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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의 그림책 작가 정승각

마녀가 『강아지똥』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강아지 똥이 부서져 민들레 꽃봉오리를 맺게 하는 그림입니다.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으로 거듭나는 소중함을 정승각 선생님은 빨갛고 노랗고 파란 점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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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똥과 민들레

우리는 아이들에게 수도 없이 다그칩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중압감을 느낄 정도로 ‘쓸모 있어야’만 된다는 강박 관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정말 하찮은 존재, 아무에게도 도움도 되지 않는 존재가 아닌지 은연중에 자기 비하를 하게 되지요. 『몽실 언니』로 너무나도 유명한 권정생 선생님의 글에 정승각 선생님이 그림을 입힌 그림책 『강아지똥』은 자칫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까봐 스스로를 비하하는 모습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평범한 시각에서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 곳이 없을 것 같은 강아지 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갓 두 돌을 지난 조카는 고미 타로의 『누구나 눈다』에 등장하는 똥을 보면서 ‘똥’이라고 말하며 좋아합니다. 프로이트 식의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서 보면 아마도 제 조카의 나이가 ‘항문기’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초적인 ‘똥’에 대한 호기심은 ‘똥’이라는 발음을 할 때부터 묘한 쾌감과 연결되나 봅니다. 아직 두 돌짜리 조카가 『강아지똥』에 담겨있는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꽤 이른 감이 있지만, 『강아지똥』을 보게 된다면 이해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좋아하리라 이 마녀는 확신합니다.

강아지 똥이 쓸모없기만 한 것일까요? 우리 속담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말이 있지요. 물론 이 표현에서 ‘개똥’은 하찮은 것으로서 예전 같으면 길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신발 바닥에 묻혀오는 흔하디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찮은 것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 바로 강아지 똥입니다. 그러나 막상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쓸모 있다’ 혹은 ‘쓸모없다’로 존재의 가치를 논하는 관념은 어쩌면 우리네의 오랜 관념일지도 모릅니다. ‘쓸모 있는 것’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이 되려면 ‘쓸모 있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진 똥이 비를 맞아 흐물흐물 녹아내려 땅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본 권정생 선생님은 그 보잘것없는 강아지 똥이 흙 속의 양분으로 거듭나서 노란 민들레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밤을 새워 강아지 똥 이야기를 쓰셨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 『몽실 언니』를 읽은 마녀는 몽실이에게 거듭 불어 닥치는 불행이 마지막에는 행운으로 반전되기를 간절히 기대했었습니다만, 몽실이는 결국 곱사등이와 결혼해서 외형적으로는 가난한 삶을 살아가게 되더군요. 그러나 몽실이는 강아지 똥처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아니 오히려 버림을 받는 존재인데도 자신은 이복동생들에게 끊임없이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긴 소설을 소화할 줄 아는 아이들이 『몽실 언니』를 읽고 가슴 뭉클한 어떤 감동을 받게 될 때, 다소 나이 어린 아이들은 『강아지똥』을 읽고 가슴 뭉클한 어떤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감동이 있을까요? 바로 혼자서는 의미가 없고 무엇인가,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존재 가치가 생기는 것이고, 사람들이 아무리 하찮게 생각하는 똥이나 절룩거리는 고아 소녀도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에게도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일 겁니다.

이미 여러 차례의 그림책 작가 이야기를 통해 마녀가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는 어린이 그림책은 쉽고 단순한 것이 좋다고 착각합니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생활은 평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는 책의 주제 또한 쉽고 단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삶의 다양한 측면, 즉 탄생과 죽음, 병과 고통도 나름의 시각으로 느끼고 겪게 됩니다. 『강아지똥』에서 작가는 강아지 똥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냄새나고 구질구질한 강아지 똥, 길거리에서 치이면 투덜거리게 되는 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이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삶의 본질을 생각하도록 연결해주는 ‘관념의 똥’이 된 것입니다.

마녀가 『강아지똥』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강아지 똥이 부서져 민들레 꽃봉오리를 맺게 하는 그림입니다.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으로 거듭나는 소중함을 정승각 선생님은 빨갛고 노랗고 파란 점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녀가 『강아지똥』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라는 구절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정겨운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존감을 느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께 『강아지똥』을 권합니다.



대물림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려면 하늘의 은혜가 내려야 한다고 믿는 작가

누구에게나 삶에서 성취하고 싶은 소원이 있는 것 같지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기실은 누구나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고 실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마녀도 정작 ‘어린이 책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소망을 하게 된 것도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언젠가는 동화책을 써보는 것이 소원인데, 지금 걱정스러운 것은 단지 소망만 하고 실천을 하는 데 마냥 게으름이나 피우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 마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을 갖고 재능까지 겸비하여 그것을 갈고 닦아 일찍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은 사람들을 보면 아주 많이 부럽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정승각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던 중, 선생님 역시 제 부러움의 대상 중 한 분이시란 생각이 드니, 꿈을 이루기 위해 고단한 삶 속에서의 자기희생과 노력은 간과하고 선생님이 현재 이루신 업적만을 우선 바라보는 저의 안일함이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은 충북 제천 덕동에서 태어나 방아다리에서 자라고 일곱 살 때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집안이 어렵다 보니 제대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공업 고등학교에 가라고 하는 것을 뿌리치고 일반 고등학교에 갔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이 미술 대회에 나가라고 권유해서 부모님 몰래 미술 대회에 몇 차례 나갔다고도 합니다. 선생님은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고 미술부원도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인해 몇 차례의 대회에서 입선을 했고 한 번은 최고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살던 보광동 상가에 화실이 생겼고, 선생님은 화실비에 상관없이 학원 선생님의 배려로 화실에 다니게 되었지만 경영상의 문제로 화실이 곧 문을 닫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당시 그 학원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였던 정승각 선생님을 책임질 생각으로 이계안 선생님을 소개했습니다. 이계안 선생님은 당시에 중학교 미술 교사였는데 방과 후마다 꼬박꼬박 미술 학원에 나오셔서 철저한 미술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이계안 선생님은 석고상을 그릴 때에도 기능적으로 그리는 방법만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석고상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늘 “그림을 꼬작꼬작 그려라, 만져서 그린 것처럼 그려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이계안 선생님의 지도 덕분에 정승각 선생님은 중앙대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당신의 꿈을 향한 디딤돌을 착실하게 내딛게 되신 겁니다.

선생님이 그림책을 그리게 된 계기는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이라는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시집이 발간될 때, 책의 뒤표지에 개정판에 넣을 시화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모하기 위해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시와 잘 어우러질까 고민하다 대학에서 배운 서양 그림으로는 고유한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권정생 선생님의 시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반년을 들여서 시화를 완성한 정승각 선생님은 출판사로 그림을 보내게 되었고 마침내 당선이 되어 출판사 전속 작가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1988년 선생님이 대학 졸업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은 무려 8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여곡절 끝에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의 작가이신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권정생 선생님의 다른 작품 『강아지똥』을 그릴 수 있으리라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승각 선생님이 그림책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그만큼 선생님의 책 사랑이 각별한 것도 이유가 되지만, 전시회를 통해 소수의 감상자들과 만나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선생님은 어린이 도서 연구회에서 어린이 책을 공부하게 되고 더욱 분명해진 인생의 목표를 향해 매진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외국 책과 비교하니 너무 화가 났어요. 우리나라 어린이 책 그림은 말 그대로 글에 끼워 넣는 삽화에 불과한 그림이었어요. 그림책 그림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림책은 대부분 전집이었고 한꺼번에 몇십 권을 만들다 보니 그림 제작 여건도 좋지 않았고 저작권도 보호받지 못하는 형편이었지요. 그림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단행본으로 그림책을 출판하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림책 사랑으로 탄생한 그림책이 바로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입니다.

정승각 선생님은 단지 그림책 그리기 그 자체의 미술적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단순히 그림을 반복해 보고 다양한 방법적 시도를 해본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어린이들과 함께 벽화 작업을 해왔습니다. 생활 주변에서 그림 작업을 해야 진정한 그림책 독자인 어린이들의 삶과 생각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공동 벽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선생님은, 인천 만석동에 있는 기찻길 옆 공부방에 아이들과 함께 벽화를 그렸습니다. 벽화 작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좋아하는 색을 조사하고, 종이로 밑그림을 준비해 붙여 보기도 하면서 어린이들은 자신들에게 숨겨져 있는 창의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를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어린이집 교사들과 함께 세 살에서 일곱 살짜리 어린이들이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감 살리기’ 미술 교육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과 부대끼며 아이들이 어떻게 책을 느끼고 대하는지를 알게 된 선생님은 아이들이 책을 대하는 방법이 어른들과는 사뭇 다르고 책에 대한 감상 역시 날카롭다고 지적합니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아이들은 그림에서 어떤 질감을 느끼면 책 표면을 손으로 만져보거나 볼을 갖다 대기도 하고, 심지어 코를 킁킁거리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즉 아이들은 책을 단순히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서 느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발견은 선생님이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황소 아저씨』의 그림을 그리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이야기는 개별 작품을 다루면서 다시 하기로 하겠습니다.

한편 오래전에 번잡한 서울을 떠나 옛 외가가 있었던 충북 엄정에 작업실을 마련한 정승각 선생님은 동시를 쓰는 부인과 함께 평온한 마음으로 시골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야트막한 동산 아래 조그만 교회 한 채를 빌려 작업실로 쓰고 있는 선생님은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서구화된 도시보다는 아직도 촌스럽지만 우리네 전통의 정서가 남아있는 시골이야말로 우리 것을 제대로 탄생시킬 수 있는 모태가 된다고 굳게 믿고 계십니다.

파란 황소를 아시나요?

채도가 낮은 퍼런 색 밤을 배경으로 시리디 시린 하얀 달빛이 하얀 눈을 반짝반짝 비추는 장면으로 그림책은 시작한답니다. 파란색이 이처럼 그윽하고 깊은 어둠을 표현하는데 쓰인 것은 정승각 선생님이 처음은 아니지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고흐의 밤하늘은 검정이 아닌 파란색이니까요. 하지만 고흐의 파란색이 보랏빛이 감도는 색이라면, 정승각 선생님이 표현한 겨울밤 하늘을 덮은 파란색은 퍼렇다 못해 칙칙하기까지 해서 어딘지 서글프고 외로움이 배어있습니다. 불룩불룩 나뭇가지의 돌기 위에 딱딱하게 얼어 굳어진 눈이 만져질 듯합니다.

『황소 아저씨』는 부조를 뜨고 모시로 덮은 위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작품 속 주인공들이며 배경들이 마치 앞으로 걸어 나올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선생님은 천 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종이인 한지 위에 자연 염료를 주로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자 짙푸른 색이 바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부조를 만들고 모시 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모시의 성긴 올이 주는 느낌이 까슬까슬하게 손끝에 만져질 듯싶습니다. 그래서 마녀는 손가락 끝으로 그림책 위를 훑어보았는데, 아!

『황소 아저씨』 역시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강아지똥』의 글을 읽고 정승각 선생님이 권 선생님의 따듯한 애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책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오랜 세월 결핵과 투병 생활을 하셨고, 경북 안동 조탑동의 교회 뒤 빌뱅이 언덕 밑에 다섯 평 남짓한 흙집을 지어 조용히 글을 쓰며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세상 돌아가는 시끄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마음을 다치신다는 권정생 선생님은 아이와도 같은 여린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시기에 흙집 앞 뒹구는 강아지 똥과 민들레를 보면서도 눈물 흘릴 줄 아는 분이십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자신의 동화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권의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고통을 겪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새겨봐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슬픈 개인사를 살아온 분께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온 분께서, 주옥같은 우리말 동화를 쓰신 분께서 하신 이 말씀 속에는 정승각 선생님이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왜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는지 유추하게 하는 귀중한 단서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권정생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정승각 선생님도 낙향하여 조용한 삶을 살면서 어린이들과 함께 나누는 생활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정승각 선생님이 특별히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끌어안고 자신의 표현 양식인 그림에 녹여 새롭게 환생시키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정승각 선생님은 권정생 선생님의 글에 천착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정승각 선생님의 그림책을 보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반쪽만 보는 셈일 것입니다. 답이야 여럿이 될 수 있겠지만 이 마녀 생각에는 권정생 선생님이나 정승각 선생님 모두 『황소 아저씨』의 황소처럼 공존의 의미를 아는 영혼을 가졌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황소 아저씨』에는 부모를 잃은 불쌍한 생쥐가 커다란 황소 아저씨의 등을 타고 황소 아저씨의 여물통에 가려다 들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갑작스런 황소의 꼬리 공격에 공중룀로 ‘휘익’ 날아올라간 생쥐의 모습이 힘없고 여린 우리 어린 독자의 모습과 닮았고, 자신의 휴식에 방해를 받아 불쾌감을 표현하는 성난 황소의 모습은 일상에 지친 어른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님의 모든 작품에서 한결같은 주제의식이 이 『황소 아저씨』에도 내포되어 있으니, 다음 장을 넘겨볼까요?

지금껏 차디차거나 칙칙하게 표현된 퍼런 배경이 흐릿해지고 경쾌한 노란 빛을 머금은 푸르른 빛깔로 바뀌었습니다. 주인공들은 또 어떨까요? 친근한 표정의 황소 아저씨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고, 입 꼬리가 올라간 귀여운 생쥐는 이제 겁을 먹은 모습이 아니네요. 그래요. 이제 황소 아저씨의 여물통에 있던 음식 찌꺼기를 생쥐와 그 동생들은 언제든 배불리 먹어도 되니까요. 황소 아저씨와 작은 생쥐들은 이제 서로 돕고 사는 공존의 참다운 의미를 실현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모습을 통해 글쓴이 권정생 선생님이나 그림을 그린 정승각 선생님 모두 이 글을 읽는 어린이 혹은 이 그림책을 보여주는 부모님 모두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푸른색이 그림책 속 주인공들의 심리적 변화와 함께 이해에서 공존의 추이를 보여주듯 점점 경쾌하고 밝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도 황소 같은 넉넉함을 베풀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탱화의 기법이 돋보이는 그림책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삽사리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정승각 선생님의 손에 의해 그림책으로 태어나기까지는 경북대학교에서 삽사리를 연구하는 하지홍 교수님 및 탱화를 전문적으로 그리시는 스님 등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홍 교수님은 삽사리가 나오는 그림과 문헌, 시와 이야기를 모아 정승각 선생님께 주셨고, 우리 고유의 개 삽사리인 만큼 고유의 미감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정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탱화의 기법을 가르쳐 주신 스님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림책을 만들기 전에 정승각 선생님은 절에서 볼 수 있는 연꽃문이나 수미단처럼 시각적 조형성을 드러내 입체감이 살아있는 그림책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정말 우리의 것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표지 그림은 사신도를 참고해서 그린 것이고, 본문의 글자들은 『여사서』라는 옛 책에서 목판 글자를 이야기에 맞도록 한 자 한 자 모아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살렸다는군요. 이렇듯 제대로 된 창작 그림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정승각 선생님의 예술가로서의 뚝심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삽사리는 액운,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의 개입니다. 옛날에는 새해 아침에 벽사의 의미로 호랑이, 용, 수탉, 삽살개 등을 민화로 그려 벽이나 대문에 붙이기도 했으니,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가 바로 삽살개입니다. 한편 불개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하늘나라도 사람들 나라처럼 여러 나라로 나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빛이 전혀 없는 까막나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막나라 임금님은 불개를 시켜 해를 구해오라고 했지만, 불개는 뜨거운 해를 구해올 수 없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불개에게 이번엔 달을 물어오라고 명령했지만, 달은 너무 차고 시려서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줄 모르는 까막나라 임금님은 불개를 자주 심부름을 보내 불개가 해를 물면 일식이 되고, 달을 물면 월식이 생긴다는 것이죠.

흑색, 적색, 백색, 청색, 황색 즉 오방색과 금니로 정성껏 그려진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펼친 면마다 그림의 한 부분을 응용해서 문양을 만들고 금띠를 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디자인은 바로 『만희네 집』의 작가인 권육덕 선생님이 만든 것이라고 하니, 과연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는 1994년 ?시 새로운 어린이 책을 만들고자 했던 분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책입니다.

우리 집 꽃밭에는 무엇을 심을까?

곧 식목일이군요. 그런데 올해부터 식목일은 공휴일이 아니니 바쁜 마녀는 언제 꽃씨를 심을 겨를이 날지요? 흙속에 감춰진 생명의 소중함을 『오소리네 집 꽃밭』에서 느껴보세요. 숲에 사는 오소리 아줌마가 학교 운동장의 꽃밭을 보고는 자신의 집에도 꽃밭을 만들겠다고 아저씨에게 조릅니다. 아저씨는 아줌마의 간청에 못 이겨 꽃밭을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파는데, 파는 곳마다 패랭이꽃이며 잔대꽃이며 용담꽃 뿌리가 걸려 나옵니다. 꽃이 안 핀 곳을 찾아보려 해도 집 주변은 온통 꽃투성이지요.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서 귀한 생명의 신비를 찾아내는 권정생 선생님 작품을 다시 한 번 정승각 선생님이 그림으로 표현한 『오소리네 집 꽃밭』은 무심코 지나친 것들의 아름다움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나마 꽃밭 하나 갖고 싶지만 삭막한 아파트 건물들 사이에서는 작은 텃밭을 마련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점점 무감각해져 가는 우리 아이들이 하루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아파트의 그림자 길이가 길어졌다 줄었다 다시 길어지는 것을 통해서라면, 봄이 더워져 여름이 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제철에 맞춰 봉오리를 맺고 다른 꽃들에 화사한 색의 향연을 양보하는 들풀들의 잔치를 목격해서가 아니라,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한결같은데 해 지는 시간이 점점 뒤로 늦춰져 여전히 밝은 가운데 또 다른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중압감이 커지는 것 때문은 아닐까요?


이제 곧 꽃샘추위도 가시고 아지랑이 한들거리는 따듯한 봄날이 시작됩니다. 오소리네 집 꽃밭과 같이 내 집 앞에는 작은 화단 하나 만들 수 없다면,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날 들풀과 들꽃을 구경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 꽃밭에 꽃을 심어보는 거예요. 쉬지 않는 식목일을 기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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