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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매뉴얼] 비혼세의 여자 배구 직관하는 법

뉴스레터 룸펜(4) – 비혼세 곽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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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 12월보다는 10월을 기다린다. V리그, 그중에서도 여자배구가 개막하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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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늘 12월만 기다렸다.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 12월보다는 10월을 기다린다. 9월 중순부터 이미 설레는 마음에 마스크 아래로 콧구멍이 벌름댄다. V리그, 그중에서도 여자배구가 개막하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10월 22일에 개막한다. 한 구단이 홈구장과 원정 구장을 오가며 주 2회 정도 경기를 하므로, 돌잡이(올림픽으로 유입된 한국 여자배구 팬이 최애 구단을 정하는 것을 팬들끼리 일컫는 말)를 마친 팬이라면 이때부터는 매일이 축제다. 나는 10대 시절 아이돌을 좋아했는데, n년간의 덕질 중 오프라인 공연은 2회 밖에 보지 못했다. 해외 축구를 좋아할 때는 기백 만 원을 들여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야 했다. 그에 비하면 배구는 그 자체로 축제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든 말든 차를 타고 달리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최애를 주 2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티켓값은 좌석마다 다르지만 1~2만 원 안팎. 이래도 될까 황송해하며 인터파크 예매를 한다. 경기장에 입장하면 너무나 코트와 관중석이 가까워,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새우젓만한 최애 선수를 보며, 저게 우리 애 앞통수인가 뒤통수인가 고민하며 울던 나는 재차 황송해진다. 구단이 준비해준 클래퍼(지그재그로 접어 큰 박수소리를 낼 때 쓰는 도구)를 경건하게 접는다. 너무 꽉 접으면 안 된다. 얼기설기 대충 접은 후 끝을 쥘 때는 오른손으로 날계란을 잡은 듯해야만 소리도 크게 나고 잘 휘지 않는다.

경기가 시작된다. 공을 받고, 올리고, 상대방 코트를 향해 치는 모든 순간 함께 클래퍼를 친다. 배구 직관의 코어는 여기에 있다. 아무리 축구 선수를 사랑해도 볼이 발끝에 닿을 때 함께 발을 놀려줄 수 없고, 내 최애의 댄스 브레이크 때 내가 같이 춤을 춰줄 수는 없지만 배구는 다르다. 내 최애와 한 공간에서 그의 손에 공이 닿을 때, 혹시 내 박자 감각으로 선수가 헷갈리지 않길 바라며 정교한 풀파워로 왼손바닥에 클래퍼를 내리친다. 내 왼손바닥이 내 선수 기사 밑에 달린 악플러의 귀싸대기라도 되는 것처럼, 샐러리캡을 비롯한 배구계의 성차별을 개선하지 않는 연맹의 등짝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기가 있는 날은 피트니스 클럽에서 상체를 건너뛰어도 좋다. 전완근은 경기 내내 단련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나의 상체 운동과 불규칙한 일상 속 주 2회 고정 루틴을 책임지고 있는 IBK기업은행 배구단 알토스와 김희진 선수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며. 가자 V4!



*비혼세(곽민지)

'비혼 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 제작자 겸 진행자, 에세이스트, N년 차 방송 작가다.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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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곽민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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