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계획 같은 거 안 세워요.”
주변에서 새해 계획을 물어올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몇 년간 실제로 계획이 없기도 했고,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결혼, 실직, 이직 등)이 연초에 갑자기 들이닥쳤다. 저렇게 말하는 게 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되는대로 살아도 괜찮은 척 하는 느낌.
그런데 2021년에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며 겨우 살아내고 나니 되는대로 사는 게 정말 두려워졌다. 이렇게는 안될 것 같았다. 무너진 몸과 마음과 관계, 안 좋은 습관들의 누적, 관리해야 하는 경제 상황과 커리어 등등. 물론 12월 마지막 주가 돼야 한 생각이다.
직접적인 계기들도 있었다. 6개월간 작가의 북클러버 모임을 진행해 주셨던 김신지 작가님이 리추얼 플랫폼 ‘밑미’의 할인 쿠폰을 선물해 주셨다. 그런데 만료가 이틀 남아 있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에 들어오는 리추얼 프로그램을 신청해 버렸다. 아침마다 다섯 줄 일기와 식사를 인증하는 것이 미션이다.
모처럼 저녁 산책을 하던 중에는 집 맞은편 2층에 있는 헬스장을 발견했다. 우습게도 이사온 지 다섯 달 만이었다. 이것은 운명일까? 무작정 들어가서 PT 10회를 등록해 버렸다. 역시 계획은 지불을 통해 완성되는가...
그런가 하면 조금 다른 계획도 우연히 세워졌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까운 친구가 상을 당해서 포항의 한 장례식장까지 가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조문객도 거의 없는 그곳에서 자정이 넘도록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때 영화 작업을 함께하던 사이였고, 창작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남아있기에 우리는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각자 장르는 달랐다. 친구는 웹툰 시나리오, 나는 소설. 배우로 활동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가 모임 인원은 더 늘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2022년 첫 주는 어느때보다 바빴다. 아침마다 일기를 쓰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서 인증하고, 저녁에는 혹독한 PT를 받았다. 작심삼일의 고비도 슬쩍 넘겼다. 주말에는 소설이 될지 뭐가 될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끄적여 볼 예정이다. 몸은 조금 고단하지만 지난 몇 해를 통틀어 가장 활기 넘치는 시작이다.
아, 나 계획 세우는 거 좋아했네. 이대로 몇 주라도 쭉 더 이어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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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나답게 읽고 쓰고 말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