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의 선택
톰 히니 저 / 권혜원 역 | 노천서재
부제는 ‘다 큰 어른이 악기를 배운다는 것’이고요. 책 표지에는 “연습이 귀찮아서 악기로부터 멀어지려는 이들에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정말 제목에 충실한 책이에요. ‘네가 악기를 연습하고 있고 연습하기가 싫을 때가 온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이 가르쳐 주겠다’라는 내용이 주 골자고요.
기본적으로 많은 예시들을 들어줍니다. 그 예시가 이런 거예요. 어떤 십대 친구가 30분간 피아노를 연습하는데 너무 하기 싫어해요. 몸을 비틀고 5분에 한 번씩 시계를 바라보고, 그 억겁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연습실에서 뛰쳐나와서 하는 게 농구예요. 그런데 농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하는 거죠. 똑같은 연습인데 왜 피아노 연습은 30분도 버거워하고 왜 농구는 하루 종일 할 수 있을까, 라고 봤을 때 저자는 몇 가지 요소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장악이라고 불리는 거예요. 연습 자체를 내가 하고 싶어서 하고 뭘 할지에 대해서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는 영역이라는 거죠. 원할 때 연습을 시작하고 원할 때 그만둘 수 있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움직임과 관련된 내용인데요. 농구를 하면서 일단 달려야 되고 뛰어야 되고 점프를 해야 되고 슈팅을 해야 되는데,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인다는 건 신나는 행동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고요. 피드백이란 영역도 있습니다. 공이 날아가면 내가 성공했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어요.
골대에 들어가면 성공한 거고 골대에서 튕겨 나가면 실패한 거죠. 그리고 만족 영역도 있죠. 설사 슛이 안 들어가더라도 바스켓에 공이 튀어오르는 경쾌한 소리와 백보드에서 떨어질 때의 모습과 눈 초점을 공에 맞추고 있는 자체가 나한테 만족을 선사하는 게 있고요. 그리고 감정적으로 공이 들어갈 때는 짜릿해지고 들어가지 않을 때는 위축되는 상황적인 맥락도 있고요. 상상 영역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르브론 제임스고 마이클 조던이라고 상상하면서 기분 좋게 행동을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정체성 면이 있어요. 나는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라는 생각을 이 친구가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친구가 30분간의 피아노 연습을 너무 싫어했던 이유는 이 모든 영역이 충족이 되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고 해요. 그렇게 봤을 때 저자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이 악기를 연습하는 게 너무 힘들면 그건 잘못됐다, 조금씩 연습 방법을 바꿔서 연습하는 게 왜 싫은지 그것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서 바꿔나가면서 연습을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핵심적인 부분은 ‘연습이 즐겁지 않으면 안 된다, 연습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가 주제고요. 그것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팁을 제시해 줍니다.
그냥의 선택
심혜경 저 | 더퀘스트
단호박 님이 소개하신 책과 많은 교차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두 책이 멀어졌다가 만났다가 하면서 같은 길을 가는 느낌이에요. 심혜경 저자님은 단호박 님의 롤 모델 같은 분이에요. 배우고 싶은 게 많고, 공부를 많이 하시고, 그걸 굉장히 즐거워하는 분이에요. 공부의 목표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걸 배우면서 내가 즐거운가, 그 이전보다 뭐가 하나라도 더 얻었나, 성취감을 느끼는가, 성장했다고 느끼는가, 그것들이 충족되면 됩니다.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우신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간추려서 말씀드리면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악기도 있고요.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페란토어 등 언어도 있습니다. 태극권, 수채화, 옷 만들기도 배우셨고요. 영화 학교에서 수업도 들으셨어요. 워낙 호기심이 많으셔서 장르를 불문하고 ‘그게 뭔데? 재밌겠다!’ 싶으면 배우기 시작합니다.
심혜경 저자님은 27년 동안 서울시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셨고, 지금은 10년 넘게 번역가로 활동하고 계세요. 그래서 언어를 공부하거나 번역을 해야 하는 일이 있거나 하면 주로 카페에 가서 하신다고 합니다. 책의 제목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인 이유를 아시겠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우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말씀드렸듯이 저자님은 ‘배우는 과정이 즐거우면 그 동안은 배운다’라는 주의예요. 그래서 ‘배우다가 그만둬도 괜찮아, 뭐 하나 남은 게 있으면 그만둬도 돼’라고 하시는데요. 저는 그게 안 되는 타입이거든요. 중간에 그만둔 걸 부끄러워하고 끝까지 하지 못할 거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태도의 차이이고 시선의 차이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거나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용인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고요. 중도 하차를 하더라도 ‘시작하기 전보다 얻은 게 하나라도 있으니 됐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시작하는 사람은 하나를 얻잖아요. ‘완주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시작도 안 할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얻지 못하는 거고요. 그런 점에서 저자님처럼 생각하는 건 정말 실용적이고 쿨하다고 생각돼요. 그리고 자신이 잘하지 못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거잖아요. 그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요즘 ‘나이 들어서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이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뭔가 할 일이 필요하다. 나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를 ‘공부’로 치환하기로 했다.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내겐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최인철, 홍성수, 김민정, 이은주, 최호근 저 외 4명 | 마로니에북스
단호박 님이 소개하셨던 책 『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에 대한 나름의 답신을 가지고 왔어요. 그때 우리가 너무 괴로워하느라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고 확산되는가, 왜 혐오를 해서는 안 되는가를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서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혐오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나 머리를 너무 괴롭히지 않으면서 끝까지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는, 일단은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는 책을 골라왔어요.
부제가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이고, 2020년 가을에 열린 티앤씨 온라인 컨퍼런스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책입니다. 아홉 개의 짧은 강의를 모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당시 컨퍼런스의 주제는 ‘비뚤어진 공감’이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은 공감이라는 것을 흔히 좋은 것, 일단은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공감에도 방향이 있고 그 중에서 편협한 공감, 비뚤어진 공감은 혐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다양한 맥락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고 확산되며 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지를 들여다보고 어떻게 대항할지를 제안하는 이야기들이고 2부 유럽의 홀로코스트, 이슬람 포비아를 비롯해서 아프리카 인종주의와 르완다 내전의 민족 갈등 등등 인류가 역사로 겪어온 혐오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3부는 컨퍼런스에 참여한 강사들이 가졌던 좌담의 내용입니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제 생각을 조금 풀어보자면, 저는 혐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또 인정하지 않습니다. 혐오를 표현할 자유라는 건 없다는 입장인데요.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고 ‘상처가 되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 자체를 저는 의심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상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혐오의 표현이. 그리고 그런 혐오의 표현은 동종의 혐오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서 언제든지 집단적 그리고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저는 혐오 표현에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책을 펼쳐보면, 공감은 컨퍼런스의 기획 단계부터 아주 중요한 키워드였다고 합니다. 몇 해 전부터 공감이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다양한 장르에서 언급되어 왔다고 저는 알고 있는데요. 마치 한국 사회의 각박함이라든지 폭력성에 대한 해결법 혹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공감이) 논의되고 회자된 흐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감을 호출하는 담론들도 상당히 있었는데요. 이 컨퍼런스를 기획한 김희영 티앤씨 재단 대표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질문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감 능력을 키우고 나면 이 세상의 혐오는 사라질까.
이 책은 공감 중에서 잘못된 방향의 비뚤어진 선택적 과잉 공감이 문제가 되어서 생겨나는 혐오와 역사적 폭력을 다양한 맥락으로 살펴보는데요. 저는 특히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선택이나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딱히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미군기지 내에서 무슬림 포로를 학대한 사건이라든지 혹은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독일 대중의 전폭적 지지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요. ‘가해자인 그 사람들이 공감 능력이 없는 이들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내집단을 향한 과잉 공감 상태였다’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내집단에 대한 공감이 클수록 외집단에 대한 공감의 여지가 사라지고 외집단에 대한 처벌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는 공감 능력이 클수록 외집단에 대한 처벌의 강도를 더 강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내집단에 대한 공감은 언제 어느 때 커질까요. 다들 경제적이고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개인이 집단에 의존하고 집단이 중요해지면서 외집단을 향한 혐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이 책을 읽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혐오는 단발로 끝나지 않고 단계를 거쳐서 확산되고 증폭되는 양상이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에서 세 개의 그래프를 통해서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마지막 단계는 집단 학살입니다. 혐오를 표현하는 말 몇 마디가 집단 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한국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렇게까지 되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히틀러가 투표를 통해서 독일 시민 44%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인물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가능하지 않은 것도 없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이 소개했으면 했던 책도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항상 읽을 때마다 발견되는 부분이 달라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책인데, 이 책에도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있어서 마지막으로 붙여보겠습니다. 「억압의 위계란 없다」라는 산문의 일부입니다.
“나는 이런 차별 세력들과의 전투에서 어느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할지 선택할 여유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디서나 나타나 날 파괴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날 파괴하러 나타났다는 것은 곧 그들이 당신을 파괴하러 나타날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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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