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희선 “읽는 사람이 자기만의 비밀을 발견하길”
‘무언가 위험한 것’은 모두가 똑같은 것을 추종하고 받아들이는 맹목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무언가 위험한 것’이 정말로 무엇일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말이에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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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기묘하고 다층적인 소설 세계를 선보여 온 소설가 김희선의 신작 장편소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김희선 작가는 이번 책의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나는 극동리에 대해서만 말해 온 건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극동리를 이야기할 테지만, 그 마을 내부에는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삶과 비밀들이 여전히 숨어 있을 것이다.” 

‘잘 살고 싶다’는 데서 비롯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은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욕망이 발현되는 양상은 개개인이 서로 다른 만큼 다채롭다. 김희선의 이야기가 복잡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추악한 욕망이라는 근원에 다다르기까지,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어떤 이야기의 옷을 입고 있을까. 소설가 김희선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하며 떠올렸던 생각들을 들어 보았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라는 제목을 볼 때마다 우주복을 입은 채 누군가를 쫓는 엑스트라의 은빛 물결이 계속 떠올랐어요. 제목을 통해 표현하고 싶던 메세지가 있었나요?             

이 소설은, 어떤 이미지에서 처음 떠오른 작품입니다. 은빛 우주복을 입고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이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혹은 마을로부터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는) 광경을 상상했고 곧바로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라는 제목을 떠올렸지요.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지만(그리고 저는 그 말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래도 굳이 말씀드리자면, ‘무언가 위험한 것’은 모두가 똑같은 것을 추종하고 받아들이는 맹목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무언가 위험한 것’이 정말로 무엇일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말이에요.

마을 노인의 기이한 자살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되신 건가요?

'작가의 말'에도 있지만, 이 도시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외곽에 있는 어느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그땐 숲이 우거지고 계곡엔 물도 흘렀고 정말로 길가에 고라니가 서서 우릴 바라볼 정도였지요. 얼마 후 그쪽 일대가 택지로 개발되면서 그곳은 완전히 변해 버렸답니다. 대부분의 주민이 개발을 찬성했지만 몇몇이 끝까지 반대했다는 것도 기사를 보며 알게 되었고요. 실제로 한동안은 마을 초입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어지더니 택지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요. 그즈음 어떤 노인이 시청 앞에서 농약을 음독하였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토지 보상과 관련된 문제였다는데,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택지는 중간에 계획대로 일이 되질 않는지 몇 년간 텅 빈 부지로 내팽개쳐져 있었는데, 거길 지날 때마다 황량하기가 화성 같다는 생각을 했고, 여기서 '배틀 온 마스'라는 영화를 찍는다면 어떨까 상상했어요. 그러자 은빛 우주복을 입은 군중과 거기 맞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떠올랐고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던 겁니다.

소설 안에서 극동리에서 촬영하는 SF영화 '배틀 온 마스'의 시나리오는 극동리에서 벌어지는 일과 닮아있습니다. 예언 같기도, 암시 같기도 한 시나리오에도 비밀을 숨겨두셨나요?

비밀을 숨겨두었다기보다는, 영화 시나리오 내에서 벌어지는 일과 실제 현실이 혼동되길 원했던 것 같아요. 때로 그런 느낌이 들 때 있잖아요. 내가 실재하는지, 서 있는 이곳이 단단한 지구 위 땅이 맞는지 궁금해지는 느낌. 하긴 시나리오 안에 비밀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겠지만……. 그러고 보면 정말로 원했던 건, 읽는 사람이 제각각 자기만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작가의 말에서 ‘그동안 나는 극동리에 대해서만 말해 온 건 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작가님께 가지는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그동안 제가 쓴 소설의 무대는 언제나 ‘W시’였습니다. 물론 외국의 다른 땅도 있지만, 그곳도 결국엔 W시와 연관되죠. 원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W시라고 명명했지만, 사실 W는 제게 ‘world’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극동리 역시 W시 인근에 있는 마을로 묘사되고 있고요. 

저는 세계가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욕망을 갖고 누구나 슬퍼하고 웃고 떠들고 한숨 쉬며 살아가지요. 극동리에 대해서만 말해왔다는 것은, 그런 세상을 극동리 혹은 W시라는 단면으로 잘라내 보여주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극동리엔 계속 비밀이 남아 있을 거라는 얘기는, 세계에 대해 아무리 말해도 언제나 인간과 삶은 새로울 것이며, 따라서 기록하고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도 끊임없이 생겨날 거라는 뜻이었고요.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사람들과 세계, 삶을 기억하는 과정이라고 항상 믿어왔거든요.

극동리의 진실을 추적하던 '최' 역시 영혼이 오염되었음을 암시하면서 소설이 마무리되는데요. 뒷이야기가 더 있을까요?

사실 뒷얘기가 없는 건 아닙니다. (웃음) 원래 스케일을 엄청 크게 구상했던 작품이거든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뒷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체력이 부족한 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느꼈던 활력을 욕망하게 됐는데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욕망 중 작가님의 욕망과 가장 닮아 있던 욕망은 무엇이었나요?

저도 오구식 이장이 아침에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장면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이라, 아침이면 항상 몸이 찌뿌둥하고 머리도 무겁고 눈도 잘 안 떠지거든요. 커피도 마시고 박카스도 마시지만, 한낮이 지나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이 나고 머리도 맑아지지요. 왠지 세상은 아침형 인간에게만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짜인 거 아닌가, 하는 억울감(?)을 가질 때도 많았고요. 아마 오구식 이장이 아침에 일어나서 난데없는 상쾌함에 어리둥절해 하는 부분을 쓸 때, 평소의 그런 억울함이 마구 발산되었던 것 같네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소설이라 읽는 내내 긴장을 놓칠 수 없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눈여겨 보면 좋을 반전 포인트가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반전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쭉 읽으시라 하고 싶습니다. 무슨 반전이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걸 놓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꼭 그런데요, 스릴러 영화를 볼 때마다 ‘반전을 먼저 찾아내고 말 테다’ 이런 생각에 빠져서 정작 재미있는 장면, 감동적인 장면 등등을 놓치곤 했어요. 그래서 요새는 일부러 힘을 빼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장면 장면의 흐름을 따라가는데요, 그게 훨씬 의미 있는 감상법이더라고요.

앞으로 극동리를 찾아올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지금 서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극동리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도 말하고 싶고요. 즐겁지만 좀 섬뜩한 여행이려나요?




*김희선

1972년 춘천에서 태어났다. 강원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수료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교육의 탄생」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공의 기원」으로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라면의 황제』, 『골든 에이지』, 장편소설 『무한의 책』 등이 있다. 원주에서 소설가 일과 약사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김희선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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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