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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텐션이 높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람을 만나면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
그 옛날 시골 우물가에서 물 길어다 쓰던 기력까지 다 끌어 쓰다
집에 돌아와 방전되는 일에 나는 너무 지쳤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허무맹랑한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 척 저 척 괜찮은 척척척!
너는 더 이상 이팔청춘의 끼순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세월이 야속하여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가까워진 나이
이렇게까지 호들갑 떨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사랑도 고민도 만남도 아픔도 그 무엇도 이 세상은 에너지이다
에너지가 없다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환자처럼 링거를 꼽고 드러누워 있어야만 한다
나는 매번 쓰러져 있다가도 사람들을 만나거나 무대에 설 때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랄 발광을 해 댄다
도무지 모르겠다. 그 전설의 고향 같은 끼는 어디서 샘솟는 것인지
이젠 그런 내 자신이 애처롭다 못해 역겹기까지 하다
너는 이러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거늘!
뉘우치는 마음에서 염병 작작하거라! 호통을 친다
나는 몸으로 행위하는 사람이다
그래 좋게 말해 예술하는 사람이라고 치자
예술하는 사람이 좀 고고해지면 좋으련만 그놈의 느닷없고 근본 없는 호들갑은 어디서 온 것이며 언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그것을 표출하고 사는 게 임무라면 일상에선 피 같은 에너지 한 방울이라도 일단 아껴 나 보자
그렇다면 그리고 혹시 나처럼 텐션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자!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떠하리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이유 없이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오늘 새로 태어난 비련의 여주인공이 눈물로 젖은 이불을 털고 겨우 방바닥을 딛는다
가녀린 손가락이 세상 슬픈 몸짓으로 커튼을 친다
엉금엉금 천근만근 기어 부엌으로 가 간신히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마시며 세상 다 산 사람의 표정으로 앉아 있는다
마침 가을 낙엽이 우수수 집 안팎으로 떨어진다
나는 그것들을 텅 빈 내 가슴에 이다지도 쓸쓸하게 쓸어 담는다
카톡에는 활기찬 하루 보내세요 이모티콘으로 일괄 답변한다. 영혼도 없이!
옷장에서 세상 우울하고 칙칙한 옷을 꺼내어 입고는 눈깔을 가릴 수 있는 선글라스를 쓴다
죽을힘을 다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 보이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고생하는 기사님께 그럼에도 안녕하세요 라고 텐션 떨어진 구슬픈 목소리로 인사한다
구파발 종착역에 오기까지 그저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본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생각하며 가방에서 폰을 꺼내려던 찰나 눈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나는 내일이면 죽는다. 애쓸 만큼 애썼고 아쉬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다
이런 감정이라면 오늘의 텐션은 짙은 안개와 검은 모래와 캄캄한 해수면 그 언저리이다
친구를 만나서도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텐션이 올라갈 성싶으면 냅다 귀싸대기를 친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 집에 우환이 있어서요 하며 내 그늘진 얼굴의 이유를 피력한다
그럼에도 뜻대로 잘 안 굴러갈 때는 매일 내가 존재하는 이곳이 초상집이라고 생각해 보자
"저는 오늘도 텐션 죽이러 갑니다."라는 심장에 총을 쥐고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를 나섰고 그 총 한 자루가 끼순아 이년아 텐션 낮추어라! 발사된 탄피를 가슴에 아로새긴다
그리하여 그저 에구구구 하고 내 지나친 텐션의 꼬리를 무참히 밟아 죽이면 되는 일
어려울 거 없다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입을 닫고 그 굳게 닫힌 턱이 저려 올 때면 그때서야 아! 하고 끼스럽게 숨을 뱉으면 되는 일
집에 돌아와서는 잘했다고 잘 참았다고 토닥거려 준다
뜨거운 물로 몸을 지지면서 종일 건드리지 않은 텐션을 마저 지져 죽인다
텐션은 낮추고 그 텐션 보다 한층 높은 곳에 있는 침대에 몸을 눕힌다
꿈에서도 텐션은 만나지 말지어다!
*모지민(모어) 세계적인 드래그 퀸 아티스트. 뉴욕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과 2019 헤드윅 'The Origin of Love' 투어 등에서 공연했다. 다큐멘터리 <모어>에 출연했고, 에세이 『털 난 물고기 모어』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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