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여자)아이들의 6번째 미니 앨범 은 조금 특이한 포맷을 표방하고 있다. 이것은 '오리지널 시리즈'라 이름 붙인 미니 시리즈 이고 선공개곡인 'Allergy'가 1화, 타이틀곡인 '퀸카 (Queencard)'가 2화라는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핫핑크 색감과 SNS로 지배하는 하이틴 무비다. 여러 모로 궁금증을 낳는다. 멤버들이 각기 배역을 맡아 일정한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는 케이팝의 전통적인 드라마타이즈와 이 '오리지널 시리즈'는 어떤 개념적 차이를 갖는가. 'TOMBOY'와 'Nxde'의 다음 행보로서 핑크빛 화려한 캠퍼스 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적어도 2세대 이후 케이팝 걸그룹의 101과도 같았던 칙릿(Chick Lit)을 지금 왜 선택했는가. 에스파마저 (비교적) 현실적 공간으로 뛰어들어와 파티튠을 발매하는 걸 보면, 올해 초까지 치열했던 걸그룹들의 자존감 테마 대결이 저물고 코로나19 이전의 여름으로 회귀하는 흐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작품이 끌어오는 것들의 목록이다. 그중에는 하이틴 로맨스, 메이크오버, 파티장의 댄스 대결 등 정말 닳고 닳은 것들이 있다. 또한, OTT 플랫폼 전쟁 속의 키워드인 '오리지널 시리즈'나, Y2K와 SNS의 결합, 동경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서 킴 카다시안이나 아리아나 그란데의 호명(셀럽파이브의 데뷔가 2018년이다) 등, 애매하게 낡을락 말락한 것들도 있다. 전자가 퇴행적이거나 오히려 그리울 수도 있는 것들이라면, 후자는 '리바이벌' 되기에는 너무 최근이고 선뜻 올라타기에는 살짝 뒤쳐진 것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사어가 됐을 줄 알았던 '퀸카'도 애매하게 통속적이다. 그런가 하면 여성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발화하거나, 속옷이 빈번하게 등장하거나, 케이팝의 '어두운 면'의 대명사이자 금기인 성형 수술을 뮤직비디오의 모티프로 삼아버리는 등, 케이팝 기준에서는 꽤나 급진적인 대목들도 공존한다. 이같은 부조화는 'TOMBOY'에서 검열음 처리되어 '불렀지만 부르지 않은 것'이 된 욕설처럼 의미의 간극을 낳는다.
그렇다고 아무 거나 되는대로 집어삼킨 결과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미니 앨범의 'Queen Ver.'이 내지를 낱장으로 카드 묶음으로 구성하면서 아예 54장의 (대형) 플레잉 카드로 '퀸 카드' 콘셉트에 조응하는 식의 집요함 때문이기도 하다. 또는, 수술대를 둘러싼 댄스 장면처럼 충격적이고도 신선한 대목들 때문이기도 하다. 'Cat Ver.'은 스프링 제본인데, 케이팝의 흔한 스크랩북 포맷이 스프링 노트 기믹을 만나 하이틴 무비의 소품을 떼어온 것처럼 느껴진다. 무선 제본이나 중철 제본에서는 누리기 쉽지 않은 펼침면의 시원한 말끔함도 아낌 없이 보여준다.
부조화스럽게도 조화된 부조화. 종종 (여자)아이들의 작업은 혼란을 준다. '대중적'인 시대 감각인지, '메타버스 서울'처럼 대충 핫하다는 것들을 대충 긁어오는 것인지, 낡은 것들을 전복적으로 재창조하고자 함인지(사실 칙릿에 기댄 케이팝은 그렇게 되길 기다릴 만했다) 말이다. 또는 얄팍한 건지 치밀한 건지, 경박한 건지 심각한 건지 말이다. 이것은 대중적 접근성과 어르신들을 위한 아이캐치(그렇다, 케이팝에는 그런 사정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진지한 주제 의식 사이를 줄타기하며 기믹과 메시지를 뒤섞는, (여자)아이들 특유의 감각이자 방법론으로 간주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케이팝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와 형태적인 차이를 뚜렷이 제안하지는 않는 '오리지널 시리즈'가 새로운 의미를 얻는 것도 그같은 전제에서다. 마케팅적 의미도 있지만, 스토리에 한층 주의를 환기하기도 한다. 뮤직비디오에서 서사가 갈아입는 옷 같은 콘셉트이자 부가적인 즐길거리라면,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는 그것이 핵심이길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돌을 향한 시선을 주제 삼은 'Nxde'에 이어서 볼 때, 이것은 케이팝의 '콘셉트'와 진심 사이를 다시 질문하게 하기도 한다. 껍질에 껍질을 덧댐으로써 그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아이러니를 통해서 말이다.
선공개곡까지 5분 30초의 플레잉 타임을 할애한 자기 혐오와 클리셰적 '퀸카'의 대립은 '퀸카'의 마지막 리프레인에서 무너진다. 뮤직비디오조차 반전을 예고하지도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전혀 반대되는 메시지를 흘려놓는다. 분량도 발언의 수위나 깊이도 어마어마하지는 않다. 전작들을 생각하면 훨씬 선언적이고 과감한 표현도 가능했으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상정할 수 있음에도. 그것이 아쉬울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여자)아이들의 방식일지 모르겠다. 모르고 넘어가거나 헷갈려도 그만이라는 듯이 말해버리는 것.
클로징 트랙 '어린 어른'은 부모까지 호출하며 못나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고 채찍질한다. 자라며 기대한 어른의 상과 자신의 부조화를 말하는 아이돌의 노래는 적잖이 있고, 특히 보이그룹의 경우 40대들도 자주 자신에게 무책임하게 부여하는 '철 없음'이라는 표현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짓궂고 가혹하며 때로 구질구질한 '어린 어른'은 '퀸카'로 시작하는 이 앨범에서 전혀 다르게 들린다. 이 곡이 말하는 불완전성마저 끌어안는 자기 긍정은, 칙릿이 도달한 어떤 지점과도 연결된다. 어떤 인물이 갖는 통념적인 '여성성'마저 그의 인간으로서의 입체성임을 상기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퀸카'는 칙릿을 선택했고, 그 마지막 리프레인은 2023년에 돌이키는 칙릿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일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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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