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디에서 온 마음일까.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서울에서 사는 건 오랜 시간 나의 바람이었다. '인서울'이란 단어가 지금처럼 많이 쓰이지 않았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나는 매일매일 서울에서 사는 걸 꿈꿨다. 서울 중심부에서 일하는 바쁜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산 지 10년 가까이 됐을 때, 나는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토록 원했던 곳에 살고 있지만 왜 즐겁지 않을까.”
서울 집값이 떨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상승세라고 합니다. 언젠가부터 서울 집값은 상징적인 존재가 된 것 같아요. 모두를 들썩거리게 하죠. 1~2년 만에 몇 억씩 오르는 집값. 몇 억이 언제부터 이렇게 쉬운 말이 되었을까요? 비정상적인 상황을 뜬 눈으로 지켜보며 이게 현실인가 싶습니다. ‘아직도 그 꿈 안 버렸어요?’라는 드라마 대사처럼, 서울에 내 집을 갖겠다는 꿈은 정말 꿈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느껴져요. 한편으론 그럴 수록 그 꿈같은 서울 집 한 채, 그것만 가질 수 있다면 인생 역전이 가능할 거라는 욕망은 어느새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게 되었죠.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1년에 몇 천만원 모으기도 빠듯하지 않나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죠. 씀씀이가 특별히 커서도 아니에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똑같이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더 나아지게 위해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상하게 나에게 허락된 방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 뿐입니다. 그럼에도 복작복작, 꾸역꾸역, 다닥다닥. 높은 주거비에 허덕이고 층간 소음과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뎌가면서 우리가 서울에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요? 이쯤이면 떠오르는 단어, '탈서울'. 한번쯤 이 지긋지긋한 서울을 탈출해 과열된 경쟁에서 해방되는 꿈을 꿔본 적 있는 분이라면 오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우실 거예요. 오늘은 '탈서울'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모두가 '인서울'을 바라는 욕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지금 이 순간도 그 욕망은 서울 집값으로 투영되고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그 욕망의 줄기가 단 하나로 귀결되었다면, 요즘은 또 하나의 흐름이 조금씩 뚜렷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서울 탈출.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론 전에도 귀농이니, 귀촌이니 하는 얘기는 계속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할 '탈서울’은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이 흐름이 뚜렷해진 게 언제인지 살펴봤더니,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트리거가 된 듯해요. 우리는 어쩌다 보니 재택근무의 맛을 보게 됐죠. 모두가 공통의 경험을 하게 된 부수적인 효과로, 공통의 수요를 만들어냈습니다. 잠만 자던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고, 사람들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동시에, 출퇴근하지 않고도 일이 굴러가는 게 가능하다는 감각을 느끼면서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이보다는 좀 더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예전에는 자발적으로 서울을 떠나는 일이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만 치부되었던 것 같아요. 혹은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은퇴 후 노년에 할 일처럼 생각되었고요. 요즘 것들은 생각이 좀 다릅니다. 집이 재산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당장 내가 누리고 살 공간도 중요해진 거죠. 관심은 점점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2021년에는 탈서울 인구가 15만 명, 5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이 책을 쓴 사람은 한 일간지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김미향 기자입니다. 기자라고 하니까 이 책이 신문사에서 진행한 기획취재기인가 하실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니고요. 지극히 개인의 경험담과 시선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일간지 기자라는 신분을 밝힌 건,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점을 공유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특별히 다른 밥벌이 수단 없이, 성실히 일해온 직장인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는 거죠. 또 저자는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지방러'입니다. 성인이 되어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험난한 서울살이를 시작했죠. 인서울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대학이든 취업이든 서울로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서 서울러가 되었지만,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고단함이 무엇인지 저도 잘 알고 있다 보니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취득한 ‘서울러'의 명찰을 스스로 떼고, 탈서울을 꿈꾸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의 ‘주거 난민 여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렇게 저자는 15년간의 ‘자취 만렙’을 찍고 나서야 좁은 자취방을 벗어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합니다. 매일 ‘탈출각’을 세우며 아주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탈서울의 현실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죠. 이 책은 그 여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 책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를 읽어보면서, 우리가 체감하는 경제 대도시의 ‘열탕’ 같은 삶과 사회 인프라 전혀 없는 농어촌의 ‘냉탕' 같은 삶 사이, 숨통 트이는 집과 사람 살 만한 인프라가 있는 나만의 ‘온탕’ 같은 삶을 찾아나선 여정을 따라가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따끔하게 현실직시부터 시작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을 차곡차곡 안 쓰고 안 입고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은행에만 넣어 놓아도 15%씩 이자가 붙어서 그 자체가 재테크였죠. 지금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의 앞자리는 여전히 2인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혼자 사는 직장인이 한 달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평균 금액은 얼마일까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계산한 것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월 208만 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열심히 허리띠를 졸라도 늘 제자리였던 이유는 절약하지 않아서, 혹은 흥청망청 돈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는 거죠. 월급의 앞자리 숫자 ‘2’, 혼자 사는 직장인의 평균 한 달 생활비의 앞자리 숫자도 ‘2’. 저축이 불어나지 않는 건 당연합니다. 게다가 그 돈을 저축해서 적금을 넣어봤자 이자도 얼마 안 붙어요. 엄살이 아니라 현실이었죠. 그리고 이대로는 삶은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저자는 일, 집, 생활환경 등 전체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지는 서울 생활에도 지쳐갔습니다. 구도심에서는 매일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공사 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이해야 하고, 그럼에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걸 보며 근로 의욕은 정확히 반비례하며 떨어져갔죠.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우연히 탈서울을 한 가족을 취재하게 되었죠. 서울 전세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 갈등과 주차 시비, 일상 소음, 아이의 아토피 등으로 생활 만족도가 낮았던 가족은 춘천에 집을 지어 이주하게 되었는데 그 후 모든 면에서 삶이 나아졌다고 해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마당은 물론 재택근무에도 최적화 되어있는 환경에, 남편은 서울 일터까지 자가용으로 주 4회 출퇴근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고요. 춘천 시내에는 학교, 병원, 마트 등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었죠. 이런 가족의 삶은 저자에게 큰 자극이 됩니다. 직장이 서울에 있으니 하는 수 없이 서울에 붙어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일을 구할 수만 있다면 새 터전을 찾고 싶었죠.
저자는 서울을 벗어나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더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지옥철을 견디거나 아니면 농사를 짓든가 하는 열탕 혹은 냉탕뿐인 극과 극의 선택지 말고, 그 중간의 삶을 찾고 싶었죠. 그리고 자신이 찾는 탈서울 목적지의 여건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자력으로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고, 마트, 병원, 학교, 공원, 헬스장과 수영장 등 인프라가 있는 곳. 그리고 아파트의 시세가 자신의 예산과 맞는 강원도의 모 도시와 충남의 모 도시 등 지방 도시 몇몇 곳을 후보로 추리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경제활동이었죠. 사는 터전을 옮기려면 당연히 일터도 옮겨야 했기에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지역 신문사 공고를 찾아보기도 하고, 일반 회사 경력직 일자리도 살펴보죠. 하지만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여성이고, 별다른 기술이 없는 사무직 직장인 경력 8년차에게 적합한 일자리는 찾기 어려웠다고 해요.
쉽게 결심이 서지 않자 그는 먼저 호기롭게 탈서울을 감행한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탈서울 경험담을 듣고 싶다고 글을 올리기에 이릅니다. 어떤 이유로든 한창 일할 나이에 서울에서 지방으로 간 사람들을 열심히 찾았죠. 그렇게 총 14명의 새내기 ‘지방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서울의 ‘미친 집값’ 때문에 소도시로 이사해 주거 문제를 해결한 가족, 서울 밖에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업그레이드한 취미 생활과 복지를 누리는 가족, 모든 게 레드오션인 서울을 떠나 지방의 자영업자가 되어 누리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한 가족 등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가 담겨있죠. 이들을 통해 저자는 탈서울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졌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 그래서 저자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탈서울에 성공했을까요? 그가 자신만의 온탕을 찾았는지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기 바라며 끝으로 책의 에필로그 한 구절을 읽어봅니다.
“왜 우리나라는 오로지 서울 하나인가. 우리나라에도 서울 아닌 다른 지역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태어나 줄곧 그 지역에 살아도 자연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서울에 가지 않아도 공부하고 취직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다. 청소년기에 대도시로 가지 않으면 왠지 낙오되는 기분 따윈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혜민(크리에이터)
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