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고 귀신 들린 맛 - 소설가 보린 인터뷰
인간이 기계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인간이 기계로 진화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그려 보고 싶었거든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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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건 두근두근』은 과거, 현재,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안드로이드, 기계 ‘소’와 제물로서 사육되는 곰 등이 살아가는 세계 안에서, ‘살(고기)’의 세 가지 변주를 담은 연작 소설이다. 독보적인 세계관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탄탄하게 짜인 이야기 속에 질문들을 녹여온 보린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로, 작가가 오랜 기간 더듬어 찾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인간에게 고기란 대체 무엇일까에서 시작된 작가의 의문은 타자를 먹는다는 행위란, 인간에게 인간 아닌 타자란,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뻗어 간다.



개성과 재미가 똘똘 뭉친 동화로 뵙다가 청소년소설로는 처음 독자를 만나게 되셨는데요. 간단한 인사와 신작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더운 날씨에 허덕이고 있는 보린입니다. 새 책으로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은 고기 이야기 세 편이 실린 책입니다. 미래, 과거, 현재를 배경으로 고기가 되고, 고기를 먹고, 고기로 사는 이야기들이 차례로 나오는데, 한 편 한 편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 권으로 세 권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에 실린 세 편의 작품 「레고와 애플」 「체리와 복우」 「곰딸과 매발톱」 모두 인물 이름이 작품 제목이에요. 처음엔 자신만만한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고, 읽으면서는 인물 사이에 팽팽한 힘의 균형을 느끼게 해주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레고와 애플」은 너무도 잘 알려진 글로벌 브랜드라서 의아한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각 편의 제목은 어떤 거창한 의도가 있진 않았는데요, 인물이 거의 이야기 그 자체인 작품들이라 그런대로 괜찮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레고와 애플」엔 인간 둘과 안드로이드 하나가 이야기를 끌어가요. 두 인간의 이름이 레고와 애플이고, 안드로이드 이름은 나주예요. 인간에게는 브랜드명을, 안드로이드인 나주에게는 지명을 붙인 건 의도가 있었어요. 흔히 그 반대잖아요.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기계에는 으레 브랜드명이 붙고, 인간에게는 전주 이씨처럼 지역명이 붙어요. 이러한 이름 붙이기는, 인간은 땅에서 태어난 자연의 일부고, 기계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저는 그걸 뒤집고 싶었어요. 인공적 인간, 자연적 기계, 모순 같아도 이미 버젓이 존재하니까요. 

인물과 세계를 설계할 때, 매우 치밀하게 건조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작품 속에 드러나지 않아도 그 인물을 받치고 움직이는 배경, 세계가 굴러가는 미세한 작동 원리들요. 소설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신경 썼던 설정이나 장치가 있다면 귀띔해 주세요. 

굳이 숨기고자 한 건 없지만, 다 쓰지 못한 부분은 있어요. ‘나주’가 안드로이드가 되어 처음 눈을 떴을 때, 여러 인격이 뒤섞인 상태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획득하기까지 기분이나 상태에 관한 추가 설정들이 있었어요. 인간이 기계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인간이 기계로 진화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그려 보고 싶었거든요. 

읽는 분들도 한번 상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안구 기증하듯 뇌 데이터를 기증했는데,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난 뒤에 기계 안에서 깨어나는 거예요. 나라는 정체성은 있는데, 기억은 듬성듬성하고, 아귀도 잘 안 맞고, 이를테면 여자인데 남성용 소변기를 사용한 기억이 있다든지 말이지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지. 이런 상황도 인간의 미래 가운데 하나일 수 있으니까, 닥쳐올 미래를 대비한 마음의 준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레고와 애플」에서 안드로이드 나주는 폐허가 된 세상에서 자신에게 배송된 인간을 가르치고 돌봅니다. 매뉴얼을 따라야 하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번번이 벗어나고, 인간을 더는 사랑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사랑하게끔 되어 버리죠. 선생님도 나주처럼 어쩔 수 없이 결국 그리하고 마는 것이 있나요? 나주를 통해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요.

글쓰기입니다. 하하하.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그 상황에 마냥 끌려다니지만은 않습니다. 마치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해요. 어쩌면 살아있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어쩔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어쩔 수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나주의 삶도 그렇고요.  

「곰딸과 매발톱」에는 그 사회에 수긍하면서도 성 고정관념을 떨치고 직접 곰을 잡아 오겠다며 길을 나서는 곰딸이 등장하고, 제도권에 흡수되지 않고 그 제도권에 계속 돌을 던지는 ‘귀신 들린’ 매발톱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귀신 들린 것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지요. 곰딸과 매발톱에 공감하고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청소년들이 있을 텐데요, 두 인물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질문이 있었어요. 내 욕망이 진짜 내 욕망이 아니라 세상이 부여한 욕망에 불과하다면, 좋은 대학, 좋은 신발, 좋은 가방, 좋은 집 같은 것들……. 무작정 그걸 쫓으면 안 되다고들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진정한 욕망을 깨닫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진정한 욕망이 뭔지 모르겠다면? 세상 안에 있으니까, 세상이 부여한 욕망을 이루어야 그래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매발톱은 진짜 자신이 원하는 걸 알고 있는 듯한데, 곰딸의 경우는 지참금으로 쓰이는 새끼 곰, 좋은 짝처럼 세상이 부여한 욕망을 자기 욕망처럼 느끼고 좇고 있어요. 그런데 그 욕망이 진짜 곰딸의 욕망이 아니라면, 그걸 좇아서는 안 되는 걸까요? 그토록 뜨겁고 절박한 바람인데 말이죠. 여기서 시작된 이야기인데, 제대로 질문을 던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답은 어디 있느냐고요? 아마, 읽는 분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요? 

「체리와 복우」 속 두 인물은 쉼 없는 경쟁 속에서 이탈한 상태예요. 체리는 배구코트 밖으로 복우는 학업 밖으로. 그럼에도 계속 본인이 거쳐 왔던 경쟁에 대해 돌아보고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아가기 위해선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경쟁에 지쳐 있는 청소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어요. 「체리와 복우」는. 두 사람이 만들어내고 있는, 옵션 밖의 삶,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시야를 경주마처럼 만들었어요. 가림막을 치고 학교와 집, 대학, 직업과 동의어로서 꿈만을 바라보게 했지요. 하지만 그 밖의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고, 그런 삶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갈 때의 외로움, 두려움, 불안 같은 대가들을 치러야 하겠지만, 모두 가는 길을 따라간다고 해서 외롭지 않거나 두렵지 않거나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그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경쟁자니까요.  

「레고와 애플」에서 레고는 애플이 식탁에 올리는 요리를 두고 이렇게 비평하잖아요. 명랑하고 다정한 맛. 레고처럼 각 작품을 맛으로 평가한다면? 

「레고와 애플」 끓어오르면서 얼어붙는 맛.

「곰딸과 매발톱」 진지하고 귀신 들린 맛.

「체리와 복우」 따끔따끔하고 원색적인 맛. 

지금 구상 중인 작품 궁금해요. 또 어떤 주제와 소재로 독자들을 찾아올지. 

「큐브」 라는 작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약 3세제곱미터 크기의 큐브에 갇힌 채 외계인에게 채집당하는 아이 이야기예요. 곧 단편이 나올 예정이고, 뒷이야기를 이어서 쓸 예정입니다.




*보린

‘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는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 시리즈, 「분홍 올빼미 가게」 시리즈, 『한밤에 깨어나는 도서관_귀서각』, 『컵 고양이 후루룩』, 『100원짜리만 받는 과자 가게』, 『뿔치』, 『초록 똥을 뿌지직』, 『개구리야, 일어나』 등이 있다.

 


살아있는 건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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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