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대한 글은 늘 흥미롭지만 직업과 한 사람의 삶이 서로 끈끈히 붙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에세이는 더 반갑다. 장서윤 작가의 『아직까진 큐레이터입니다만』은 직업인으로서 전하는 날것의 이야기 그리고 정갈하면서도 거침없는 한 사람의 삶을 두루 담았다. 혹 큐레이터를 떠올렸을 때 ‘날렵한 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은 차가운 인상의 여성’만 그려진다면 얼른 이 책을 펼쳐보시길!
큐레이터 장서윤은 큐레이터나 작가, 미술계에 대한 환상이나 편견을 바로잡으면서 실제를 명확히 알려준다. 회사에서 하나의 업무만 하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실제로 내가 갤러리에서 하는 일들을 전부 나열할수록, 나는 꼭 집어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듯하다. 회사 문을 제일 먼저 여는 청경 반장이 되기도 하고, 케이터링 음식을 차릴 때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갤러리 벽면 등 보수할 곳을 찾아다니고 있으면 건물 관리인이 된다.”(53쪽)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큐레이터란 고고히 기획만 하고 전시장을 지키는 이는 아니란 걸 일러준다. 그는 큐레이터가 된 걸 후회하기도 하고, 아무 갤러리나 가서 일해주지 말라 후배들에게 당부하기도 하고, 갤러리에서 일할 때 어떻게 입으면 좋은지 속 시원히 정리해 주기도 한다. 또 지금의 아트테크 열풍에 대해 논하고 진행했던 전시의 서문을 가져와 멋진 기획을 안내해 주기도.
“남들이 나를 큐레이터라고 부르든 아니든 나는 내 인생을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로 살고 있는데, 굳이 큐레이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지 않다.”(53쪽)라고 말하는 그지만, 일을 잘하고 즐기며 사랑하는 프로페셔널임에 틀림 없다.
목차의 소제목들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인간 장서윤은 재치 넘치고 강단 있다. 회사원이자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 MBTI는 INTJ이고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람, 같은 세상을 사는 30대 여성으로서의 그는 솔직한 만큼 멋지다.
“‘너보다 못한 사람도 많은데’, ‘더 어려운 사람도 많은데’라는 비교의 말이 나에겐 너무나 위험하고 잔인하게 들린다.”(136쪽)라는 그의 곧고 단단한 성정을 닮고 싶고, “이 새끼 몇 년째 이 부서에 있는 것 보니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 부서 안 떠난다. 아니, 인사 고과 안 좋아서 못 떠난다. 지금 죽여놓지 않으면 나중에 후환이 되겠다 싶었다.”(93쪽)라는 대목에선 전율과 희열이 끓어오르기도 했다. 멋진 여성이자 큐레이터로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리고 나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듣고 싶다.
“난 그냥 지금이 좋다. 여전히 자아가 강하고, 고집도 세고, 실수도 하고 후회도 많이 해도 나만의 방식으로 사는 내가 좋다. 어딘가에 걸려드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알아서 가서 걸리고, 바깥 요소에 의해 흔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흔들며 살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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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도서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