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사물들』은 사물의 풍경을 따라간다. 옛것과 새것, 자연물과 인공물 할 것 없이 취향이라는 이름의 광범위한 소비 환경에 주목하면서도 경제적 가치를 지닌 소비 상품만을 좇지 않는다. 무심코 방에 둔 사물이 궁금해지고 달라 보인다면 사물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사용자의 눈이 닿고 사물에 마음을 쏟을 때 비로소 사물은 오롯해진다. 방에 무심코 놓인 사물이 나를 위로해 주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사물들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영감을 주고 사색에 빠지게도 한다. 이 책에서는 창작자는 어떤 마음으로 사물을 만들었는지, 사물이 어떤 의미로 사용자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는지, 그들이 말하는 사물을 보는 태도를 함께 소개한다. 그들의 대화와 생각이 점철되는 과정은 마치 발이 닿는 대로 떠나는 산책 같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공예와 오브제, 도구와 상품의 풍경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은 사물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받으며 변화하는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인데요, 작가님께서 사물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물을 향한 관심은 일상적인 행위예요. 보편적인 관심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남과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상품을 기획하고 제품을 만드는 일로 디자이너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사물을 접할 기회는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첫 직장이 대량 생산에 기반을 둔 제조 기업이어서 제 관심사의 상당 부분은 애초부터 대중성, 상업성, 보편성, 효율성, 이런 것들이었어요. 나의 취향을 돌볼 겨를도 없이 누구나 두루 사용할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이자 가치관처럼 형성되었던 것 같아요.
한번 생산하면 그 수량이 어마어마하니까 완제품을 만들 때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니까요. 시장에서 실패하면 그게 다 쓰레기가 되고 상품의 회전이 너무 빨라도 소모적이에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디자인의 윤리적인 문제나 공공성, 개별성, 나아가서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흐름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유통되는 물건들과 그 물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관심을 쏟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께 사물이란 무엇인가요?
‘풍경’이에요. 사물들의 표정이 매 순간의 풍경을 만드니까요. 그 속엔 생각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요. 사물이 문화로 읽히면 풍경으로 보이죠. 의미를 남기지 않는 사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풍경을 이루는 구성요소니까요.
그렇다면, 사물을 통해서 변화된 작가님의 삶은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인간은 환경과 상호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어요. 내게 부족한 부분은 타인 혹은 그 밖에 다른 것들을 통해서 채우고, 내가 많이 가진 건 나눠주기도 합니다. 사물들은 제겐 그런 존재예요.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 위로받고 싶은 기분, 깊숙한 곳의 욕망까지도 사물을 통해서 채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냥 채우기만 하면 순환적이지 못할 거예요. 공급과 수요 사이에서 생산된 사물들을 통해서 사물 너머의 것들을 보고 만나려고 합니다. 편리한 것이 당연히 좋지만 조금 불편한 사물을 만나 길들이는 즐거움도 알아가요. 사물은 제 스승이에요. 사물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창작의 영감도 얻어요.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도 익히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언제나 삶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에서는 사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물을 만든 창작자의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창작자들을 실제 만나보니 어떠셨나요?
책에 소개한 사물들은 오래 꾸준하게 사랑을 받는 사물들이에요. 어디에서도 소개된 적이 없는 사물은 하나도 없죠. 비교적 안정적으로 시장 수요가 일어나는 물건들을 다뤘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물건들을 경험하는 것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죠. 신기하게도요. 직업의 특성상, 창작자들은 늘 가까이에 있지만, 그들에게 설명을 듣고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의도적인 거리 두기를 할 때가 있죠. 사전 정보 없이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즐겨보는 거예요.
그러다가 창작자들과 우연으로 닿으면 그들이 만든 물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가장 흥미로운 건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우연히 형성되었거나 소비자에 의해서 의도와 달리 쓰이는 사물들이에요. 만든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이 그 사물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 모르는 낯선 물건을 대하듯 할 때가 있어요. 각자의 사물에 대한 기억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까요. 그럴 때가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이 아닐까 해요. 그런 것들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어요. 책에 소개된 사물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독자들이 이 이야기 속 사물을 어떻게 읽을지도 궁금해요.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은 ‘감각을 깨우는 사물들’, ‘안부를 묻는 사물들’, ‘사유를 확장하는 사물들’ 총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어요. 각 장마다 모여 있는 사물의 특징이 있을까요?
사실 모든 사물은 복합적이에요. 기억과 감각을 깨우고, 사용자와의 관계 속에서 영감을 주고요. 그런 과정에서 사유는 확장돼요. 사적 취향도 발견하고 자기만의 안목도 얻어요. 1장의 ‘감각을 깨우는 사물들’은 말 그대로 일상을 환기하는 사물들이에요. 환경에 대한 자각일 수도 있고, 무심하게 흘러간 시간에 대한 되새김, 우리를 형성해 온 과거에 대한 기억들 같은 거죠. 다가올 시간보다는 지나간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 보는 거예요. 그렇게 확장된 일상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고 그런 것들이 현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2장의 ‘안부를 묻는 사물들’은 편집자가 지은 제목인데요. 사랑스럽지 않나요? 출판사와 이 책을 만들면서 공통으로 생각했던 건 독자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으면 했어요. 그 독자는 이 책에 소개된 창작자를 포함해서 일상을 창작하는 모든 이에 해당하는 것이에요. 독자들은 창작자를 통해서, 창작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를 통해서 서로 대화하는 느낌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3장은 사물 너머의 풍경들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작은 속삭임이에요. 사물들의 풍경 속으로 독자가 들어가는 거죠. 그들이 풍경의 관람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인 거예요. 내가 사랑한 사물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생각해보고요. 내 곁의 사물들은 나를 형성하는 일부이고, 그런 사물들이 모여서 ‘나’라는 풍경을 만들어요.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풍경들 속을 걸어가 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풍경도 찾게 되고요. 어떤 풍경이 보이시나요?
최근에 작가님의 집에 새로 배치한 물건이 있으실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가 생각이 나요. 작년에 도잠에서 만든 카드 꽂이를 사무 공간에 놓았어요. 아무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머무는 곳이니까요. 엽서나 전시 안내 책자, 신년 카드들이 시기마다 오는데 이런 것들은 적당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사무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카드 꽂이에는 최근에 받은 엽서나 사용하는 작은 컵, 읽고 있던 책들을 모아 두어요. 이 정도는 사무 공간에 할애하는 것도 일 사이에 최소한의 쉼을 주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또 한 가지는 가장 최근에 구입한 TC100이라는 커피잔이에요. 취향이 혼자 날개를 달고 진화를 하다보면 돌고 돌아 과거로 가는 경우가 있어요. 예전에 봤던 물건인데 그땐 그러려니 하고 흘렸던 것이 달리 보이는 거예요.
1959년에 개발된 TC100이 그렇습니다. 1961년부터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닉 로에리히트가 울름조형대학에서 졸업 작품으로 만든 것이에요. 이 컵은 디자인사적으로 의미가 있어요. 제조 공정과 운반, 수납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디자인한 식기이니까요. 식기들을 쌓아놓아도 매우 안정적이고 부피 또한 당시 기준으로 많이 차지하지 않았어요. 이전에는 시도한 적이 없던 구조라고 하죠. 오늘에야 당연히 둔탁해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안정감을 줍니다. 찻잔과 컵이 부딪치며 달그락 소리를 낼 때 미세한 진동이 느껴져요. 천고가 높은 어느 미술관 식당가에서 커피를 마시던 생각이 나서 여행의 맛까지 나더군요. 여행이 가고 싶은가 봐요.
마지막으로, 현대 공예가 발전하려면 어떠한 방향성에 초점을 두고 나아가야 할까요?
공예를 사랑하는 ‘공예 주변인’으로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학업 때문에 런던에 장기 체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참 많은 창작자를 만났어요. 문화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건 창작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예가, 디자이너, 화가, 큐레이터, 사진가 구분 없이 서로 어울렸어요.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에요. 책에 소개한 ‘모습’이나 ‘공예장생호’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그때가 생각이 났어요. 내가 표현하는 수단이 글이고, 그들이 표현하는 수단은 흙이거나 공간인 것이죠. 경계가 흐릿해지면 불안감은 고조될 수 있지만, 더 큰 의미에서 확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체성은 상대적이에요. 공예라는 정체성은 공예 밖에서 더욱 단단해진다고 생각해요.
*김지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팀장.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디자인학 석사,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및 비교문화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모닝글로리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문화상품개발 팀장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연구 교수로 일했으며 디자인과 상품 문화에 대한 글을 써왔다. 2015년부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 재직하며 공예와 디자인 문화의 확산을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이끌고 있다. 저서와 논문으로는 『런던 디자인 산책』, 『행복의 디자인』(2015 세종교양도서), 「메타상품으로서 문화상품」(2014 한국디자인학회 최우수논문상) 등이 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