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말 잘 듣고 순하기만 하던 내 아이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면 어떻게 할까? ‘이 아이가 과연 내 아이가 맞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지도 않은 아이의 행동에 당황하고 걱정하고 상처받는다. 특히 딸의 사춘기는 그들이 경험해야 하는 신체적 변화와 함께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싸우고 화해하는 일상의 반복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동질감도 느끼게 되며, 이전보다 더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딸하고 밀당 중입니다』에는 사춘기 딸과 함께하며 느낀 감정과 생각, 매일의 에피소드들이 가득 담겨 있다.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 특히 엄마들이 궁금해할 질문들을 저자에게 던져보았다.
초등학교 딸을 키우며 보낸 6년 동안을 그림일기로 기록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그림일기를 쓰게 되셨나요?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잘 따라와 주던 딸이 반항하기 시작하며 ‘도대체 딸은 왜 변한 걸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딸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그린 게 저의 첫 그림 일기였어요.
그 후로 순간순간 딸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그림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기록들을 딸아이 몰래 모아서 내 마음을 말로는 더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나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 할 그 언젠가의 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이때의 너를 이렇게 생각했고 늘 사랑하고 있었어.”라고 ‘짠’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게 한 장 두 장 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때그때의 일상을 소재로 그리고 기록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웃음)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과감하게 다니시던 회사를 그만두셨다고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그렇게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 지금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으세요?
일과 육아를 둘 다 적당히 하며 균형을 지키고 싶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며 바둥거리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 의지나 노력과는 다르게 일도 육아도, 그 어느 쪽도 만족이 되지 않는 그런 시기였죠. 딸내미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가 왔을 때, 그때 제 자신의 삶보다는 아이 엄마로서의 삶에 중심을 두는 게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나의 커리어에 관한 모든 욕심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육아 맘으로 올인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딸과의 숱한 밀당으로 이제는, 제 그런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아주게 되어서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책에는 딸하고 밀당을 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저와 딸 모두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딸이 예중 입시를 준비하던 6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마음이 복잡한 일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나는 참 불행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던 때였어요. 어느 때보다 힘든 입시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딸에게 “넌 요즘 어때? 행복하니?”라고 물었어요. 매일 지치고 힘이 들었을 텐데, 예상과는 다르게 자기는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기특하게도 매일의 작은 행복을 찾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때 참 많이 반성했던 것 같아요. 13살 딸아이에게서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얻었고,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을 찾는 방법을 배웠고, 위로와 공감을 얻었으며, 잠시 잊었던 행복을 찾는 방법을 깨우쳤던 것 같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처럼 ‘엄마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에서 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딸내미의 행복에만 집중하고, 내가 딸내미를 행복하게 해줘야만 나도, 딸내미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날 행복을 다시금 일깨워 준 건 다름 아닌 아이였어요. ‘행복’이란 꼭 누군가의 일방적인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어떤 작고 소소한 기쁨을 찾는 게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요.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사춘기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있는 엄마라면 모두 아이의 사춘기를 두려워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 아이를 위해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책에도 나와 있지만, 엄마만큼 내 아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에 대한 욕심을 걷어내고, 내 아이의 존재 자체를 믿어주고 응원해 줄 때 비로소 아이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그나마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마법의 레시피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작가님께서 터득하신 레시피가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사실 육아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마법의 레시피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지금도 여전히 생각하지만, 왜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적이라고 하잖아요.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 줄 때, 엄마의 마음도 존중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친 듯 불안하고 눈앞이 깜깜해 보이지만, 되도록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해요. 잔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 지금 애가 저러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 순간을 넘기곤 해요. 그런 일상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자기한테 주어진 일은 스스로 하려고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춘기를 겪은 아이들이 성장하듯이, 엄마도 아이를 키우며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작가님께서 아이를 키우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이가 태어난 후, 저의 삶과 가치관이 180도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제 인생의 모든 기준과 선택이 아이를 중심으로 결정되고 있어요. 하지만 ‘육아 때문에 나를 포기하자!’ 이런 생각 대신에 ‘육아도 적당히, 일도 적당히 하며 아이가 성장할 때 나도 같이 성장하자!’라고 생각했어요. ‘적당히’라는 말에 ‘대충’이라는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둘 다 적당히’라는 제 스스로의 선을 지키려고 노력해 온 것 같아요. 그때그때의 욕심을 버리고 육아와 일 사이의 밸런스를 최우선으로 지켜왔기 때문에, 일도 육아도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지금의 상태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순간들도 너무나 많지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둘 다 온전하게 지켜내고 있는 이 상태에 만족하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아이를 키우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육아를 하며 겪게 되는 모든 고민들 앞에서 늘 본인을 탓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부족해서’, ‘내가 조금 더 잘할 걸’ 등의 후회들이요.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만, 그건 절대 엄마의 탓이 아니라 누구나 엄마가 처음이기 때문에 당연히 겪게 되는 시행착오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을 이 세상의 엄마들께 전하고 싶어요. 너무 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아이도 분명 알고 있을 거라고요! 아이가 엄마에게 존재 자체로 힘이 되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엄마는 존재 자체로 힘이 될 거예요! 우리 같이 화이팅해요!
*지모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로 일하다가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경.단.녀가 될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나’ 자신보다 ‘엄마’로서의 삶에 더 비중을 두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딸이 사춘기를 겪기 시작하며 모든 감정을 나에게만 배출하니 어느 순간, 엄마인 나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딸과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며 스스로를 치유했고, SNS에서 딸과의 에피소드를 풀어낸 그림으로 많은 사람과 공감을 통한 소통을 하기 시작하며 또 다른 ‘나’인 ‘지모’라는 부캐를 찾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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