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승일은 학교 폭력 예방·근절 운동가이다. 시를 쓰기도 하지만 시 쓰기의 바깥에서 직접 학생들을 학교 폭력에 대한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고, 학교 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의 고통을 공동체적 공감의 영역으로 확대하는 실천주의자이다. 김승일 시인은 이번 시집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에서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따돌림과 괴롭힘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 갑을 관계, 군대에서의 가혹 행위와 성폭력 등 다양하고 구조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한다. 학교 폭력을 넘어 군대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그는 폭력이 생육되고 번성하는 폭력의 순환 구조를 짚어내며 되풀이되는 폭력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한편, 방관과 침묵의 공범 의식 뒤에 숨어 있던 우리에게 반성과 새로운 화해를 요구한다.
두 번째 시집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를 출간하셨어요. 시인님은 사회 참여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시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의 창작 배경은 어떠했나요?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한 이후에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어요. 시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거든요. 인간이 인간을 폭력으로 억압할 수 있는 현실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이 보였어요. 숨이 찼습니다. 숨을 쉴 수 없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들이 저를 다시 한번 억누르기 시작했어요.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로부터 폭력은 시작됩니다. 폭력은 멀리서 오는 게 아니에요. 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왜 이런 폭력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일까 너무나도 궁금해졌어요. 투쟁의 방식으로 삶을 다시 한번 간절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실천을 했습니다. 시를 들고 찾아갔어요. 학생들을, 사람들을, 가해자를, 피해자를, 방관자를, 가담자를, 어른들을, 아이들을,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그리고 그 속에서 폭력의 근원은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 것일까 자꾸자꾸 파헤쳤어요. 파헤쳐졌어요. 정말로 그것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의 폭력과 육탄전을 벌여도 좋을 만큼 저는 간절한 상태에 놓여 있었어요. 일종의 폭력과의 투쟁 선언이었어요. 한 사람의 말이 한 사람을 정확하게 죽일 수도 있단 걸, 생활 속에서 재차 경험할 수 있었지요. 학교에서 회사에서 수많은 일상에서 그런 일들이 지뢰처럼 터집니다. 우리 발밑에 그런 것들이 심겨져 있어요. 밟으면 언제든지 터질 수 있지요. 그런 지뢰의 현장으로 걸어들어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겁이 났지만 용기를 힘껏 냈던 시간들이었어요.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한 시들이 심도 있게 드러나 있었어요. 학교 폭력은 군대 폭력, 대학원 폭력과 연관되어 있음을 구조적으로 형상화 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육'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각 폭력의 연결 고리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요?
제 인생에서 맨 처음 사회적 폭력을 경험한 곳이 학교였어요. 학교를 졸업한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어찌 보면 학생들은 아픈 삶을 처절하게 배우고 있는 거예요. '교육 시스템 안에서 무수한 폭력 경험하기'라는 특수한 교과목이 학생들의 학습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저는 느꼈어요. 폭력의 경험을 강화시키는 거예요.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학생들은 방관자와 가담자가 될 수 있거든요. 이런 현실이 어느 순간 외면할 수 없는 끔찍한 소란으로 다가왔어요. 고통 받고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어 고통스러웠어요. 바로 보기로 결심했어요. 두 번째 시집에 들어갈 「시인의 말」이 시의 윤곽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나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구나. 불안과 공포마저 차렷 자세였던 과거를 대면하기로 했어요. 가해와 피해가 들러붙은 그 순간으로 저는 돌아가 거세게 회전하는 죽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보기로요.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나온 모든 학교들로요. 그 시절의 군대로요. 그 시절의 대학원으로요. 하나의 미로에서 또 하나의 미로 속으로요. 다시 한번 처절하게 길을 잃어버린 심정으로 새로운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심정으로요.
제목에 '미로'가 두 번 들어가는데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제 시에서 서로 충돌하는 큰 주제가 두 개 있습니다. 두 개의 미로입니다. 하나는 사랑이고요. 다른 하나는 폭력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입구도 출구도 찾기 어려운 미로에 갇힌 것 같습니다. 심지어 두 개의 미로가 얽혀 있습니다. 미로의 출구를 찾으면 다른 미로의 입구와 만납니다. 학교 폭력은 군대 폭력으로, 군대 폭력은 다시 대학원 폭력과 일상의 폭력으로 연결됩니다. 미로와 미로 속에서 간절하게 탈출하고자 하는 갇힌 자의 거친 호흡을 듣는 일 그리하여 그를 미로 바깥으로 최대한 빨리 꺼내어주는 일, 시가 해야 할 일 아닐까요. 두 번째 시집 제목은 제 삶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의 효용에 대한 질문과 대답 모두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을 가지고 학생들과 많이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지면(紙面)에서 지면(地面)으로 확장하는 시 쓰기를 추구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두 번째 시집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여러 학교에서 시 낭독회를 하기 시작했어요. 첫 시집 이후에 새롭게 해줄 이야기들이 많이 쌓여 있었어요. 학생들에게 제 시가 닿았으면 했어요. 시의 개념을 확장하고 싶었어요. 시가 연약한 존재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시는 종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중·고등학교에서 시집을 몇 십 권씩 사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시집을 읽어 내려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꿈결에도 들릴 정도였어요. 수많은 감동을 경험했어요. 한 사서 선생님은 자신의 딸도 학교 폭력으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하셨어요. 그 눈물에 녹아 있는 슬픔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낭독회가 끝나면 학생들이 제게로 와 말을 건네곤 해요. 시를 통해 우리가 진심으로 만났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책상에 엎드려 있는 친구들을 살펴볼게요. 친구들의 외로움에 귀를 기울일게요."
"시인님이 하고 계시는 일들에 깊은 공감을 받았어요. 학교 폭력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시를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껏 무수한 학폭 강연을 들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마음이 움직였어요."
"시인님의 시 낭독 강연을 전국의 학생들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해준 응원들이에요. 시 쓰다가 많이 쓰러지곤 했어요. 폭력을 받아내느라 숨이 차서요. 심장이 아파서요. 그런데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다시 힘이 납니다. 제가 사랑하는 시로, 제가 사랑하는 학생들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그들은 저처럼 아프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에요.
시집에 '심장'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이번 시의 리듬과 호흡에서 부정맥이나 심계항진의 신체 감각을 읽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심장은 우리의 정신 그리고 양심과도 연결되어 있지요. 이번 시집에 이런 심장의 감각들을 틈입시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길을 잃고 울며 절망하는 시간이 제게도 있었지만, 그런 처지에 놓인 타인들을 수없이 봤어요. 학교 폭력의 심각한 피해자가 되어 옥상 난간 위에 올라선 학생들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어요. 그들의 심장은 정맥으로 뛰지 않아요. 아무도 그들을 심계항진 바깥으로 꺼내주지 않아요. 이런 심장 박동들이 이번 시집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서로 충돌합니다. 부정맥의 파형을 그려낸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충돌에서 생겨나는 호흡 곤란의 섬광들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기록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른 것임을 알면서도 쉬쉬할 때 생겨나는 고통이 있지요. 우리의 양심이 녹아내리는 리듬을 우리 심장은 기억하고 있어요. 양심의 심부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폭력적인 상황을 보고도 아무도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리 생활 가운데 많습니다. 그쯤 되면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폭력인지 혼란스러워집니다.
제 시집 속의 언어들에 반사되어 나오는 다채로운 통증 감각의 섬광들은, 어찌 보면 그렇게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양심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강심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신체의 부정맥은 전극도자절제술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숨을 틀어막는 여러 폭력들은 어떤 방법으로 절제해내야 할까요? 회생 불가능의 순간이 오기 전에 우리 모두 어루만져야 해요. 자기 자신의 심장부터요.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 「모든 사랑의 시작」이 인상적입니다. 이 시는 앞서 말씀해주신 사랑과 폭력에 대한 주제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요. 핵심적인 시상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작품 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폭력이 아니었듯이... 폭력의 반대말은 사랑이 아니었고. // 사랑의 동의어는 폭력이었다지. 폭력의 동의어가 사랑이었다고.
이 구절을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보통 '사랑≠폭력'이라는 공식이 우리에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사랑=폭력'이라는 공식을 새롭게 제시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개념이나 원리가 현실에서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대다수의 폭력은 전혀 모르는 인간관계에서 형성되지 않아요. 오히려 가까운 관계 안에서 다양한 층위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경험한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였어요. 절친했던 친구들로부터 끔찍한 괴롭힘이나 폭행을 당했던 것이지요.
요즘의 학교 폭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 네가 좋아서 그랬어'라는 가해자의 말은 피해자가 듣기에 얼마나 소름이 끼치나요. 좋아함의 의미,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가 실제의 행동으로도 진실하게 전해질 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으로 기능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랑이란 말이 어떻게 트라우마나 자살 같은 의미와 연결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시는 일갈합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성을 착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어마어마했다지. 사랑이라는 말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첨단의 기술. 무섭게 경험했다지 사랑한다는 말
인간의 얼굴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요? 진화학적인 원리를 시적으로 비틀어봤어요. 코가 생겨난 다음에 우린 폭력의 악취까지 맡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요. 서로에게서 폭력의 악취가 지독하게 나고 있기에, 코가 완성된 것이라고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 함께 처절하게 생각해봐야 해요.
마지막으로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를 읽을 독자 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시집 속에 수록된 시들을 쓰면서, 또 묶으면서 시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시가 존재를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요. 교활하면서도 무지막지한 여러 폭력에 비하면, 시의 힘은 미약하다고 해요. 바람 앞의 촛불처럼요. 그러나 미약한 빛은 어둠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요.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활자들이 있어요. 나와 같은 마음들이 있구나. 또, 나와 다른 마음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살아 움직이는구나. 그런 걸 읽어내고 난 후에야 사랑처럼, 다시 써지는 순간들이 있다고 믿어져요. 그럼 그 미약할지라도 밝아진 순간을 우리는 시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각자의 사랑이라고 호명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해요. 내가 발견한 시적인 것들이 너의 시적인 것들을 안아줄 수 있는 곳으로요. 그래서 시집의 결론부에 「시는 시를 짓밟지 않는다」 라는 작품을 위치시키게 되었어요. 시가 가야할 곳이 아닌가 싶어요. 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사랑을 짓밟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 일상이, 이 지구가 폭력으로 점철되고, 우리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짓밟는 일은 왜 자꾸 일어날까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에요. 아름다움이 다종다양하기 때문이에요. 이상하지요? 사랑이 많아서 우린 슬퍼요. 사랑은 사랑을 짓밟지 않아요.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재고해봐야 할 시절입니다.
*김승일 모든 이의 마음 속에 시가 있다고 믿는 시인이다. 2007년 『서정시학』 신인상 시 부문으로 등단했고, 저서로는 시집 『프로메테우스』,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와 낭송시집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가 있다. 현재 각 지역의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동네 책방에서 시 낭독회와 시 창작회를 통해 학교 폭력 예방·근절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2023년 노작홍사용문학관 상주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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