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답해 본 적 있나요?
지금 이 순간 진심을 다해 살아간다면 어떤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진실하게 마주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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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서복에게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명령한 진시황처럼 영생을 바란 이도 있지만, 그 역시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우리는 왜 죽음을 피하려고만 할까? 죽음은 우리가 살면서 누리는 행복을 중단시키는 두렵기만 한 존재일까? 죽음을 아는 것은 정녕 쓸모없는 일일까? 죽음을 알고 준비하는 것이 반드시 무의미한 일일까?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에서 철학하기의 참맛을 청소년에게 전달한 숭실대학교 교양대학 박연숙 교수가 이번에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는 독자가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철학자의 시선을 열네 편의 문학 작품과 영화를 통해 소개한다. 언제가 마주할 죽음을 부정하지만 말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명확히 바라봄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반갑습니다.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이후 3년 반만의 신작인데요, 죽음을 이야기한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어릴 때 혼자 집에서 엄마가 돌아오시길 기다린 적이 있어요. 늘 곁에 있던 엄마가 그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늦둥이로 태어나 엄마의 죽음을 많이 걱정했던 것이 죽음에 대한 첫 기억이에요.

청소년기를 지나서부터 나의 죽음을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어요. 누구도 자신이 얼마나 오래 고통받다 얼마나 외롭게 죽을지 예상할 수 없잖아요?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 죽음을 주제로 잡았어요.

사실 이 책을 집필하면서부터 계속 죽음에 몰두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져서 ‘이러다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죽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은근히 들었어요. 그러다 집필을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오래도록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은둔 중인 소흥렬 선생님께 죽음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몇 시간 후 선생님의 따님이 제가 메시지를 보낸 바로 그 시간 즈음에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참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 집필의 나머지 작업을 돌아가신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선생님을 기리고 싶은 마음이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게 해줬어요. 

집필을 완성하고 출판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진심을 다해 살아간다면 어떤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진실하게 마주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책에서 ‘아무도 들려주지 않은 죽음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창조하는 삶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인데, 스스로 창조한다는 의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한 가지 설명을 하고 나서 질문에 답해 볼게요. 죽음이 주제인 책에서 삶을 강조하는 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몇 년 전, 집에 도둑이 들어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소중한 유품을 모두 도난당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도난당하기 전에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금거북이고 다이아몬드 반지였지만, 신기하게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라졌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것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 뜻깊은 존재임을 깨달았고 의미가 가슴에 깊이 와닿았어요.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의 존재와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왔지요.

우리도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가 있잖아요? 헤어진 뒤에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물론 잃어버리기 전에 그것의 진가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잃고 나서야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삶도 마찬가지예요. 죽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그냥 살 뿐이지요. 그러나 죽음이 있기 때문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고유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서 다루는 열네 편의 문학 작품과 영화 속에 똑같은 죽음은 하나도 없어요. 모두가 고유하고 특별해요. 때문에 죽음에 대해 누구도 정답을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이 질문에는 누가 대신 대답해 줄 수도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해요.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아닌 나다운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고유한 나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 스스로 창조하는 삶이에요. 이때의 죽음은 스스로 창조한 삶의 ‘완성’을 의미하지요. 

선생님은 듀이를 공부하셨으니 듀이가 말한 ‘하나의 경험’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고 계실 것 같은데, 하나의 경험을 간직하려면 평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사유해야 할까요?

유명한 전시회나 음악회를 자주 찾아다닌다거나 “이 작품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1889년 고흐가 요양원에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작품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하나의 경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습관적인 태도로 대한다면 어떤 것에든 ‘하나의 경험’을 할 수 없어요. ‘하나의 경험’을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고 대상과 만나야 해요.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대면하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비전을 주는지를 생각하며 상호작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새로운 알아차림이 경험하고 정신이 깨어나지요. 그러면 자유롭게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어요. 이것이 하나의 사건처럼 선명하게 구분되는 ‘하나의 경험’이에요.

‘하나의 경험’은 예술작품을 대할 때처럼 특별한 경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늘 다니던 산책길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지 말고,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감각으로 지각하고 그 나무에게 질문하고, 성찰해봅시다. 자신에게 그 나무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며 상호작용하면 이전과 전혀 다른 나무로 다가오고 나의 경험도 새롭게 재구성되며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어요. 어떤 대상이든 나 자신의 감각들을 확장하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의미를 탐구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다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생기 있는 미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페스트』에는 일상이 무너져 혼란에 빠진 시민들의 모습이 나타나잖아요? 그런데 저자가 주목한 인물이 전염병에 적극적으로 맞선 리외나 타루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랑’이라는 점은 의외였습니다.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에게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그랑은 평범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선량한 시민이에요. 전염병으로 도시가 혼란스러울 때 그것을 기회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종교적 의미로 확대해석하는 사람, 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사람 등이 있지만 그랑은 시민들을 돕는 일에 힘을 보탭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막중한 일이 아님에도 선의에서 사람들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하는 점을 말하며 작가는 그를 영웅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생계를 위해 시청에서 낮은 직급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도 저녁에는 생계가 아닌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글쓰기 연습을 하며 아주 멋진 글을 완성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역병에 걸렸을 때조차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겨내지요.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에게 배워야 할 점은 자신의 직급이나 먹고 사는 일과 같이 개인적인 일에만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진심으로 위하는 선량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일하는 것보다 더 강인한 것은 없을 것에요. 이것이 바로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이데거의 ‘비본래적 실존’이나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을 인용하신 것을 보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남성이나 여성으로서, 첫째나 막내로서, 부모나 자식으로서 등등 수많은 역할을 요구받는 요즘 나의 존재가 사라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외부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고 나다움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젠가 우리 모두 자신의 죽음을 홀로 맞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나다움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죽음 앞에서는 무슨 대학을 나오고, 연봉이 얼마고, 얼마나 좋은 집을 소유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지요. 죽음을 앞두고도 마지막까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자신이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긴 일이 무엇이고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을 온전히 책임지며 살았는지가 아닐까요?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나’, 누군가를 온전히 책임지는 ‘나’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입니다. 진정한 나다움은 바로 그런 사랑과 책임 속에서 선명하게 자신의 가슴 속에서 빛나지요.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매우 심각합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 살다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때 미련 없이 삶을 마감한다는 이성적 자살을 말한 니체의 생각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데요, 아무 목적 없이 살아야 해서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종교에서는 신이 부여한 생명의 목적이 있지요. 전체주의 사회나 권위주의 사회에서도 지도자가 제시한 목적이 있고요. 그에 비해 많은 현대인은 외부에서 강요하는 목적이 없어 자유롭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유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은 남들처럼 살면서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무척이나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은 결국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많이 소비하는지 남들과 경쟁하는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활이 이어지면 대부분은 경쟁에서 밀리지는 않을까, 낙오자로 찍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심해져서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남들의 시선이나 경쟁의 중압감 때문에 도망치는 심정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의 목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남부럽지 않게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나의 삶을 위해 스스로 목적을 만들어내고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하고 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여정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고 진심을 다하면 삶은 꽤 만족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다 죽음을 맞이하면 두려울 것도 미련이 남을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죽음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만이 아니라 어릴수록 더욱 필요하다는 말씀은 앞으로 살날이 많은 청소년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금의 박연숙 선생님은 과거의 박연숙 학생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청소년기의 저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부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 온갖 고민에 매몰되어 열등감을 심하게 느꼈고,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어두운 터널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언젠가 끝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그냥 서둘러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었어요. 그런 과거의 저에게 지금의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마음껏 상상하라’는 것입니다. 터널이 끝나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될지, 무엇을 할지 마음껏 상상하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갖고 상상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도 견딜 만하고, 언젠가 진짜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에 만족해하며 나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예요.

 

*박연숙

당연한 것에 대해 당연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불편한 것에 대해 불편하지 않은 방식으로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논문 〈존 듀이의 경험 미학과 예술 교호작용〉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숭실대학교 베어드학부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글쓰기와 독서토론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논술문 강의와 연습』, 『나나의 논리대왕 도전기』, 『선과 악은 정해져 있을까』, 『중학생 토론학교 사회와 문화』, 『창의적 사고와 글쓰기』 등이 있고, 『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천재교육)』 를 집필했다.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박연숙 저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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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