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신과 의사의 즐거운 책 읽기 - 정신과 의사 하지현 씨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세상의 다양한 영역 읽기’ 프로젝트
액면 그대로 보아도 정신과 의사 하지현 씨는 평범한 독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정신과 의사’라는 다소 신비로운(?) 레테르가 그렇거니와 그 자신이 이미 두 권의 책을 낸 저자이기 때문.
액면 그대로 보아도 정신과 의사 하지현 씨는 평범한 독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정신과 의사’라는 다소 신비로운(?) 레테르가 그렇거니와 그 자신이 이미 두 권의 책을 낸 저자이기 때문.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세상의 다양한 영역 읽기’라는 프로젝트의 첫걸음으로 조직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지침서 『통쾌한 비즈니스 심리학』을 작년에 출간했으며, 올 3월에는 정신과 의사가 해부하는 전래동화의 효용 및 그 활용법에 대한 책인 『전래동화 속의 비밀코드』을 출간했다. 요즘에는 정신과 의사가 영화로 풀어보는 심리 여행이라는 테마로 집필 중이란다. 본업이 있는 터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꿈인 ‘책 읽고 글 쓰며 먹고 살 수 있는’ 경지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르지 않았지만, 점차 그 지점에 접근해 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미로운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현 씨는 병원 업무 이외에도 도서 집필과 고정적으로 연재하는 칼럼, 그리고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등등으로 정말 타이트하게 살고 있는 터라 책 읽을 시간이 과연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바쁜 와중에도 “전공서적 빼고, 만화책 빼도 한 달에 열 권” 정도의 책을 읽는 독서가이다.(만화책까지 카운팅하면 여기에 열 권이 플러스 된다.)
“전철 안에서 보고, 술 안마시는 날 밤에 보고, 주말에 보고…. 책을 빨리 보는 편이에요. 전체적인 책의 흐름을 보는 편이거든요. 이건 이런 책이구나, 하는 감을 읽는데 더 치중해요. 그래서 주인공 이름 같은 것은 잘 기억을 못해요.”
차분하게 앉아 한 권씩 책을 독파해 나가기 보다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는 책”과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서 읽는 책”을 완급을 조절해나가며 동시에 진행해나가는 전략적인 독서를 하는 하지현 씨가 최근 읽은 책은 『흥행의 재구성』, 『영웅 만들기』,『뇌, 아름다움을 말하다』, 『거짓말하는 애인』, 『마이 퍼니 발렌타인』.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는 정신과 의사로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뇌신경학에 관한 책이라면, “즐기기 위해서 읽은 책”인 『거짓말하는 애인』과 『마이 퍼니 발렌타인』는 본래의 목적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현 씨는 특히 『흥행의 재구성』이 굉장히 알찬 책이었다고 한다.
“동아일보에서 오랫동안 영화담당기자로 일한 김희경 씨가 그 동안 경험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헐리우드 영화의 흥행공식과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뒤안길을 우리 나라 기자의 시각에서 세세하게 분석한 책이에요. 몇 몇 외국책을 보고 자기식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취재와 리포트를 종합해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영화가 위치하는 자리를 풀어낸 책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정보와 재미라는 독서가 주는 두 마리의 효용 이외에도 ‘정신과 의사로서’ 하지현 씨는 독서를 통해 좀더 특별하게 취하는 것이 있다. 바로 행간으로 좀더 깊숙히 들어가서 “이 작가는 이런 사람이구나, 작가는 이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구나… 하고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것”. 하지현 씨는 작년 하반기에 나온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말한다.
“30대 여성 중에 이 책을 안 읽은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주변에 책 좀 본다는 사람들은 다 봤더라구요. 빌려서 보든, 사서 보든…. 저는 이 책을 매우 재밌게 봤는데 정신과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쓴 것 치고는 매우 잘 알고 있구나….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김형경 씨가 이전에 썼던 책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에요.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중 한 명의 말을 빌어서 자신의 치료자에 대한 상당한 공격심을 표현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김형경 씨가 동아일보에 정신분석의 치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기고한 적이 있어요. 전 그 내용을 보고 이 분이 정신 치료를 했다가 중도에 깔끔하게 끝내지 않았구나…하고 생각을 했죠. 정신 치료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중단되는 경우 발생하는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괴로움이 생긴다는 거예요. 일주일에 두세번 이상 만나 한 번에 45분씩 대화를 나누는데... 치유자는 내 말을 너무 너무 잘 들어줘요. 나한테만 집중을 해줘요. 그런 사람을 2년, 3년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이건 그 어떤 사람하고도 경험할 수 없는 거거든요. 하다못해 남편이나 애인하고도 그렇게는 안해요. 그런데 그 사람과 그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 실연을 하거나 배우자와 이별보다 더 커다란 마음의 괴로움을 느끼는 거죠. 작가들은 자기 갈등을 풀어내는 나름의 방식이 있을텐데… 그것이 아마 그 소설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여행을 떠났죠. 그랬다가 돌아와서 쓴 책이 『사람풍경』이에요. 소설이 끝내고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내면에서 상당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나…. 왜냐하면 『사람풍경』은 전 소설에 비해서 굉장히 정제되어 있고, 안정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어머니의 훈육 방식으로 돌리고,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키려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다음 글은… 아마도 소설이 되겠지만… 좀 더 원숙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현 씨는 집필을 할 때 독서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머리 속에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화두, 고민하고 있는 내용이 쫙 연결이 안되고 둥둥 떠다니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엮어줄 수 있는 틀거리를 제시하는 책을 만나면 상당히 재미있고, 자극이 된단다. 이러한 점에서 김용석 교수의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김용석 교수는 철학자에요. 이 세상을 철학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분인데, 철학자와의 소통이 아니라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글을 쓰죠. 제가 지향하는 바도 제가 전공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에 접근하여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고 그 생각을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거든요. 『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은 디즈니 만화들을 철학적으로 바라본 책인데, 『전래동화 속의 비밀코드』를 쓸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 주기도 했어요.”
말 그대로 정신과 의사처럼 진지하게 얘기하다가도 순간 순간 키득대며 개구쟁이처럼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하지현 씨가 존경하는 사람은 『타짜』와 『식객』의 작가 허영만 화백과 『마스터 키튼』의 우라사와 나오키!(장난스런 웃음과 썩 잘 어울리지 않는가?) 『아리랑』, 『혼불』 같은 책은 긴호흡이 싫어 읽지 않았지만 마치 연례행사처럼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꼭 산다고.
소위 ‘그 바닥’에서는 누구를 쳐주나,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독서를 하는 하지현 씨가 선호하는 ‘책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출판사 검색이다. 마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노팅 힐>,<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같은 영화를 만든 로맨틱 코미디 전문 영화제작사 ‘워킹 타이틀’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것처럼, 궁리, 해나무처럼 일종의 ‘작가주의’ 출판사 이름으로 검색을 하여 묻혀있는 책을 발굴한다.
하지현 씨는 “책은 만원 안팎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효용가치가 높은 재화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책에는 저자가 갖고 있는 지식의 상당부분을 가끔은 평생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하지현 씨는 책을 사는데 있어서 열 번 중 세 번 정도의 실수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 번 정도 실수할 것을 각오하고 책을 사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 그와 함께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의 책 읽기의 효용에 대한 말 역시 잊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 뭘 읽을까,했을 때 딱 손에 잡히는 그 책에 대해 생각해봤음 해요. 내가 왜 오늘 그 책을 읽고 싶어하는가…. 그 책이 생각나는 이유는 자신이 풀지 못한 어떤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많거든요. 어느 순간 눈에 잡히는 그 책을 읽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거예요. 위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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