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예술계의 뛰어난 기획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신간 『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고유한 스타일과 새로운 미술 언어로 전 세계 불멸의 화가가 된 30인의 대표적인 그림을 소개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리다 칼로, 파블로 피카소, 에드바르 뭉크, 구스타프 클림트 등 불멸의 화가부터 제임스 앙소르, 헨리 푸셀리, 아르놀트 뵈클린 등 아직은 생소하지만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이들까지... 이 화가들의 그림에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인 미학적 가치가 담겨 있다. 독자들은 저자의 융합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술 읽기'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는 안목을 기르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신간을 내셨습니다.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게 종종 묻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작품 가치를 판별하는 안목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미술과 친해지려고 전시회를 가거나 관련 서적을 읽는데도 안목이 생기지 않으니 답답한 심정에 제게 자문을 구하는 거죠. 이 책은 그런 분들을 생각하고 썼습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무조건 많은 작품을 보는 것보다 좋은 작품을 선택해 제대로 보는 방법을 훈련하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배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꾸준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작품을 보니 안목이 길러지지 않는 겁니다. 이 책을 통해 관객 스스로도 감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매우 설득적인 제목입니다. 『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미술 감상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뿐더러, 훌륭한 작품과 평범한 작품을 가려내는 능력이 단편적 지식, 이론, 경험 등을 통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장단점을 구별해내는 비평적 안목을 지녀야만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이 가능한 것입니다. 미국의 철학자 '알바 노에'는 마치 이런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뭔가를 보는 행위 자체에도 엄청난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 당신이 미술관에 가서 벽에 걸린 어떤 그림을 관심 있게 봅니다. 그 그림은 당신에게 따분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 그림을 찾아 돌아다니고 그 그림에 대해 생각하며, 벽에 걸린 설명문을 읽고 친구와 함께 토론한다면, 갑자기 그 그림이 하나의 대상으로 또렷이 보이게 됩니다. (…) 이렇게 어떤 그림에 대해 알게 될 때 당신은 그 그림에 시각적으로 집중하게 됩니다. 결국 이해하고 생각하는 덕분에 당신은 그 그림을 이해하게 됩니다.
미술 감상의 즐거움을 느끼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지속적인 배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관장님의 글에는 그림에 대한 일반적 해설에 그치지 않습니다. 역사, 철학, 심리, 나아가 경제경영까지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적 사고와 통찰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십니까?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이 무척 많았는데 독서는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제 독서 습관을 말씀드리자면, 한 가지를 고집하기보다는 같은 주제의 책들을 함께 찾아 읽는 '네트워크 독서법'을 활용합니다. 미술 관련 서적 이외 다른 분야의 책들을 많이 읽게 된 거죠. 또한, 미술관 전시를 기획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사비나미술관은 개관 이후 27년 동안 융합, 창의, 변화, 혁신을 미술관 운영의 핵심 목표로 삼으며 타 분야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기획전들을 선보이며 융복합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초 미술과 수학을 융합한 <미술과 수학전-2005>, 예술과 3D프린터의 융합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 기획전 <3D프린팅&아트-2014> 스마트 시대 셀피 현상을 새롭게 탐구한 <#셀피(selfie)–2017>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와 윤동주기념사업회 협력으로 윤동주의 시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융복합한 최초의 한글 전시 <빅데이터가 사랑한 한글-2020> WWF(세계자연기금)과 협력으로 생태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고상우-FOREVER FREE-2022>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이런 융복합적 기획전들을 준비하면서 융합적 시각과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겁니다.
책에는 위대한 화가 30명과 그들의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들 중 이들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책에서는 고유의 스타일과 새로운 미술 언어를 고안한 창조적 작가들을 선택해 소개합니다. 풀이하자면 '특별한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작가, 그리고 그렇게 사물을 보는 방식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걸작을 선정해 독창적 화풍과 표현 기법, 혁신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느껴보는 겁니다. 예술 작품의 이해가 쉽지 않고 비평적 안목을 갖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훌륭한 예술가일수록 자신이 개발한 고유의 스타일과 독창적 언어를 사용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독창적 스타일을 개발한 30명 화가들의 대표작을 선정해 영감을 받았던 최초의 아이디어와 창작 동기, 시대적 배경, 독창적 화풍과 표현 기법을 구현한 작업 과정과 후세에 미친 영향력, 그들의 혁신성이 미술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으며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비교 분석하면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대상이자 기쁨이 원천이 되는 특정 장소 '토포필리아'를 들어 앙리 마티스와 그의 작품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토포필리아는 '장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topos'와 '사랑'을 의미하는 'philia'가 결합한 합성어로, 중국 출신 지리학자 이 푸 투안의 저서 『토포필리아』 에서 처음으로 사용됐습니다. 특정 장소에 정서적 유대감과 애착을 느끼는 장소애(場所愛)는 창조성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토포필리아는 특정 장소를 가리키지만, 야생 동물이 상처를 입었을 때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은신처와 같은 공간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공간이 어떤 곳인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치유의 장소는 사람의 지문만큼이나 각기 다르니까요. 산, 바다, 강, 숲, 오두막, 텃밭, 옥상, 정원, 종교 시설 등의 공간뿐만 아니라 책, 음악, 영화, 게임, 음식, 친구, 반려동물 등 비공간적인 대상까지도 휴식과 평안, 치유의 공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어요. 그 중 굳이 고른다면 저의 토포필리아는 바다입니다. 어느 바다도 다 토포필리아에 해당됩니다.
전시를 관람하기가 예전보다 많아졌고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술관은 낯설고 그림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낯섦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술을 쉽게 감상하는 비결은 없습니다. 순수 예술은 대중적이지 않아요. 관객이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미술 작품은 예술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일상 언어가 아니라 시각 언어로 표현합니다. 일반인의 경우 예술 언어를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즉각 예술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예술가의 생각이나 작품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미술 사학자이자 비평가인 '마테오 마랑고니'는 열정, 지성, 감성 세 가지를 모두 갖추지 않으면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이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쓴소리를 합니다. "각각의 예술은 끈질긴 공부와 수고를 치르는 사람만이 음미할 수 있는 독특하고 고유한 언어를 지니고 있다"라고 말이죠.
오늘날 관객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미술관을 방문하고 그 시설을 이용합니다. 단지 전시된 작품만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물이나 소장품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문화 행사에도 참여하기 위한 다양한 목적으로 미술관을 찾습니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미술관에 와서 전시를 관람한 후 각자 느낀 점에 대해 말하거나 미술관 아카데미에 등록해 전문가들로부터 강의를 듣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예술가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영화 <진주귀걸이 소녀>는 베르메르의 독특한 창작 방식이나 물감 사용법,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와 후원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저작 활동과 전시 기획, 미술관 운영까지 매우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사비나미술관은 오는 5월 융복합 전시 기획의 경험을 토대로 K-뮤지엄으로서의 도약을 위해, 한복을 주제로 하는 <예술 입은 한복> 기획전을 개최합니다. K-아트를 통해 전통 한복의 의미를 현대인이 공감하고 흥미로운 감상이 가능한 현대 미술 콘텐츠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 가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2편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화가와 명작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제가 2021년 11월에 창립된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시저연이 탄생한 배경은 그동안 시각 예술 분야에 대표성을 가진 공신력 있는 저작권자의 권익 옹호 및 미술 문화의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디나 승자독식의 사회이지만 미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위 몇 %를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생계를 꾸리기도 버거운 상황입니다. 저작권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리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미술 작품의 저작권은 작품을 구매한 소장자가 아닌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소유권과 저작권은 별개의 개념인데도 이를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미술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소장품 복제, 전시권 등에 따른 혼란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권리 주체로서의 창작자의 지위를 인식시키는 한편,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과 책임 강화에 저의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이명옥 한국 문화·예술계의 뛰어난 기획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이며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늘 새롭고 독창적인 시선을 견지한 전시 기획으로 호평을 받아왔으며 수학, 과학 등 다른 학문과의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전시와 교육, 저작 활동을 통해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힘써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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