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만드는 과정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동료가 있다는 건, 단언하건대 굉장히 멋진 일입니다.” 황효진 작가의 책 문장에 윤이나 작가는 이런 코멘터리를 달았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일입니다.”
여성 콘텐츠팀 헤이메이트의 굳건한 스탠스의 비결이다.
페미니즘을 화두 삼고 여성, 엔터테인먼트, 프리랜서를 공통분모로 의기투합한 여성 콘텐츠 듀오 황효진과 윤이나가 처음 얼굴을 익힌 건 10년 전의 일이다. 한 명은 매체의 에디터로, 한 명은 같은 매체에 칼럼을 싣는 필자로 서로를 인지한 후 동네 친구라는 인연을 추가 고리 삼아 연대감을 차곡차곡 쌓았다. 둘의 ‘케미’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내놓기 시작한 건 콘텐츠팀 헤이메이트를 결성한 후였다. 꾸준히 각자의 책을 내면서, 둘이 함께 책을 쓰고, 둘이 함께 팟캐스트를 만들었다. 함께 쓴 책 제목처럼 『둘이 같이 프리랜서』인 친구가 『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간다』, 『여자들은 같이 미래로 간다』는 여성 서사를 촘촘하게 펼쳐 보이고, <시스터후드>라는 타이틀의 ‘자매애 고취 방송’을 성실하게 송출했다.
알고 지낸 시간의 절반을 생산적인 연대의 결과물로 채울 수 있었던 건 각자의 소개글에 적힌 캐릭터 덕분이다. ‘쓰기보다 읽기가, 말하기보다 듣기가 편한 내향형 인간’ 황효진, ‘읽고, 보고, 쓰는 일이 직업이고, 말하는 게 일상인 외향형 인간’ 윤이나 캐릭터는 레고 블록처럼 한 치 이격 없이 척 들어맞는다. 인터뷰 제목에 올려놓은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는 오늘도 망원동 어딘가에서 공통의 이슈를 놓고 말하고 듣고 있을 두 작가의 다음 작업물이다.
헤이메이트의 방향성이라고 할까요?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각성의 계기’가 각각 있을 것 같아요.
윤이나(이하 ‘윤’) :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연결된 사람에겐 중요 이슈였던 ‘옹달샘 사건’이 계기였어요. 친구와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사건에서 출발한 표어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였고요. 당시만 해도 대중문화 안에서 콘텐츠를 보는 방식이 정교하지 않았는데, 그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황효진(이하 ‘황’) : 저도 비슷해요. 옹달샘 사건과 강남역 사건을 통해,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로서 페미니즘 관점을 갖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성이 만든 콘텐츠에 힘주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은 게 자연스럽게 헤이메이트로 연장된 거고요.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쓰고 여성이 출연하는 콘텐츠를 여성의 시각으로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한다’는 <시스터후드>가 어느덧 3주년을 맞았습니다. 소회가 어떠신가요?
윤 : 특집방송을 준비 중이에요.(웃음) 사실 2년쯤 됐을 때 오래 했구나 생각했는데, 3개월 전 유료화로 전환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어느 인터뷰에서 “헤이메이트의 코어가 <시스터후드>”라고 말했는데, 여성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가 나를 키웠고, 거기에 많이 빚졌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어요. 그렇게 말한 이상, 할 수 있는 한 이 일을 계속하겠다는 확신이 들었고요.
황: 처음엔 부담도 크고 무섭기도 했어요. 페미니즘 관점이 사람마다 다양한 만큼 평가와 피드백이 두려웠거든요. 요즘은 실수를 해도 윤이나 작가가 잡아줄 거라는 믿음, 구독자들에 대한 신뢰가 생겨서 괜찮아요.
10월 13일 기준, ‘아니 근데 <쁘띠 마망>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까지 총 118개의 에피소드를 올렸습니다. 이건 꼭 구독자들이 들었으면 하는 에피소드를 꼽는다면요?
윤 : 유료화 이후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고 후원도 많이 들어온 ‘2020 도쿄 올림픽과 여성’을 꼽고 싶어요. 지금까지 총 147개 에피소드를 녹음하면서 콘텐츠, 인물, 게스트 등 다양한 기획을 했지만, 올림픽이라는 이벤트와 여성, 사회현상을 다룬 적은 처음이었어요. 안산 선수의 커트 문제 등 페미니즘 이슈를 진지하게 다룬 걸 구독자들이 정말 좋아했고요.
황 : 『김지은입니다』를 작업한 봄알람출판사 이두루 편집자 편을 꼽고 싶어요. 팟캐스트 첫 출연에 주제도 조심스러워서 긴장을 많이 했는데, 한 명의 여성으로서, 한 명의 편집자로서 이 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얘기를 듣게 돼서 정말 좋았어요. 더욱 특별했던 건, 이두루 편집자 편만 일주일 후 유료로 전환한 거였어요. 많은 사람이 『김지은입니다』를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여성이 중심이 되는 콘텐츠를 다루는 입장에서 요즘 대세인 ‘워맨스’에 대한 느낌이 궁금하네요.
윤 : 워맨스라는 단어에 여성을 가두지 말고, 여성의 관계를 좀 더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관계는 단순한 국면이 아닌, 누군가는 연대하고, 누군가는 적대하는 복잡하면서도 풍요로운 관계예요. 덧붙이면, 한국 사회 안에서 여성이 살아가면서 알고 느끼는 감정들이 있어요. 지난 5년간 그런 감정들이 만나고, 연결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고요. 그리고 그런 연결들이 여성을 각자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줬다고 생각해요. 워맨스라는 단어만 소비하기보다는 이런 부분에 좀 더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황 : 브로맨스라는 단어도 그랬지만, 워맨스 역시 방송에서 만들고 선도하는 트렌드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단순히 워맨스를 보여준다는 것에 머물지 말고, 여성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는지, 제작진에는 여성이 얼마나 있는지, 제작진이 얼마나 페미니즘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5년 동안의 헤이메이트의 끈끈한 연대와 활약이 누군가에겐 롤 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헤이메이트의 롤이 있다면요?
황 : 누군가를 롤로 삼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아요. 둘 다.
윤 : 수많은 공통점 중 하나인데, 이런 부분은 둘 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의 관계는 우리의 관계일 뿐! 여성들이 그런 말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 “사회생활에선 진짜 친구를 못 만난다”, “일로 만난 친구는 없다”는 말이에요. 너무 쉽게 관계를 정의하는,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는 느낌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우리의 관계가 누군가의 롤 모델까지는 아니어도 “저 사람들은 일하다 친구가 됐고, 저런 관계를 지속하고 있구나”라고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출간을 앞둔 책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는 지난해 4월부터 5월까지 서로에게 번갈아 편지를 쓰고, 그것을 이메일로 전달하는 뉴스레터 프로젝트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어요. 편지를 전하고도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라며 서로의 일상을 쉬지 않고 궁금해하는 두 작가님에게 각각 묻습니다. 황에게 윤이란? 윤에게 황이란?(웃음)
황 : 윤이나 작가는 나를 좀 더 움직이게 하는 사람? 윤 작가를 만나기 전에는 뭔가를 기획하고, 새로운 시도를 벌이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매체에 오래 몸담은 탓에 관성에 젖어있고, 편하게 하려는 습관이 있었는데, 윤 작가는 꾸준히 새롭게 발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타입이에요. 뭘 해도 망하진 않겠구나 싶고요.(웃음)
윤 : 황효진 작가는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하고 싶은 사람? 제 경우, 대부분 생각을 말로 풀어야 하는 사람이라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생활의 동력이에요. 황 작가와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방식으로 떠드는데, 운동도 같이 하고, 메신저도 많이 하고, <시스터후드>를 만들면서도 떠들고, 그러면서도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해요.
*황효진 책부터 팟캐스트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온라인 잡지 『텐아시아』와 『아이즈』에서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의 콘텐츠 디렉터이자, 프로젝트팀 '헤이메이트’의 팀원으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과 『소년소녀, 고양이를 부탁해!』를 공저로 냈고,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쇼 『래프라우더』를 공동 기획했으며, 동료와 함께 여성이 보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 『시스터후드』를 만들고 있다. 불안하면 일을 벌이는 습관이 있고 그래서 가끔 자책하지만, 덕분에 콘텐츠 기획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윤이나 칼럼부터 에세이까지, 스탠드업 코미디부터 드라마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2016년 첫 에세이집 『미쓰윤의 알바일지』를 출간했고 2017년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일하는 여자들』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같은 해에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썼다. 콘텐츠팀 헤이메이트를 통해 읽고, 보고, 말하는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여성들과 함께 나누며 ‘나의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있다. 장래희망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어디서든 쓸 수 있을 정도의 작가가 되는 것인데, 사실 지금도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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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