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 영화감독 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
토토는 내가 처음 키우게 된 수컷 검정 푸들이다. 2016년 8월 5일 엄마 강아지 해피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검정 강아지였다. 해피는 5kg 정도의 하얀 푸들인데 아빠 강아지가 까만 강아지라 토토는 털이 새까맣게 태어났다.
남자친구(지금 남편이 되었다)가 오르막이 가파르지만 전보다 넓은 투룸으로 이사를 가면서 강아지를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에 나는 반대했다. 수입의 불안정성과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남자친구는 그때부터 어떤 종이든 상관없이 '검정'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SNS에 자주 글을 썼고 우리는 결국, 보호소에 봉사를 가보자고 합의를 보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어머니가 키우시던 반려견이 새끼를 낳았는데 다섯 마리 중 두 마리를 입양 보내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두 마리 중 하나가 토토였고, 엄마 해피와 3개월을 지낸 뒤였다. 강아지들이 있는 집은 지하철로 꽤 멀리 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바로 다음 날 남자친구가 그 집을 방문했다. 분명 강아지를 보고만 온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 강아지를 데리고 집에 오는 길이라 했다. 지인의 어머니께선 새로운 반려인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떠나야 하는 아기 강아지가 걱정이 되셨는지, 본인이 차로 직접 데려다 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토토는 엄마 강아지와 남매의 배웅을 받으며 남자친구의 집에 왔다.
나는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는데 당장 달려가 토토를 만났다. 신기할 정도로 작은 게 끊임없이 꼬물거렸다. 갑자기 새로운 곳에 홀로 떨어져 어리둥절하는 토토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대로 사랑을 맹세하게 된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토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다음 날 남자친구가 출근한 사이, 아기 강아지를 혼자 둘 수 없어서 내가 남자친구의 집으로 출근해 토토와 내내 같이 있었다. 10월이라 아직 모기가 있었는데 행여 접종도 다 마치지 못한 강아지가 모기에 물릴까 봐(물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잠든 강아지를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아지는 몸부림을 치며 자다가 깰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를 보고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생명체가 있다니, 그리고 그 생명체가 나를 알아본다니 정말 황홀하였다. 광기와 불안의 나는 남자친구와 동네에서 제일 좋은 동물 병원(우리 기준에 가장 상냥하고 전문적인 태도의 선생님이 계신 곳)을 찾았고, 우리 예산 안에서 가장 좋은 사료와 간식을 구했다. 그리하여 토토는 따로 사는 두 사람이 함께 키우는 강아지가 되었다.
토토가 접종을 마치자마자 나는 남자친구 집 근처의 모든 산책로에 가서 토토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늦게 독립한 편이라 토토가 왔을 당시 첫 집에서 2년째 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작은 원룸이었는데 첫 집이라 그랬는지 이상하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두 번 나는 동안 정말 덥긴 했지만, 이사 갈 정도로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토토를 처음 그 집에 데려왔을 때 너무 좁게 느껴졌는지 토토가 자꾸만 화장실에 가 있었다. 편히 머물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생각이 되자 나는 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이사를 강권했던 사람들이 당황했다. 강아지와 함께 살고자 하는 싱글 여자의 집을 내 예산에 맞춰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강아지가 산책할 만한 곳이 근처에 있고, 밤늦게 다녀도 그리 위험하지 않은 위치에 있으며,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쉬운 곳. 그런 집을 찾기 위해 꼬박 두 달간 최선을 다해 돌아다녔다.
그리고 토토는 그렇게 찾은 새 집에서 나와 함께 3년을 살았다. 보통 강아지들은 집이 여러 군데가 되면 혼란스러워 한다는데 토토는 잘 적응해주었다.
나는 토토를 왜 (이렇게) 사랑하는가.
당시에 토토와 함께 있는 것보다 의미 없고 재미없는 것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것 또한 거의 없었다. 돌아보면 토토가 왔던 시기, 나는 무력감에 젖어 있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떠올리면 괴로워져서 그 생각에서 자주 도망쳤다. 그런 마음에 잡아먹힌 날에는 그냥 하루 종일 내 방 침대에 누워있고만 싶었다. 잘 수 있다면 계속해서 자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토토와 함께 계속 잠들어 있을 수는 없었다. 토토는 나와 달리 활기가 넘쳤고, 새로운 일들에 적극적이고 신나했다. 그런 토토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무기력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강아지를 혼자 두나 싶어 집에서 작업을 했고 강아지 배낭을 메고 토토와 어디든 함께 갔다. 반려견 놀이터에 어떤 강아지들이 오는지, 어느 공원이 강아지와 걷기 좋은지, 동네 어느 구석에 쓰레기가 많은지 발견하며 계속 움직였다. 사회성이 좋은 강아지로 키우려면 1살이 되기 전에 100명의 사람과 100마리의 강아지를 만나게 해주라는 얘기를 듣고 나는 그렇게 했다. 그 무렵 토토와 함께 찍힌 사진 속 나는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이 강아지와 즐겁게 살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답 없는 고민만 하던 마음에 어떤 욕망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 뭐라도 해야지. 좀 더 걷기 위해서는 체력을 길려야 하고 내가 사는 빌라의 사람들에게 강아지가 이웃에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 안부를 묻고 동네에 지정되지 않은 자리에 쓰레기가 버려지는 것을 신고해야 했다. 나에게 불광천과 이 동네 골목골목이 예전과 다르게 소중해진 것이다. 내 방 너머로 토토가 나의 세계를 넓혀준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토토를 사랑하는 방식은 옳은가, 혹은 나의 사랑은 정확한가.
토토라는 강아지를 사랑하기 위해 나는 강아지에 대한 책을 자주 빌려 읽고 구입했다. 생각보다 나라마다, 시절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방식은 변화해왔다.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고민해 둔 것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나의 사랑과 토토의 행복은 얼마나 가까운가. 나와 다른 종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은가. 나는 토토라는 강아지만 사랑하는가, 다른 강아지들의 삶은 어떠한가. 또 다른 생명은 어떻게 다루는가, 다루어야 하는가, 이 세계가 인간만의 것인 양 사는 것은 괜찮은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면서 뭘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토토는 꿈속에서도 나의 강아지로 등장한다. 처음 토토가 나의 반려견으로 꿈에 나온 날, 잠에서 깨어 내 옆에 잠든 토토를 쓰다듬으며 느꼈던 마음이 떠오른다.
'이제 나의 무의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구나.'
나는 정말 토토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정확하고 부디 좋은 것이면 좋겠다. 아마도 나는 토토보다 더 오래 살 테지만 이 사랑의 기억으로 나의 세계를 좀 더 넓혀보려 애쓸 것이다.
토토,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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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완(영화감독)
단편 영화 <여고생이다>, 장편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