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문해력> 두 번 세 번 읽었는데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모바일 기기 화면으로 읽어서 그런가? 나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데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말라는 피드백을 받는다. 지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아니, 근데 이 계약서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쓰여 있는 거야? 별개의 상황 같지만 실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고도로 복잡한 텍스트를 읽고 쓰면서 살아가고, 우리가 이해한 텍스트들은 소통의 기초가 된다. 3월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어제보다 오늘 더, 문해력과 언어 감수성을 키워보자! |
"요즘 애들은 이 단어 뜻도 모른다던데, 진짜야?"
1020의 문해력 이슈는 요즘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화두이다. 지난해 한 카페의 사과문에 쓰인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는 문장을 두고 벌어진 SNS 반응이 문해력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심심(甚深)한'의 뜻을 동음이의어인 '지루하고 재미없는'으로 해석한 네티즌이 적지 않았기 때문. 거기에 '사흘', '고지식', '이지적' 등의 단어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제보 아닌 제보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미디어는 아예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문제로 정의하고, 다양한 교육 분야 전문가의 의견과 분석을 쏟아내는 중이다. '고지식은 높은 지식(高知識)? 청소년의 문해력 실태... 충격!' 이런 뉘앙스로 말이다. 가만 보면 한자어의 비유적인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은, 기성세대의 우려 섞인 시선 속에 '요즘 세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렇다면 '진짜 요즘 애들'은 문해력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캐릿> 에디터로 근무하며 온·오프라인 속 Z세대를 관찰하고 이들의 트렌드나 문화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 다양한 Z세대와 만나며 뾰족한 트렌드를 파악해야 하는 직업인 만큼 <캐릿>은 자체적으로 약 150명의 Z세대를 모은 '캐릿 1020 자문단'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따끈따끈한 일상 속 유행을 제보받기도 하고, 이와 관련한 경험이나 생각을 이야기해 줄 인터뷰이를 구한다. 공적인 인터뷰 외에도 자문단이 자유롭게 떠들 수 있는 '수다 단톡방'에 들어가 그들과 익명으로 대화를 하거나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일회적인 문답을 떠나 1020의 생생한 라이프를 엿볼 수 있어 매번 큰 도움을 받는다. 이들에게 '문해력 이슈' 논란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구하니 고맙게도 10명이 넘는 자문단이 입을 열어주었다. 이 대화에서 편견을 한 꺼풀 벗고 Z세대의 문해력 이슈를 바라볼 몇 가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두 명의 고등학생 인터뷰이가 내게 해준 말이다.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일부 사례를 Z세대 전체로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1020의 평균적인 문해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EBS 교양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을 비롯한 여러 기관의 조사 결과로 드러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어휘력은 물론이고 장문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점점 저하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청소년기부터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인 만큼 그림과 영상을 통해 집약된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워낙 익숙한 탓이다. 나만 하더라도 글이 조금만 길어지는가 싶으면 영 집중이 되지 않아 '3줄 요약'을 보러 댓글 창으로 피신해 버린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현상을 '옳다, 그르다'의 문제로 쉽게 단정 짓는 것이 맞을까? 앞서 말했듯, 청소년이 소비하는 매체는 과거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고, 앞으로 더욱 다양화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신문과 잡지 이후에 포털과 SNS가 등장했고, 이제는 그 자리에 OTT, AI, 메타버스 등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으니 말이다. 적절한 매체를 취사선택하며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시대의 변화로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나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 시점에서 '언어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자어가 한글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활자가 수많은 미디어의 근간이 되는 만큼 문해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이견은 없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한자어나 용어는 세대에 맞는 직관적인 표현으로 교체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혹시 그런 적 없는가? 공문서나 계약서를 읽는데 무슨 뜻인지 한번에 파악이 안 되어 고개를 갸우뚱해 본 경험, 혹은 인터넷에 검색어를 몇 번이고 바꾸고 나서야 내용을 이해하게 된 순간. 많은 사람이 문해력 저하의 해결책으로 '독서'를 꼽고 있고 나도 이에 동의하지만, 과연 권장하는 수준으로 독서량을 늘린다고 해도 금융 거래 관련 약관이나 전월세 계약서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법·경제 분야에서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는 듯하다. 가장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임에도 낯설고 까다로운 용어가 높은 진입 장벽을 만들어낸다. 최근 사회·경제 이슈를 쉬운 언어로 설명해 주는 뉴스레터가 속속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꾸며 UX의 질을 높이는 서비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일례로,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는 "1,000원 송금이 완료되었습니다."를 "1,000원 보냈어요."라는 문장으로 바꾸었다. 이에 대해 20대 대학생인 한 인터뷰이는 "관성적인 한자어 사용이 꼭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검색하는 과정 때문에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문해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변해 가는 시대상을 고려한 교육적 장치와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나를 비롯한 1020 인터뷰이가 문해력 논란에 꼭 필요한 해결책으로 뽑은 건, 바로 '세대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문해력을 논하는데 갑자기 웬 존중?' 싶을 수도 있겠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는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전체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어 하나에 꽂혀 상대를 비난하는 경우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심한 사과' 역시 맥락을 고려했다면 '지루하고 재미없는'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거다. 한쪽은 왜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쓰냐며 지적하고, 다른 한쪽은 이런 단어도 모르냐며 언성을 높인다.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적어도 그 뜻을 알아보려는 태도, 특정 단어를 알게 되는 시기는 각자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너그러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자세가 있었더라면 '심심한 사과' 역시 이렇게까지 불거질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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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혜(<캐릿> 에디터)
트렌드 미디어 <캐릿> 에디터. 매일 Z세대의 트렌드를 좇으며 '요즘 세대'를 다룬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퇴근 후에는 1인 크리에이터로서 여러 기업과 협업하며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