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 힘든 일이 있으면 강해지기도 하고, 어떤 식의 변화를 겪으면서 성장할 수도 있을 텐데요. 생각해보면 그 힘든 일이 없었어도 변화는 했을 것이고, 좀 더디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강인해졌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늘 순탄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될까, 생각하면서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프랑소와엄 : 그래서 이번 주제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비벡 슈라야 저 / 현아율 역 | 오월의봄
저자는 캐나다의 예술가예요. 음반도 내고, 시집도 썼고요. 이 책은 저자의 첫 번째 에세이입니다. 좀 더 자세한 저자 소개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저자는 인도 이민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요. 트랜스 여성입니다. 그러니까 비백인이고, 퀴어이고, 예술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쓴 첫 번째 에세이의 제목이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인 거죠. 이게 너무 강렬한 거예요. 책을 보자마자 바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책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 내게 두려움을 가르친 것이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다음 문장도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로 시작을 하는데요. 책의 모든 글이 그렇게 시작하는 건 아니지만요. 문장이 되게 강렬하잖아요. 읽으면서 마야 리 랑그바드의 『그 여자는 화가 난다』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아마 이 방식으로만 쓸 수 있는 치열함, 현재성, 뜨거움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 책에서 두려워하는 '남자'는 남성 성별 자체를 가리키는 건 아니고요. 그보다는 남성적인 문화 전반을 일컫는 것이에요. 저자가 일상에서 매일같이 이 남성적인 문화로 인한 손상을 경험하잖아요. 이 손상이 평생에 걸쳐 쌓여왔기 때문에 남자들이 두려운 거죠. 아시아인이고 여성인 저는 저자의 이런 두려움에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냥 보통의 사람이고, 행인인데도 내가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겪은 어떤 남성적 문화의 폭력성들이 떠올라서 남자들이 무서운 거거든요. 그런 종류의 두려움에 대해 그런 두려움 느낄 필요가 없다거나 피해 의식이 심하다고 말하는 건 그 두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일종의 특권층에서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이 책은 '남성다움', '여성다움'처럼 사회가 쌓아온 기존의 개념에서 우리 모두가 벗어난다면, 그러니까 나 자신을 그냥 나의 잠재력을 실현한 원형적인 존재 그 자체로 존중한다면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 물으면서 끝나요. 저는 그 질문을 읽으면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거든요. 흔히 '내가 이래도 될까?' 이런 생각 자주 하잖아요. 여자인데 이래도 될까, 남자인데 이래도 될까, 어린인데 이래도 될까, 어른인데 이래도 될까, 30대인데 이래도 될까, 50대인데 이래도 될까, 등등. 그럴 때,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나 자신으로 행동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책이어서 정말 좋았어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정해나 글, 그림 | 놀
이 책을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엄청나게 칭찬을 하셨어요. 안 읽어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세 권을 다 읽었습니다. 만약 작년에 이 책을 읽었다면 2022년 올해의 작품이 됐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저에게는 무척이나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독서는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데 굉장히 큰 가치가 있는 것 같고요. 책 속의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이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는 점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이 책은 그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책이더라고요.
제목을 보고 성경이 생각나는 분도 계시겠죠. 그리고 이 작품에는 성소수자가 등장하거든요. 그렇지만 이 책은 개신교 공동체와 인연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다 끌어안는 책이에요. 『요나단의 목소리』는 그냥 우리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열려 있는 세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작품이었어요.
여기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을 해요. '의영', '선우', '다윗', '주영'입니다. 그 중 '의영이'의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요. 이들의 관계는 이래요. 의영과 선우는 기숙사가 있는 기독교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두 사람이 공교롭게 룸메이트가 된 거예요. 의영이 공부하려고 이 학교에 진학했다면 선우는 모태 신앙이고, 아예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캐릭터예요.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기까지 했죠. 의연과 선우가 노래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mp3 플레이어를 바꿔서 음악을 듣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의영은 선우의 mp3에서 그레고리 성가 같은 것들이 나오는 걸 듣고 깜짝 놀라고요. 선우는 의영이 듣는 가요를 너무 신기해 해요.
어느 날 의영과 선우가 방에 있다가 선우의 어떤 책에서 스티커 사진이 떨어집니다. 단체로 찍은 사진인데 선우 옆에 두 명의 친구가 있는 거예요.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여서 물어보니까 선우는 친구들이라고, 한 명은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거기에 있는 남자 친구가 '다윗', 여자 친구는 '주영'이었죠. 이야기는 미션 스쿨에 입학한 고등학생 선우와 의영이의 현재 이야기와 선우가 중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다윗과 주영과 함께 했던 시간을 복기하는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이 돼요. 읽는데 네 명의 주인공들이 사중주를 연주하는 것 같더라고요. 네 명이 한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같이 연주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고요. 책을 읽고 나의 세계가 확장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정해나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됐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이승희 글·그림 | 고래뱃속
고래뱃속 출판사의 창작 그림책 시리즈로, 작년 11월 말에 나온 작품입니다. 표지는 정말 단순해요. '가시'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낙서의 흔적처럼 보이는 사선들이 있어요. 약간 옷으로 긁은 느낌도 있는 것 같고요. 또한, 표지를 만져보면 약간 올록볼록하거든요. 뭔가 힘들 때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느낌도 들었어요. 그리고 첫 장을 펼치면, 한 소녀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이 때 나오는 문장은 '가시나무 숲 속의 너에게'예요. 가시나무 숲에 있는 너에게 쓰는 책인 거죠.
두 번째 장을 펼치면 주인공 소녀가 그동안 들었던 말들이 쏟아집니다. 몇 가지만 읽어볼게요.
'넌 이거 절대 못해. 내가 대신 해줄게. 여자가 무슨 벌써. 쟤는 성공했네, 넌 언제 저렇게 될래. 분발해. 꿈은 좀 크게 가져야지. 네가 힘든 게 뭐 있어, 진짜 힘든 건 나라고.'
아마 사춘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에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들이죠. 저는 이 문장들을 읽는데 한 개인이 성장하면서 이런 말만 안 들어도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더라고요. 칭찬이나 응원의 말을 듣는 것처럼 이런 비판적인 말들을 안 들었을 때, 그것이 개인의 성장에 얼마나 다른 영향을 미칠까 생각도 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는 주인공 소녀가 어떤 가시 같은 말을 듣고 진짜로 몸에 커다란 가시가 박혀요. 소녀의 아픔은 점점 커지고, 그럴수록 소녀는 점점 작아졌어요. 결국, 소녀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다시는 상처받기 싫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가시덩굴이 가득했고요. 그때 저 멀리에 한 소년이 보입니다. 그 소년이 소녀가 있는 가시나무 숲으로 자신이 가시에 찔리면서까지 들어옵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말해요. 네 마음에도 꽃 한송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요.
연초이지만 여전히 연말에, 지난달에 누군가가 휙 지나가면서 한 말이나 어떠한 사건으로 상처를 받고, 여전히 내 몸에 가시가 박혀 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말들을 너무 품지 않고, 내 마음속에 여전히 있을 한 톨의 씨앗, 작은 꽃 한 송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한 사람은 존재할 거라는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가지고 왔어요. 가시는 꺾이잖아요. 근데 사람의 마음은 꺾이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으니까요.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시』라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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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