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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에게』로 돌아온 시인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로 이념시대의 종말을 노래한 30대 시인 최영미는 40대가 되어 인간의 가식과 위선을 과감히 드러낸 ‘돼지들에게’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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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다

잔치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 중인 내게 죄가 있다면,
이 세상을 사랑한 죄밖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로 이념시대의 종말을 노래한 30대 시인 최영미는 40대가 되어 인간의 가식과 위선을 과감히 드러낸 ‘돼지들에게’로 돌아옵니다.

안녕하세요,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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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
모두 읽어요 / 날마다 읽어요
좋아하는 책을 읽어요 / 그냥 읽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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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라디오 책 읽는 사람들이 오늘 만나 볼 책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등단한 최영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입니다.

‘돼지들에게’를 읽으면 얼핏 우화집을 펼쳐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데요, 돼지, 여우, 개, 앵무새 같은 동물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이어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 7년 만에 세 번째로 낸 시집 ‘돼지들에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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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최 영 미 / 시집 ‘돼지들에게’ 시인

시를 쓸 때 의식을 안 하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써요. 언어가 저한테 와서 그것을 베껴가는 과정인데 돼지들에게 시집이 특별한 것은 제가 처음으로 의식하고 책을 썼다는 거예요.

많은 부분들이 제가 어떤 주제를 생각하고 처음부터 주제를 생각하고 쓴 시들이 많아요. 그런 면에서 그 전에 제가 쓴 시들과 다르고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를 갖고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었다는 그 창조자로서의 희열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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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성경 구절에서 비롯한 돼지 연작 여섯 수에는 날선 언어들로 지식인의 이중성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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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신 윤 주

돼지들에게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하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
외딴 섬, 한적한 해변에
세워진 우리집.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방의 장롱 깊은 곳에는
내가 태어난 바다의 신비를 닮은,
날씨에 따라 빛과 색깔이 변하는
크고 작은 구슬이
천 개쯤 꿰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가 가진 건
시장에 내다 팔지도 못할
못난이 진주.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나
쓰이라지.
떠들기 좋아하는 돼지들의
술안주로나 씹히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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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나다’가 지난 시대에 보내는 레퀴엠처럼 회자됐다면 ‘돼지들에게’는 인간의 가식과 위선을 과감히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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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최 영 미 / 시집 ‘돼지들에게’ 시인

처음부터 시를 쓸 때 그런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1부에서는 특히 돼지의 변신 같은 시들은 대부분 동물에 비유했거든요.

앵무새라든가, 돼지, 여우가 많이 등장을 해요. 그건 내가 분명히 의식적으로 환유한 것이기 때문에 동물농장처럼 인간사회 동물농장을 봐서... 그 평가에 대해서는 맞다고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억압된 분노라든가 이 사회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약자들을 삼키는 강자들의 횡포와 탐욕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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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나왔을 때도 시인은 논쟁적이었습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용기를 가졌다는 신경림 시인의 평처럼 ‘돼지들에게’에서도 최영미 시인은 무서울 정도로 거침없고 당당하게 풍자의 화살을 날립니다.

낭독) 신 윤 주

돼지의 변신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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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겨울 어느 날. 대학원 학기도 끝나고 취직도 안돼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최영미는 할 일 없이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기장에 시를 써온 사실을 발견했고 그게 시인 최영미의 출발이됐습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최영미 시인을 시를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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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유 종 호 / 문학평론가

당대에 우리 사회 현실을 아주 바르게 바라보고 있는 그리고 아무런 자기 검열 없이, 서슴없이, 지탄없는 사회 풍자가 너무나 신선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호소하는 바가 크고, 가령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좀 세련도가 부족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여지가 없어요 그만큼 직접적으로 호소해오는 우리 시대에 아주 훌륭한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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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은 시집 ‘돼지들에게’로 지난 해 이수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문단으로부터 찬반논란이 벌어지는 사이 시인은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들으신 프로그램은 저희 KBS 홈페이지 kbs.co.kr과 온북티브이 홈페이지 onbooktv.co.kr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로 언제든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주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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