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오래오래 써달라는 말이 힘이 됐어요 (G. 임솔아 소설가)
오래오래 써달라는 쪽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작가님, 오래오래 써주세요’ 같은 거요. 그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힘이 됐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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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작가님의 단편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무표정을 지켜낼 수 있는 자신에게 자긍심과 만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인공인데요. 심각한 하자가 있는 부동산을 사게 되면서 이 화자는 문제를 겪게 됩니다. 임솔아 작가님의 다른 단편에서처럼 이 단편에서도 화자는 문제의 원인에 다가가 해결을 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공사라는 이름의 원인은 증발해 버렸고 다른 이름으로 똑같은 구조가 똑같은 일을 어딘가에서 반복하고 있는 거죠. 이런 구조에서 개인은 원인에 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의 화자는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위법한 일에 공모자가 되는 선택을 하는데요. 그 순간을 임솔아 작가님은 “좋아요”라는 말과 웃음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그가 겪은 문제는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저는 그의 선택을 소설로 보면서 모두가 폭탄 돌리기 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현실을 다시 경험하고 생각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소설을 쓴 작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거짓말 하지 않으려는 소설가를 만나보겠습니다. 



<인터뷰 – 임솔아 소설가 편>

오늘은 두 번째 소설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로 돌아온 임솔아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 두 번째 단편집이 나오고 이제 한 달하고도 보름 지났는데요. 요즘 뭘 하며 지내시나요?

임솔아 : 요즘 그냥 강아지 산책하고 지내고 있었어요. 장편을 쓰고 있었는데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웃음)

황정은 : 네, (웃음) 열심히 쓰고 계십니까?

임솔아 :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열심히 했습니다. (웃음)

황정은 : 지금 저와 같은 상태인 것 같군요. 저도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웃음) 임솔아 작가님이 여태 접한 리뷰 중에 지금 기억나는 리뷰가 혹시 있을까요?

임솔아 : 리뷰보다 쪽지 같은 게 기억이 나요. 리뷰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요. 오래오래 써달라는 쪽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작가님, 오래오래 써주세요’ 같은 거요. 그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힘이 됐어요. 모르는 분한테 오래오래 써달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 그날은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황정은 : 임솔아 작가님의 첫 소설집인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인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이번 소설집에는 20대 중반에서 30대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다가 내 화자들이 예전보다 나이를 먹었구나 라는 생각을 혹시 해본 적이 있을까요?

임솔아 : 네, 나이 먹었다는 생각이 이번에 들더라고요.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는 인물들이 노동력이라든가 그런 걸 착취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거든요. 그리고 화자들의 나이가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의견이 묵살되거나 착취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묶은 소설 속 화자들을 보니까 일방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스템과 조금 더 다른 관계를 밀접하게 맺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든 거부하든 그런 일을 하는 화자들이 더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게 차이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정은 : 공모자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돌보기도 하잖아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인물들이.

임솔아 : 네. 

황정은 : 첫 번째 단편의 제목이 「그만두는 사람들」입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인데요. 저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독자로서 그리고 동료 작가로서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 경험을 했어요. 임솔아 작가님의 소설에는 글 쓰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작가님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혹시 이 소설을 쓸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임솔아 : 네. 「그만두는 사람들」 쓰기 바로 전쯤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제가 청탁이 있었어요. (웃음)

황정은 : 청산하지 못한 청탁서가 있었군요. (웃음)

임솔아 : 네. (웃음) 마감이 좀 멀면 얘기가 다르지만 마감이 아주 임박해 있는 청탁이었는데, 펑크를 내면서 그만두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마지막으로 쓰는 소설을 쓰고 그만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고 ‘마지막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을 하고 나서 보니까 쓰고 싶은 얘기가 아무것도 없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쓰고 싶은 게 되게 많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쓰고 싶은 얘기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에 이런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는 동료가 서너 명 있었는데 그분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다른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 자체가 문학적이고 소설적인데 속이 시원하게 마지막으로 한번 써보는 건 어떻겠냐’라는 말을 듣고 ‘그래, 그러지 뭐’라는 생각과 함께 「그만두는 사람들」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잘 써지는 거예요. 플롯이나 그런 걸 딱히 구상하지도 않았는데 술술 나오고 속이 다 시원하고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거구나’ 하는 생각을 다 쓰고 나서야 했었다는 게 기억이 나요.

황정은 : 그만두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군요.

임솔아 : 글쎄요, 그건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못했더라면, 그러니까 소설로 쓰지 않았더라면, 계속 마음속에 ‘이야기를 못했다’라는 마음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갖고 있기는 했을 것 같아요.

황정은 : 쓰고 나서는 어떠셨나요?

임솔아 : 쓰고 나서는 ‘시원하게 썼네’라고 생각을 해서 우선 그때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했다는 만족감(이라고 할까). 지금도 그만둔다, 안 그만둔다, 이런 거를 결정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얘기에 몰입돼서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게 계속 있다면 계속 쓰고 싶고. 그게 아니라 다른 더 좋은 일이 생긴다든가 그렇다면 언젠가 다른 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은 똑같이 갖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다만 「그만두는 사람들」을 쓰기 전에 마음이 약간 비장하기는 했었어요. (웃음)

황정은 : 「그만두는 사람들」을 보면 손을 모아서 흘러내리는 물을 이어서 받는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임솔아 작가님이 소설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변에 지인들에게 의논을 하셨다고도 했는데, 그분들이 혹시 이 소설에 나오는 그런 사람들일 수 있을까요?

임솔아 : 그렇죠. 그분들이 「그만두는 사람들」을 쓰는 데 도움이 됐던 건 맞는데요. 계속 쓰는데 혹은 그만두지 않는데 어떤 도움을 꾸준히 주고 있다기보다는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을 현실적으로 받고 있는 것, 그게 계속 써나갈 수 있는 힘보다 저한테는 되게 더 크게 와 닿는 게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힘을 받고는 있어요.

황정은 : 요즘 뭐 쓰세요? 열심히 써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는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 조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임솔아 : 쓰고 싶다고 생각한 소설이 두 개 정도 있었거든요. 

황정은 : 단편인가요? 

임솔아 : 둘 다 장편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한 지 꽤 오래됐어요. 하나는 20대 때부터 ‘언젠가 이 얘기를 써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쓰고 싶었던 장편들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갖고는 있는데 그걸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정도 생각을 갖고 있고. 쓰고 싶었던 얘기를 못 쓰더라도, 그 얘기가 아니라 다른 얘기를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황정은 : ‘그만두지 않고 엉성하게 같이 했으면 좋겠다.’ 임솔아 작가님의 이번 단편집에 나오는 말인데요. 저는 이 말이 임솔아 작가님이 들은 말 같기도 하고, 또 임소라 작가님이 동료 누군가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계속 한 생각이기도 했어요. 하필 또 첫 번째 단편이 「그만두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생각을 계속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저는 임소라 작가님이 그만두지 않고 엉성하게라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임솔아 : 감사합니다.




*임솔아

1987년 대전 출생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를,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장편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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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임솔아 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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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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