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삼국지를 원본으로 한 『만화 삼국지』(애니북스)가 3부작 15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이 러브』『까꿍』 등으로 90년대 100만 부를 돌파한 인기 만화가 이충호가 만화로 충실하게 옮긴 『만화 삼국지』의 마침표를 찍은 날, 독자와 함께하는 완간 기념 잔치가 파주 헤이리에서 있었다.
『만화 삼국지』 4년 만에 완간되다
유비, 관우, 장비를 비롯해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 그려진 그림 깃발 앞에서 원작자 황석영 선생과 만화가 이충호, 각색을 맡은 김태관을 만나 삼국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5년에 첫 권을 발간해 2007년에 15권으로 마무리 짓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삼국지』의 매력에 빠져 오히려 즐겁게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 한자리에 모인 『만화 삼국지』의 주인공들(왼쪽부터 이충호, 황석영, 김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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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선생은 옆자리에 않은 이충호 씨를 보고 대뜸
“고생했나 보다. 얼굴이 엄청 상했다. 살도 빠졌고”라고 말했다. 이충호 선생은 웃으면서
“작품 하면서 연애하느라 바빠서 그렇다”고 대답해 좌중을 웃겼다.
“그 바쁜 와중에 연애를 하다니 재주도 좋다”는 황석영 선생의 말에 이충호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만화 그리는 것과 연애하는 것이거든요.(웃음)”
4년 가까이
『만화 삼국지』에 매달려 있느라 작가는 초죽음이었다. 원작만큼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컬러 작업도 힘들었어요. 제가 원래 대작을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이 작품을 하면서 정말 지쳤어요.”
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삼국지
서양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라면 동양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단연
『삼국지』다.
『삼국지』에 대한 수많은 경구가 그를 증명하고 최첨단 시대에 수없이 번역되고 각색되며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삼국지』가 출간되는 것을 봐도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삼국지』는 단지 문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삶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것이 녹아 있는 동양 문화의 거대한 용광로다.
원본에 충실하고자 했던 황석영의
『삼국지』처럼
『만화 삼국지』는 새로움보다 충실함을 택했다. 그런 충실함을 인정받아
『만화 삼국지』는
『삼국지』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태국에는 판권이 이미 팔린 상태.
『삼국지』의 다채로운 인물 군상과 이야기를 제대캷 재현해 낸 그림과 정확한 고증이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만화 특유의 다이내믹한 표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각색가 김태관 씨는 원작이 워낙 탄탄해서 각색 작업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굉장히 튼튼했고, 이름, 지명이 정확해서 작업하기가 무척 편했어요.” 이충호 씨도 비슷한 대답을 했다.
“원작에 누가 되지 않도록 굉장히 꼼꼼하게 작업했습니다. 그래서 마감을 너무 넘겨서 출판사 분들에게 죄송해요.” 그 말에 황석영 선생이
“나는 하도 늦어서 책이 나오는지도 몰랐다”며 농담을 했다.
황석영 선생은 특히
『삼국지』의 만화화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선생이 처음
『삼국지』를 만화로 접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처음 『삼국지』를 만화로 봤어. 김용환 선생의 『코주부 삼국지』였는데 정말 재밌었어. 어린이들에게 첫 삼국지가 중요한 건, 그것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삼국지관을 지니려면 처음 읽는 삼국지가 제대로 틀을 마련해 주어야 해.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말이야.”
만화가 이충호 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저도 첫 『삼국지』는 고우영 선생님의 작품으로 읽었습니다. 만화가로서 욕심이 있다면, 아이들이 나중에 자랐을 때 내 『만화 삼국지』 이미지로 인물들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인물의 모습을 그릴 때 각 인물의 성격과 인생의 역정을 느낄 수 있도록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다.
“진이 빠지게 힘들었지만 어린이 독자들이 패장이나 승장에 상관없이 각 인물의 매력을 느끼는 걸 보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유비, 조조, 관우 같은 중심인물뿐 아니라 잠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그들이 소지한 무기까지 줄줄 외우는 아이들을 보고 기뻤어요.”
어린이의 눈높이를 항상 배려하는 것이 어렵긴 했다.
“너무 폭력적이어도 안 되고, 언어 사용에도 제약이 있고, 성적인 표현도 다 빼야 하고요. 예를 들어, 초선의 이야기는 좀 더 깊이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을 생략해야 했습니다.” 그 말에 황석영 선생은
“아이를 너무 아이로만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선생님 말씀처럼 어른들은 쉽게 이건 아이라서 모를 거야, 라고 단정하는데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오늘 어린이 독자들을 보고 알았어요. 훨씬 더 깊게 『삼국지』의 세계에 몰입하고, 인물에 대해서도 더 잘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이 책을 읽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 돼서 다시 황석영 선생님의 『삼국지』를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삼국지의 매력은 역시 인물
『삼국지』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인물에 있다.
『삼국지』를 일생에 몇 번씩 되풀이해서 읽는 이유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승자, 뛰어난 지략과 무예를 갖춘 자에게 끌렸다면 나이를 먹으면서 모든 인물이 지닌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독자는
『삼국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셈이다.
“어릴 때는 다들 관우를 좋아하지. 멋있으니까. 술 한 잔 따르게 한 뒤에, 그 술이 식기 전에 적을 물리치고 와서 술을 마시는 모습, 얼마나 멋져. 중학생쯤 되면 제갈량이 최고로 보이지. 그런데 내 나이가 되면 인물에 대한 애정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아. 내가 예순이 다 돼서 『삼국지』 번역을 마쳤는데 참 개개 인물이 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이름 없는 촌부도, 패장도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잖아? 다들 무척 근사해. 나는 옛날에 조조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번역을 하면서 조조도 좋아졌어. 조조의 매력은 그 사람이 죽을 때 가장 생생한 것 같아.”(황석영)
“저는 모든 인물이 다 좋았어요. 다 제가 그림으로 창조한 사람이라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이입이 돼요. 인물들이 세상을 떠날 때는 꼭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지금까지 그린 만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죽은 적이 없어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만화 속 인물이 죽으면 나가서 술 한 잔 마시면서 그 사람 생각한 적도 많았죠. 저는 특히 원소가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만화 삼국지』를 그리면서 처음으로 강유가 보였어요. 그 사람을 표지에 넣고 싶었는데, 패장을 표지에 넣을 수 없어서 아쉽게 접었죠.”(이충호)
각색가 김태관 씨는 덧없음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어렸을 때 『삼국지』를 읽을 때면 제갈량이 죽은 후부턴 읽기가 싫었는데 이번에 각색을 하면서 『삼국지』를 다시 꼼꼼하게 읽었는데 후주의 쓸쓸함과 덧없음이 멋있었어요. 예전에는 그런 맛을 몰랐던 거죠. 나라든 사람이든 아무리 융성했다 하더라도 끝내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황석영 선생과 이충호 씨, 김태관 씨가 공통으로 매력을 느낀 사람은 끝 부분에 등장하는 강유였다. 세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강유 덕택에 뒷부분을 읽을 맛이 난다’고 말했다.
“강유가 참 잘생겼잖아요. 그래서인지 화실 친구들도 강유를 참 좋아했어요.”(이충호)
“강유가 멋있지. 책임감도 있고, 공명이 죽은 후에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강유가 나를 닮은 것 같아.”(황석영)
“강유도 좋지만, 저는 사마의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그려진 『삼국지』는 이전에 없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운이 좋아서 천하를 공의로 먹은 셈이잖아요. 최후의 승자죠.”(김태관)
21세기에 『삼국지』가 여전히 새로운 이유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삼국지』는 모든 것을 품은 거대한 바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삼국지』는 읽는 것이 아니라 항해하는 것이다.
『삼국지』라는 온전한 우주 속에 펼쳐진 수많은 섬과 대륙을 탐험하는 것이다.
“『삼국지』는 수백 년 동안 백성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면서 장면이 더해지고 인물이 더해지면서 완성된 작품이지. 그래서 인물의 생생함과 다양함은 세계문학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생각해. 흔히 『삼국지』에 비견되는 작품으로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드는데, 인물의 풍부함은 결코 따라올 수 없어.”
황석영 선생이
『삼국지』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때는 감옥 수감 중이었다.
“감옥에서 너무 시간이 안 가니까 『삼국지』를 읽었는데, 옛날에 내가 읽었던 재미가 안 나. 그래서 시간도 보낼 겸 번역을 시작했지.” 황석영 선생은
『삼국지』를 번역하면서 인물만큼이나
『삼국지』의 문체에 매료되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의 전형이야.”
이충호 씨는
『삼국지』가 낡았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고 평했다.
“『삼국지』에서 쓰이는 기법은 『드래곤 볼』 같은 만화와 비교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삼국지』에서는 어떤 인물이 세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 인물과 싸울 다른 인물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죠. 이건 대부분의 만화에서 지금도 쓰는 기술이에요. 수천 년 전에 이런 기법을 사용해 인물을 생생하게 드러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어요.”
세 사람은 입을 모아
『삼국지』는 해석의 여지가 매우 다양해서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삼국지』의 서술은 굉장히 냉정해요. 그래서 독자가 평가를 내릴 수 있지요. 그것뿐만 아니라 『삼국지』는 인간의 이야기고, 최고의 두뇌를 지닌 지략가들과 무공을 지닌 자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정치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생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며,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죠. 인간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삼국지』는 여전히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게 해주리라 생각합니다.(김태관)”
그렇지만 역시
『삼국지』의 본질은 재미에 있다고 세 사람은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이지만 이 세 사람이 나이가 들어
『삼국지』를 번역하고 만화로 그리고 옮긴 것은 어렸을 때 밤을 새워가며 책장을 넘기며 영웅호걸의 짜릿한 모험에서 느꼈던 즐거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저 독자들이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