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해찰이 심함.’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를 보고 내가 처음 한 생각은 ‘해찰이 뭐지?’였다.엄마의 표정을 봐서는 절대 좋은 말은 아닌 듯했다. 이후 사전을 찾아보니 해찰은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한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지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웬만하면 좋은 말을 써주는 게 초등학교 생기부의 불문율인 줄 알았건만 나의 초1 담임 선생님은 ‘김송희’ 학생에게만 솔직한 평가를 적어주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현대 사회에서 하나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한 사람은 하나의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팀원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고 퇴근 후에는 가사나 육아를 병행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커리어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계라면 버튼을 눌러 ‘집중, 휴식, 환기’ 모드로 전환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안타깝게도 하나의 뇌를 가지고 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성인 ADHD 자가 진단표를 보내왔다. “송희야, 너 이거 꼭 봐. 완전 너야.” 문항의 내 용은 이러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책을 읽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조심성이 없어 실수를 많이 한다. 돈을 충동적으로 쓴다.’ 등등. 으잉? 안 그런 사람도 있어? 나는 20개 문항 중 2개 빼고 ‘그렇다’에 체크했다.
그런데 현대인 중에서 이 문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자기 서비스에 오래 머물도록 고도로 개발된 가상 공간에 둘러싸여 있는데? ‘왜 집중하지 못할까?(Why Can’t We Pay Attention Anymore?)’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사는 오늘날 기술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기 위해 고도로 지능화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서비스는 알고리즘을 통해 소비자를 예측하고 그들의 서비스에 오래 머물며 광고에 노출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넷플릭스의 특명, 소비자를 집중하게 하라
디지털 시대의 뇌 사용에 대해 연구하는 정신과 전문의 안데르스 한센은 『인스타 브레인』, 『뇌는 달리고 싶다』 같은 자신의 책에서 “디지털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뇌가 함께 발전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정보의 범람에 뇌가 적응할 거라 기대하지만 사실 뇌는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주의가 산만해진다.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며 문서를 작성하는 멀티태스커들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두엽을 더 많이 쓰는 대신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실험을 통해 밝혀진 디지털과 집중력의 관계 중 흥미로운 것은 교실에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 옆에 둔 집단과 아예 사물함에 휴대폰을 두고 교실에 들어간 집단 중 후자가 더 높은 이해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또한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 야외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가 정말로 집중하고 싶은 것은?
스마트폰으로 접속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는 우리의 시간을 두고 경쟁한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회사임에도 자신의 경쟁 상대가 넷플릭스라고 공표하고, 넷플릭스는 자신의 경쟁 상대는 사용자들의 수면 시간이라고 말한다. 소비자의 집중력, 동일한 시간을 두고 게임, SNS, OTT가 경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을 들여 집중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먹보와 털보〉가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1위를 차지한 날, 예능인 노홍철을 만나서 들은 얘기도 시청자의 집중력에 대한 것이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틀어놓기에 부담 없어서 많이들 본 것 같다.”는 기자의 리뷰에 노홍철은 손뼉을 치며 답했다. “태호 형(〈먹보와 털보〉는 김태호 PD가 만든 예능이다)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시청자가 다른 일을 하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예능이라 좋아할 것 같다고요.” 집안일을 할 때 유튜브로 백색 소음이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듯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는다면 꼭 완전히 집중하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하고 편안한 방송이 좋을 것이다. 김태호 PD가 이어서 만든 프로그램 역시 시청자에게 집중을 강요하지 않는 편안한 스타일의 〈서울체크인〉이다. 집중력을 빼앗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 보기에 부담 없는 예능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요즘 창작자들의 생각인 듯하다.
스마트폰으로 업무도 처리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사실 우리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진짜 삶이다. 집중해서 책을 읽고, 커리어나 학업에 도움이 되는 진짜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 이것은 시간 경쟁이고 집중력 싸움이다.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는 그에 대한 작은 방법론이 적혀 있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맥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나와 새들 사이에 맥락이 생긴 과정이 공간이나 시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제니 오델은 페이스북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경험을 한 후 실제 존재하는 것들과 직접 관계 맺기를 시도했다. 그는 새를 좋아했고, 공원에서 새를 관찰했다.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훌쩍 몇 시간이 흐르도록 그는 하염없이 새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새를 관찰할 때처럼 대상과 자신을 일대일의 관계에 두고 맥락을 만들려 시도했고 차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깨달아갔다.
나 역시 스마트폰으로 전자책도 읽고 메일 체크도 하고 카카오 워크와 네이버 밴드를 통해 업무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일을 하는데 거기 집중하는 게 왜 나쁜가 싶다가도 그로부터 벗어나 진짜 삶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침대에서 멀리 스마트폰을 떨어트려 질 높은 수면을 취하고 싶고, 종이책에 1시간 이상 집중하고, 친구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내 고양이의 눈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 공부도 하고 글쓰기도 하고 새해에 이루고 싶었던 것들에 집중하고 싶다. 일단 오늘 밤에는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고 잠을 청해볼 계획이다. 하루 평균 8시간 내 시선을 빼앗았던 것에서 눈을 떼고 SNS도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잠시 멈춰보려 한다.
할… 수 있겠지?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