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상실의 병이다. 한 개인의 고유한 기억, 운동 능력, 언어 능력 등 인간다움의 영역을 잃어간다. 또한 치매는 완치가 없다.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어코 병은 진행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끝’이라 생각하고 치매를 두려워한다. 20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돌본 정신과 의사 장기중은 치매에 걸려도 삶은 계속되고, 치매에 걸려 변해가는 환자도 여전히 웃고 울고 그리워하는 한 사람이라 말한다. 기억은 잃어도 감정은 기억된다. 치매 환자의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여전히 연결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는 치매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깊은 질문을 던진다.
치매 전문의라는 직업이 궁금합니다. 치매 전문의는 어떤 직업인가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치매 전문의가 따로 있지는 않고 저는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오은영 선생님 같이 소아를 전문으로 보는 정신과 전문의가 있는 것처럼 저는 어르신들의 정신건강을 다루고, 특히 치매를 앓는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일명 ‘나쁜 치매 증상’이라고 일컫는 망상, 환각, 우울, 불안, 불면, 무감동증, 거부증, 배회 등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을 치료하게 됩니다. 치매 환자에게 나쁜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그들은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더 빠르게 격리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치매의 신체, 인지 증상이 심하지 않은데도 가족들이 두려움에 압도되어 환자를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됩니다. 치매를 완치할 수는 없지만, 나쁜 치매를 착한 치매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가정과 사회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자 희망입니다.
치매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은사님이 노인 정신 의학을 전공하셔서 학생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신과 전문의 수련을 받는 동안 환자의 주관적 진술에 의존해 복잡하고 모호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명확하게 보이는 병을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생겼고, 당시 제 눈에 치매는 확실한 진단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질환 중 하나였습니다. 치매 급성기 증상을 조절하여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명감과 의사로서의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었지요. 물론 치매가 명확한 병이라는 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는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인지 기능이 상실된 치매 환자들과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래도 매일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에세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를 펴내셨어요. 책을 쓴 계기가 있다면?
치매 환자라고 하면 흔히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가족을 힘들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의 바탕에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마치 치매가 자신의 일이 아닌 양 우리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것일지 모릅니다.
치매 환자는 위안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특히 초기 치매 단계에서는 스스로 인지할 수 있고 자신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즉 눈을 뜬 채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온전히 느끼게 됩니다. 그 두려움은 죽음의 두려움과 같고 그렇기에 위안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치매를 격리하려고 하고, 그래서 치매 환자는 자신의 두려움을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되는 이중고에 처하게 됩니다.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가 남이 아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지금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만들어낸 세계, 그분들의 증상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그분들의 세계를 현실과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이해하게 되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그분들을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다시 우리로 포용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치매 환자 가족들에게도 환자가 왜 그런 증상을 보이는지, 환자의 어떤 마음이 그런 증상으로 이어졌는지 그 의미를 이야기해 드릴 때 가족들이 가장 위안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삶의 문제는 답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질문하지 못하는 순간 더욱 큰 고통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증상 뒤에 가려진 그들의 마음에 관해 질문을 시도하고, 그로써 치매 노인이 단순히 죽음을 앞둔 낯선 존재가 아닌, 우리처럼 울고 웃고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임을 알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책에서 어떻게 치매 환자를 이해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그 답을 찾아나가는 작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치매 환자에 관한 이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동행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동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 이전에 치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로 인한 편견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드라마 <눈이 부시게>와 같은 작품들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왜 뭉클한 감동을 주는지 생각해 보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여타 치매 환자들이 나오는 다른 작품처럼 단순히 치매로 고통받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 치매 환자를 보여주며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자극하는 대신 그들의 감정과 마음, 그들이 만들어 낸 세계에 집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치매라는 무서운 병이 아닌 사람을 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들이 현실과 분리되어 만들어 낸 세계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사람들은 그것에 감동했습니다.
치매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치매의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환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치매의 두려움은 무수히 이야기해왔어도, 정작 치매 환자의 시선에서 그들의 두려움이 무엇일지는 질문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진료실에서 치매 노인이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선정되면 보호자와 치료자는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치매 노인들의 두려움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나는 요양원에 가야하나?’ 우리가 두려움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동행을 위한 기본 전제여야 합니다.
책 속에 여러 환자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어떤 분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동반 치매였던 부부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동반 치매로 아내를 먼저 요양원에 보낸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분도 나쁜 치매 증상을 치료받은 후 아내가 있는 요양원에 입소할 예정이었지요.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치매에 걸렸고, 게다가 한 분은 나쁜 치매 증상으로 입원까지 했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두 분을 같은 요양원에 입소시키는 것이 두 분에게 도움이 될지 여부도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식들에게 요양원 입소 시 조심해야 할 부분과 망상 증상의 대비, 약물 복용 방법 등을 설명하고 서류 작성을 위해 직원이 자식들을 데리고 나가자, 진료실에는 주치의인 저와 할아버지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마디도 없었던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아내랑 같이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자식들 다 소용없어. 마누라는 내가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고.”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할아버지에게 요양원은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됐고, 제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건넨 다음 말에 뭔지 모를 뭉클함이 올라왔습니다.
“선생, 그냥 둘이 죽을 때까지만 같이 있게 해 줘”
그제야 그분들이 치매 환자로서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에는 적지 못했지만, 나중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찾아온 부부를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저를 미소 짓게 했는데요.
“마누라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에이, 자꾸 뭐 부탁할 때 나만 찾아. 따로 사는 게 편하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원래 부부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요양원에서 같이 지내는 노부부의 평범한 일상을 흐뭇하게 바라봤습니다.
책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화두를 생각하게 하는데요. 여러 환자들을 통해 삶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의사로 일하며 적잖은 죽음을 만나왔습니다. 암 환자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 치매 노인들,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 고독사 그리고 제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봤습니다. 그 죽음 중에 외롭지 않고, 비극적이지 않은 죽음은 없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대신하거나 도와줄 수 없으며,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치매 환자분들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살아있는 채로 죽음의 과정을 겪고 죽음 앞에서는 자신의 죽음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많은 죽음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지금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되물었습니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나, 사랑하는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맺었나,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구했나?’
그런데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 압박감으로 다가오거나, 일상에 묻혀 쉽게 잊히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어쩌면 죽음이 원하는 대답은 단지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가 아닌 뭔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진료실에서 들었던 이상하게 제 마음을 울리던 치매 노인들의 말 한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분들은 자기 삶의 결함까지 유연하게 품는 삶의 태도가 결국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후회 없는 삶이란 우리의 바람일 뿐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삶에 어떤 결함이 있을지라도 그날 하루에 대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아직은 온전히 자기 삶을 살고 있다 믿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쓸 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서의 치매 환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면서 치매 환자를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삶의 고통을 견뎌내는 힘에 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치매냐는 질문에 “꽃 같은 치매”라고 말씀하신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또 고통만 호소하던 알코올성 치매 할아버지가 어느 날 열 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행복해하신 일도 있었습니다.
“꽃 같은 치매.”라고 유연하게 자신의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 “지금도 나쁘지 않다.”라며 고통을 담아내는 삶의 태도, 봉숭아물 하나에 행복해하는 그분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울림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모두 관계 안에서 가능합니다. 즉 인간다움은 관계 안에서 꽃피울 수 있습니다. 그 고통에 관심을 갖고, 뭔가 애쓰지 않더라도 묵묵히 그 옆에 있어 주는 그런 관계 안에서 우리는 고통받는 이들의 인간다움을 지킴과 동시에 우리의 인간다움도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삶의 방식이 그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울림과 위로를 줄 수 있음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장기중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치매 환자의 고립된 세계와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을 세상과 연결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주편한병원 진료부원장으로 매일 수십 명의 치매 환자와 중독 환자를 돌보고 있다. 현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위원,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협력 의사, 경기도 정신건강심의위원, 근로복지공단 수시 자문 의사, 국회 보건의료발전연구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주관 치매진료의사 전문화 교육을 수료하고,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주관 노인정신건강 인증의 자격을 취득하였으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평생회원이다. 노인정신건강 및 치매와 관련하여 SCI&SCIE급 국제 학술지에 18편(주저자 논문 1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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