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이미예의 천진한 이야기에 매료됐다. 잠들어야 입장할 수 있는, 반항 한 컵으로 내리막길에 진입한 통근 버스의 속도를 줄이고, 상쾌함 17%를 함유한 음료로 기분을 전환하며, 크고 선량한 요괴가 쓰러져 잠든 내 어깨를 북슬북슬한 가운으로 덮어주는 이상하고 따뜻한 세계. 이야기의 중심은 이 세계의 랜드마크인 꿈 백화점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라도 탁월한 영상 연출가인 꿈 제작자들이 만든 꿈 쇼핑을 즐긴다. 손님의 자격은 단 하나, 잠들 것. 그렇기만 하다면 부지런한 오픈-런도, 광클릭의 예매 과정도 없이 꿈을 꿀 수 있다.
“꿈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땐 세상에 꿈 이야기가 너무 적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꿈에 대해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책장을 덮고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거든요. 꿈이라면, 그런 일도 가능하잖아요.”
출간 초기, 이미예와 그녀의 첫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성공 스토리’로 치환됐다. 987명이 참여한 텀블벅 프로젝트로 독립 출판에 성공한 뒤 100만 부(1·2권 누적) 판매를 기록한 책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이고, 습작도 없이 쓴 첫 소설이라는 개인 서사가 더해지면서 ‘뉴노멀 시대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읽히기도 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배경 중 하나는 이 달콤한 세계관이 10년 동안의 설계를 갈아엎고 완전히 다시 쓰였다는 것이다.
“회사 다닐 때 쓴 분량에는 단락을 이루는 문장이 하나도 없어요. 엑셀에 ‘밝은 느낌’, ‘아기자기한 느낌’ 같은 느낌 시트를 여러 개 만들고 상황과 설정, 캐릭터 등에 대한 단편적인 문장을 써 넣은 게 다예요. 그 상태에서 수백 번 순서를 바꾸면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한 권을 쓸 만한 분량이 모였다고 생각했을 때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A4 200쪽까지 쓰고 알았어요. ‘이대로 가면 망한다!’ 그때는 조금 힘들었어요. 열여덟 살부터 쌓아온 세계가 무너진 거니까요.”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1권과 2권 모두 에피소드 구성이다. 스물여덟 살에 찾아온 짝사랑 앞에 머뭇거리는 여자, 밤마다 시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머리를 쿵쿵 찧는 꿈을 꾸는 여자, 가족의 꿈속에 나타날 꿈의 시기와 내용을 고르는 망자, 어린 딸을 잃고 아무 일 없던 듯이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젊은 부부, 예고 없이 찾아온 무기력으로 꿈조차 거부하게 된 사람들…. 작가 스스로 ‘생활 밀착형’이라고 부르는 에피소드들은 보편적인 동시에 특수하다.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중 하나는 읽는 이에게 꼭 들어맞았으면 좋겠다, 운 좋게 두세 개가 들어맞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고요.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에피소드가 있어요. 남자는 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통로였던 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날이 많아져요. 그러다 꿈백화점 사람들의 도움으로 들리고, 또 냄새도 나는 추억을 꿈속에서 만나면서 남자는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요. 우리 모두가 시각장애인은 아니지만, 누구나 결핍이 있고 그 결핍을 극복할 힘이 필요하잖아요.”
실제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어디쯤에는 ‘내’가 있다. 판타지 장르 특유의 솜씨로 슥삭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상상에 불과한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그런 꿈이면 기꺼이 빠져들고 싶어진다. 어른들이 이 기적 같은 따뜻함에 매료됐다면, 아이들은 ‘심신 안정 쿠키’와 선하고 장난스러운 털북숭이 괴물과 고농축 ‘죄책감 분말’ 같은 아기자기한 상상력에 흠뻑 빠졌다. 아이들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100만 베스트셀러로 만든 주역이다. 첫 장편소설이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작가는 정말로 좋아한다.
“그 시절에 제가 들어갈 수 있다니, 작가로서 기쁜 일이죠. 그때 읽은 이야기들은 아주 작은 묘사나 설정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잖아요.” 동시에 작가는 “아이들은 순진하기만 한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른으로서의 소명 같은 건 크지 않은 타입이에요. 그래도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었어요. 세상이 선한 것들로 가득하지 않다는 것, 모든 일이 권선징악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2권에 등장하는 어느 나쁜 남자의 악몽은 그 마음의 반영이자 착하지 않은 자들을 향한 작고 확실한 복수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판타지 소설을 보는 일이 더 흔하다. 장르 문학, 한때는 어린이 문학으로 분류됐던 소설은 따뜻하고 정교한 뜻밖의 세계로 우리를 입장시켰다. 그 세계는 다음을 궁금하게 하지만 작가는 “내 안에 쌓아둔 꿈 이야기는 2권을 쓰면서 완전히 소진했다”고 했다.
“독자가 원하니까 이어가는 느낌은 싫어요. 만약 3권이 재미없다면, 저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밖에 못 쓰는 작가, 갈수록 별로인 작가가 될 거예요. 다른 이야기를 쓰고 돌아와서 3권을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직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어요. 적어도 그 이야기를 다 쓸 때까지는 계속 쓰는 작가이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이미예는 한 번도 자신을 ‘소설가’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서른 살, 이미예의 꿈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다.
*이미예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고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했다.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現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첫 소설을 발표해 후원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성공적으로 펀딩을 종료하였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교보문고·영풍문고 2020 종합베스트셀러, 2020년 예스24·인터파크·알라딘·영풍문고에서 뽑은 ‘올해의 책’을 수상하였고, 서점인이 뽑은 2020 올해의 책, 2021년 부천·창원·포천·남양주시·용인시·의정부·대구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2021년 상반기 교보문고,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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