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정혜윤 PD의 그들은?
한비야
단 하나의 기쁨만 있어도 전체를 기뻐할 줄 아는
한비야에게는 봄이 주는 건강함과도 같은 건강함이 있는데 내 생각엔 그런 건강함은 단 하나의 기쁨만 있다면 전체를 다 기뻐할 줄 아는 종류의 건강함이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길을 한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배웠으니 세상이 달라져 보였고 그의 마음이 마법에 걸린 듯 세상에 매혹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고향을 찾았으며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피안의 세계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처럼 무언인가를 추구함이 없이 이처럼 단순 소박하게 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이처럼 주변의 가까운 사물에 마음의 문을 연 채 이처럼 아무 불신감도 없이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제 그는 세상에 끼어들었으며 그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에서)
산서 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이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안도현, 『그리운 여우』, 「3월에서 4월 사이」 중에서)
그건 어느 꿈같은 날의 일이었을까? 그날 나는 차에 앉아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첫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그때 툭 뭔가 차를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쳐 한 구절을 큰소리로 읽었다.
나흘 낮은 재빠르게 밤 속으로 젖어들고 나흘 밤은 재빠르게 꿈결처럼 지나가오.
그때 다시 한 번 툭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차 지붕인지 트렁크인지를 쿵 치는 소리가 분명했다. 어느 불한당인지 노려보고 겁을 줄 작정으로 번개같이 뒤를 돌아다봤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히폴리타, 나는 칼로 그대에게 구애했고 상처를 입히면서 사랑을 얻었소. 하지만……
까지 읽는 척하다가 여우같이 날렵하게 몸을 휙 돌린 나의 눈에 들어온 범인은 놀랍게도…… 봄바람에 위풍당당 화살처럼 덤벼들 듯이, 덮칠 듯이 떨어지는 목련 잎들이었다. 목련 잎이 차의 지붕과 트렁크에 떨어지는 쿵 소리.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망설임 없는 노골적인 두드림. 나는 그해 그렇게, 목련의 육탄구애로 봄을 시작했다. 책을 덮고 목련나무 밑에서 떨어지는 목련 잎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주우면서, 들여다보면서. 이것이 나의 한여름밤의 꿈이 꽃잎에 물들게 된 사연이고 나의 몸이 봄에 바빠진 이유다. 이런 계절에 어떻게 생생해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계절에 어떻게 망설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꽃이 물어보면 어쩌지?
오늘 우리가 만날 한비야도 봄 같은 여자다.
6년여 세계일주의 마무리로 2,000리 우리 국토 종단을 계획하고, 3월 2일 해남군 땅끝 바닷가 자갈밭에 서서 하늘의 새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는 걸로 이야기와 걸음을 시작하는 한비야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때문일까? 나는 개나리 올라오고 농부들은 땅을 갈아엎는 봄이 되면 한비야가 생각이 난다. 그녀가 걷는 길에는 누런 흙밭, 푸른 보리싹의 물결, 강진의 동백, 구수한 흙냄새, 3월 20일에 처음 본 개나리, 청풍의 벚꽃, 개구리 울음소리가 있다.
종단길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든 한비야는 막무가내로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고 듣기 좋기도 하다면서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이 동시를 지은 선생님은 틀림없이 개구리 소리에 수많은 밤을 설치셨을 거야.”(『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중에서)라고 말하는 평범한 장면이 나는 참 따뜻하고, 마치 내가 그날 그녀의 옆 이부자리에 있었던 듯 친근하고 낯익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존재란 걸 일깨워줬단 점에서 그렇고, 그런 경우 중요한 소리란 다름 아닌 한밤에 듣던 개구리 소리, 새 소리 같은 건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줬기 때문에 그렇다. 개구리 소리에 관한 한 가장 천재적인 묘사를 한 사람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아닌가 싶다.
이 개구리들이야말로 그 옛날 술깨나 마시던 주객들과 잔치꾼들의 억센 혼들로서 그들은 아직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 없이 이 호수에서 돌림 노래 한가락을 멋들어지게 부르려는 것이다. 술잔은 계속해서 몇 순을 돌며 해가 아침 이슬을 걷을 때까지 잔치는 계속된다. 그때쯤 되면 최연장자만 빼고는 모두 취해서 쓰러져 버리고 그 혼자만이 남아 이따금씩 개굴 하고 울어보지만 응답해주는 자는 아무도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중에서)
배가 뽈록 튀어나오고 쉰 목소리를 내는 개구리가 취객이라고 생각하면 개구리가 잘 아는 동네 아저씨처럼 생각이 되고, 어느 저녁 기차에서 내려 논밭을 보며 고향으로 향하던 길이 생각나고, 기분 좋게 취한 아빠가 일찍 잠자리에 든 어두운 밤 별빛이 쏟아져 내리던 하늘 아래서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생각이 나고, 그 밤 끝에 “꼭 개구리 시끄러워.”라고 말했던 일들이 또렷이 생각난다. 난 개인적으로 소로우가 곤충과 새 소리를 묘사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즐겨 암송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엄마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즉, 우리 엄마는 캄캄한 밤에 연탄을 갈러 나갔다가 귀뚜라미를 잡아와 우리를 놀래주곤 했다.) 귀뚜라미 소리를 이야기해줄 때 참 좋다.
귀뚜라미의 계절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떠날 날이 없을 것이다. 그 소리를 얼마나 잘 알아듣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정신이 얼마나 고요하고 건강한가 알 수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중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연에 대한 찬미자는 인간에 대한 찬미자’라고 말했는데 소로우가 한비야를 만났더라면 무척 반가워하며 ‘너는 땅끝까지 나의 말을 전하라.’라고 어깨를 두드렸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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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 글쎄… 말 안 듣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하지 말란 것 많이 하고 가지 말란 길로 갔다가 길 잃어버리고. 그건 아마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은 앵두 따 먹던 거예요. 어른들이 앵두는 빨갛게 익어야 먹는다고 했는데 나는 파란 앵두의 맛도 궁금해서 파란 앵두를 따 먹었죠. 빨간색은 빨간색, 파란색은 파란색대로 다 맛이 있을 텐데 그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던 거예요. 또 어린 시절엔 빨간 앵두를 보면 나는 그 밑의 흙은 당연히 빨개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 빨간색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던 거죠. 빨간 나무 밑의 흙은 빨간색, 노란 나무 밑의 흙은 노란색이란 생각을 할 정도로 자연에 대한 유별난 호기심이 많았어요. 지금도 산에 가면 무척 궁금해요. 오늘도 산에 갔다 왔는데 봄순이 올라와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은 또 다르겠죠. 궁금해 죽겠어요.”
어린 시절의 그녀는 책보다는 자연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지만 세계부도엔 열광했다.
“제일 좋아했던 책, 당연히 세계부도죠. 언니들이 학교 수업에 가져간다고 하면 숨겨놓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어떤 지방에선 어떤 생산물이 나고 어떤 지방엔 어떤 나무가 살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산과 강에 대한 수치도 좋아했죠. 궁금하잖아요.”
조선일보 기자였던 아버지 덕택에 세계지도와 지구본을 좋아하게 되었고 『김찬삼 세계여행기』『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던 어린 시절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이 글귀를 연상시킨다.
자기 전에 지도책을 꺼낸다. 오늘 걸은 길을 표시하고 나서 버릇처럼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지도는 요술쟁이다. 매일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자꾸 나타나니 말이다. 나는 지도를 굉장히 좋아한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틈만 나면 들여다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내 최대의 장난감이자 길눈 어두운 나에게는 여행 필수품이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중에서)
하지만 그녀가 책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제공한다.
“선생님이 100권의 권장도서를 정해서 그 목록을 줬어요. 그걸 다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해줘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 그 목록이 참 좋았어요. 우리들이 읽기에 어렵지 않아서 그 목록 중 읽은 것을 지워가며 계속 읽어 나갔어요. 친구들과 경쟁하며 읽었어요. 『한국 현대시 산책』은 아예 외워가며 읽었고요. 친구들하고 수다 떨고 노는 와중에도 책에 대한 이야기는 꼭 있었어요. ‘어머, 어머, 그 여자 너무 불쌍하지 않니? 그래도 멋지지 않니? 너라면 어떻게 했겠니? 나라면 비극적이어도 그랬을 거야.’ 등등등의 이야기, 나는 그야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능이 있던 아이였어요.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면 다섯 시간 이야기하고 책 한 권을 읽으면 그 책으로 연극을 할 수 있는 아이였어요. 라면 하나씩 들고 와서 친구들과 끓여 먹어가며 그렇게 밤새 놀았죠. 내가 이야길 시작하면 곧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건 국내 국외 막론. 나는 엔터테이너였죠. 그런데 고등학교 때 시작된 100권 읽기는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 ‘100권의 책을 읽자’는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어요. 해외에 반년씩 나가 있을 때라도 꼭 지켜요.”
그녀의 속사포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녀의 책에 묘사된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한다.
모스크바에서 베이징까지 7박 8일 기차를 타려면 먹을 것도 필요하지만 책이 필요하다. 장기 여행자를 위한 상대로 다 읽은 책을 바꾸고 중고 책방에 들러 다섯 권을 구입했다. 『달라이 라마 자서전:유배된 자유를 넘어서』『문답식 이슬람교리』『할리우드의 남편들』『가시나무새』, 폴 소로우의 『중국 여행기』.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편 중에서)
매일 여장을 꾸리는 나그네에게도 나름대로 문화생활이란 것이 있다. 내게는 책 읽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 번 집을 떠나면 일 년 이상, 그것도 오지로만 다니는데 평소 취향대로 읽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낭족 숙소에는 읽고 난 책을 바꾸어 보자는 메모가 늘 붙어있고 방콕이나 이스탄불, 카트만두 등에는 배낭족을 상대하는 헌책방들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어 여행 중에도 읽을거리는 구할 수 있다. 여행 중의 독서의 질은 순전히 운에 달렸다. 진짜 보물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나는 경우다. 내게는 장영의 『와일드 스완스』(우리말로 『대륙의 딸』로 번역되었다)가 그랬다. 미얀마의 어느 허름한 숙소에서 한 여행자가 다 읽은 책을 바꿔보자며 그 책을 내밀었을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왜가리 소리가 터져나왔다. 습도 110퍼센트, 영상 41도의 불한증막 같은 숙소에서 그야말로 한 쪽 한 쪽 줄어드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600쪽도 넘는 책을 밤낮없이 읽었다. 밤 열 시면 전기가 나가서 촛불을 켜고 보느라 불꽃으로 몰려드는 수십 가지의 물것에 내 피를 기꺼이 헌혈하면서.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중에서)
이번에 가방에 넣은 물건은 20만분의 1 지도, 일기장, 카메라, 휴대폰과 충전기, 갈아입을 옷 한 벌, 양말 두 켤례, 속옷, 비상약, 미니 부탄가스 버너와 조그만 주전자, 컵, 비옷, 자외선 차단제, 베이비파우더 등 화장품, 수건 하나, 세면도구, 180센티미터*100센티미터 되는 기저귀 감으로 만든 간이침대, 감잎차, 가스총과 호루라기, 책 한 권, 배낭 방수 커버, 대형 비닐봉지, 우산, 손전등이 전부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중에서)
예전에 그녀의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여행자가 배낭에 넣었다는 단 한 권의 책, 그게 뭘까 하는 호기심이 너무나 강렬해서 동생을 낭가파르바트 산에서 잃은 라이홀트 메스너가 ‘잊을 수 없는 아우를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쓴 책 『벌거벗은 산』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 까지 했다.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눈이 텐트의 지붕 위에 흘러내렸다. 캠프 2에는 우리 셋뿐이다. 오늘 아침 일찍 귄터와 나는 로프와 하켄을 빌란트 빙하의 하단부 지점에 가져다 놓았다. 정오경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바람이 힘껏 텐트를 잡아당기고 있다. 바깥엔 눈이 벌써 15센티미터나 쌓였다고 베르너가 말한다. 나는 책(러시아 소설)을 읽고 차를 끓이고 잠을 잤다. 내일도 눈이 계속 내린다면 식량은 바닥날 것이다. (라인홀트 메스너, 『벌거벗은 산』 중에서)
조난 지경에 처한 눈보라 치는 밤의 텐트 속에서 읽었다던 러시아 책, 그게 궁금해서 나 혼자 가만히 산에서 읽을 만한 러시아 소설 후보작을 꼽아보기도 했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죄와 벌』『전쟁과 평화』『안나 까레니나』. 이 책들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하기 죄송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고통이 너무 크고 진실하게 표현되어서 읽는 동안 자기 문제를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배낭여행자인 적은 없었지만 여행 갈 때마다 운동화를 빼더라도 책만은 반드시 챙겨 간다. 이스탄불 갈 때는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이 대단히 성공적인 선택이었고, 피렌체에 갈 때는 『전망 좋은 방』이 최고의 선택이고, 토리노에 갈 땐 『거대한 고독』이 좋다. 교토에 갈 땐 『금각사』를, 홋카이도에 갈 땐 『설국』을, 파리에 갈 땐 발자크의 책을, 노르망디 지역에 갈 땐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비엔나에 갈 땐 『세기말의 비엔나』, 스페인에 갈 땐 당연히 『돈키호테』를, 뉴욕에 갈 땐 폴 오스터의 책 중 한 권을, 상하이에 갈 땐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을, 베이징에 갈 땐 『맨얼굴의 중국사』나 박한제 교수의 책을 권하고 싶다. (이런 책의 목록을 만드는 게 나의 취미생활이다.)
한비야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권을 처음 내놓으며 우리 앞에 등장하기까지 그녀에게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심장마비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일, 그로 인한 급작스러운 경제적 궁핍,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홍길동이란 별명을 얻은 일, 대학 입시 실패, 성당 앞에서 귤을 팔며 소녀에겐 불가능할 정도로 다부진 용기를 내던 일, 잡지 뒤에 부록으로 붙는 하이틴 문고 같은 연애소설을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일, 클래식 다방에서 디제이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교 졸업 후 몇 년 만에 대학입시 시험을 다시 치른 일, 유타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을 전공할 수 있도록 개인 장학금을 주며 도와준 양부모를 만난 일, 취업 후 승진설이 돌 무렵 오히려 사표를 내고 마침내 길을 나선 일까지 (어쨌든 그 와중에도 백 권의 책은 읽고 있었다. 해마다.) 숨 가쁘게 흘러갔다. 그러고 나서 나온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은 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겐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놀라웠던 것은 어휘의 생생함이었는데 그건 생생하고 완전한 체험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녀의 글에는 생기 없는 단어가 없어서 입체문자를 보는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글이 툭 튀어나와서 걸어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녀가 ‘멧돼지 같은 놈’이라거나. ‘이런 산적 같은 놈’이란 표현을 써대도 하나도 과하지 않고 ‘저런 쳐 죽일 놈’ 같은 단어를 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녀의 글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고 영향을 받고 시대의 패러다임까지 되기도 했고 내가 사우나에서 소개해서 동네 아줌마들이 벌거벗은 몸으로도 부러워했던 한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킬리만자로 등반은 내게 단순히 아프리카 최고봉을 올랐다는 성취감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사람은 빨리빨리 해야 할 것과 천천히 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거다.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 못지않게 ‘빨리빨리’를 외쳐온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엇이든 조금씩 늦게 시작했다. 대학도 늦게 다니고 첫 직장에도 늦게 들어가고 결혼도 이미 늦었고. 이런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져 무엇이든 속전속결, 빨리빨리 해치우려고 해왔다. 그런데 내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하면서 평소처럼 ‘남보다 빨리, 남보다 먼저’를 외쳤다면 나는 아마 정상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얼마만큼 왔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힘을 제대로 축적하면서 알맞은 속도로 가고 있는가, 라는 소중하고도 고마운 자각을 하게 되었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중에서)
여행자로서의 그녀와 독서가로서의 그녀는 어떤 사이였을까?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엔 번역이 되지 않았지만 이미 유명세를 치르는 책을 먼저 알게 되기도 하죠. 『체 게바라 평전』이 그랬던 것 같고 필립 얀시의 『내 영혼의 스승들』이 그랬어요. 배낭여행지에 가서 책을 바꿔 읽어야 하는데 안 팔려서 혼난 책도 있었지요. 『소피의 세계』가 그랬죠.(웃음) 반면에 『가시나무새』 같은 연애소설은 잘 팔리고, 마이클 크라이튼 책도 아주 인기 좋죠. 그리고 특별한 곳에 가서 읽어야지 그 의미가 더 생생해지는 책도 있어요. 아프리카에 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넬슨 만델라를 존경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제대로 한번 읽어보자.’ 하고 『넬슨 만델라 평전』을 읽었는데 우리가 만델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은 한마디로 그와 같은 시대에 우리가 산다는 게 영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만델라의 위대한 점은 용서와 화해라는게 느껴졌어요. 여행지에서 읽은 책은 대체로 그 나라에 두고 와서 한비야가 다녀간 곳에는 도서관이 하나씩 생긴다는 말이 있어요. 만약에 여행지에서 책을 충분히 구할 수 없다면 나는 성경을 읽어요. 성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나랑 좀 닮았다고도 생각되는 바로 그분, 사도 바울이에요.”
필립 얀시의 『내 영혼의 스승들』은 나하고도 묘한 인연이 있는 책이라 한 주 동안에 두 사람이나 그 책을 내게 권해서 결국 읽게 된 책이었다. 필립 얀시가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거나 만난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인데 나는 그가 소설가이면서 목사인 프레드릭 부흐너에 대해 쓴 부분이 제일 좋았다.
이건 필립 얀시의 말.
부흐너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는 통로는 우리 각자의 일상생활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기적과 초자연적인 무엇을 찾는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한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는 일, 깨는 일, 무엇보다 꿈꾸는 일, 기억하는 것, 망각하는 것,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일, 눈물 짓게 하는 일,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 우울하게 하는 일. 부흐너는 불을 끄고 잠을 청하면서 보다 친근한 생활의 뉴스를 되새겨 보라고 조언한다. 그때야말로 그날의 사건들―답장 없는 편지, 전화통화, 목소리의 어조, 우연한 만남, 뜻밖의 감동―이 또 다른 내면의 의미를 넌지시 내비치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건 부흐너 본인의 말.
믿음은 향수다. 믿음은 감동이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지향점이 있는 동사이며 확실한 무엇이 아니라 직감이다. 믿음은 기다림이다. 믿음은 시공간을 오가는 여정이다. 삶이란 초구에 맞은 당구공들이 온갖 방향으로 튀어나가 제멋대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소설에 줄거리가 있는 것처럼 삶에도 줄거리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사건들이 지향하는 바가 있을 거라는 느낌 말이다.
『넬슨 만델라 평전』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남아공에 생기고 우리나라에도 과거사 청산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생길 무렵 남아공의 그것이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논의가 한창일 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의도의 진지함과는 달리 읽다가 몇 번쯤 하도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반역죄로 잡힌 젊은 만델라가 동료들과 함께 벌거벗겨진 채 벽을 보고 서 있다가 옆 사람들의 몸을 훔쳐보고는 멋진 몸이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그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하는 장면. (만델라 자신은 몸에 자신이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복서였다.) 또 한 번은 아예 감옥 생활을 할 때 감옥 벽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오려낸, 부족 의상을 입은 아프리카 여인의 사진을 붙여놓고는 ‘그 사진의 용도는 아내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라고 회고하는 장면.
그러나 역시 가슴이 뭉클한 장면이 많았는데 쉰 살에 생애 처음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 의심 많은 형무소 당국이 제목에 ‘붉은’이란 단어가 나오는 책은 우선적으로 배제해 『빨간 모자』가 금서 목록에 올라와 있던 이야기. 쉰 살 넘어 『전쟁과 평화』를 처음 읽고 루투조프 장군이 자기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속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을 물리칠 수 있단 대목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자신도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겠다고 결심한 장면, 그리고 옮겨 쓰고 싶은 애수 어린 이 장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아프리카 아이가 학교에 보내져 황홀한 맘으로 셰익스피어를 발견하고 특히 태풍에 매료된다. 선생님은 이 작품을 어느 정도 이해한 학생들이 학년말 파티에서 상연하도록 했고 소년은 프로스페로 역을 맡게 되었다. 자신의 초라한 오두막으로 돌아온 아이는 어머니에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대답한다. “너는 빛 속에 서려고 애쓰는구나. 하지만 우리는 그 밖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야. 거긴 우리 자리가 아니란다. 조물주께서 우리를 어둠 속에 살도록 만드셨단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의 섬을 황폐화하려는 야만적인 칼리반을 무찌른 마법의 왕자이다. 민족을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사람이 바로 이 프로스페로이다. (자크 랑, 『넬슨 만델라 평전』 중에서)
만델라는 남아공의 프로스페로로 해석된다. 젊은 날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단 무엇에 대항하여 투쟁하는가를 더 잘고 있었다던 만델라는 훗날 ‘적과 평화를 맺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일해야 하며 협력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다. 그래서 자신을 27년 동안 가둔 장본인인 옛 대통령을 찾아가거나 아파르트헤이트 창안자의 미망인이 사는 저택에 찾아가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 행동으로 그가 얻은 것은 바로 ‘나는 세상의 주인인 동시에 나의 주인이 되었다. 그 옛날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처럼’이란 자각이었다. 그래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재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적 고백처럼 운영된다. 훗날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그의 연설은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지 않는 세상에서 인류 모두가 천국의 아이들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였다. 천국의 아이들. 이 말처럼, 가슴부터 시작해서 머리를 움직이게 하는 말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사도 바울. 사유와 행동을 통일시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전략과 전술인 사랑. 그것을 사도 바울처럼 우리에게 소개한 인물이 있었던가? 사랑이 노력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단 것을 사도 바울처럼 우리에게 소개한 인물이 또 누가 있을까?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서 5장 2절~5절)라고 말함으로써 희망은 극복된 시련이지 우리가 희망의 이름을 걸고 시련을 이겨내는 어떤 것이 아니란 걸 알려준 사람이 또 누가 있었을까?
“내 취미는 책을 읽고 쓰고 권하는 거예요. 한 해에 100권의 책을 읽는 건 지켜오고 있고 어쩌다 보니 쓰는 사람이 되었고 하지만 그것만큼 혹은 그것보다도 중요한 건 책을 잘 권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칼럼을 통해 일본의 야생사진 작가인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를 권한 적이 있는데 그 책이 칼럼 나간 다음에 일시 품절될 정도로 잘 팔려서 기분이 좋았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최근에 읽은 책 다섯 권만 권해 보라고 리스트를 받아요. 그리고 메모를 해요. 이야기 도중에 나온 책도 꼭 메모했다가 사서 읽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렇게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가고 나도 이야기를 해주죠. 평생 좋아한 사람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책, 법정의 『무소유』 그리고 시 모음집이에요. 시는 큰소리로 낭송하길 권해요. 제가 말이 빨라서 발음이 부정확했는데 큰소리로 시를 읽으면서 발음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그래서 말이 빨라도 사람들이 제 이야길 다 알아들어요. 저는 화장실 갈 때 시를 외워요. 이를테면 신경림 시인이 엮은 『내 인생의 첫 떨림, 처음처럼』도 아주 좋아요. 요새 좋아하는 책은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에요. 내 후배가 ‘이 책을 보면 비야 언니가 생각나.’ 하면서 알려준 책인데 읽어보니 ‘내가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구나!’ 할 만큼 내 행동이 많이 들어 있었어요.”
나도 한비야 덕분에 『행복의 정복』을 그날 밤 당장 읽었는데 열정이 행복을 만든다는 11장 중 “이런 사람들은 지진을 만나도 지식이 늘어났다며 즐거워한다.”라는 문장을 읽고는 바로 이 문장이야말로 한비야 평생의 힘인 호기심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말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도처에 책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넘쳐나는데, 이를테면 길을 걷다가 꽃이나 나무를 보고는 새 도감, 식물도감, 나무 도감을 사야겠다고 결심하거나, 하룻밤 묵어 간 집에서 서비스 차원으로 발가락으로 책장 넘기는 장기를 보여주거나,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친구를 가족보다도 더 자주 만났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난 책을 읽지 않았으면 아주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봐요. 나에게 어떤 좋은 면이 있다면, 이만큼이라도 된 건 다 책 덕택이에요.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 될 수 있었는데 책이 도와준 거죠. 하루는 요정 이야기로, 하루는 사랑 이야기로, 하루는 혁명 이야기로… 매일 밤 남의 이야길 듣게 되는 거죠.”
그녀가 좋아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신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특정한 대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의 대상들이 도처에서 서로 아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그림으로 환원되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의 주어 ‘산에 오르는 이유’를 ‘책을 읽는 이유’란 말로 바꿔도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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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초반에 나는 한비야를 봄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소로우의 표현을 좀 바꿔서 인용하자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듣는 사람들은 젊어지고 자연은 봄처럼 화창해진다. 한비야에게는 봄이 주는 건강함과도 같은 건강함이 있는데 내 생각엔 그런 건강함은 단 하나의 기쁨만 있다면 전체를 다 기뻐할 줄 아는 종류의 건강함이다.
이제 이야기는 딱 두 개 남았다. 하나는 나 역시 한비야에게 리스트를 제공했단 것,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흘러 그녀의 첫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다시 읽었을 때 감동적인 장면은 따로 숨어 있었단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의 난민은 2,700만 명, 난민을 돕는 방법은 많다. 내 경우에는 국제홍보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일을 할 수 있겠다. 난민을 받지 않으려는 이웃나라의 지도자들과 국민을 설득하는 일을 할 수 있겠고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사람과 직접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일도 해줄 수 있겠다. 자세한 방법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이것이 내 직업이 되든지 순수한 봉사활동이 되든지, 나는 앞으로 난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중에서)
그녀는 꼭 그렇게 했다. 절실한 생각만이 적절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그녀는 글로도 삶으로도 증명했다.
나의 리스트는 『헤럴드 블룸 클래식』과 『세계문학의 천재들』 그리고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시와 나무 이야기가 있는 책 『나무가 말하였네』였다. 우리는 어쩌다 이팝나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팝나무라 하면 어느 해 봄 남해를 찾아갔다가 이팝나무를 보고 손택수 시인의 시 「어부림」을 소개한 고규홍이 생각난다.
딴은 꽃가루 날리고 꽃봉오리 터지는 날
물고기들이라고 뭍으로
꽃놀이 오지 말란 법 없겠지
남해는 나무 그늘로 물고기를 낚는다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짙은 그늘 물위에 드리우고
그물을 끌어당기듯 바다로 휜 우듬지에 잔뜩 힘을 주면
푸조나무 이팝나무 꽃이 때맞춰 떨어져내린다
꽃냄새에 취한 물고기들 영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말채나무, 박쥐나무꽃도 덩달아 떨어져내린다
(고규홍, 『나무가 말하였네』 중에서)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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