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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이상문학상 수상 소설가 한강, 가수 데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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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쓴 글에서 집요하리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지워내는 한강이, 자신이 만든 노래를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고 그것을 CD에 담았다. 내친김에 노래에 대한 책도 썼다. 얼마 전에 출간한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가 그 책이다.

선정적인 제목을, 소위 낚이는 제목을 뽑는다면 이번 인터뷰는 ‘이상문학상 수상 소설가 한강, 가수 데뷔하다!’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강의 독자라면 그런 제목에 낚이지 않을 터이고, 한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름 한번 희한하군’ 하고 작가 이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다가 ‘글 좀 쓰는 작가가 노래도 하나 보군. 요새는 가수 빼고 다 노래를 잘한다니까’ 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쓴 글에서 집요하리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지워내는 한강이, 자신이 만든 노래를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고 그것을 CD에 담았다. 내친김에 노래에 대한 책도 썼다. 얼마 전에 출간한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가 그 책이다. 원래는 작곡하고 작사한 노래에 대한 이야기만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우연이 겹쳐’ -그녀가 자주 하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들어온 이야기에 대한 글도 책에 포함되었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출간한 소설가 한강
그녀의 목소리는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낀 호수 저편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나그네의 조심스러운 발소리 같고, 여름날 짙은 그늘을 만드는 활엽수의 이파리가 가끔 불어오는 미풍에 몸을 떠는 것 같다. 입안의 보드라운 점막을 혀끝으로 어루만지는 것처럼 에로틱하면서도 따뜻한 습기가 느껴진다. 소설 『몽고반점』 속에 등장하는, 몽고반점이 찍힌 여성의 몸에 그려진 꽃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강렬함도 가끔 목소리에 어렸다 사라진다.

한강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지금껏 써왔듯, 한강만이 만들고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그녀는 만들고 불렀다.

직접 만나본 한강은 체구가 자그맣고 웃을 때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옆얼굴은 우울함과 슬픔, 그리고 귀기까지 느껴졌지만 정면은 웃음이 잘 어울려 기묘한 느낌이었다. 목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만큼 작았다. 소설의 강렬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가 커질 때는 올해 학교에 들어가는 아들 이야기를 할 때 정도. 한글도 일곱 살에 저절로 깨칠 때까지 아이에게 아무것도 억지로 가르치지 않았지만 막상 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고 말하는 그녀는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요즘 글은 잘 쓰고 계신가요?”
“내년쯤 장편 소설이 하나 나올 예정이에요, 2005년에 상 받은 『몽고반점』이 3부작 연작의 가운데 부분이 되는. 글은 다 써두었는데 이상문학상은 수상작품을 3년 동안 다른 책에 수록할 수 없어요. 그래서 늦어졌네요. 내년이라고 해도 지금이 1월이니까 한참 남았네요.”

“노래를 불러서 녹음을 하고 CD로도 만들어졌는데 느낌이 어떠셨어요?”
“낯설었어요. 그런데 그 낯섦이 좋았어요.”

“가족 분들은 노래 듣고 어떻다고 하시던가요?”
“가족들은 뭐 좋다고 하지 뭐라고 하겠어요.(웃음) 노래를 들은 분 중에서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그립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 젊은 친구들은 새롭고 낯설고 좋은 느낌이라고 말을 해줬어요.”

“한강 씨가 원래 소설도 그렇고 수필에서도 자기를 잘 공개하지 않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자기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를 직접 녹음한 것도 놀랐고요.”
“음악 감독인 한정림 씨가 자꾸만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셔서 녹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제가 만든 노래가 어떤지 궁금해서 전문가에게 한번 보여서 제대로 평가나 받아보자는 생각에서 정림 씨에게 제가 만든 곡을 보여줬어요.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책과 CD로 나오게 되었어요.”

그녀는 음악을 전?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자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 노래란, 듣고 나지막하게 따라 부르고, 가끔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아마 자신의 노래가 CD로 나온 것에 가장 놀란 사람이 자신일 거라고 말하며 그녀는 웃었다.

“그런데 노래를 왜 만들게 된 건가요? 작사는 시를 쓰니까 그렇다고 해도 작곡은 지금까지 한 것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잖아요. 원래 노래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었나요?”
“어느 날 꿈에서 어떤 노래를 들었어요. 두 소절이었는데 그 노래가 잊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가사를 적고 계이름도 적어 두었어요. 그리고 한 곡 두 곡 계속 노래를 만들게 되었어요. 문장이 떠올라서 더듬어 가면 시가 되는 것과 비슷해요, 노래를 만드는 건.”

노래를 만드는 것만큼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도 굉장한 경험이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글을 쓸 때는 드라이하다고 할 만큼 글 속에 담긴 자신의 감정을 지워버리는 데 노래 녹음하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지워낼 수 없었다. 녹음된 자신의 노래를 듣는 것도 굉장한 경험이었다.

“자기 노래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소통하고 싶어 하고 따뜻함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한 평론가가 제 소설에 대해 ‘향일성’,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갈망한다는 평을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가, 했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감정을 실감하게 됐죠.”

“소설은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음반은 만드는 건 공동작업이잖아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힘든 건 잘 모르겠고요, 음악 감독인 정림 씨가 일하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공동 작업에 필요한 배려부터 일하는 방법까지. 의논하면서 만들어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처음부터 노래는 직접 부르려고 하셨어요?”
“(드물게 큰 목소리로) 아니요. 저는 객원가수를 쓰자고 했어요. 그런데 정림 씨가 못해도 노래를 만든 제가 다 해야 한다는 거예요. 서툴면 서툰 대로 소박하게 가자고 계속 설득을 해서 제가 다 부르게 되었어요. 음역이 안 올라가는 노래는 정말 빼버리고 싶었어요.”

“해 보니까 어떠셨나요? 소설을 쓰면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저는 지금까지 나를 숨기고 싶었어요. 소설을 쓸 때도 나를 지우고 이야기 뒤로 숨었어요. 그런데 숨을 수 없는 일, 목소리는 굉장히 육체적인 자기잖아요. 그런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경계가 사라진 것 같아요. 책이 나오고 김영하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갔어요. 제가 그런 자리에 나가면 너무 긴장해서 거의 말을 못하거든요. 그런데 편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근데 그때 지진 속보가 나와서 방송으로 나가진 않았어요.(웃음) 그래도 내가 부른 노래는 나왔으니까….”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듣고 계시나요?”
“글렌 굴드요. <푸가의 기법>을 듣고 있어요. 제가 글렌 굴드를 듣는다고 하니까, 정림 씨가 골드베르크 변주곡 CD를 선물해 줬어요.”

“글렌 굴드는 인간적으로는 참 괴팍한 사람이었죠, 이상한 의자를 들고 다니면서 연주하는. 못 말리는 기인이지만 연주는 정말….”
“좋죠. 글렌 굴드의 음악은 꾸미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 보여요. 굉장히 정직한 느낌이에요.”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 장르나 뮤지션이 있나요?”
“누구를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닳을 만큼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곤 해요. 그렇게 듣다 보면 연주자와 소통하는 느낌이 들어요.”

“책에서 제일 가슴 아픈 에피소드가 종이 피아노에 얽힌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저는 정말 배우기 싫은데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피아노 학원에 다녔거든요.”
“저는 그런 아이들을 이해 못 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무척 재미있었거든요. 지금은 그 열정이 없지만. 아들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요, 처음엔 열심히 치더니 요즘은 좀.(웃음) 집에 피아노는 없어요. 그런데 누가 외국 나가면서 몇 년 동안 피아노 좀 보관해 달라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맡아주고 있어요.(웃음)”

이전에 출간한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소설가 한강이 주변에 머무르며 누군가를 관찰한 글이었다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음악에 얽힌 자연인 한강의 이야기다.

삶의 한고비 한고비를 넘어갈 때 음악이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기차 소리. 피아노를 치고 싶은 열망에 종이 피아노로 손가락 연습을 했던 유년 시절의 이야기. 장편을 쓰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갔을 때 들었던 트레이시 채프먼의 <새로운 시작 New beginning>.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보듯 귀를 스치고 지나갔던, 때로는 오랫동안 머물러 그녀의 영혼을 물들여 버린 노래에 얽힌 삶의 조각이 글로 그려진다. 프리즘을 투과하는 빛처럼, 그라는 인간이 가진 다양한 색채를 하나씩 펼쳐보이는 아름다운 글이다.

“산문을 쓰고 나면 나를 너무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산문집을 쓰면서는 뭔가 한발 다가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나오는데, 그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평소에 너무 꽁꽁 묶어두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예전엔 글쓰기가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어떠세요?”
“평생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건 저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저는 늘 글 쓰는 것보다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장편을 쓰는 일이 정말 힘들어요.”

“단편이나 중편보다 장편에 매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글쎄요. 장편 쓰는 것이 더 재미있으니까요. 굳이 단편이나 중편을 안 쓰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장편은 정말 몸으로 쓰는 소설인 것 같아요.”
“그래요. 단편은 별로 힘들지 않아요. 열흘 집중해서 쓰면 되니까. 산문이나 청탁받은 짧은 글은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그냥 비는 시간에 써요. 이번 책도 아주 편하고 쉽게 썼어요. 그런데 장편은 아무래도 힘들죠. 보통 1년에서 2년. 많이 걸리면 3년. 그동안 계속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계속 생각을 해야 하니까요.”

“글 쓰시다가 체력이 모자라서 못 쓰겠다는 생각하신 적 있으세요?”
“정말 많아요. 요즘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요. 정말 운동이라도 해야 할까 봐요.”

“글은 주로 언제 쓰시나요?”
“오전에 써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쓰기 시작해요. 1시간 정도 쓰고 나면 요즘은 탈진해서 다시 잘 때도 있어요. 아이가 있으니까 예전처럼 밤을 새워서 글을 쓰긴 어렵죠.”

소설가 한강
한강은 ‘나름대로’ 바쁘게 산다. 엄마로 해야 할 일이 있고 작가로 쓰고 읽어야 할 글이 있다. 그 밖에도 좋아하는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요즘은 아이가 커서 예전만큼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아서 온전히 작품을 쓰는 데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제가 게으름을 못 피워요. 생각했던 것보다 데뷔를 일찍 해서 글을 더 치열하게 썼던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글을 썼어요. 그때는 정말 피곤에 절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오후를 비디오나 보면서 멍하게 흘려보내는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한강 씨는 정말 전형적인 소설가처럼 보여요. 왠지 골방에 앉아 소설만 쓰고 있을 것 같은. 오로지 글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그런 소설가 같아요.”
“글로 소통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전형적인 소설가가 어떤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장편을 쓰실 때는 작품 생각을 항상 하고 계시나요?”
“내 의지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저는 소설을 쓰면서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글을 쓰면서도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건지도 잘 몰라요. 글을 다 쓰고 난 후에야 내가 이걸 말하려고 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죠. 그래서 ‘나 요즘 무엇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어’라는 말을 안 해요. 예전에 그렇게 말하고 소설을 썼는데 전혀 다른 소설이 되어버린 적이 있어서요.(웃음)”

“그렇지만 소설을 쓴다는 건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가 아닌가요?”
“저의 경우는 이야기가 저를 찾아온다고 할까요. 글을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야기 자체가 부딪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쪽으로 가요. 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소설은 시보다 논리적이고 나와 이야기가 어떤 작용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야기가 잘 만나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다 통제하면 소설 쓰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작가 한강은 가정이나 예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인터뷰 중에 던진 '만약'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가정은 별 의미가 없지 않나요? 그랬다면 그런대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어땠을 거라고 대답하긴 힘드네요.'라고 대답했고, 미래에 대해서도 '역시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가정하고 예상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작가는 한 가지만은 확신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쓴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작가 한강은 쓰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한강의 글이, 한강의 목소리가 독자에게 의미를 가지는 건 글을 통해 추구하는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그녀의 작품을 읽고나면 적어도 작품 속에 담겨져 있는 치열함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묵묵하게 그리고 고독하게 글을 통해 세상의 독자들과 소통하는 진짜 '소설가'가 드물어진 요즘 시대에 그녀만큼은 앞으로도 언어를 통해 삶이 숨기고 있는 아름답고도 슬픈, 때론 비정하기까지 한 진실들과 정면승부해주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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