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어제 최은영 작가님을 모시고 밝은 밤에 대한 이야기 나눴잖아요. 그래서 오늘 주제를 ‘밤을 환하게 밝히는 책’으로 정했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캐시 박 홍 저/노시내 역 | 마티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이고요. 1976년에 로스앤젤레스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지금은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자전적인 에세이예요. 마이너 필링스의 정의를 책에는 이렇게 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에 앙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을 받는 거죠. 그래서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남들이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소수자적 감정이다, 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가령 저자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성취가 대단하다” 같은 얘기를 들을 때 마이너 필링스가 오는 거예요. 일상에서 너무나 지겹게 차별을 당하고 있고, 수많은 차별의 장면들을 보는데 저런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나고 우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피해망상 같은 감정이 올라오죠.
저자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모범 소수자’로 여겨진다고 표현을 해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흑인들처럼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빈곤하지도 않고, 근면하고 우등한 소수자라는 이야기인데요. 이건 좀 기만이죠. 아시아인들은 흑인과 비교했을 때에 한해서만 모범적이라고 얘기하는 거니까요. 인종주의, 백인 우월주의가 이렇게 여전한데 미국 사회는 저 성공한 아시아인들을 봐라, 미국은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이고 가난한 사람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그들 개인의 문제지 구조적 문제 아니다,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 사회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잖아요. 여기에 저자는 역사적인 맥락을 짚어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줘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2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중략)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저자와 똑같은 처지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마이너 필링스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 어두운 밤이 조금은 밝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고요. 이 책은 읽는 것이 단순히 읽는 행위를 넘어선, 읽는 것 자체가 행동이고 활동이라는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었어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이장욱 저 | 문학과지성사
어떤 분들은 영화 <캐롤>처럼 사람 이름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크리스마스 캐럴의 캐럴입니다.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 시와 소설을 둘 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장욱 작가님을 잘 아실 것 같아요. 작가님은 시인으로도 활동을 오래 하셨고요. 2005년부터는 소설로도 활동하기 시작하셨어요. 저는 특히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작품을 엄청 좋아해서 이번에 이장욱 작가님의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구매를 했었죠.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좀 미루다가 한 달 전에 읽었는데요. 그때부터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 있는 책입니다. 여름 시기에 뭔가 겨울의 느낌을 가진, 그리고 밤의 느낌을 가진 책이 필요하다면 『캐럴』이라는 이 책을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어요. ‘선우’라는 인물과 ‘윤호연’이라는 인물, 그리고 ‘도현도’라는 인물입니다. 선우는 두 남성 윤호연과 도현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예요. 재미있는 것은 윤호연은 2019년의 버전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도현도라는 인물은 1999년, 밀레니엄이 되기 직전의 해를 맞이한 인물이라는 점인데요. 소설은 윤호연의 이야기로 시작이 돼요.
2019년에 살고 있는 윤호연이 전화를 한 통 받습니다. 다짜고짜 윤호연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요. 게다가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였어요.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 전화를 끊으려고 하니까 상대가 협박 같은 읍소를 해요. 자신이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더니 또 조금 있다가 당신이 죽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죠. 이 정도면 보통은 이상한 사람이네, 하고 끊을 텐데 윤호연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던 것은 상대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선우의 전 애인입니다” 라는 말이었죠. 그래서 윤호연은 도현도를 만나러 갑니다. 이상한 것은 도현도는 1999년에 살고, 윤호연은 2019년에 살고 있거든요. 20년의 차이가 있으니까 20년 전의 그 도현도와 현재의 윤호연이 만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사실이 전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 거예요.
저는 이 책을 읽다가 말 그대로 밤을 밝혔어요. 독서를 물론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어서 밤을 밝히게 된 거죠. 밤사람들, 밤에 기울어지는 사람들, 밤에 왠지 조금 기민해지고 총명해지는 사람들에게 밤을 밝혀주는 책으로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조남주 저 | 민음사
『우리가 쓴 것』은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에요. 저는 조남주 작가님 소설을 거의 다 읽었는데요. 첫 소설집이라고 해서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이 작품은 작가님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잡지 등에 발표했던 단편들을 모은 것인데요. 잡지에서 읽었던 작품도 있고, 처음 읽은 작품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다 좋았어요. 오늘은 그 중에서 「오기」라는 작품을 소개할게요.
이 작품은 주인공이 소설가입니다. 이 소설가가 악플러를 고소하는 장면으로 시작이 돼요. 주인공은 대학 교수가 된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부탁으로 선생님이 계신 대학에 특강을 가는데요. 특강이 끝나고 선생님과 주인공을 좋아하는 선생님의 제자 두 명, 모두 네 명이서 술을 마시게 돼요. 그리고 뒤풀이를 함께 한 두 학생 중 한 명이 악플을 썼던 거예요. 사실 이 소설가는 작품을 쓰면서 다른 일도 했었지만 지금은 인세로 충분히 생활이 돼서 전업 작가가 된 사람이고요. 많이 알려져서 예전에 알았던 친구들한테 연락이 오기도 하고, 이렇게 은사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하고, 특강을 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막 악플이 달린 거죠.
이런 사건이 있는 도중에 주인공은 작품을 또 한 편 발표합니다. 근데 그 작품을 읽은 선생님이 자신의 얘기를 썼다고 착각하고 주인공에게 화를 내는 이야기가 이어져요. 책에 주인공과 선생님의 대화가 있는데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분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너무 남다른 감정으로 읽을 만한 장면이에요.
저는 여기 실린 소설들이 지금 우리 현재의 모습들을 정말 많이 반영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듯 현재의 이야기를 가장 뜨겁게 쓰는 사람이 가장 앞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제목이 『우리가 쓴 것』인데 진짜 내가 같이 쓴 느낌, 내가 같이 읽은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이거 나만 하는 생각이 아니네, 싶을 때 굉장히 위로가 되고 빛이 느껴지고 그렇거든요. 이 책을 읽을 때 역시나 그랬어요. 정말 좋았고요. 조남주 작가님이 꾸준히 이런 얘기를 계속 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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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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