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호퍼의 도시 '뉴욕'에서 나를 발견하다
저는 결국 인생은 자신이 지향하는 인간상을 향해 나아가는 수련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뉴욕 이야기 역시 그 수련 과정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요. 독자 여러분도 각각 자신들의 삶에서 어떤 수행의 단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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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저자

스스로를 벼리고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는 데서 삶을 지탱하는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곽아람은 호모아카데미쿠스의 전형이다. 그런 그에게 직장 생활 14년 차에 해외 연수 기회가 주어졌다. 이전까지 그 흔하다는 어학 연수 한 번 다녀온 적 없고, 해외 여행 외에 외국에서 생활해본 적 없던 그에게 직장을 벗어나 모든 것이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 마주하게 될 루틴 없는 생활은 분명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것이었으리라.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빠르게 몰아치는 도시의 파도에 떠밀리는 기분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그림들, 미술관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술 작품들이 제 품을 내어주며 위로해주었다. 『나의 뉴욕 수업』에서는 뉴욕에 머물며 들었던 미술 수업, 생생한 아트 비즈니스의 세계 등 다양한 경험과 사유를 대도시의 흔적을 담아낸 작품들과 함께 풀어낸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괴테처럼 살겠다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나 호퍼처럼 산 이야기'다"(8쪽)라고 하셨습니다. 괴테처럼 사는 것은 어떤 것이고, 호퍼처럼 사는 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흔이 되기 직전 뉴욕으로 떠나면서 제가 마음에 품었던 건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었습니다. 괴테는 "내가 이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내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라고 했죠. 괴테가 살았던 18세기 유럽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해외 경험을 하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어요. 저는 저의 뉴욕행이 일종의 '그랜드 투어'라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견문을 넓히기 위한 수련이라 여겼죠. 언젠가는 괴테 같은 거인이 되고 싶다는 거창한 야망을 당시엔 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뉴욕에서의 생활이 막상 시작되니, 그런 거대한 꿈은 사라지더군요. 그보다 저의 삶은 뉴욕의 풍경을 관찰하고, 그를 자기 안에서 녹여내며, 그렇게 길어낸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 즉 호퍼와 더 가까웠어요. 사실 호퍼는 "모든 문학 활동의 시작과 끝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내 안의 세계를 통해 재현하는 것, 즉 모든 것을 파악하고, 연관시키고, 재창조하고, 조형화하고, 개인적인 형태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라는 괴테의 문장을 지갑 속에 넣어 다녔습니다.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 쓴 이 구절은 곧 호퍼의 예술적 지향이기도 했죠. 예술가는 자기 자신을 재료로 외부를 재창조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돌이켜보면 저와 호퍼의 지향은 괴테라는 점에서도 결국 닮아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의 뉴욕 수업』은 낯선 곳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되기를 공부한 시간'을 담은 책입니다. 작가님이 마주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나요?

서울에서의 저는 성취 지향적인 인간이었어요. 늘 남의 시선에 신경 쓰고, 어떤 나이에 이루어야 할 과제에 아등바등했었죠. 이를테면 대학 입학이라든가 취업 같은 것 말이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기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에 매달려 있었던 것 같아요. 진취적이고 외향적인 전형적인 기자상과는 제 성정이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회사 일에 자신감이 없었고, 계속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네 명이 함께 사는 셰어 하우스 생활을 했는데 그곳에서의 저는 뉴욕의 뜨내기였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명문대 졸업생도, 유력 일간지 기자도 아니고 그저 '나'로서만 평가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내가 나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인생은 충만하더군요. 그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제가 저의 취약점이라 생각했던 부분들, 내향적이라든가, 우유부단하다든가, 머리가 복잡하다든가 하는 것들을 긍정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을, 성취와 거리를 두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나의 뉴욕 수업』은 2018년에 출간되었던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개정 증보판입니다. 이전 판이 해외에서의 생활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개정판에는 스스로를 교육한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개정판을 작업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염두에 둔 건 에드워드 호퍼와 제 뉴욕 체류 경험의 연관성입니다. 저는 사실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는 호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고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라고 생각했어요. 지나치게 도회적이어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차도남 이미지였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호퍼 그림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고, 호퍼의 그림 같은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니 어느새 호퍼는 자주 보아 정든 이웃집 남자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어느 순간 그냥 제가 되었죠. 그 이야기에 중점을 맞춰보고 싶었어요. 

'호퍼란 과연 어떤 화가인가'에 대한 저의 생각. '호퍼의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숙고.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리얼리즘이 아니라 자기 안의 세계를 재현하는 그 리얼리즘은 나의 글쓰기와 어떻게 닮아 있는가에 대한 질문 등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호퍼의 그림을 주제로 한 원고를 네 편 추가했어요. 기존에도 호퍼 관련 이야기가 많았지만 글을 더해서 책을 끌고 가는 중심축을 호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호퍼 특별전이 서울에서 개막하기도 했고요. 그런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호퍼의 그림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컸던 것 같아요. 미국에 있으면서 곳곳에서 호퍼 그림들과 마주쳤고, '미국은 호퍼의 나라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그렇게 우연히 만나 한 눈에 대한 그림들에 대해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는 열망을 계속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책머리의 에피그램에 더한 호퍼의 자화상까지 모두 다섯 점의 호퍼 작품이 개정판 작업에서 더해졌습니다. 총 열한 점의 호퍼 그림이 소개된 셈이죠.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에도 수록했던 호퍼 생가 및 스튜디오 탐방기와 새 원고들이 함께하면서 제 뉴욕 이야기에 드리운 호퍼의 영향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교육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어요. 귀국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 1년간 내가 배운 것들이 참 많았고, 그 경험이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데 자산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교육의 측면에서 그 삶을 다시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책에 에드워드 호퍼와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호퍼는 그냥 나였다'(10쪽)라고도 하셨는데요. 호퍼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된 가장 강렬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나이액의 호퍼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호퍼하우스 벽에 여덟 살의 어린 호퍼가 뒷짐 지고 강을 바라보는 자기 뒷모습을 성적표 뒷면에 펜으로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습니다. 세상과 이질감을 느끼는 어린아이의 고독이 묻어나는 그림.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은 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런 아이였거든요. 지나치게 큰 키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호퍼처럼, 저 역시 항상 이 세상의 이방인이라 느끼는 아이였습니다. 세상을 겉돌 수밖에 없는 기질이 저를 쓰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호퍼 역시 그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질감을 느꼈어요.



뉴욕에서의 시간이 작가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일단 해외에서 살아본 것이 처음이었으니까요. 낯선 세계에서 낯선 언어로, 정말로 낯선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았던 경험이 제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전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저기' 혹은 '거기'에 얼마든지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하니까요. 용기가 있다면 그 삶을 좇아갈 수도 있는 거고요. 그 전의 저는 어떤 틀 안에서 벗어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었어요. 사회의 룰에 맞춰 살아가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는데, 뉴욕에서 돌아온 이후로 좀 대담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어요.

최근 한창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 전시'에 다녀오셨나요? 다녀오셨다면 서울에서 다시 만난 호퍼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전시가 개막한 그 주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현대미술관(MoMA)에서 자주 보던 작품들, 이를테면 『나의 뉴욕 수업』에도 글감으로 삼은 「뉴욕의 실내」라든가 「밤의 창문」 같은 그림들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실에 걸려 있는 걸 보니 반갑더군요. 뉴욕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와 서울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와주어서 고마워!"라고 손 마주잡고 반갑게 인사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나의 뉴욕 수업』을 펼쳐 볼 독자분들께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결국 인생은 자신이 지향하는 인간상을 향해 나아가는 수련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뉴욕 이야기 역시 그 수련 과정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요. 독자 여러분도 각각 자신들의 삶에서 어떤 수행의 단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의 뉴욕 이야기가 독자분들의 수련에 조금이나마 즐거움과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쓴 이야기이거든요.




*곽아람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202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출판팀장을 맡게 됐다. 어린 시절 동화책과 미술책 속에서 키워온 꿋꿋함과 상상력은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미술경영협동과정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에 2016년 NYU IFA에서 미술사학과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으며,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의 아트비즈니스 서티피컷 과정을 마쳤다.




나의 뉴욕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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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