵙는 게 기억에 오래 남고 나중에도 더 즐거운 시간으로 추억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라는 인사말로 강연회를 시작했다.
정이현 작가는 그동안 강연회를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두 가지 버전으로 강연을 했단다. 하나는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으며, 소설가의 길이란 무엇인가?’ 하는 내용과 『오늘의 거짓말』을 펴내고 강연회 다닐 때 주로 하던 단편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젠 그 두 가지 모두 식상해졌고 새로운 강연 내용을 개발하겠노라 나름 고민하다가 왔다. 해서 오늘은 그동안 해오던 내용의 강연이 아니라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쓰게 된 과정과 연재 중 있었던 일, 소설들이 그에게 주는 의미를 말하고자 하니 편안하게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달콤한 나의 도시로 떠나게 된 배경
『달콤한 나의 도시』는 그에게 첫 장편소설이며 2002년에 등단하고 2003년 첫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펴낸 후 두 번째로 출간된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펴내고선 여느 신인작가와 다름없이 그 또한 장편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아직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한 권의 장편소설이 있지 않으면 소설가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내용의 소설을 첫 장편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는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찾으면 서점으로 달려가 관련 서적 수십 권을 사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두꺼운 스프링 노트를 장만하여 앞부분엔 책 내용을 정리하고 뒷부분엔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그렇게 모은 스프링 노트가 다섯 권이 넘지만 단 하나의 장편도 완성하진 못했다. 그런 와중에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지 않겠느냐는 제의였다. 처음엔 말을 못 알아들었단다. 그는 신인이었고 젊은 작가였기에 신문사에서 연재소설을 제의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한 회 정도 특집으로 싣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길 해보니 젊은 작가의, 젊은 감각으로 쓴 소설을 연재하겠다는 신문사 측의 기획이었다.
그 제의를 받고 아주 짧은 동안 그는 인생에서 그보다 큰 고민이 없을 정도로 고민했다. 다섯 권의 스프링 노트가 증명하듯이 ‘단 한 편의 장편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는데 신문이라는 커다란 지면에 덜컥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다. 또한 문학 독자가 많다고 해도 ‘문학’이라는 일부분이지만 신문 독자의 경우는 계층도 다르고 다양하다. “그들과 매일 같은 호흡으로 과연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식당이나 병원 등등 어디에서든 내 소설을 읽을 수 있을 텐데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망설이다가 결국 시작하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그 당시 제일 많이 듣던 질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2005년은 일본소설이 잘 팔리는 시기였으며 시장상황과는 다르게 담론들이 많았다. ‘일본소설 득세, 한국소설 약세’라는 다소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한국 젊은 작가들에게는 “너희 소설은 어떠니?”라는 질문보다 일본소설이 이렇게 득세하는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질문의 빈도가 훨씬 높았다. 한국에도 젊은 작가들이 많고 그들도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조차 구차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런 때, 그는 자신이 한국의 젊은 작가를 대표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90년대 이후 한국에도 젊은 작가가 있으며 그들도 다양한 형태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결정적인 순간에 “에이, 모르겠다. 그냥 할게요.” 하고 시작한 것이지만 결국 그 바람이 이 자리까지 오게 된 동기가 되었다.
어른 같지 않았던 30대 초반에 가졌던 의문들을 풀어보고 싶었다
연재를 하면서 알게 된 권신아 작가는 평소에도 좋아하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대학원 시절 학교 앞 카페에서 저녁 대신 땅콩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실 때 카페에 쌓여 있는 무가지였던 <페이퍼>를 자주 접했다. 그때 권신아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단다. “이 사람 대단하다. 나랑 동갑인데 그림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각인이 되었는지 신문사에서 어떤 일러스트레이터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권신아 작가를 지목했다. 그렇게 만난 권신아 작가와는 연재하는 내내 돈독한 사이로 지냈다. 서로에게 친숙해진 후 그들은 연재가 끝나기 전 펑크를 한번 내자고 모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담당 기자에게 펑크를 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았단다. 그때 담당기자가 말하기를 “내가 쓰면 된다. 하지만 주인공을 죽인다. 그러면 작가가 돌아와서 깨보니 꿈이었다고 시작할 것이다.”라고 하여 차마, 은수를 죽일 수 없었기에 결국은 펑크 한번 못 내고 연재를 마치고 말았다.
그는 작품을 쓸 때 디테일까지 모두 정하고 쓰진 않는다. 많은 분이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다가 제일 의아해하는 부분이 김영수의 비밀, 그 미스터리를 궁금해 하는데 ‘작가가 쓰다가 더 이상 쓰기 싫었나 보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나 보다.’라는 글을 읽고선 혼자 많이 웃었다. 그건 작가의 양심을 걸고 절대로 아니란다. 은수라는 인물을 만들었을 때 영수의 비밀도 같이 만들었다. 어떤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자기가 아닌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태오의 경우는 은수가 지나온 어떤 시절, 은수가 태오였던 적이 있는 시기 즉, 누구나 그런 시절을 겪어오고 지나왔지만 이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것을 태오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태오라는 인물은 소설에 대한 반응보다 '태오가 멋있다'는 반응이 더 직접적으로 온 케이스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태오보다는 영수가 더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은수 맞은편은 영수라고 생각한단다.
정이현 작가에겐 비록 완성하진 못했지만 역사 소설이나 실존 인물 등을 소재로 한 다섯 편의 소설이 들어 있는 스프링 노트가 있다. 책을 수십 권 사면서까지 장편소설의 소재를 찾아 헤매고 노트에 정리한 이유에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나온 후 그를 따라다닌 수식어로부터 도망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나왔을 때 여덟 편의 소설 속 주인공이 모두 여자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여자였는데 그 때문에 그를 두고 도시 여자들에 대해 주로 글을 쓰는 소설가라고 했단다. 그건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다. 다만 관심이 있고 몰두하던 주제가 도시이며 그가 도시여자였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였다. 그런데 책이 나온 후 마치 그가 현대여성의 삶을 ‘쿨’하게 표현하는 소설가이듯 규정짓는 목소리에 대해 반발심과 두려움이 많았다. 그는 다양한 이야깃거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심했으므로 다섯 권의 노트를 만들었고 또 버려진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나의 도시』는 다시, 도시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그가 도시 여자들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도시여성,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이곳, 여기, 지금, 이런 화두를 넘지 않고서는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길을 지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차근차근 밟고 통과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번 본격적으로 해부해보자고 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때 그는 30대 초반이라고 우기며 다니던 나이였고 개인적으로도 궁금해 하던 일이었다. 남들은 다들 그에게 어른이라고 말하는 데 그 스스로는 아직도 아이 같았으며, 멀쩡하게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나가는 친구들조차도 그가 보기엔 철들지 못한 아이처럼 보였다. “우린 왜 스무 살의 고민을 아직도 하면서 사는 건가? 내가 못나서 내 주변의 친구들마저 그렇게 보이는 건가? 고민이 많았어요. 언제쯤이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선 친구들도 고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땐 그런 의문을 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은수, 재인, 유희 또 유준이라는 인물들이 탄생하게 된 것 같아요.”
『달콤한 나의 도시』가 성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동시대, 그들만의 이야기를 다룬 비슷한 내용의 소설들을 잊을 만하면 펴내기 시작했다. 판에 박힌 듯 30대의 싱글 여자들과 그들이 겪는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로선 사실 꽤 지루하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정이현 작가의 작품인 『달콤한 나의 도시』가 성공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도 같다.
정이현 작가는 예의 미소 띤 얼굴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쉼 없이 『달콤한 나의 도시』의 탄생 배경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책의 비화(?)를 듣고 나니 다시 한 번 그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이번에 다시 읽는다면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21세기의 한국, 우리끼리 속닥거릴 수 있는 그런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이어진 작가와 독자의 낭독회, 정이현 작가는 『달콤한 나의 도시』 마지막 부분을, 독자 둘은 「삼풍백화점」의 일부분을 나누어 낭독했다. 그리고 독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독자들은 제목의 탄생 배경이나 등장인물들 중 누구와 제일 닮았다고 생각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왜 은수를 두 남자에게서 떼어 놓았는지 궁금해 했으며 또한 작품 속 인물들의 이름을 짓는 기준은 무엇이고 <섹스 앤 더 시티>와 비교하며 도시의 여성으로서 정이현 작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정이현 작가는 카카오 70%의 다크 초콜릿을 좋아한다. 단 것은 조금만 달아도 먹지를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래서 『달콤한 나의 도시』의 제목에 나오는 ‘달콤한’은 주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달콤한 나의 도시』라고 해서 달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으며 다디단 느낌이 아닌 다른 것을 연상해도 좋을 것 같단다. 내가 느끼는 달콤함을 상대방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 ‘달콤한‘이란 말은 반드시 ’나의‘라는 1인칭 소유격과 같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방영되면서부터는 사실 누구를 닮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만약 그가 은수를 닮았다고 말하면 많은 분들이 ‘그럼 네가 최강희랑 비슷하다는 이야기야?’라고 대꾸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세 명 안에 다 있다고 한다. 아니 사실은 그 안엔 태오도 있고, 안 이사도 있으며, 영수처럼 뭔가 감추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단다. 그런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들이 조합되어 들어있다. 세 명의 인물에 대한 느낌은 다 다른데 은수의 경우는 이젠 연락은 잘하지 않지만 한때는 친했던 친구 같은 캐릭터이고, 유희 같은 경우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는, 내 주변이나 그 누구의 주변에도 한 명쯤은 있을 그런 친구이다. 그런 점으로 인해 그는 유희라는 인물에게는 애정이 간다고 한다.
정이현 작가는 사랑에는 해피엔딩은커녕 엔딩이라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죽기 전까지는 늘 진행형으로 가는 게 인생이란다. 그래서 표면적으론 마지막 부분에서 그 누구하고도 이른바 '해피엔딩'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두 명 모두에게, 더 나아가서는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가능성이 있는 바다로 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30대의 사랑에 대해서 여전히 잘 모른다. 서른이 넘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며 다만 사랑에 관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테니 “그때 내가 실수하고 상처받으며 잘못한 것에 대해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지.” 하는 다짐을 할 수 있는 시기가 30대인 것 같다. 그래서 달라진 것은 없지만 20대와는 다르게 무모하지 않고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러워하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작품 속 인물들의 이름은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한다. 은수의 경우는 밥 먹다가 신 내린 무당처럼 ‘은수, 오은수구나!’ 하고 왔단다. 주인공의 경우 대부분을 그렇게 정하고 많은 단편들에는 이름 없이 이니셜로 주로 쓰고 있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이 부분에서 정이현 작가는 이름에 얽힌 비밀(?)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것은 진짜(!) 비밀이므로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사인을 받을 때도 절대로 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말씀!^^
대부분 사람들이 『달콤한 나의 도시』를 <섹스 앤 더 시티>와 비교하지만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싱글 여성들의 성과 화려한 삶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 드라마는 친구들과의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가, 누구와 더 친하고, 삐치고 화해하는 과정들, 하지만 그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여자 친구들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섹스 앤 더 시티>가 뉴욕이라는 도시를 떠나서는 말할 수 없듯이 『달콤한 나의 도시』 역시 2007년 한국이라는 사회가 없으면 생각할 수 없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메리는 빅과 결혼하는데 부모가 나오지 않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서른이 넘으면 부모의 걱정을 들어야 하고, 남자를 만난다 해도 상대방의 직업이나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부모의 반대까지 걱정해야 한다. 그런 한국적인 맥락,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을 속닥거릴 수 있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 『달콤한 나의 도시』이다. 그런 게 없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이현 작가는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박완서 선생처럼 오래도록 현역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존 치버의 『불릿 파크』이며, 시를 즐겨 읽는데 시집 중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을 좋아한다. 밤마다 잠이 안 올 때도 읽고, 글이 안 써질 때도 읽고 있다. 존 치버는 레이먼더 카버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보다도 더 냉혹하고 슬픈 글을 쓰는 작가이며. 쉼보르스카의 경우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좋다고 정평이 나 있으므로 꼭 그들의 작품을 만나보길 권했다. 한국 작가 중에선 문학공부 할 때 오정희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한국 작가 작품 중 열 편을 뽑으라고 하면 오정희 선생님의 작품 중 서너 편은 꼭 넣게 된다고 한다.
그는 당분간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맡고 있던 라디오 방송을 중단한다고 한다. 방송은 그에게 즐거운 추억을 갖게 해주었고 작가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금은 글을 써야 하기에 그만두지만 중년이 되어 연륜이 쌓이고 기회가 된다면 그때 다시 해보고 싶단다.
그의 작품 『달콤한 나의 도시』는 출간 이후 25만 부나 팔렸으며 드라마로 방영된 후에 추가로 판매되어 30만 부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지난해 11월에 일본판 소설이 나왔고 이를 토대로 드라마도 제작된다고 한다. 2009년엔 『달콤한 나의 도시』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독자들에게 선보인다고 하니 첫 장편소설로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는 그가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역시 작가로서의 정이현을 기억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조만간 계간지에 연재 중인 두 번째 장편 『HOUSE』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사진으로 보는 정이현의 향긋한 북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