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인으로 살겠다는 마음이 자신을 지켜주었다는 심리학자가 있다. 2019년 『메타인지 학습법』으로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리사 손 교수다. 손 교수는 올해 1월 신간 『임포스터』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메타인지에 대해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메타인지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임포스터(impostor)'라는 단어를 모르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이게 어떤 의미이며,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임포스터’란 심리적으로 가면을 쓰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메타인지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메타인지는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임포스터들은 남들에게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이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라면 수업 시간에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내가 배우는 내용의 난이도를 판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뒤 선생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임포스터는 이런 상황에서 질문을 할 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노력하지 않아도 다 아는 척하는 순간 사람은 가면을 쓰기 시작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을 쓴 가장 이유가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많은 가면을 쓰고 불안을 겪었기 때문이다. 계속 임포스터로 살기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처럼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에게 가면을 벗어도 우리 모두 완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내가 혹은 내 자녀가 임포스터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아이마다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을 선택한다. 집에서는 조용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있고, 학교에서는 이해심 많은 친구인 척하는 가면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면을 쓰고 있을 때 나타나는 공통적인 신호가 하나 있다. 아이가 부모나 선생님에게 말을 잘 안 하거나 감정을 숨기는 것이다. 내적으로 불안하거나 고민하는 일이 있어도, 부모 혹은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아이가 자기의 솔직한 감정을 감출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이 심해지면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임포스터로 성장할 수 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면이 드러날까 봐 대화를 피하고 아무 문제 없는 척, 전부 다 아는 척하는 것이 바로 가면의 징후가 된다. 새로운 걸 배우거나 시도하고 싶은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도 이런 징후일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 실망시킬까 봐 하고 싶은 것을 못할 때 임포스터일 수 있다.
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 하고 물어봐도 뚱하게 있거나 “그냥 괜찮았어요” “아무 일 없었어요”라고 얼버무리면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알아보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가면을 쓴 징후가 느껴질 때도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면의 신호를 발견하면 가면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잘못된 겸손이 가면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는 겸손이 어린 시절부터 큰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포스터가 되지 않으면서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까?
원래 겸손이란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 잘난 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실력이 못돼’ ‘내가 잘된 건 성공이야’라고 자기를 낮추고 가면을 쓴다. 그러나 이보다 감사하는 겸손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이 이룬 성공에 대해 칭찬을 받으면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인정한 뒤에는 성공하기까지 힘들었던 과정에 대해 털어놓는 것도 좋다. 이런저런 난관이 있었음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임포스터가 되지 않는 진짜 겸손이란 이런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생각의 길, 학습곡선에 대해 설명한다. 학습곡선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인가? 어른들도 자기만의 학습곡선이 있을 수 있는가?
학습곡선은 우리가 새로운 학습이나 도전을 시작할 때 생겨난다. 올챙이부터 출발해서 개구리가 되어가는 모든 과정, 밑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시작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학습곡선이다. 배우는 과정에 따라서 모양도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평균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시작이 힘들 수는 있지만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누구나 학습곡선을 만들 수 있다. 어른이 되면 학습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나는 항상 학습곡선의 시작점에 있을 때마다 우리는 늘 ‘초안’이 된다고 말하곤 한다.
아이가 가면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학습곡선을 찾아가도록 하려면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마음이 급하다. 아이가 바뀌는 걸 당장 보고 싶어하고 느긋하게 뒤에서 기다려주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시험 성적과 입시가 많은 걸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텐데, 이런 부모들에게는 어떤 조언이 필요할까?
사실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것이 내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인간의 평생을 상상해보라. 우리는 모두 성장하면서 수많은 실수를 하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도 많이 마주친다.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어린 시절부터 실수에 익숙해지는 데서 생기며, 실수했던 경험과 시간들이 바로 아이의 학습곡선이 된다. 그런데 이런 곡선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아이에게 개구리가 되라고 요구하면 나중에 아이 혼자 어떤 중요한 순간을 마주 했을 때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아직 아이가 어린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 아직 학습 난이도가 낮아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쉽게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천재’ 혹은 ‘우리 아이는 타고났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앞으로 길게 학습곡선을 걸어가면서 실패를 견디는 경험도 반드시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아이들이 노력을 창피해하고 숨기기 시작할 수 있다.
이번 책에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포로서 겪었던 일들이 특히 마음속 가면을 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은데, 이런 경험들이 ‘메타인지’와 ‘임포스터’ 연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책에서 고백한 것처럼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았다. 한국 아이들처럼 나는 원래부터 똑똑하게 타고났다는 ‘천재 가면’, 착한 딸이라는 ‘겸손 가면’을 정말 많이 썼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내가 유일하게 쓰지 않은 가면이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라면서도 ‘나도 너희처럼 미국 사람이다’ 하는 가면만은 절대 쓰지 않았다. 나 스스로 한국 사람이라는 자각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교포들이 가면을 쓰면서 미국 사람인 척하느라 한국 문화나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반면,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절대 버리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마음, 부모님의 문화에 대한 관심,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여러 가면을 쓰고 임포스터로서 불안이 많았음에도, ‘나는 나를 믿는다’는 생각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생각 덕분인지 언제나 나 자신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으로는 누구보다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에 자신이 있었고,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뚜렷한 생각들이 메타인지, 임포스터 연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한국에서 ‘임포스터’로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모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내가 완벽하면 아이도 완벽하게, 더 쉽게, 문제 없이 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부모들에게 뭐든 완벽하게 잘하려고 애쓰면서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부모가 가면을 벗고 불안을 줄이면 아이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진짜 학습곡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리사 손 손 박사는 컬럼비아 대학교와 제휴를 맺은 바너드 칼리지의 심리학 교수로 인간의 학습과 기억, 메타인지를 전문으로 다루며, 학습 방법과 장기 기억 보유의 최적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평범한 성인과 아동은 물론 원숭이를 포함해 다양한 대상의 메타인지 행동을 연구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고등연구소(Princeton’s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방문 연구원(Visiting Member)을 지냈으며 한국 풀브라이트 학자로 2회 선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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