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원의 반딧불 의원] 길 잃은 의료 전달 체계
각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룰. 언뜻 실타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해 볼 것이다. 그녀는 조만간 반딧불 의원에 한 번 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글ㆍ사진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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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 또는 코치

“다른 나라의 예를 볼까요? 영국이나 캐나다 국민은 주치의가 정해져 있고, 주치의를 거쳐야 상급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건 아실 거예요. 상급 병원에서 내가 원하는 분야 전문의의 진료를 마음대로 받기 어렵고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는 불만도 있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영국의 기대 수명은 OECD 평균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영국 국민은 평균적으로 일 년에 외래 진료를 다섯 번 받습니다. 한국은? 17건이에요. 영국의 3배가 넘고,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영국인이 한국인보다 3배나 건강해서 병원을 덜 가는 걸까요? 한국은 3배나 진료를 많이 받을 수 있음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요?”

한지은 씨는 재생 프로그램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인터뷰 대상은 L 교수였다. D 대학 의료관리학 교실의 그는 의료 정책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였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추천을 받았던 인물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지은 씨는 S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작가로 최근엔 건강과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다. 서브 작가를 맡고 있는 <다큐 포커스>에서는 판데믹 시대를 맞아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3부작 특집을 제작 중이다. 그녀의 시선이 모니터 옆에 올려진 기획안으로 향했다.


<1부. 길 잃은 의료 전달 체계>

거듭되는 감염병의 유행은 우리의 의료 환경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의료 기관과 의료인의 질은 선진국 수준이며, 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K방역이라 일컬어지는 우리의 감염병 관리 시스템은 이러한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국민 누구든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일까. 한국인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횟수는 세계 최고이다. 이면엔 과잉 진료와 3분 진료로 대표되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가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장점을 살리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한지은 씨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K팝, K드라마는 그렇다 치고 K방역이라니. 기획안을 볼 때마다 자화자찬에 가까운 이 단어에 속이 불편해지곤 했다. 그녀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다시 인터뷰 영상을 재생시켰다. 

“좋은 의료 서비스란 뭘까요? 최신 장비로 내가 원하는 검사와 치료를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을 좋은 의료 서비스라고 한다면 이건 대학 병원에서만 가능하겠죠. 하지만 모두가 항상 대학병원 진료를 받을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상황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 의료 시스템은 이걸 조절할 방법이 없습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실력 있는 의사와 좋은 병원을 찾아가고 싶은 건 당연할 것이다. 원하는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는 최대한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닐까. L교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선택권도 중요하죠. 하지만 의료 서비스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민이 최대한 건강하게 살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영국이나 캐나다 예를 들었지만, 다른 나라에도 의료 이용을 조절하기 위한 전달 체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료 전달 체계가 사실상 없어요.”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기획이었다. 의료 제도는 처음이었지만 건강과 관련된 내용이니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관련 전문가를 몇 명 만나 이야기해보면 대략 방향을 잡게 될 것이다. 병원 진료를 받으며 그녀 스스로 느꼈던 문제들을 꼬집어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도 내심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국의 의료 체계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다음 동영상 파일을 클릭했다. 의사 협회 정책연구소 P 연구원의 인터뷰였다.

“건강보험에서는 의료기관을 1차 의원, 2차로 병원이나 종합병원, 3차 상급종합병원,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눕니다. 바람직한 의료 전달 체계란 환자의 필요와 중증도에 따라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이죠. 가벼운 질환은 의원에서, 그보다 더 중한 질환은 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고도의 치료가 필요한 질환은 더 상급인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담당하고, 환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받으면 됩니다. 간단하죠. 하지만 현장에선 몹시 어려운 문제예요. 의료 공급자와 수요자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환자 입장에선 내 병이 의원에 갈 문제인지, 대학 병원에 갈 문제인지 모르면 큰 병원을 선호하게 됩니다.”

직장 동료들 중에선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큰 병원보단 집이나 직장 근처 의원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 보였다. 그녀도 감기에 걸렸을 땐 아파트 상가의 내과 의원에 간다. 얼마 전 결막염이 생겼을 때는 방송국 주변의 안과 의원을 검색해 가장 나아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동네 의원이 미덥지 못하다는 동료들도 많았다. 자신도 결막염이 며칠 만에 좋아지지 않았더라면, 그 의원을 계속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큰 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한 의료 전달 체계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1, 2차 의료 기관을 거쳐 3차 병원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1, 2차 의료 기관이 단순히 의뢰서를 발급하는 역할만 하는 경우도 많아요. 환자가 의뢰서를 요구하면 거절하기 힘들죠. 일단 3차 병원으로 간 환자가 1, 2차 의료 기관으로 돌아오는 비율도 극히 낮습니다.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쏠릴 수 밖에 없는 구조예요. 1, 2차에 비해 3차 병원의 진료비가 비싸지만, 이 정도의 차이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얼마 전 난소암으로 입원했던 고모의 병실에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수술과 항암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을 거라 했다. 평소 대학병원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굳건했고, 병을 일찍 발견하게 된 것도 대학병원을 다녔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고모는 바싹 마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지은아, 무조건 큰 병원을 다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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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른 인터뷰 파일을 클릭했다. 

보건복지부의 M 과장이었다. 

“지금은 1차, 2차, 3차 병원이 함께 경쟁하는 구도예요. 굉장히 비효율적이죠. 고혈압과 감기 환자를 두고 대학병원과 경쟁을 해야 하는 동네 병의원에서는 고민이 많을 거에요. 몇 억씩 하는 최신 기계를 들여놓을까.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시설을 고쳐야 할까. 동네 의원이 만성 질환 관리의 주축이 되어야 하는데, 그보다 영양 주사나 비만 치료와 같은 비급여 진료에 치중하게 되기도 합니다. 대학병원은 좋기만 할까요? 밀려드는 경증 환자를 보느라 진료실은 북새통이고 3분 진료가 일상이 됩니다. 교수들도 본연의 업무인 중증 환자에 대한 심도 깊은 진료가 어려워 지고, 이를 제대로 보려면 따로 시간을 더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교육이나 연구 역시 소홀해질 수밖에 없죠.”

그녀는 얼마 전 집 근처에 생긴 대학병원 분원을 떠올렸다. 당장 이용할 일은 없었지만 가까이에 큰 병원이 생기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아파트 값이 오르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이면에 이런 문제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문득 자신이 다니던 아파트 상가 의원은 괜찮을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환자 입장에서도 최선의 진료를 받지 못하니 손해죠. 만성 질환 환자는 의사를 자주 만나 생활 습관을 체크하고 약을 잘 먹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선 환자가 너무 많아 진료 간격을 6개월 까지도 늘려요. 우리나라의 경우 만성 질환이 악화되어 입원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OECD 평균과 비교할 때 높습니다. 의료 수준에 비해 만성 질환 관리가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정이거든요. 결국 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해 제대로 된 의료 전달 체계가 필요한 겁니다.”

그녀는 정지 버튼을 클릭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커피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느낌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기획에 동의했던 자신을 찾아 뜯어 말릴 것이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문제만 잔뜩 늘어놓고 끝낼 수는 없었다. 잔뜩 엉킨 실타래를 깔끔하게 풀 수 없다면 은근슬쩍 화두라도 던져야 했다. 그녀는 정수기의 온수를 따라 커피믹스 두 봉지를 털어 넣었다. 휘휘 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머리 속에 뿌옇게 끼어있던 안개가 잠시나마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동영상은 그녀에게도 익숙한 인물이었다.

“요즘 같은 때 동네 의원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죠. 그래도 동네 의사로 환자를 만나면서 좋은 점이 많습니다. 문턱이 낮다 보니 어떤 환자든 쉽게 올 수 있고, 대학병원에서보다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거든요.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마다 병이 생긴 원인도 다르고 나빠지는 이유도 달라요. 그래서 환자 개개인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환자로 넘쳐나는 병원에선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거에요. 환자가 대학병원만큼 많은 의원도 있죠. 하지만 저희 의원은 한가한 편이라,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방송에 출연할 의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방송에 익숙한 의사를 피하고 싶었다. 어머니를 따라 갔던 반딧불의원에서 이수현 원장을 만났을 때, 그녀는 딱 맞는 대상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를 설득해 카메라 앞에 앉게 한 건 그녀였다.

“의과대학에선 병력 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배웁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거죠. 하지만 현실은 그게 어렵습니다. 대학병원에서 15분 진료를 하는 시범 사업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외래 환자 수가 수입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이를 확대하고 계속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봐요. 결국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경증 환자를 대학병원이 아닌 동네 의원으로 유도하는 제도를 만든다고 들었어요. 일단 환영할 일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러 차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료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시한부 환자의 예후를 설명하는 의사와 비슷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를 진료실에 머물게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는 ‘인터뷰_환자_1’이라 제목이 붙은 파일을 클릭했다. 

“제가 당뇨병이 있는데요. 예전엔 혈당이 널을 뛰었지만 지금은 관리가 잘 되고 있어요. 여기서 계속 진료를 받으니까요. 원장님이 잔소리가 좀 심하십니다. 제 얼굴을 볼 때마다 담배를 끊으라고 잔소리를 하세요. 솔직히 짜증이 날 때도 있어요. 제 와이프보다 더 심하거든요. 끊었다 피우길 반복하고 있지만 원장님 잔소리가 없었다면 그동안 시도도 안했을 겁니다. 한번 더 도전해보려고 해요. 작년엔 불면증이 심했는데 원장님 말씀대로 커피도 끊고 운동도 하면서 불면증도 좋아졌습니다. 어떤 의사보다 원장님이 제 몸 상태를 잘 아시니 앞으로도 계속 여기 다녀야죠.”

환자는 같은 건물 1층의 편의점 사장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반딧불의원을 찾아갔을 때 진료를 시작하기 전인데도 대기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환자들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같은 건물의 주민이기도 했는데, 방송의 취지를 설명하자 서로 자신이 인터뷰 적임자라고 언성을 높였다. 다음 인터뷰는 역시 같은 건물의 수학학원 원장이었다. 

“우리 상가 사람들 대부분 여기 의원에 다닐 겁니다. 저도 오픈할 때부터 다녔으니 벌써 몇 년 되었네요.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전부 여기로만 다녀요. 진료 시간이 저녁인 것도 편하고, 원장님이 좀 까칠하긴 해도 믿을 수 있거든요.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는 하지 않기도 하구요. 얼마 전 기사를 보니 동네 의원 진료에 만족하는 비율이 10명 중 3명 밖에 안된다고 하더군요. 의사와 환자 간에 신뢰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처음 보는 영상이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진지한 말투에 그녀는 다시 실소를 머금었다. 다른 환자를 찍는 동안 검색이라도 한 걸까. 갑작스런 인터뷰임에도 통계 수치를 인용하는 걸 보니 꼼꼼한 성격임이 틀림없었다. 인터뷰 내내 표정이 없던 이수현 원장도 환자의 영상 클립을 보는 순간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다시 이수현 원장의 영상을 재생했다. 

“길잡이나 코치와 같은 역할 아닐까요. 제 진료실에선 다양한 문제를 만납니다. 직접 해결하기도 하고, 대학 병원에 보내기도 하죠.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매번 환자 스스로 판단하긴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동네 의원의 역할은 환자를 돕는 길잡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단 내 진료를 받는 환자라면, 병을 잘 관리해서 위중한 문제로 발전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겠죠. 환자가 그 길을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때론 잔소리도 하고 칭찬도 하는 코치가 될 필요도 있고요. 동네 의원도, 대학 병원도, 그저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수 있는 룰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에 들었던 L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가 앓는 질병의 대부분은 사실 대학 병원까지 갈 필요 없어요. 의료 시스템이 나무라면 동네 의원은 뿌리와 같은 역할일 겁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나무는 결국 죽게 마련이죠.”

각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룰. 언뜻 실타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해 볼 것이다. 그녀는 조만간 반딧불의원에 한 번 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의료 전달 체계는 국가의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로,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의료 기관에서, 적합한 의료인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라 별로 다양한 의료 전달 체계를 갖고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의료 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구분하고 수요 측면에선 의료 기관 선택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하는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 도입과 함께 행정구역에 따른 진료권을 설정하고 지역 별로 의료 기관을 1차, 2차, 3차로 나누어 기능 분담을 시도했다. 그러나 1998년 규제 개혁 차원에서 진료권의 개념이 폐지되면서 의료기관 분류를 통한 의료 전달 체계는 실질적인 기능을 상실했다. 

현재는 지역 제한 없이 1단계(의원, 병원, 종합병원 등), 2단계(상급종합병원)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전부다. 2단계 의료 기관 이용을 위해 필요한 진료 의뢰서는 의학적 판단이 아닌 환자 요구에 따라서 발급되는 경우도 많아 실효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건강보험은 개별 진료 행위마다 비용이 정해지는 행위별 수가 제도를 기반으로 한다. 많은 환자를 볼 수록 의료 기관의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가장 보편적인 지불 제도이나, 환자의 의료 기관 선택권을 제한하는 장치가 없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과잉, 중복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도 커진다. 의료법에서는 의원은 외래, 병원은 입원,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질환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도록 권하지만 현실에선 동네 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동일한 환자를 두고 경쟁을 한다. 그로 인한 대도시 대형 병원으로의 의료 자원과 환자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재도 여덟 곳의 대학 병원이 수도권에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몇 년 내 5천 병상 이상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지역 사회에서 의료 전달 체계의 뿌리 역할을 해야 할 동네 의원과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중소 병원의 위축을 우려한다. 이는 결국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침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간 의료 전달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논의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과거에 일차 의료와 동네 의원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주치의 등록제와 단골 의사제를 추진했지만 실제 시행하지 못했다. 2012년 시작된 만성 질환 관리제는 고혈압, 당뇨병 환자가 동네 의원을 지정해 진료를 받으면 환자는 진료비를 할인 받고 동네 의원은 인센티브를 받는 제도이다. 이 제도를 통해 진료의 지속성과 비용 대비 효과가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는 기존의 만성 질환 관련 시범 사업들을 통합해 동네 의원 중심의 ‘일차 의료 만성 질환 관리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다시 한 번 의료 전달 체계 개선안을 내놓았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증 환자 진료를 제한하고 진료 의뢰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개선하고 의료 기관 간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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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