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정 교수 "일상과 밀착되어 있던 동양미술의 미(美)"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양미술에 대한 독자들의 선입견을 버리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냥 한꺼번에 보는 게 아니라 읽어 나가는 미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요.
글ㆍ사진 신연선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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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교수는 혁신을 일으킨 작품들을 중심으로 보아온 미술사를 서양 관점이라고 말한다. 금귀걸이, 도자기, 나전칠기 등 서양미술에서는 미술로 보지 않았던 공예 작품들까지 모두 미술로 다루며 “동양미술이라는 세계를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의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 주변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마음이 필요”(1권, 23쪽)하다고 강조한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2』는 불교가 시작된 인도부터 동양미술에 다방면의 영향을 미친 중국까지, 동양미술의 시원을 찾고 의미 찾기를 시도한다. “미술은 우리의 정신 세계를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든다”는 강희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읽어 나가는 미술”의 즐거움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양미술의 다른 점

“서양미술이 스스로 발전을 거듭한 끝에 일상에서 먼 곳까지 달려나갔다면 동양미술은 생활에 밀착해 있습니다.”(1권, 20쪽)고 하셨죠. 어떤 면들이 동양미술과 서양미술 사이에 이런 차이를 만든 걸까요? 

서양미술의 경우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큰 신과 신전, 조각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중세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어요. 중세의 가장 큰 줄기는 기독교미술이었고요. 이후 르네상스 전까지 기독교미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거의 모든 지역을 총망라하고, 대표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한편 동양에서 기독교미술에 상응하는 것이 불교미술일 텐데요. 불교는 기독교만큼 빠르게 지배적인 종교가 되지 않았죠.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 1-2세기부터 힌두교가 불교와 발 맞춰 발달하기 시작했고, 5-6세기가 넘으면 완전히 힌두교 중심이 되거든요. 동양에서 불교가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은 중국, 중앙아시아, 한국, 일본으로 전파가 되면서였어요.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불교가 융성하기는 했지만 중국 역시 유교, 도교 등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에 의한 반발이 컸죠. 서양에서 기독교미술이 폭넓고 뿌리 깊게 발달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 있었던 거예요.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지배적인 권력이 크게 영향을 끼쳤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크겠군요. 

만일 중국에 유일신이 있었다면 당연히 아부심벨 못지않게 큰 신전을 지었을 거예요. 하지만 신전 자체가 별로 나오지 않거든요. 제사는 지냈지만 유일신처럼 힘이 센 신의 개념이 없어요. 불교가 들어가서 비로소 큰 사원을 짓기 시작하죠. 한편 서양에서는 지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굳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일이 없잖아요. 그럴 필요도 없었고요. 서기라는 직업이 이집트 때부터 계속 있었는데 동양은 그게 없어요. 동양은 무식한 사람들도 권력을 잡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 되거든요. 일본의 무사 정권 같은 경우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씨를 쓰건 그림을 그리건 붓을 잡는 걸 좋아하는 전통이 비교적 더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양의 전통은 서양의 전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출이 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일상생활과 밀착이 되어 있었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동양미술이 특정한 권력이 향유하는 미술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미술이었던 데에는 그런 문화적인 측면도 있었네요. 

문화적인 소양을 중요하게 여겼죠. 아시다시피 중국이나 한국이나 과거 제도가 있었죠. 과거 제도가 미술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는 못하지만 정신적인 문화를 존중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하기에는 충분한 밑받침이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서양은 신분이 중요했잖아요. 싸움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아들들이 계속 왕위에 오르는 혈연이 중요했는데요. 동양도 물론 그런 게 있었지만 동양은 귀족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거의 당대 쯤에 끝이 나요. 과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게 동양적인 정신이고요. 확실하게 어떤 정신적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미술이 발달할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1권은 인도, 2권이 중국이에요. 같은 동양미술의 자장 안에서도 굉장히 다른 흐름들이 있더라고요. 

서양도 이집트 다르고 그리스, 로마 다르듯이 엄청나게 다른 문화와 전통이 미술로 표현된 거거든요. 동양도 마찬가지죠. 인도와 중국은 그 자체로도 워낙 넓다 보니 그 안에서도 엄청 달라요. 이 책은 아주 핵심만 다루어서 일관성 있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죠. 인도의 경우 사실 한 번도 통일된 적이 없어요. 지금과 같은 식으로 통일된 것은 식민지가 되면서예요. 지금도 인도를 가시면 지폐에 15개 언어로 내용이 새겨져 있거든요. 문화, 역사, 전통, 종교가 다 달라요. 인도나 중국이나 전부 다른 맥락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술을 만들고 원하는 방식으로 즐겼죠. 때문에 저는 통일성보다는 그러한 다양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다양성을 인정을 해야만 각기 다른 미감과 미의식을 표출하는 미술을 만들어왔다는 걸 인정할 수 있어요. 

그 중, 인도를 1권에서 다룬 이유로 “불교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1권, 496쪽)이라고 하셨어요. 결국 불교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아시아라는 곳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죠. 

이 점을 제일 먼저 주목한 건 일본이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근대에 들어 서양의 기독교에 대응할 만한 동양 정신의 핵심이 불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19세기 후반에 인도를 굉장히 열심히 공부해요. 모든 시작이 인도에서 왔다고 말이죠. 왜냐하면 불교가 인도에서 왔으니까요. 불교를 강조하다 보니 인도에서부터 시작해 다음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게 되었던 거고요. 사실 인도와 중국은 독자적으로 발달한 게 맞아요. 비슷한 시기에 인류가 모여서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문명을 만들기 시작했죠. 다만 읽을 때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어서 인도와 중국 순서로 책을 구성한 거였어요.

서양미술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연구가 진행됐다는 점이 묘하게 느껴지네요. 

일본은 이미 1870년대에 유럽에 많이 가요. 일본이 빨리 문을 열었잖아요. 1876년,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게 일어나면서 정치 체제가 확 바뀌는데요. 그때 서양을 굉장히 많이 열심히 찾아가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기술이 있고, 우리는 정신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담론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고요. 그렇게 19세기 말이면 이미 인도를 가요. 20세기 초에는 간다라 미술을 공부한 프랑스 학자 ‘알프레드 푸세’를 도쿄에 초빙해 강의도 시키고요. 그런 정도니까 모든 것이 굉장히 빨랐죠. 

책에서 소개한 많은 작품들 가운데 동양미술의 특징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주목해서 지켜봤으면 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중국은 ‘마왕퇴’에서 나온 ‘T형 비단’을 꼽고 싶어요. 그것이 매우 중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표현 방식이나 당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 사후 세계에 대한 것도 표현이 되어 있고요. 신화적인 세계도 표현되어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인도의 경우, 지금까지 다룬 것 중에서는 역시 ‘산치 스투파’예요. 그것이 정말로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정확히 산치 스투파가 영향을 줬다는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그 유형의 탑이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요. 저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탑의 기원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산치 제1스투파 ⓒarun sambhu mishra / Shutterstock.com 


기원 전후의 산치 사원 상상도 ⓒ사회평론 


마왕퇴 1호묘의 T형 비단 

목적과 필요에 의해 만든 미술들

고고미술의 특징이라면 아직도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작품들도 있고, 그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도 해석하는 것들도 많죠. 이것은 고고미술의 가능성이기도 하고 어려운 점이기도 할 것 같거든요. 

일장일단이 있는데요. 옛날 것들은 텍스트가 없잖아요. 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누가 만들었고, 어떤 용도로 썼는지 추정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아쉬운 점지만 거꾸로 생각할 부분도 있어요. 아무리 텍스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은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침에 세수하고 학교에 갔다는 건 누구나 하는 얘기니까 남기지 않잖아요. 그러니 추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들이 고고미술사에서 다루는 유물과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때문에 그 작품이 만들어진 역사와 문화, 이를테면 지배자들의 의도 같은 것들까지 함께 이해하는 것이 작품을 보는 데 중요한 요소겠죠. 

미술이라고 말할 때 흔히 갖는 생각은 순수미술이거든요. 오로지 감상만을 위한 미술 말이에요. 그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선입견이에요. 그런데 사실 미술이 그랬던 시기는 굉장히 짧습니다. 서양에서도 미술을 위한 미술,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하는 것들은 기껏해야 르네상스 중후반에 이르러야 싹이 나오기 시작하고요. 동양에서는 모든 미술이 어떤 의도로든 목적이 있고 필요가 있어서 만드는 것이 기본적이었어요. 다만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것은 동양이 빨랐죠. 회화, 산수화 이쪽에서는 개인의 개성을 충분히 인정을 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동양이 좀 더 표현주의적인 태도를 빨리 가졌다고 봐요.

그 중, 동양미술에서 도자기의 발전은 중요한 것 같아요. 인도는 토기에서 멈췄지만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서는 도자기가 엄청나게 발달했어요. 

서양과 동양미술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도자기 제작 여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중국이나 한국도 도자기를 일반인이 쓰지는 못했을 거예요. 일반 사람들은 다소 질이 낮은 토기나 나무로 만든 목기를 주로 썼겠죠. 그럼에도 지배자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에 맞춰서 도자기들을 만들게 된 거고요. 만들다 보니 예쁘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점점 더 기술이 발전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죠. 요즘 IT 쪽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게 혁신인데요. 어떤 의미에서 도자기야말로 혁신의 혁신을 거듭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읽어 나가는 미술을

이렇듯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것들을 모두 미술 작품으로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흔히 ‘미술’이라고 하면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들을 생각하잖아요. 이에 대해 “서양의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 주변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마음이 필요”(1권 23쪽)하다고 하셨어요.

마음이 열리면 눈도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보자기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우리 것을 잘 알자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자수로 만든 안경집 같은 것들이 새롭게 눈에 띄게 되었어요. 조각보를 이어서 만든 보자기 보신 기억이 있을 거예요. 그건 심지어 몬드리안의 그림과도 비교될 만한 느낌을 주거든요. 이렇게 다시 주목을 하게 되면서 새롭게 우리의 미(美)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 과정이 우리의 변화된 인식이고요.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들인데 그동안 아무도 그 점을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단편적으로 보고 넘어갔던 것들이죠. 저는 그런 것들을 다 모아서 우리가 볼 수 있고 감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동양의 미의식, 동양의 미적인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지금 동양미술의 맥락을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할까, 라는 질문에는 어떤 답을 하시겠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동양미술의 매력은 뭔가요? 

동양미술의 매력을 말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미는 느끼는 것이고, 스스로 감상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글로 아는 것은 일종의 교과서적인 지식인데요. 예를 들어 석굴암에 들어가서 사람들은 그냥 쓱 보고 나와요. 저는 과감하게 그곳을 막은 유리창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석굴암 같은 경우 예배하고 절하면서 사람들이 아래에서 올려다보게끔 고안된 조각이거든요. 그런 것을 멀리 떨어진 곳, 유리창 밖에서 성인의 남자 눈높이로 보게 했잖아요. 그건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니죠. 저는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양미술에 대한 독자들의 선입견을 버리도록 하고 싶었어요. 작품 하나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책에도 지시선이나 작품 보는 순서 등을 표기한 거예요. 그냥 한꺼번에 보는 게 아니라 읽어 나가는 미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요.

읽어 나가는 미술이라는 건, 미술 작품을 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해요. 어쩔 수 없이 다른 문화권, 다른 나라의 미술과 비교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때도 선생님은 우열을 따질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죠. 

어느 것이 더 훌륭하다, 덜 훌륭하다는 말을 삼가면 좋겠다는 제 의사가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제가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일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 영국 사람과 인도 사람처럼 제국과 식민지 관계에 있어 제국의 미술이 우월하고 식민지의 미술은 열등하다는 인식을 종종 목격했어요. 그런 것이 저에게는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았고요. 그것은 옳지 않다는 반발심이 계속 있었어요.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런 개념들을 버리고자 했죠. 그저 이들은 이런 걸 좋아했고 저들은 저런 걸 좋아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식으로 표현했고 저들은 저렇게 표현했다는 정도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가 있어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예를 들면 ‘백제 향로’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경우 중국의 영향은 받았지만 한국만의 발전이 있었다고 명확하게 구분을 하시죠.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크더라고요. 

역시 저의 반발심입니다.(웃음) 최근에도 미국 일부 학자들 가운데 한국의 미술작품이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나왔으면 당연히 한국미술로 보는 게 상식적이잖아요. 그것을 무시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지 너네가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겠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선입견에 찌들어 있는 거예요.



한국미술의 위치는

이어 나오게 될 다음 시리즈에서는 어떤 내용들을 다루게 될까요? 소개를 부탁드려요. 

1권에서는 인도의 쿠샨 시대 초기까지만 다뤘어요. 불상의 발생을 이야기하지 못했거든요. 이제는 잘 알고 계시지만 불상은 간다라와 마투라부터 시작해요. 간다라는 인도 서북부, 그러니까 인더스 문명 발생지보다 더 아프가니스탄 쪽이거든요. 그래서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요. 마투라는 인도 내륙이고, 힌두교상이 많아요. 석가모니 탄생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오늘날도 인도의 중요 지역인만큼 교통의 요지죠. 여기서 만든 불상이나 힌두교 상들을 다른 데로 보내기가 쉬웠을 거예요. 그래서 마투라에서 만든 힌두상과 불상들이 꽤 먼 지역에서도 나옵니다. 또 굽타 시대의 조각들도 다룰 거예요. 그 다음 아잔타 석굴이 등장하는데요. 아잔타는 인도에서 보기 드물게 회화가 남아 있는 곳이거든요. 벽화 말이에요. 그것들이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으로 가는 과정, 그야말로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내용이 될 예정이에요. 

중국은 어떤가요? 

중국에서는 초기의 석굴 사원을 다뤄야 할 거예요. 2권에서 중국 한나라까지밖에 못 다뤘잖아요. 그 뒤가 남북조 시대인데요. 남북조 시대에 나타나는 다양한 불교 사원과 불상이 있거든요. 남북조 시대는 중국의 황하 문명을 만들었던 한족들이 꾸려나간 것이 아니라 북방에서 내려온 이민족들이 중국 북부를 점령을 하면서 지배하려다 보니 생성된 것들이 있어요. 불교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한편 남쪽은 황하 지역에 살던 한족들이 쫓겨 내려가죠. 그래서 이 사람들 약간 한량처럼(웃음) 살아요. 그렇게 나오는 게 도교예요. ‘죽림칠현’을 실제로 미술로 표현한 것들도 중국의 남경에서 나왔고요. 그럼에도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회화 이론 같은 것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다룬 후에 소그드의 유물들이 등장하는 데까지 가게 될 거예요.

동양미술에서 한국의 위치라는 것도 궁금해요. 주변에 꾸준히 영향받고 그 안에서도 뭔가를 키워내고 했잖아요. 

느끼는 게 한국미술사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미술만 다룬다는 거예요. 하지만 뭔가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남을 알아야 하거든요. 어떤 작품을 보고 그냥 ‘이게 한국미술이구나’ 하고 넘어가게 되던가요. 청바지는 미국 문화인데 한국에서 청바지를 만들었다고 할 때 이게 미국 청바지와 어떻게 다른지는 미국 청바지를 봐야 알잖아요. 그런 면에서 한국미술사가 다소 자기 중심적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동양미술에서도 틈틈이 가까운 사례를 한국에서 찾아 보여드리는 식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는 동양미술이 중심이 되지만 그때그때 한국과 비교가 되는 것들을 다루려고 해요. 예를 들어 중국에는 석굴 사원을 파지만 한국은 석굴 사원이 없습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심심하잖아요. 그러면 석굴암은 뭐냐는 질문이 나올 수가 있고, 그럼 석굴암은 석굴을 판 것이 아니라 축조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건축이라고 대답을 드릴 수가 있죠. 그런 식의 비교하는 관점이 들어가게 될 것 같아요.



*강희정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강대 동남아학 교수이자 동아연구소 소장이다. 중국과 한국 미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발 딛지 않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술로도 영역을 넓혔다. 한·중·일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드문 미술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동양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많아 꾸준히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쓰고 있다. 서울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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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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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강대 동남아학 교수이자 동아연구소 소장이다. 중국과 한국 미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발 딛지 않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술로도 영역을 넓혔다. 한·중·일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드문 미술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동양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많아 꾸준히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쓰고 있다. 서울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어릴 적 어린이잡지에서 유물을 다룬 기사를 보고 매료돼 동양미술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다. 3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하며 미술사가 고리타분하지 않은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나 쉽게 동양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동양미술 전도사를 자처한다. 동양미술의 아름다움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 이 세계를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 작업에 뛰어들었다. 지은 책으로는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 일제강점기 석굴암론』, 『동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의 새로운 모색』, 『클릭, 아시아미술사』, 『해상 실크로드와 문명의 교류』, 『아편과 깡통의 궁전』, 『신이 된 항해자: 21세기 말레이 세계의 정화 숭배』 외에도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