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 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ESG는 어느덧 멋진 구호이자 유행어가 되었다. 그러나 ESG는 결코 만만한 개념이 아니다. 기후 위기, 넷제로 2050, 탄소 국경세, 인종 차별, 동물 윤리, 유리 천장, 지속 가능 경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금융 자본, RE100, 그린 스완 등 방대한 이슈들이 결합된 개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 불어닥친 ESG 열풍 속에 숨겨진 다양한 위험 신호와 ESG의 실체, 기업과 정치, 사회가 ESG를 다룰 방향성 등 ESG를 냉정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책, 『ESG 2.0』이 출간되었다. 팬데믹 이후 급속도로 진화하고 위기가 심화된 세상에서 ESG는 우리에게 어떤 해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트렌드 분석가로서 시대의 흐름을 발 빠르게 읽어내는 책들을 계속 펴내셨는데, 이번 책의 제목이기도 한 ‘ESG 2.0’을 주제로 잡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책을 여러 권 썼는데, ESG라는 굉장히 방대한 주제의 책을 꼭 써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ESG란 화두를 받아들인 지는 좀 됩니다. 전 세계에서 ESG라는 화두는 2004년에 시작되었으니 벌써 18년째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약 2년 전부터 이 화두를 굉장히 관심 가지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 화두를 훨씬 더 일찍 받아들이고 기업 경영과 투자에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ESG를 먼저 준비하고 거기에 뛰어들어 투자를 많이 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미래에 어떤 기회를 만들어줄지, 위기가 될지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ESG 이전에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ies,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있었는데, 어떤 변화들 때문에 CSR에 이어 ESG가 탄생하게 되었나요?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기가 막히게도 똑똑합니다. 자본주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직접 풀려고 해요. 왜 그러냐, 직접 안 풀면 대신 누가 풀어줄 텐데, 그러면 자기 의도와 상관없는 걸 자꾸 찾아내겠죠. 자본주의의 대부 격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기본적인 논조가 그거예요. 국가는 기업에 개입하지 말아라,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자본주의가 알아서 문제를 풀도록 하라는 메시지가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어떤 기업이 돈은 많이 벌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이걸 해소하지 못하면 계속 장사하기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기업의 오너만 잘살고 직원들의 삶과 격차가 크면 사회적으로 지탄받게 되잖아요. 만약 직원이 아픈데 병원에도 못 가고 아이들 교육도 문제가 생기면 일에 집중하지 못할 테고, 그럼 기업가 입장에서도 불리합니다. 그래서 회사 가까운 곳에 사택을 짓고, 학교와 병원을 만들어 직원과 가족들이 이용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면 직원들이 더 열심히 에너지를 쏟으며 일하지 않겠습니까? CSR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직원들의 노동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접근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확대되어 1990년대 이후 지역 사회에 병원, 미술관 등을 짓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기업에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던 부분인 환경 문제나 기업의 지배 구조 등 신경 써야 할 화두가 자꾸 늘어나면서, 더 이상 CSR 정도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국가가 개입해 제도나 법을 만들 텐데, 기업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지요. 그래서 ESG를 시작한 겁니다.
ESG가 전 세계의 화두가 된 계기는 무엇이며, CSR과 공통점,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전 세계가 다 같이 ESG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2004년부터입니다. 2000년에 만들어진 '유엔글로벌콤팩트'라는 단체에서 2004년에 낸 보고서에 ESG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함께 작성했습니다. 금융 회사, 투자 은행, 대형 은행, 보험 회사, 그리고 국제기구인 세계은행(IBRD), IMF까지 함께 참여해 만들었습니다. 왜 하필 금융 자본들이 모였을까요. 금융 자본이 바로 자본주의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안정적으로 끌고 갈 CSR을 만든 건 산업 자본이에요. 자본주의는 초창기에는 산업 자본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돈이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돈을 투자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되니, 주도권이 금융 자본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CSR을 만든 산업 자본, 그다음 진전 단계에서 ESG를 만들고 주도한 금융자본, 이들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더 오랫동안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선택한 미래가 바로 ESG입니다. 그래서 ESG를 너무 선의의 개념, 착한 것, 이러한 화두로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더라도 ESG 경영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지금 시대 기업의 숙명이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습니까?
먼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ESG는 누구에게 가장 큰 이득일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ESG가 환경도 위하고 사회도 위하는 것으로 오해해서 환경 운동가나 시민 단체, NGO 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사실 ESG로 가장 이득을 많이 보는 사람은 자본가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이득을 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꽃인 금융 자본, 투자 자본이 ESG라는 화두를 시작했고 지금도 ESG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설마 자기들에게 전혀 이득이 없는데 ESG를 할까요?
우리는 세상의 어떤 변화를 바라볼 때 그 변화의 본질을 짚어봐야 합니다. 명분으로는 뭔가 그럴싸한 것을 내세우지만, 그 속에 담긴 실리를 봐야 하는데, ESG를 주도하는 모든 세력은 여기서 기회를 얻고자 합니다. 사실 ESG와 관련한 일련의 흐름들을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뭐가 기회인지 뭐가 위기인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ESG의 E(환경) 중에서도 탄소 중립이 가장 중요한 화두일 텐데,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매킨지글로벌연구소가 2050년까지 전 세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예측해봤더니 275조 달러라는 추정치가 나왔습니다. 물론 그 추정치가 틀릴 순 있겠지만, 우리 돈으로 35경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이 갑자기 확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엄청나게난 돈이 전 세계 재생에너지를 위한 비용이기 때문에, 기존의 기술을 바꾸거나 각종 설비투자에 투입될 것입니다. 그 돈을 누가 가져가겠습니까. 기업입니다. 275조 달러짜리의 어마어마한 시장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ESG 경영에서 특히 리더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ESG 2.0 전략이 없는 리더는 당장 사표 써야 한다고 과감하게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ESG 2.0』에서 'ESG 2.0'을 모르는 CEO는 당장 사표 써야 한다고 좀 자극적인 표현을 했는데, 정말 쓰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ESG 경영 자체가 쇼하는 게 아닙니다. ESG 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초반에 ESG를 기본적 개념으로만 이해할 때는 어떻게든 ESG 지표, ESG 평가점수를 잘 받아야 대외적으로 회사 이미지가 좋아지고 투자받을 때도 유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점수를 누구한테 보여줍니까. 투자받을 투자자에게 보여주는 정도입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 ESG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기회에 대비하지 못하고, 기존에 하던 것만 붙잡고 있던 경영진들은 나중에 그 산업이 바뀔 때 타격이 클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S&P 500 지수의 500개 기업 평균 수명이 약 20년밖에 안 됩니다. 예전과 달리 기업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이것은 바뀐 산업, 바뀐 기술, 바뀐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ESG 평가 점수를 잘 받을지 궁리할 때가 아닙니다. ESG를 통해서 어떻게 새로운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돈을 벌지 연구해야 합니다.
서양 선진국에 비하면 한국은 ESG 후발 주자인데 대응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한국 경제는 수출 비중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런데 제조와 수출, 이 두 가지에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제조 공장은 에너지 소비가 많아요. 에너지 소비가 많을수록 탄소배출은 많을 수밖에 없죠. 우리는 에너지에서 유독 탄소 비중이 높은 나라입니다.
참고로 독일과 우리나라는 총 에너지 소비량이 비슷합니다. 독일은 우리보다 인구가 많고, GDP는 세 배 가까이 많습니다. 그런데 에너지 소비량은 비슷해요. 게다가 재생 에너지 생산량은 독일이 우리보다 5~6배 많습니다. 독일은 세계적인 수출 강국, 제조업 강국이고, 제조업 국가 경쟁력으로는 전 세계에서 항상 1등입니다. 우리나라도 늘 TOP 5위 안에 드는 제조업 강국인데, 탄소 배출 부분의 숙제를 풀지 못하면 수출에 문제가 생깁니다. EU에서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EU로 물건을 수출하고 싶은 외국 기업은 탄소 배출 기준에 따라서 관세를 더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쓰더라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최근의 글로벌 이슈 중에서 ESG와 가장 관련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ESG라는 흐름에서 큰 변수 하나가 2022년에 등장했습니다. 바로 러시아 전쟁입니다. 러시아 전쟁이 ESG와 무슨 상관일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전쟁 때문에 ESG가 조금 후퇴한 건 사실입니다. 유럽은 냉난방이나 공장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러시아에서 많이 사 옵니다. 석유, 천연가스 등을 러시아에서 사와야 하는데, 전쟁으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하면서 대안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중동 국가들에 석유 증산을 요청했는데 안 들어줬어요.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들도 장기 플랜에 따라 움직이겠죠.
그 결과 유럽에서는 석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석유, 천연가스보다 석탄이 탄소 배출에서 더 심각한데, 최근 들어 석탄 사용이 점점 강화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ESG가 후퇴한 측면입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탄소 배출 비중이 굉장히 높은 석탄 관련 산업에 투자하지 않고, 관련 기업에는 대출도 안 해주었는데, 올해 들어서 전쟁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에너지 부족 문제로 석탄 수요가 늘어나니 석탄 산업에 투자하면 돈이 됩니다. 이러니까 일부 투자자들이 움직이는데, 이것도 ESG의 실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SG를 먼저 주도한 투자자도 돈 되는 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니까요.
*김용섭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트렌드 분석가이자 경영전략 컨설턴트, 비즈니스 창의력 연구자다.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신세계, CJ 등 대기업 그룹사 주요 계열사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외교부등 정부기관에서 2,500회 이상의 강연과 비즈니스 워크숍을 수행했고, 200여 건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한국경제신문〉,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머니투데이〉, 〈세계일보〉 등 다수 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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