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예지, “인간이라는 텍스트는 계속 흥미로운 주제일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무기 삼아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 여성 15인의 목소리를 담아낸 이예지 에디터의 첫 인터뷰집.
글: 염은영 사진: 표기식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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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터뷰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적임자는 인터뷰어일 것입니다. 인터뷰를 이끄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인터뷰의 조연이 되는 역설적 존재, 인터뷰어 말입니다. 이 질문을 이예지 작가에게 던진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요. 그동안 지면으로 발표된 그의 인터뷰는 대부분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궁금해했던 바로 그 이야기를 길어 올려주었기 때문이리라 짐작합니다. 인터뷰에 임하는 그는 “눈 맞춤, 제스처, 목소리 톤, 심지어 옷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라며 이를 정비하는 것에서부터 인터뷰이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는 “정석적 준비”를 거칩니다. 그 성실하고 지난한 채비로부터 그는 어디에서도 고백되지 못한 이야기를 상대로부터 끌어내지요. 그것은 그가 가진 “관찰력”과 “호기심”이 더해 완성한 결과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더불어 “타고나기를 질투가 많았다”라며 ‘사람을 가장 궁금해하는 끝없는 질문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합니다. 그에게 직접 좋은 인터뷰란 무엇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그와 나눈 대화로부터 ‘좋은 인터뷰’에 대한 적확한 대답이 도착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는 급변하는 우리 시대에 인터뷰가 그 힘을 잃고 있음을 언급하며, 변화에 순응하는 지혜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살아가는 일”이 될 거라는 인사이트를 전하는 것과 함께 말이죠.




사람을 가장 궁금해하는 끝없는 질문자가 되기까지

 

작가님과 처음 나눈 통화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작가님 음성에 목소리가 너무 예쁘시네요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게 실례일 수도 있음에도 그렇게 했죠. 그날로부터 인터뷰 당일까지 그 순간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어요. 훈련을 통한 남다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지면 기자들에게 목소리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은 아닐 거예요. 방송 기자들은 발음이나 발성 연습을 하겠지만요. 다만 듣기에 좋았다면,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상대를 설득하기 쉬우니까, 그런 훈련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뤄졌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인터뷰이에 대해 아는 건 많지만 교감하기 전이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을 갖기는 어려운데요. 그 한 통의 통화로 호감이 확 올라가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님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대단한 전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정확하게 보신 게, 저는 대면 인터뷰에서는 눈 맞춤, 제스처나 목소리 톤, 심지어 제가 입은 옷까지도 상대방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에 임하는 저만의 철칙이 있다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옷을 입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옹색하게 입는 건 아니고요. 이를테면 레터링이나 패턴, 그래픽이 크거나 반복적으로 그려진 옷, 시각적인 피로감을 줄 수 있는 옷은 입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마주 보는 상대가 저를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눈이 편해야 하잖아요. 더불어 신경 쓰는 부분은 말투와 목소리인데요. 톤이 낮은 음성이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평소보다 낮고 차분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언제부터 이같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탑재하셨어요?

연차가 쌓이면서부터…(웃음)

 

드디어 첫 인사로 돌아옵니다.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출간을 축하드려요. 이 시작으로부터 기자라는 호칭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시기에 접어드셨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책을 맞이하는 마음이 어떠하신지요.

이 책의 시작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위즈덤하우스와 출판 계약을 맺었고, 2021년 상반기 발간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지난한 우여곡절 끝에 책 내는 시기가 자꾸 미뤄졌고, 지금에서야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늦게 도착한 책이 된 거죠. 우리가 한창 페미니즘에 대해 들불처럼 일어나 외쳤던 시기에 함께할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지금의 페미니즘은 다른 국면을 맞이해 있잖아요? 각자 다른 입장이 있고, 여러 갈래로 파생되는 이야기들이 있고, 그동안 우리가 구사해온 전략이 맞기만 했는지, 오류나 문제점은 없었는지 돌아보는 시기이기도 하죠.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이 가지는 의미는 이런 이야기들을 파고드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보다 정교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정보라 작가님 인터뷰에서 여성성에 대한 정의, 젊은 여성들의 우경화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나눠요. 최은영 작가님과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소수자 중심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요. 인권이라는 것은 약자끼리 하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잖아요. 그게 바로 기득권이 바라는 모습일 테고요. 중요한 것은 연대예요. 우리 안에서의 차별과 배제는 오히려 우리의 자리를 더 좁힐 뿐이죠. 여성 임파워링이라는 슬로건만 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다음 스텝은 어디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책이에요.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까지 모쪼록 살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첫 책이라 일컬음은 다음 책을 당연히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예상되는 작가님의 다음 책이 있어요. 한겨레에 연재하고 계신 질투는 나의 힘 이야기입니다.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과 나란히 생각하게 되는 책이고요.

내년 상반기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칼럼은 시의성이 중요하니 당장 칼럼만 엮어서 빨리 내고 싶기도 하고, 질투에 대한 제 에세이와 함께 엮어서 내고 싶기도 하고… 아직 꼴과 형태는 고민 중입니다.

 

작가 소개에 사람을 가장 궁금해하는 끝없는 질문자라고 스스로를 밝히셨어요.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뷰에 큰마음을 품으신 시작에 대해서요.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기자와 에디터는 어영부영된 거예요. 사실 둘 다 꿈은 아니었거든요.

 

 


내가 무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들이 있었다는 걸, 지난 인터뷰들을 보며 되새기게 돼요.

 

그럼요?

쭉 글을 쓰고 싶어했어요. 작가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만약에 등단을 했더라면 제 인생은 아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으리라고 생각해요.

 

문학이군요! 어떤 장르인가요?

지금은 쓰지 않지만, 학부 때는 시를 썼어요. 김행숙, 허수경 시인을 무척 좋아하고 동경했죠. 신춘문예 본심에서 몇 차례 언급된 적은 있었는데, 당선이 되진 않았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냥 글 쓰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기자가 된 건데, 하다 보니 인터뷰가 적성에 맞았어요. 왜 그런지 생각해 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어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 관심은 늘 거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인데도 그 안에 어떤 심장이 뛰고 있는지, 그 속은 결코 알 수 없어요. 손을 꼭 붙들고 다니던 ‘절친’도 때론 낯선 사람이 되죠. 늘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저는 타인들의 작동법을 늘 궁금해했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했어요.

기자라는 업을 갖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저의 이런 면이 인터뷰하는 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질투는 나의 힘’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척 다양하거든요. 다양한 분야를 두루 좋아하는데 결국 총체적인 텍스트로서 인간만큼 불가해하고 그렇기에 호기심을 당기는 장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인터뷰하고 있고요.

 

이 책에는 미발표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실린 글들이 있습니다. 단행본 출간 이후에 매체를 통해서도 공개되나요?

미발표 인터뷰들은 책 이외에는 어디에도 싣지 않을 예정이에요.

 

책만을 위해 진행하신 인터뷰군요.

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여성 창작자들에게 만남을 청했어요. 김은희, 정보라, 최은영 작가님, 그리고 이경미 감독님. 다행히 네 분 모두 이 책을 위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어요. 이와 더불어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은 미발표 인터뷰 외에도 예전 기사와 똑같이 실린 건 한 편도 없다는 점이에요. 녹취록을 보며 아쉽게 빠졌던 부분을 되살리기도 했고, 일정 때문에 다시 만나기 어려운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시 만나 인터뷰했거든요. 기존 인터뷰와는 그 내용이 달라진 부분이 상당하죠. 특히 심은경 배우, 정서경 작가님, 류성희 미술감독님 경우는, 추가 인터뷰한 분량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해요.

 

인터뷰집은 으레 기존의 완성된 글을 재료로 삼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원고를 엮는 작업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았는데요. 설명을 들으니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전 녹음 파일도 다시 들어보고, 녹취록도 다시 꼼꼼히 살펴보고, 그때와 지금 달라진 이야기가 있는지 확인하고… 이야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작업들이었어요.

 

사회 초년생 때로 잠깐 돌아가볼까요? 영화 전문 매체 《씨네21》로 기자 생활을 시작하셨지요? 그곳으로부터 《코스모폴리탄》 피처팀을 이끄시기까지 인터뷰어로서 이예지를 다져오는 과정을 거치셨으리라 짐작해요. 어떤 변화를 겪어오며 지금의 '인터뷰어 이예지가 되셨을까요?

인터뷰는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잖아요. 사수가 글을 쓴 걸 봐주긴 해도, 인터뷰 진행이라든가 질문지 짜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으니까요. 대개 패션지 에디터들은 어시스턴트를 먼저 경험하는데, 저는 영화지에서 경력직 기자로 넘어와서 그 과정을 건너뛰었어요. 만약 어시스턴트를 했다면, 조금 더 빨리 성장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은 하곤 했고요. 왜냐하면, 어시스턴트는 선배들이 어떻게 인터뷰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저는 지금도 다른 기자나 에디터들이 어떻게 인터뷰하는지 모르거든요. 일단 어시스턴트는 선배 에디터가 인터뷰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녹취를 풀면서 에디터마다 인터뷰를 풀어가는 다양한 방식을 배워요. 저는 이 훈련이 무척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터뷰를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가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실전을 거듭하며 저만의 방식을 구축하게 된 케이스니까요. 


또한 저는 반드시 인터뷰어가 꼭 연차가 쌓여야만 좋은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계기가 있었는데요. 언젠가 제가 몇 년 전에 한 인터뷰를 읽는데, 더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시니어’가 될수록 구태의연해지는 것도 있고 관습과 노하우에 기대는 면도 커지고요. 연차가 낮을 때는 뭘 몰라서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게 더 좋을 때가 있어요. 관록이 붙어야만 더 좋아지는 장르의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에디터 일은 반반인 것 같아요. 관록도 중요하지만 새롭고 젊은 감각도 그만큼 필요하기 때문에 어릴 때와 같은 속도로 걸으면 오히려 퇴보하죠. 시니어가 되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오래된 관습들과 무뎌진 감각을 탈각해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식화된 방식으로 인터뷰하고 화보를 만들게 되고 그냥 뻔한 것들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스스로를 마주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그럴 땐 어떻게 돌파하세요?

과거에 했던 인터뷰 중에 SNS에서 회자가 많이 된 글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서강준 씨 경우는 그동안의 이미지와는 다른 내향인으로서의 기질적인 외로움을 들려주어서 화제가 됐죠. 서강준 씨가 저와의 인터뷰가 좋았다며 당시 같은 소속사 후배였던 차은우 씨에게 저와 인터뷰를 해보라고 추천해줬는데, 그렇게 한 차은우 씨와의 인터뷰도 소소하게 화제가 됐어요. 이 인터뷰는 “잘생겼다는 말로는 알 수 없는 게 있다. 차은우는 자기 자신을 더 알고 싶다”라는 전문으로 시작했는데. SNS에서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미끄러지는 현대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피드백을 보고 아주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설현 씨는 2018년 초, 그러니까 한창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페미니즘에 대해 자기 생각을 드러냈죠. 아시다시피 설현 씨는 과거 뒤태를 드러내는 이동통신사 광고로 소비된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마침 그의 가려움을 긁었던 것이었고요. 또 ‘이 시대의 모던 패밀리’ 시리즈 중 한 편인 김규진 부부 인터뷰도 화제를 모았어요. 이제 그것도 꽤 과거죠, 벌써 2년 전이니까. 과거 인터뷰들을 생각할 때면, 지금의 제 인터뷰는 최선이었는지 늘 고민해요. 내가 뭘 잘 몰랐기 때문에, 무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들이 있었다는 걸, 지난 인터뷰들을 보며 되새기죠.




인터뷰에 대해 고백할 수 있는 두세 가지 것들

 

이 인터뷰들은 아마도 작가님께서 굉장히 애정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셨으리라 짐작돼요. 앞서 누군가를 관찰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그분들을 쭉 그런 식으로 준비해서 만나셨을 거고요. 하지만 인터뷰하기까지 주어지는 시간은 무척 짧았을 테죠. 인터뷰 준비는 어떻게 하는 편이셔요?

정석적으로 하는 편이에요. 《씨네21》에 있을 때 가장 정석을 따랐는데 왜냐하면 그때는 유튜브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몰아보기 클립이나 하이라이트 같은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배우 한 명을 인터뷰하면 그 사람의 필모그래피 도장 깨기를 하는 게 정말 힘들었죠. 게다가 주간지니까…(웃음) 진짜 밤새워서 봤어요. 이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분들 인터뷰도 마찬가지예요. 쓰신 작품들을 다 보죠. 그다음에야 그분들의 인터뷰를 살펴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온 분인지 공부하고, 가능한 한 겹치지 않는 질문들을 하려고 해요. 늘 받아온 질문을 저 역시 한다면, 이분들에게 뻔한 대답만을 받게 될 뿐이니까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싶잖아요, 기자라면.

 

작가님께도 망한 인터뷰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음, 없어요. 다만 아쉬운 인터뷰들은 있죠. 인터뷰이가 생각보다 마음을 열지 않아줘서, 조금 더 터놓고 말해주지 않았을 때 그런 감정을 느끼곤 해요. 하지만 망했다고 할 만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녹취가 안 됐다거나.

아, 있어요! 한 번. 그때 생각하면, 녹음이 안 된 걸 알고 너무 놀라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켜서 복기를 바로 다 했어요. 제가 기억하는 모든 걸 다 쓴 것 같아요. 어려서 가능했습니다.(웃음) 다행히도, 그렇게 쓴 인터뷰 기사에 대해 인터뷰이였던 배우가 무척 좋아했고 반응도 좋았어요.

 

아쉬운 인터뷰의 기억은 작가님께 어떻게 남아 있나요?

저는 결코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이 책에는 인터뷰뿐 아니라 인물론도 함께 실려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그 사람을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 시선으로 읽어낸 인물 이야기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인터뷰는 절대로 타인을 알 수 없다는 전제로 관찰한 것들을 제 해석으로 빚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제게 마음을 많이 열지 못해 단서를 주지 않은 분이라 해도 그의 태도, 기분, 혹은 제가 포착한 그의 개성을 가지고 인터뷰를 충분히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죠. 그리고 힌트를 많이 안 주면 그건 그거대로 쓸 만해요.(웃음) 이를테면, 모든 질문에 단답형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말 한마디에 힘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게 캐릭터를 윤색해내는 것도 에디터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상황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편이라 망했다 싶은 인터뷰는 특별히 없습니다.

 

저 역시 남이 인터뷰하는 것을 직접 보는 기회는 드물었지만, 기사라는 결과물로서 인터뷰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주 다른 두 선배의 인터뷰를 보며, 인터뷰에 대한 태도를 배웠고요. 한 분은 가공 능력이 뛰어난 분이고, 한 분은 정말 인터뷰이의 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옮기는 분이었는데요. 두 인터뷰 모두 정말로 다른 장점이 있고, 이들로부터 나만의 인터뷰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얻었던 것 같아요.

저를 전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앞서 언급한 서강준 씨 인터뷰 때 이런 일화도 있었는데요. 기사를 다 읽고 난 후 편집장님이 “이게 정말 이 배우가 한 말이니?”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서강준 씨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철학 이론을 다룬 책을 읽거나 외로움에 대해 이토록 깊은 사유를 보여주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저 역시도 그와 만나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이고요. 하지만 모든 건 실제 서강준 씨의 말이었어요.

 

저는 기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인터뷰이가 하지 않은 말을 거짓으로 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자가 꼭 지켜야 할 윤리이자 인터뷰이와의 약속이고, 독자와 맺은 신뢰죠. 다만 편집은 해요. 그 사람이 한 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거나, A부터 Z까지의 답변을 리듬감 있게 구간 편집하는 등의 일을 하죠. 기자에겐 편집권이 있으니까요. 가짜로 쓰지는 않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건 인터뷰어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인터뷰가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써요.

 

인터뷰 범람의 시대입니다. 전문성은 없지만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인터뷰 콘텐츠가 쉽게 제작되고 있어요. 이러한 콘텐츠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면 인터뷰가 힘을 잃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죠. 언젠가는 저와 같은 지면 인터뷰어와 지면 인터뷰는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셀러브리티나 인플루언서들은 지면 인터뷰는 차치하고, 영상 매체 인터뷰마저 필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잖아요.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면 자신의 SNS 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쓰면 되고, 라이브 방송을 켜서 언제든 원하는 말을 하면 되니까요. 예전엔 이들의 메시지 전달을 기자가 했지만, 지금은 그런 존재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거죠. 영상 매체 인터뷰에 대한 특별한 의견이랄 건 없는데, 잘하느냐 못 하느냐로 콘텐츠의 힘이 정해진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재재 씨나 이승국 씨는 잘하잖아요. 반면 오래된 예능인이 레거시 미디어에서 여전히 하나 마나 한 구태의연한 질문들을 던지는 볼 때는 안타까워요. 지금은 많은 사람이 영상 매체의 인터뷰를 소비하지만, 이 역시도 결국엔 몰락할지도 모르죠. 누구든 자신의 채널을 통해 직접적인 발화가 가능해졌기에, 인터뷰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다고 봐요.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콘텐츠 변화 속에서 작가님은 어떻게 스며들고 계신가요? 프리랜서 에디터로서 여전히 인터뷰를 전문적으로 꾸려가고 계시는 입장에서요. 매체 이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셨나요?

제가 아직 영상 매체 인터뷰를 해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할 수도 있겠죠. 제가 영상 매체에 잘 컨버팅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이것도 편집의 영역이 있으니 충분히 편집점을 잡고 내러티브를 구성한다는 측면에선 지면 인터뷰와 그 성격이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기자가 다듬고 매만진 글을 통한 이야기보다는 직접 대면해 당사자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걸 선호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치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마지막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심정이 되어, 지면 인터뷰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새로운 매체에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인 것 같아요. 작가님을 더 다양한 곳에서 뵐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말로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노잼’일 수도 있어요.(웃음)

 

그건 또 그것만의 매력일 수 있어요. 재미만이 콘텐츠의 가치는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벌써 여러 준비를 하고 계신 걸까요?

아니에요. 지금은 글 쓰는 데만 전념하려고 해요. 물론 예정돼있는 게 있긴 하죠. 한겨레 아카데미에서 강의하기로 했는데, 제 일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졌거든요. 이것도 내년 상반기에는 할 것이고, 팟캐스트나 유튜브 채널에 나가기로 약속한 것이 있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더 새롭게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작가로서도 전혀 자리 잡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은 책으로 많은 분과 만나고 싶어요.

 

작가님의 마음속에 질문을 일으키는 인터뷰이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작품과 행보에서 ‘의외’라는 인상을 주면 확 끌리죠. 예를 들어 심은경 배우가 머리를 훅 자르고 중성적인 스타일로 바뀌었을 때와 같은 터닝 포인트가 생기면 못 견디게 궁금해져요. 한편, 강해 보이는데 약한 모습을, 약해 보이는데 강한 모습을 발견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 인간의 봉제선 같은 모순점을 발견했을 때도 그렇고요. 대체로는 전형성과 정상성에서 비껴나 있는 모습을 볼 때 호기심이 발동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게 작가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질투를 자극하나요?

그렇죠. 질투가 생겨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다 질투가 일지만요.(웃음)

 

작가님께 질투는 어떤 것인가요?

태생적으로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꽤 질투가 많은 아이….(웃음)

 

부정적인 감정인가요?

부정적이기도 하죠. 절대 긍정적이지만은 않아요. 두 얼굴을 모두 품고 있어요. 저는 타고나기로도 질투가 많은 아이였는데, 패션지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그 면이 후천적으로도 강화됐어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음 책에 싣고 싶고요. 제 직업은 끊임없이 괴리를 확인하게 하는 일이에요. 어떤 게 좋은 건지 너무나 잘 알고 그걸 소개하는 일을 하는데, 정작 제 삶에서 그걸 향유할 수는 없죠. 쉽게 말해, 박봉인데 다루는 건 하이엔드, 럭셔리니까요. 허영심이 커질 수밖에요.

 

그런데 이건 비단 제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이 시대는 누가 어떻게 사는지 쉽게 노출되는 만큼, 과거엔 알지 못해 가질 수 없었던 욕망의 문제가 드러나잖아요. 과거 봉건제나 신분제 사회에서는 평민이나 노비가 귀족이나 왕족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온갖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들이 관찰형 예능이나 브이로그를 등을 통해 자신이 어떤 뷰가 보이는 집에 살고 욕실 찬장엔 어떤 치약이 있고 침대 머리맡엔 어떤 디퓨저가 있는지까지도 손에 잡힐 듯이 보여준단 말이에요. ‘내돈내산’인지 협찬인진 모호하지만.(웃음) 그걸 우리는 생생하게 알게 되죠. 가질 수 없는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질투를 키우는 거예요. 그리고 그 질투와 욕망에서 비롯된 소비가 부자들을 더 부자들로 만들고요. 질투는 동시대의 의제라 생각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인터뷰이의 자리에 앉으셨지요. 어떠셨나요?

음…

 

처음이세요?

서면 인터뷰는 한 적이 있는데 대면 인터뷰는 처음이었어요. 굉장히 뜻깊었고, 역시 사람은 역지사지할 줄 알아야 자기 본업을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경험이었습니다.(웃음) 저, 역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 책에서 어떤 인터뷰를 제일 재밌게 읽으셨어요?

 

정서경 작가님과 김윤아 씨 인터뷰요. 엄마가 되고 나서 이 인터뷰들을 읽으니, 이분들의 행간에 저도 모르게 집중하게 됐어요. 저를 투영해 읽으며 좋아한 것이죠.

제게도 독자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가장 공감했던 이야기는 이 책의 마지막에 실은 최은영 작가님의 인터뷰입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말씀해주세요.

최은영 작가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나의 존재가 부적절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스럽다.”(311쪽) 유년기에 이런 감정을 디폴트로 안고 사셨다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삶을 산다는 게 내게 잘 맞는 신발을 신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312쪽) 가고 싶다는 말씀도 하시죠. 그 말에 너무너무 공감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자신이 부적절한 곳에 있는 것만 같고, 나 자신이 부적절한 사람인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나요? 세상과, 나 자신과 불화하면서 모난 곳을 갈아 사회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하고요. 동시에 ‘내게 희망은 없지만 추진력은 있다’는 게일 콜드윌의 말을 인용하셨는데, 이 말씀이 정말 제 마음과, 제 삶과 같았어요. 이 이야기를 독자분들께서도 귀 기울여주시고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중요한 이야기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독자분들을 직접 뵙지 못했지만, 뵐 때마다 어떤 분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는지 계속 질문하게 될 것 같아요.(웃음)

 

그 질문을 방금 받아본 입장으로서, 바꿔 말하면 오늘의 나에 대한 물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모든 텍스트는 어떤 독자가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읽히느냐도 중요하죠. 인터뷰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언젠가는 한국 영화계에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여성 스태프는 능력보다 친화력’ 같은 말을 듣지 않으려 술자리에 나가지 않고, 세 보이려 성을 ‘유’에서 ‘류’로 바꾸고, 아름다움에 대한 집요한 탐구 끝에 칸 영화제 벌컨상까지 수상한 류성희 미술감독님의 이야기가 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 날도 있으면 좋겠네요.(웃음) 우리가 남의 속내, 생애사를 듣고 싶어 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해요. 거기서 어떤 동기를 얻고자 하는 거죠. 그렇기에 앞으로도 당분간 인간이라는 텍스트는 제게 계속 흥미로운 주제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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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이예지>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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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영

읽고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만든 책으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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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